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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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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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10-19 ㅣ No.115550

 

2017년 10월 19일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제1독서 로마 3,21-30ㄱ

형제 여러분,

 21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26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27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

행위의 법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28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29 하느님은
유다인들만의

하느님이십니까?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은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30 정녕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복음 루카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많은 이들이 어떤

사건이 행복이나

 불행의 길로

이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이

아님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즉, 사건이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태도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자동차 사고가 크게 났습니다.

자동차는 크게 부서졌지만,

다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기서 어떤 이는 다친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면서 행복해 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는 자동차가 크게

 부서졌다면서 불행해 합니다.

자동차 사고라는 사건만으로는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대신 그 사고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성실하고

또 상냥하고 친절해서 좋은

평가를 받는 형제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만 그렇게

보일 뿐, 집에서는 너무나도

게으르고 또 아내에게 심한

폭력까지도 행합니다.

집안에서의 모습과 밖에서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지요.

이를 잘 알고 있는 아내의

친구가 친구 남편의 모습을

어떻게든 바꿔볼까 하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개적인

곳에서 친구 남편의 모습을

상세하게 밝혔습니다.

이런 상황을 겪게 된 이 형제님은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자신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면서 아내를

더욱 더 심하게 때린다.

아니면 친구의 말에 깊은

깨달음을 얻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용서를 청한다.”
만약 자신을 뉘우치지 않고

더 큰 폭력을 행사한다면

분명히 불행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지 않겠다면서

자신의 변화를 가져온다면

행복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결코 친구의 말 한 마디가 아닌

남편이 받아들이는 태도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해서

 ‘불행’ 선언을 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은 말을 하면

더 좋을 텐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보면 모욕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들 역시 구원의 길에서

제외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반성하고

뉘우쳐서 다시 주님의 길을

 따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단순히

모욕의 말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옛날, 사람들의

죄상을 낱낱이 끄집었던

예언자들을 죽였던 조상들의

 전철을 밟아 예수님을 자신들의

손으로 제거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불행의 길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들을 향해서

끊임없이 구원의 길을

제시해주십니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의

모습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철저하게

지켜나가는 사랑의 모습으로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최선의

탈출방법은 탈출하는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부평4동성당 출신 신부 모임이 있었습니다.

"꿈"

꿈이 있는 사람과

꿈이 없는 사람 중에서

힘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마 그것도 문제냐 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아마 열이면 열 모두가

꿈이 없는 사람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꿈이 있는

사람이 힘들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꿈이 있으면,

이 꿈을 위해 끊임없는 변화의

노력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꿈이 없는 사람은

힘들지 않을까요?

힘들지 않습니다.

단지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무엇을 하든 목적지가 없으니

의미와 가치를 느낄 수 없고,

점점 허무해져서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힘든 길을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고통스러운 길을

가시겠습니까?
저는 기왕 가는 길,

힘든 길을 가겠습니다.

힘들어도 분명히 인생은

풍요로워지기 때문이지요.
저랑 같이 가실 분~~~

힘들어도 꿈을 키워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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