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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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09 -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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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9-09 ㅣ No.114589




2017
09 09 () 가해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Memorial of Saint Peter Claver, Priest
(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

콜로새서 1,21-23 / 코린토 14,6-15
루카복음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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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1,21-23

형제 여러분, 21 여러분은 한때 악행에 마음이 사로잡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과 원수로 지냈습니다. 22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3
다만 여러분은 믿음에 기초를 두고 꿋꿋하게 견디어 내며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복음은 하늘 아래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되었고, 나 바오로는 그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Reading 1


Col 1:21-23

Brothers and sisters:
You once were alienated and hostile in mind because of evil deeds;
God has now reconciled you in the fleshly Body of Christ through his death, to present you holy, without blemish, and irreproachable before him, provided that you persevere in the faith, firmly grounded, stable, and not shifting from the hope of the Gospel that you heard, which has been preached to every creature under heaven, of which I, Paul, am a mini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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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4,6-15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6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 한 가르침을 나와 아폴로에게 배워, 저마다 한쪽은 얕보고 다른 쪽은 편들면서 우쭐거리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7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8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제쳐 두고 이미 임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임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임금이 될 수 있게 말입니다.
9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명예를 누리고 우리는 멸시를 받습니다.
11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12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합니다.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 주고 박해를 하면 견디어 내고 13 중상을 하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14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런 말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타이르려는 것입니다. 15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끌어 주는 인도자가 수없이 많다 하여도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내가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Reading 1


1 COR 4:6B-15

Brothers and sisters:
Learn from myself and Apollos not to go beyond what is written, so that none of you will be inflated with pride in favor of one person over against another.
Who confers distinction upon you?
What do you possess that you have not received?
But if you have received it, why are you boasting as if you did not receive it?
You are already satisfied; you have already grown rich; you have become kings without us!
Indeed, I wish that you had become kings, so that we also might become kings with you.

For as I see it, God has exhibited us Apostles as the last of all, like people sentenced to death, since we have become a spectacle to the world, to angels and men alike.
We are fools on Christ
s account, but you are wise in Christ; we are weak, but you are strong; you are held in honor, but we in disrepute.
To this very hour we go hungry and thirsty, we are poorly clad and roughly treated, we wander about homeless and we toil, working with our own hands.
When ridiculed, we bless; when persecuted, we endure; when slandered, we respond gently.
We have become like the world
s rubbish, the scum of all, to this very moment.

I am writing you this not to shame you, but to admonish you as my beloved children.
Even if you should have countless guides to Christ, yet you do not have many fathers, for I became your father in Christ Jesus through the Gos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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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6,1-5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Gospel


