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대림 제1주일/순도 높은 기다림/글:양승국 신부

스크랩 인쇄

원근식 [wgs691] 쪽지 캡슐

2017-12-02 ㅣ No.116552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마르코 13,33-37)

순도 높은 기다림


또 다시 기다림의 때, 대림시기가 다가왔습니다.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한번 묵상해봤습니다.


가장 절박하게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기다렸던 때는 언제였던가?

아무래도 군대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얼마나 힘겨웠던지, 얼마나 길었던지, 또 얼마나 지루했던지 눈만 뜨면 ‘이제 얼마 남았지?’ 하고 꼬박꼬박 날짜를 지워나가며 제대 날짜를 기다렸습니다.

잠깐 동안 유학생활을 할 때의 기억도 끔찍합니다. 외국어, 그까짓꺼, 일단 나가면 적당히 되겠지, 했었는데,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어학연수 시절,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만 봐도, 저게 KAL기인가, 저거 타고 그만 돌아가 버릴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열 두 번이었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던지, 빨리 논문 끝내고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꽤 오래전, 갑작스런 발병으로 한밤중에 응급실 신세를 진 적이 있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조여 오는 죽음의 공포에 떨며 혼미한 가운데서도 뭔가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 제 간절한 기대와는 달리 전혀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듯 한 새파란 ‘왕초보’ 의사들만 번갈아가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점점 증폭되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발 빨리 아침이 와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의사 선생님, 제발 빨리 출근 좀 하세요!”

또 다시 도래한 이 은총의 대림시기, 우리가 지닌 ‘기다림’의 질은 어떻습니까? 강도나 수준은 어떻습니까?

이 대림시기, 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보다 열렬히, 보다 순도 높게 주님을 기다릴 일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그저 하릴없이 시간만 죽이는 일이 절대 아니겠지요. 기다린다는 것,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는 것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 최선을 다해 주님의 뜻을 찾는다는 것,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운다는 것이리라 믿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나 자신 안에 있는 깊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 중지되었던 주님과의 영적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겠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자기중심적 삶을 탈피한다는 것, 내 지난 삶에 대한 대대적인 성찰과 쇄신작업을 시작한다는 것을 뜻하겠지요.

이 대림시기, 우리도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지만 주님께서는 더 간절히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 ☆ ☆   ☆ ☆ ☆   ☆ ☆ ☆

오늘의 묵상



교회 전례력으로 오늘부터 대림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림은 구세주의 오심을 기쁨과 희망 속에서 기다리는 것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렸듯이, 우리도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지요? 또 그 의미는 무엇인지요? 그저 성탄이라는 성대한 미사를 지내는 것이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시는 것인지요?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 성대하고 감동적인 성탄 축제인지요? 교회가 해마다 대림 시기를 마련해 놓고 끊임없이 기다림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기다림’은 다른 말로 ‘그리움’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가 그립기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그리움은 행복했던 추억의 시간도, 떠나보낸 아름다운 연인도, 미래에 다가올 멋진 인생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실제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예수님의 초상’을 그리워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그리움의 뿌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자신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에 닿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 강생의 사건은 하느님의 얼굴을 이 땅에서 보여 주신 사건입니다. 그 얼굴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 안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그리움은 ‘하느님을 닮은 나’, ‘때 묻지 않은 본래의 순결하고 맑은 나’, ‘온전하고 충만한 나’를 향한 그리움입니다. 해마다 대림 시기를 보내는 까닭은 우리의 진정한 기다림의 목적지를 깨닫고 그 본래의 순수한 나, 완전한 나를 찾아 길을 떠나는 데 있습니다.


[말씀자료 : - 양승국 신부 - 신부-편집 : 원 요아킴]

 

 



2,385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