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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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예수님다운 말씀 - 윤경재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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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3-11 ㅣ No.110656


 

가장 예수님다운 말씀

 

- 윤경재 요셉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5,44~45)

 

 

 

지구상에 숫한 사람이 태어나고 또 떠나갔습니다. 그런 중에 수많은 스승님들과 성인들이 인류에게 등불이 되었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분들 말씀 중에 아무리 살펴보아도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끌어 주신 분은 없습니다. 사랑에 대한 명령은 많았으나 그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와 범위가 하느님의 사랑에까지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만 눈이 쏠렸기 때문에 숨이 막히고 다리가 풀리는 듯한 막막함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과연 나 같은 죄인이, 좁쌀만 한 소인배가 대붕의 뜻을 따를 수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는 그 말씀을 실천해 볼 엄두조차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무작정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 아닙니다. 저 높은 고지를 향해 돌격하라고 몰아치는 분이 아닙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 모습은 우리 수준에 맞게 앞장서서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인내하시며 설득과 아량으로 솔선수범하시는 분이십니다. 물 타기나 타협이 아니라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라고 하시면서 아버지께 가는 외길을 정확히 보여주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오늘 복음은 그 말씀의 순서를 거꾸로 정리해 볼 때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무엇을 강조하고자 하셨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유다인의 언어 습관은 결과를 앞에 내세우고 목적을 나중에 밝히는 성향이 있습니다. 우리와 조금 다릅니다.

 

완전하신 아버지처럼 되려면 무엇보다 편을 가르지 말아야하며, 그래야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기도가 필요하고, 기도하게 되면 아버지께서 능력을 주시어 박해자와 원수를 미워하지 않게 된다. 나아가 원수를 사랑할 필요성과 당위성까지 깨닫게 된다. 그런 까닭은 아버지께서 판단하시어 공정한 징벌과 용서를 내려주실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즉 원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결과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은 아버지께 나아가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나서서 원수를 미워하거나 사랑하기를 결정한다면 오류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부족하거나 과하기 마련입니다. 합당한 원칙은 이미 아버지께서 정해놓으셨습니다. 우리가 간여할 성질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을 잘 따르고 잘 지키는 자녀를 효자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볼 때 예수님이야말로 완전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가장 잘 따르신 최고의 효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아빠라 부르시며 친근함을 강조하셨고, 하느님 아빠를 닮기를 갈망하셨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영성은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늘 예수님처럼 효자가 되는 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본질은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본질을 놓치고 다른 것에 머물다보면 공연히 헛힘만 쓰게 됩니다. 너무 힘에 겨워 목적에 도달하기도 전에 지치고 말 것입니다.

 

불교 수행법 중에 선()이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글자를 파자해보면보일 자가 합쳐서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그러니 그 뜻은 하나만 본다.’입니다. 본질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고 나머지는 잠시 유보하여 본질로부터 유추한다는 말입니다. 불교에서 본질은 자신 안에 불성이 담겼음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본질은 아버지의 자녀로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과 진리와 생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본질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산다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할 수도 있고, 기꺼이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수도 있으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달콤한 꿀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삶의 고비에서 나는 지금 아버지의 자녀로서 사는가? 하고 묻는다면 우리 앞에 어떤 길이 뚜렷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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