Lk 6:1-5

While Jesus was going through a field of grain on a sabbath, his disciples were picking the heads of grain, rubbing them in their hands, and eating them.
Some Pharisees said, "Why are you doing what is unlawful on the sabbath?"
Jesus said to them in reply, "Have you not read what David did when he and those who were with him were hungry? How he went into the house of God, took the bread of offering, which only the priests could lawfully eat, ate of it, and shared it with his companions?"
Then he said to them, "The Son of Man is lord of the 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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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9 09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안식일 법은 유다인들에게 삶의 중심이자 믿음의 표지였습니다. 노동을 일절 하지 않고 쉰다는 것은 요즘처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쉼과 여가의 의미가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명에 따라 살고자 하는 종교적 가치였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향한 철저한 사랑은 유다인들에게 하느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으로 표현되었고, 그 말씀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율법과 계명으로 구체화되어 유다인의 삶을 지배해 온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이방 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잃어버릴 수 있는 유다인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강화하려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권위가 대단했습니다. 마치 나라를 잃고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독립투사들이 민족정신을 고취하려고 노력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율법에 담긴 하느님을 향한 순종과 사랑보다는 정해진 규정과 계율을 지키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정신을 되찾도록 해 주십니다. 안식일에 금지된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는 제자들의 행위를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굶주린 이들의 절박감보다는 안식일 규정을 지키지 않는 행위를 단죄하는 바리사이들의 위선과 맞서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 임금이 배고픔을 겪는 일행을 위해 계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의 행위를 보여 준 점을 예시하는 것으로 바리사이들이 감춘 위선의 탈을 벗겨 버리셨던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느님 안에서 쉬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들,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 삶 속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과 머무는 시간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진정한 쉼이 아닌 소모와 탕진으로 얼룩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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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903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 하고 훈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그리스도의 신비를 전하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코린토 신자들은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 있었지만 오만함과 허영심에 가득 차 공동체의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바오로 사도와 아폴로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는 하느님의 종에 지나지 않으니 어느 가르침이 훌륭한지를 따질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겸손과 사랑을 지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 규정의 참뜻은 사람들의 구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메시아,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지 말라는 금지 규정보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더 중요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안식일에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것이 안식일 규정의 근본정신입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제사 빵을 먹은 행위는 율법을 어긴 행위로 볼 것이 아니라 율법의 근본정신 곧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어야 할 정도로 배가 고팠습니다. 제자들은 가난했지만 예수님 말씀의 참뜻을 따르려고 애썼습니다. 예수님의 권능으로 부자가 되려는 허영심을 버리고 죄의 용서와 화해의 가르침을 전하려고 힘썼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몫은 하느님의 뜻과 사랑, 영적인 자유 안에 머무는 삶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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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905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안식일과 관련하여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이 충돌하는 장면이 복음서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안식일 계명을 고집하는 바리사이들이 아주 완고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사실 안식일 계명에는 대단히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추구하느라고 바빴던 일상을 멈추고, 그동안 잊고 지내기 쉬운 하느님을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제정한 날이 안식일입니다. 또한 안식일은 기계처럼 일에 매여 있는 자기 자신과 이웃, 특히 생계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우리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루라도 노동에서 해방되어 하느님 안에서 쉬면서 인간다운 모습을 되찾고 누리도록 도와주는 날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일 계명에서 중요한 것은 그날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날이 주님의 날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마지막 때에 오실 메시아를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사람의 아들이시고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점은 바로 그분이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분, 안식일에 기억해야 할 그분이심을 뜻합니다.
그분과 함께 머무는 것, 이것이 우리가 안식일에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추수를 하건 탈곡을 하건 다른 것은 모두 부수적인 일일 뿐입니다. 우리의 주일은 어떻습니까? 오직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고맙고 즐거운 휴일, 아니면 주님의 날인지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와 화해하시어, 우리가 하느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게 해 주셨기에, 우리의 안식일은 그분께 감사드리면서 지내는 주님의 날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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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906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들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헤아릴 수 없는 보고입니다. 바오로가 직접 복음의 씨를 뿌린 이 도시 공동체는 유난히 심각한 분열과 오만한 태도로 그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려는 바오로 사도의 노력 속에서 우리는 그의 십자가 신학의 정수와 신앙 체험의 깊고 절절한 차원을 만납니다.
코린토는 경제와 무역이 융성하고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교차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이렇게 입지 조건이 좋은 삶의 자리 때문인지 이 지역의 신자들은 더욱 허영에 들뜨고 교만하며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유혹에 걸려 올바른 신앙에서 자주 벗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의 피눈물 나는 훈계는 세속화의 정점에 이른 오늘의 우리에게도 참으로 필요한 충고이기도 합니다.
성서학자 야곱 크레머 신부는 자신의 주석에서 바오로 사도의 주된 의도를 잘 요약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허영심과 경박함과 도취감에 들뜬 코린토 신자들에게 참된 사도직의 형태를 보여 줌으로써 그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겸손을 배우도록 합니다. 스스로를 많이 아는 자이자 부유하고 힘 있는 자로 여기며 자신이 종교적으로 큰 깨달음과 은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듯이 내세우는 교만은, 교회 안에 분파를 낳고 올바른 신앙을 해하는 큰 병이 되었습니다.
이 너무나 깊기에 바오로 사도의치료법또한 직접적이며 공격적이어야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여러 기법을 사용해 유난히 신랄한 논박을 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교회의 신자들이 자만과 자족, 교만함으로 오도되고 왜곡된 신앙에서 깨어나 다시금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서도록 호소하는 모습을 오늘 제1독서에서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치유책의 핵심은모든 것이 선사받은 것이라는 그리스도인의 근본에 관한 인식에 다다르는 데 있습니다. 여러모로 자화자찬과 자기 합리화의 문화에 젖어 있는 우리 또한 이러한 참된 겸손함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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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907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어느 수도원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기도 시간마다 고양이 때문에 도무지 기도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연장자인 수도자가 평소에는 놓아 기르던 고양이를 기도 시간만 되면 성당 옆 기둥에다 묶어 두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다가 그 노수도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고양이는 기도 시간이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들어온 수도자들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얼마 뒤 그 고양이는 수명이 다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젊은 수도자들은 다른 고양이를 구해다가 기도 시간만 되면 그 기둥에 묶어 놓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수도자들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이러한 일은 계속되었습니다. 마침내 그 수도원의 한 박식한 수도자가 다음과 같은 제목의 신학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기도 시간에 필요한 고양이의 필수적인 역할에 대한 신학적인 고찰.’
어떤 규정이 왜 생겼는지도 모른 채 그저 외적인 부분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잘 꼬집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 안식일임에도 밀 이삭을 뜯어 먹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이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 곧 추수 행위라는 노동을 하였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윗과 그 일행도 배가 고팠을 때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었다는 사실을 들며, 율법 자체보다도 그 율법이 사람을 위한 것임을 밝히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모든 규정은 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 규정이 왜 생겼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형식의 틀에 사로잡혀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로봇이 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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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908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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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903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예수님과 제자들의 공동체는 참으로 가난했던 것 같습니다.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면서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비벼 먹습니다. 그것도 바리사이들이 시비를 걸어 올 법한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어야 할 정도로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외딴곳에서도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만 가지고 있을 만큼 예수님과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이 가난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만일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고, 기적을 행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돈을 버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번듯하게 큰 집을 지어 제자들과 함께 살면서 몰려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해 주면 훨씬 더 성과가 좋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님의 능력이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마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다음에는 제자들 사이에 재산 문제로 큰 싸움이 벌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신의 옛 일터를 찾아 다시 돌아가야 했을 정도로 빈털터리였습니다(요한 21,3 참조).
오늘날 일부 교파에서 교회 세습 문제로 갈등이 일어나고 있음을 듣게 됩니다. 유산 상속 문제로 형제간에 평생을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재화는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지만, 정신적 가치를 잃은 재물은 인간의 탐욕에 쉽게 휩쓸려 종종 악을 불러옵니다. 우리가 후손에게 남겨 주어야 할 참된 유산은 재산이 아니라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가르쳐 주셨던 복음적 가치를 물려주는 것은 생명과 복을 유산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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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9 04)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릴 때 이미 부모를 잃고, 일가친척도 모르는 채 외롭게 살아갔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험난한 세상을 하루하루 살아갔습니다. 세상은 그 아이를 가엾게 여겼지만, 누구 하나 선뜻 손을 내밀고, 음식을 건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나라에서조차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언제 태어났는지,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누구나 해야 하는 ‘주민 등록’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그 아이는 여느 때처럼 껌을 팔거나 종이를 주워서 팔지 못하여 먹을 것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몸이 많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그 아이가 몸이 낫게 되자,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이는 주인이 없는 틈을 타 빵집에서 빵을 한 개 훔치다가 주인에게 덜미를 잡혔습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주인이 아이의 딱한 사정을 알아주었으면 좋았겠지만, 불행하게도 아이는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누구의 편을 들어 주어야 합니까? 그 아이는 현행법을 어겼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이럴 때 법보다는 그 아이의 손을 들어 주실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라도 그 아이를 돌보아 주고 인간답게 대했다면, 그 아이는 그렇게 배고프지 않았을 것이고, 빵도 훔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안식일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느냐 아니냐가 더 큰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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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9 05)


