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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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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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2-06 ㅣ No.118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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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6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제1독서 1열왕 8,22-23.27-30

그 무렵

22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가운데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23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27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28 그러나 주 저의 하느님,

당신 종의 기도와 간청을

돌아보시어, 오늘 당신 종이

당신 앞에서 드리는

 이 부르짖음과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29 그리하여 당신의 눈을

뜨시고 밤낮으로 이 집을,

곧 당신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이곳을

살피시어, 당신 종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30 또한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부디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어 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복음 마르 7,1-13

그때에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는‘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언젠가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옛날 같이 놀던 동네에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이 동네에 대해

아주 작은 것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야구를 했던 공터,

이것저것 놀이를 하던 골목길,

또한 “여기에 문구점이 있었는데,

여기에 조그마한

가게가 있었는데....”

라고 말하면서 옛날에 대해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40년 전의 일인데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신기해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정말로 머리 좋다.

그런데 너 초등학교 때의

모습은 그렇게

똑똑하지 못했는데....”
그러자 이 친구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요.
“사실 내가 좋아하던 아이가

이 동네에 살았거든.

그러다보니 다 기억이 나네.

심지어 그 아이 집 앞에

피고 있었던 작은

들꽃까지도 다 기억난다.”
사랑은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도 기억할 수 있게 합니다.

사랑을 하면서 함께 했던 기억들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으며,

 그 사랑의 주위에 있었던

것까지도 잊지 않게 합니다.

사랑은 이렇게 나쁜 머리까지

좋게 만드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이러한

생각을 한 번 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기억은 어떠한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하느님께 대한 기억 역시

가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작은 물건을 통해서도 또 어떤

행동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더욱 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억이 없다면

어떨까요? 입으로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의 종교지도자들은

 형식적인 율법을 강조했습니다.

세세한 것도 철저히 지켜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율법이

사람보다 더 윗자리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기 위한 것인데,

사랑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율법 하나만 남아서 사람들을

옭아매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빌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하느님의 계명은 우리를

옭아매는 도구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는,

그래서 더욱 더 이 세상을

기쁘게 살아가며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의 선물이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세 가지.

 할 수도 있었는데,

해야 했는데,

 해야만 했는데

(루이스 E 분)

어렸을 때의 본당신부님과

당시의 복사들이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피해야 할 사람

만날수록 해가 되는 사람,

우리가 피해야 할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상대방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쏟아버립니다.

온갖 부정적인 말로써

 다른 이들에 대해서

또 세상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이야기하지요.

 이러한 말을 계속

듣게 되면 어떨까요?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가득하면 지저분해지는 것

역시 이러한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영적으로

피폐해집니다.
둘째는 “난 원래 이래.”라고

 말하는 사람 역시

피해야 할 사람입니다.

이 말의 뒤에는 이런 말이

생략된 것이라고 하네요.

 “난 원래 이래. 그러니

네가 이해해야 해.”

결국 상대방에게 무조건

이해하라는 것,

아주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난 뒤끝이 없잖아.

내가 좀 사차원이잖아.”라고

말하는 사람 역시 이로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생각하는 대로 내뱉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러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너무나 힘들고

피곤해집니다.

이 말은 곧 무엇일까요?

내가 피해야 할 사람은

다른 이들 역시

피해야 할 사람이라는 것,

따라서 내가 이런 모습으로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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