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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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신부님의 매일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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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hunter14] 쪽지 캡슐

2017-11-11 ㅣ No.116104

 

이미지: 실외, 텍스트

 

 

 

눈과 손을 항상 하늘에로 드높인 채



동료 살레시오 회원들 가운데 정말이지 우러러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타고난 개척정신과 탁월한 선교정신, 거기다 유창한 외국어 실력...저는 한국어 하나도 제대로 안되는데, 제가 잘 알고 지내는 한 살레시안은 구사하는 외국어 수가 엄청납니다. 영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불어, 독어...


그러다보니 당연히 중책이 주어져서, 전 세계를 안방 드나들듯이 드나듭니다. 틈만 나면 장거리 해외 여행이 잡혀있기에, 삶이 참 피곤해보이지만, 교회와 수도회를 위해 참으로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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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316~397)도 그랬습니다. 그도 다양한 달란트, 그 위에 영혼 구원을 위한 강렬한 에너지를 지녔으며, 이를 바탕으로 당시 유럽 전역을 다니면서 영웅적으로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마르티노의 이력서는 참으로 특별합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습니다. 그는 원래 이교도였습니다. 헝가리 이교도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요청으로 군인의 길로 들어섭니다.


든든한 빽인 아버지를 생각한다면, 그는 평생 군생활을 하다가 편안히 정년퇴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군 생활 중에 체험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말을 갈아탑니다. 힘과 권력과 출세의 말에서 내려 그리스도의 말로 갈아탄 것입니다.


사제로 서품된 마르티노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헌신합니다. 당시 다양한 이단들이 창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복음선포 활동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교도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추방되기를 밥먹듯이 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후일을 기약하며 깊은 산속으로 피신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지치지 않고, 또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겨 꿋꿋이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마르티노의 지칠줄 모르는 사목적 열정을 눈여겨본 사람들은 그를 프랑스 투르의 주교로 추대하였습니다. 그는 감동적이고 명쾌한 강론으로 수많은 이교도들을 개종시켰으며, 방황하고 흔들리는 그리스도 신자들의 마음을 다독여주었습니다.


이방인 군인 장교에서 그리스도의 군사로, 그리스도인에서 주님의 거룩한 사제로, 사제에서 주교로 직분이 바뀌었지만, 그의 마음 속 갈망은 오직 한 가지 가난하고 겸손한 수도자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람, 마르티노여! 수고도 죽음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으니,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는 것을 거절하지도 않았으며,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눈과 손을 항상 하늘에로 드높인 채 그의 무적(無敵)의 마음은 기도에 굳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술피치노 세베로의 서한 중)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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