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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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찰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삶을 / 사순 제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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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8-03-05 ㅣ No.118751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믿는다는 것은 과연 쉬운 일일까, 아니면 어려운 일일까? 쉽다면 한없이 쉽고, 어렵다면 한없이 어려운 게 믿음이 아닐까. 믿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증명할거라면, 연구를 해야 하고 고민을 해야 하리라. 그리고 그 명백함을 보면 흔들림 없이 믿을 수도. 그러나 믿음은 단순한 받아들임을 요구한다. 신앙의 이치를 아무리 설명해도, 최종적으로 마지막 한 걸음은 결국 개인의 몫이다. 이미 믿음을 받아들인 이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도 믿음은 자연과학의 이론처럼 증명되는 게 결코 아니리라.

 

나자렛 사람들도 그 결단은 정녕 어려웠으리라. 그것은 그들만의 믿지 않을 것들이 눈에 보였기에. 그들에게 기적이 믿음을 갖게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예수님께서도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기적이 믿음을 주는 게 아닌, 믿음만이 기적을 가져다주는 것임을 단순하면서도 아주 강력한 논리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기적을 꼭 보여 달라고 청할 게 아닌, 무엇보다도 믿음을 더해 주기를 청해야 할게다.

 

그러기에 나자렛 고향 분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게 어쩜 당연했으리라. 그들의 가치관은 오로지 출신, 성장배경 등처럼 외형에만 매어있었기에. 사실 예수님은 나자렛의 비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게 그들의 눈에 담긴 고정관념이었다. 자신들도 소외되고 하찮은 이었기에 예수님도 의당 특별할 수 없는 분이시라는 게 그들 생각이었으리라.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카 4,24)” 이에 모두가 화가 잔뜩 났을 게다. 과거를 들추며 폄하하려는 그들이니까. 지금 우리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열등감과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이일수록 외적 조건을 따지기만 한다. 이런 이들과는 천박한 만남이 되기 쉽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이들과의 만남은 정년 아름다워질 게다.

 

어쩜 우리네 실상도 멀리 떨어져 있는 이보다 아주 가까이 있는 이에게 존경받는 게 훨씬 어렵다. 이는 누구나 다 약점을 안고 있기에, 가까이에는 그게 속속들이 노출되기에. 그래서 가장 가깝다는 부부가 서로 존경하기가 매우 어렵단다. 속설로도 많은 여성이 다시 태어난다 해도, 지금 배우자와는 혼인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할 정도이다.


그런데 어느 모임에서 남편을 정말 존경한다는 이가 있었다. 그녀의 말로는 자신의 남편은 하는 사업마다 제대로 되는 것도 없는 그야말로 사회적으로 보면 참으로 무능한 이란다. 그런데도 남편을 존경하는 이유는 남을 배려하고 욕심이 없으며 순수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가치관과 시선에 따라 상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보다.

 

약점을 가진 이는 허영이나 교만에 빠지기 쉬우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른 사람을 압도하려 한다. 때로는 자기가 높아지려하기보다 다른 이가 추락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리라. 이런 이는 남을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며 어둡게만 산다. 우리는 멀리 있는 이보다 오히려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소홀하기 쉬우며 상처를 주고받기가 쉽다. 우리의 행복과 구원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산다면, 지금 여기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이룰 수 있을 것이기에.

 

예수님께서 사신 모습이 매우 좋아 보이기에 예수님을 닮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이다. 예수님을 모시는 곳에만 참된 기쁨도 숨어 있다. 예수님께서 나자렛에서 하신 그 경고는 지금 우리를 향한 것일 수도. 우리가 그분을 이미 잘 안다고 하는 그 순간 우리도 그들처럼 같은 위험에 빠지게 될지도.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겸손과 배려하는 마음일 게다. 축복은 하느님께서 자비로이 선사하시지, 법의 준수로만 얻는 보상은 아니다. 그것은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분께서 돌보시는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삶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 지위, 학벌, 능력 등으로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조장한다. 함께하는 서로의 부족함을 나누기보다는 경쟁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예수님 말씀은 바로 우리를 향하는 것일 게다. 지금 이 시각 우리도 업신여기는 이가 없는지를 냉철히 성찰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삶을 살아야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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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나자렛,겸손,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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