안식일 법은 십계명의 한 계명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탈출기 20 8-10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후 유다인들은 안식일을 ‘주님의 날’로 섬기며 소중하게 받듭니다.
율법주의가 깊어지자 ‘피해야 될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하루를 쉬며 하느님을 찬미하라는 취지가 경직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윤이 남는 일은 금지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이익이 되는 행위 자체를 피하게 했습니다. 어떤 행동이 그 범주에 속하는지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도 여러 사례가 나오기에 안식일 법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근본’을 묻고 계십니다. 왜 안식일이 생겨났는지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죄인을 만드는’ 안식일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안식일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시면서 다윗의 예를 드셨습니다. 사울에 쫓기던 그는 사제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빵을 먹었습니다(1사무 21,5 참조). 하지만 배가 고팠기에 용인되었습니다.
다윗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죄인으로 몰고 있습니다. ‘밀 이삭 뜯어 먹은 행위’를 안식일에 금지된 추수 행위로 간주한 것입니다. 우리도 여차하면 바리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제라도 사람이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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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9 06)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습니다. 배가 고파 그랬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지나던 길에 간식 삼아 그랬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동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어겼다고 따집니다. 안식일에 추수를 하면 안 되는데 손으로 비벼 먹은 것을 추수 행위로 간주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예리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바리사이들을 예수님께서는 어떤 눈빛으로 대하셨을까요? 그분께서는 담담하게 말씀하십니다. ‘다윗과 그 일행의 예화’를 들어 그들에게 답변하십니다. 말씀의 요지는 ‘율법의 유연성’을 잃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무는 보면서 숲을 보지 못하면’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생활이 힘들고 딱딱한 것이 된다면 곤란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지 말라는 율법’을 ‘하라는 율법’으로 바꾸신 분이십니다. ‘밀 이삭 비벼 먹는 것’으로 상징되는 하찮은 일 때문에 신앙의 기쁨을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모는 모든 자녀를 사랑합니다. 별난 자식에게는 더 많은 애정을 기울입니다. 주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 앞에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을 좋아하실 리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부모가 부모 앞에서 벌벌 떠는 자식을 좋아할는지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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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9 08)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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