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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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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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3-16 ㅣ No.110769

 

2017년 3월 16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예레 17,5-10

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6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7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8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10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복음 루카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 신부님들과 만나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소화를 시킬 겸해서

 당구 한 게임을 하자고 하더군요.

솔직히 저는 일찍부터 당구를

쳤었기 때문에 소위 ‘고수’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높은 점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러나 어느 순간부터 당구

자체에 재미를 잃었고

그러다보니 당구를 쳐도

이기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기겠다는 생각보다는

상대방이 빨리 이겨서 얼른

끝내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당구를 치는

저는 재미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혀 그 순간이 즐겁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때에

분명히 기쁨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지금에

충실하기보다는 과거에 대해

연연하고 미래를 걱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러다보니 지금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지금 정작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어떤 시인이 자신의 시를 여

러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이런 내용의 편지를 받았지요.
“귀하의 감동적인 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 지면에는

어울리지 않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쉰(50)이었습니다.

 이제는 틀렸다고 나이가

너무 많다고,

 나의 재능을 더 키우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면서

포기하기 쉬운 나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시를 계속해서

수정해나갔고, 계속해서

시를 써서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이 시인이 바로 그로부터

19년 뒤에, 거의 일흔의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헤르만 헤세’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데

행복을 찾은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

의미를 두었고

행복을 찾았던 그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너무나도 유명한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았던 부자는 저승에서 고통을 받고,

반대로 고통과 시련 속에서 힘들게

살아왔던 라자로는 죽어서

아브라함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부자가 죽어서 고통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이 세상에서 온갖 나쁜 죄를

지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면

불쌍한 라자로를

외면했다는 것이지요.
그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해야 할 것은 호화로운 삶이 아니라,

가난하고 불쌍한 이를 위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실천은 나중에

기회 될 때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

그래서 내 자신을 드러내는

호화로운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알아주는 삶인

 사랑의 실천이 중요합니다.

 지금 행하는 이 사랑의 실천만이

우리를 하늘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삶을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몰입하면 모든 것이 축복이다.

(허허당)

헤르만 헤세.

"의미 있는 일."

수도원에서 접시 정리

하는 것을 소임으로 하는

수녀님이 계셨습니다.

수녀님께서는

 늘 불만이 많았지요.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세상에 알리는 거룩한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겨우 접시

정리나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원장

수녀님께서 다가와 물으십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십니까?”
수녀님께서는 퉁명스럽게

“딱히 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원장 수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런,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군요.”
바로 그 순간, 수녀님께서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작은 일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커다란

일을 할 수 있는가를

깨달은 것이지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비록 작고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보낼 수 있습니다.

접시를 사용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거나

수도원 공동체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었지요.

단순한 일도 마음을 담으면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커다란 일을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일

자체에 마음을 담아 의미 있는

순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없습니다.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내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부산에 가기 위해 오랜만에 KTX를 탔습니다.

KTX 플랫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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