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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1열왕5,1~15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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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8-03-05 ㅣ No.118752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1열왕5,1~15ㄷ)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 질 것입니다." (10)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그는 어린아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4) 

 

'요르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라는 엘리사의 명령은 율법의 명령이다. 

"정결하게 되려는 이는 자기 옷을 빨고 털을 모두 민 다음에  물로 몸을 씻으면 정결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진영으로 들어가  자기 천막 밖에서 이레 동안 머무른다.  이레째 되는 날에 그는 다시 털을 모두 민다.  머리탈과 수염과 눈썹까지 털을 모두 민다. 그런 다음 옷을 빨고 물에 몸을 씻으면 그는 정결하게 된다." (레위14,8.9) 

그러나 율법에서 몸을 씻는 것은 나병이 완전히 고쳐지고 나은 다음에 깨끗하게 되었음을 증거하는 상징적인 의식 행위였다. 그런데 열왕기 하권 5장 10절에서는 깨끗하게 되기 위한 예비적 동작으로 몸을 씻는 행위를 명령한 것이다. 그러니까 의미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예수님께서 한 소경을 치유하실 때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요한9,7) 하시니, 이에 소경이 즉시 순종하여 가서 씻었드니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다시 말해서 엘리사가 나아만으로 하여금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게 한 것은 치유를 위한 행위이거나 치유 후 행하는 의식적 행위에 대한 명령이라기 보다는 즉각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일곱 번이나 씻으라고 한 것은 완전한 순종에 대한 요청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도의 인내까지도 포함된 명령인 것이다. 

왜냐하면 '완전하다','만족시키다'란 뜻의 히브리어 '샤바'(shaba)에서 온 말이 일곱(shibah)을 나타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곱'을 '완전(충만) 수'라고 하는 것이다.

 

한편 이것은 예리코성을 점령할 때에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렛날에는 사제 일곱 명이 뿔 나팔을 부는 가운데 에리코 성읍을 일곱 번 돌아라고 명령하신 말씀(여호6,3-5)과 3년 6개월 동안의 가뭄 끝에 엘리야가 자기 시종에게 비올 증거를 찾는데 일곱 번을 다녀오라고 명령한 것(1열왕18,43)과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일곱 번씩이나 같은 행위를 하게 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지 못한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만 치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내용을 고찰해 볼 때, 엘리사의 명령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로, 나아만의 교만을 부수기 위한 것이다.

외연상으로 나아만은 아람의 군대 장군인 반면에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예언자에 불과했기에 나아만이 교만한 자라면 엘리사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만한 자에게는 하느님께서 결코 당신의 전능과 은총을 베풀지 않으신다.

"주님을 경외함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의 길을,사악한 입을 미워한다." (잠언8,13) 

"주님께서는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역겨워하시니  그런 자는 결코 벌을 면치 못한다." (잠언16,5)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 (야고4,6; 잠언 3,34)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루카16,15)

 

둘째로, 나아만의 나병이 오직 하느님의 능력으로만 치유됨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고대 근동 지방에는 불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주술 행위가 사용되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러한 처방은 커녕(1열왕5,12),아주 평범하게 여겨오던 혼탁한 요르단 강에서 씻으라는 처방을 했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14) 

본절의 '내려가서'라는 말속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있다.  

첫째로, 나아만이 요르단 강으로 내려갔다는 뜻이다. 당시 엘리사가 있던 곳은 사마리아 땅의 고지대이므로 나아만은 상당한 거리를 여행하여 요르단 강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둘째로, 나아만이 예언자의 말에 순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몸을 담갔다'에서 '담그다'라는 말은 몸에 물을 완전히 적시거나(2열왕8,15) 물 속에 몸을 전부 집어 넣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모세오경에는 이 단어가 '피에 찍다'(레위14,6),'기름에 담그다'(신명33,24), 사무엘 상권 14장 27절에는 '꿀을 찍어'라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나아만은 예언자의 명령에(1열왕5,10) 보다 더 철저하게 몸을 씻었음을 알 수 있다.

나아만이 병이 치유되고 그가 어린아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진 것은(1열왕5,14) 그의 철저한 순종적 행위에 대한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본절에 나타난 '일곱 번'은 나아만이 엘리사의 요구에 얼마나 철저히 순종했는가를 나타냄과 동시에 나아만의 나병이 오직 하느님의 능력으로 치유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일곱은 하느님의 완전함과 충만함을 뜻하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엘리사와 나아만 장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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