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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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무소유보다 무욕을 지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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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9-10-20 ㅣ No.133318

 


2019년 다해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무소유보다 무욕을 지향하라>


 

     복음: 루카 12,13-21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임금님이 한 농부에게 네가 하루 종일 걸어서 돌아온 땅을 내가 네게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왕의 약속을 들은 농부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자기의 땅을 넓게 얻기 위해서 열심히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뛰기도 했습니다. 조반 먹을 생각도 잊었습니다. 점심때도 넘기며 열심히 걸었습니다.

 

한 발자국 더 걸으면 그만큼 내 땅이 넓어진다.’

이런 생각으로 몸도 돌보지 않고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해가 서산에 지는 것을 바라보며 입에서 단김이 올라오고 앞이 가물가물 현기증이 나는데도 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태양이 서산에 넘어가는 순간 임금님 앞에 다다랐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체력이 다 소진되어 임금님 앞에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우리 안의 자아를 임금으로 모시면 이런 결말을 맞습니다. 자아는 돈에 대한 욕심과 육체에 대한 쾌락과 사람을 심판하는 교만으로 우리 각자를 저렇게 이용하고 죽입니다.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예쁜 여자와 사귀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자아를 섬기는 것임도 몰랐습니다. 그저 짝꿍이 예쁘니 행복했던 감정만 믿고 그런 자아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심지어 중학생 때 이런 짓도 하였습니다. 혼자 짝사랑했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해봤지만 속으로는 많이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학교를 졸업하고 겨울방학이 되었습니다. 편지로라도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창피해서 같은 편지를 여러 명에게 보냈습니다. 물론 그 애들은 제가 같은 편지를 했다는 것을 자기들끼리 연락하여 알고는 아무도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참 찌질 했던 시절이고 매우 창피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대학에 가니 제가 좋다고 말하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괜히 좋아했다가 더 예쁜 여자가 나타날까봐 겁이 났습니다. 그리고 더 높은 곳을 바라봤습니다. 그 사람과 사귀는 것을 생각하며 마음 졸였습니다. 뭐 이도 저도 안 됐습니다.

 

사제가 되니 모든 고통은 욕구에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욕구는 자아가 자아내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욕구를 자아내는 자아를 죽이기 위해 오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은 성당에 나와 그 자아의 욕구를 채워 주십사고 청하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청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돈이 많은지, 적은지 관심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난 관심 없는데?”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돈을 다시 찾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욕심은 버리고 영혼구원에만 힘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영혼을 잃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가 행복의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화분에 물을 주지 못하고 며칠을 밖에서 지내야 했을 때의 마음 아픔 때문에 차라리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그 화분을 다른 사람에게 줘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의 평화가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평화가 오지는 않습니다. 만약 평화가 왔다면 그 화분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소유가 아니라 소유하려는 욕망때문에 생깁니다. 이 욕구를 버리지 못하면 원하는 것이 있든 없든 고통스럽습니다. 무소유를 지향하지 말고 무욕을 지향해야합니다. 욕구가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다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항상 감사하며 부족함 없이 살아야 나를 노예로 삼는 자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고 믿고 조금씩 노력하면 그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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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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