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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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하느님께서는 성령께서 우리 대신에 기도해주셔야만 들어주십니다---요한 타울러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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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대 [yongdae_kim] 쪽지 캡슐

2017-04-29 ㅣ No.111735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마태 15, 21-28)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복음 말씀은 하느님께로 회심하게 되면

 

하느님의 은총을 받게 됨으로써

 

가장 고귀하게 되고 유익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회심하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하느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

 

과연 누구에게서 떠나신 것일까요?

 

율법학자들위선자들로부터 떠나신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은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지식을 믿고

 

자신의 계획에 따라서만 행동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수도(修道)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수행(修行)을 하면서도 자신의 지식을 믿고

 

자신의 계획에 따라 행동하는 수가 많습니다.

 

수많은 수도자들이 자신의 지식에 의존하거나

 

자신의 계획에 따라 수행을 하기 때문에

 

성령을 받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실제로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소위 지식인으로

 

자신의 이성(理性)과 통찰력을 이용하며 아주 박식합니다.

 

이 때문에 존경을 받게 되고 미사여구를 많이 사용하지만

 

이들의 내면에는 아무 쓸모 없는 쓰레기들만 있습니다.

 

 

 

그리고 위선자들 즉 바리사이들은 스스로

 

훌륭한 정신적인 지도자로 자처하며 자존심이 대단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계획과 관습에 따르며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을 유일한 인생 목표로 삼고

 

자신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무척 비난했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이들을 떠나신 것은 이들이 주님께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어깁니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하는 식으로

 

완고하게 자신들의 관습만 고수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점잖게 꾸짖으셨습니다.

 

너희는 또 어째서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느냐?”(마태 15,2-3)

 

이들은 내면에서 인도하시는 성령의 가르치심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관행만 중시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관행을 따르지 않고

 

성령에만 따르려고 하는 하느님의 친구들을 몹시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수도원에서는 이러한 바리사이들이나

 

잘못 인도되고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면 안 됩니다.

 

수도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언제나 어디에나 항상 규율을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을 겉으로만 보이고

 

내면으로는 피조물들만 좋아하는 수도자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들은 여러 기도문들을 열심히 암송하고 수많은 시편을 읽습니다.

 

길 잃어 불쌍한 우리 시대의 유다인들인 그들이

 

많은 시편들이나 성경을 많이 읽으므로

 

열심히 수행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정작 하느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들은 기도하고 금식하고 조심하면서 수행하고 있지만

 

하느님은 구실에 지나지 않으므로 수행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이들은 성령을 받아 깨달으려고는 하지 않고 사랑이 없이

 

이기심에 따라 열심히 수행하는 척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의 안중에는 영원하신 하느님이 전혀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하고

 

말씀(마태 12,30)하시면서, 이런 포도밭은 황폐화시키시어

 

수확을 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수확시기가 되면 알곡

 

즉 당신께서 선택하신 사람들만 거두어들이시고

 

쭉정이들은 모두 버리십니다.

 

하느님께서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하셨는데도

 

열매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버리십니다.

 

이렇게 거짓으로 수행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열심히 믿는 척 하고 겉으로만 보이려고 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은 헛된 꿈만 꾸면서 옛날의 율법학자들과 다름없이

 

열심히 수행하는 척만 하고 있으므로

 

양심적인 고해 신부는 이들의 고백을 전혀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부터는 영원히 떠나가 버리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거룩한 주님께서는 어디로 가셨을까요?

 

주님께서는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티로는 마음이 아파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하며

 

시돈은 쫓기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런데 애석하게도

 

내면의 고통과 박해와 내면에서 쫓기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 안에서 이 두 시련을 만나는 만큼

 

더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러한 시련들을 만나 처절하게 싸워야만

 

영혼이 얼마나 고귀한지 알게 되고 덕을 쌓으려고 하게 됩니다.

 

 

 

그런데 쫓기는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을 말할까요?

 

내적인 인간은 항상 진심으로 하느님 가까이 가려고 하므로

 

자신의 내면에 계시는 하느님께로 가려고 끊임없이 애쓰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안에 있는 외적 인간은 매우 완강하게 저항하게 되는데,

 

연약함으로 인하여 다시 외적인 일들에 매달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적 인간은 하느님과 함께 있으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느님과 함께 있기만을 바라게 하시고

 

하느님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참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외적인 인간은 항상 이를 거부하고 싸웁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 싸움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로마 7,22-23)

 

그래서 바오로 성인은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하고 고백했습니다.(로마 7,16;19)

이는 본성과 이성(理性)의 싸움으로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시어 영혼 안으로 들어가신 후

 

하느님 앞에서 싸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를 알고 감사하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잘 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영혼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혼이 항상 이렇게 초조하게 생각하므로

 

더욱더 괴롭게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아무 위로도 받지 못해도

 

하느님을 위해서 참을만하다고 여기게 되면

 

예수님께서 오시어 이 영혼을 사로잡으십니다.

 

하지만 영혼이 성()과 속()의 갈등으로

 

몹시 괴로워하며 참아내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습니다.

 

이러한 내적인 고통을 느끼더라도 겸손하게 받아들여

 

()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버리고

 

()에서는 좋은 것을 전혀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에 붙들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때때로 왜 수행을 해왔는지를 모르기도 하는데

 

우리가 보기에도 고행(苦行)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시는 고통을 겸손하게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참아내면

하느님께서 은총을 듬뿍 주시어 행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동반자들인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잘못 인도하려고 하고 심지어는 심하게 공격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나쁜 생각과 나쁜 습관 등의 유혹과 육욕(肉慾)

 

외적인 어려움 때문에 괴로워하게 되지만,

 

내적으로는 비정상적인 충동이 생기게 되어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견딜 수 있게 해주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렇게 괴로워하는 불쌍한 사람이

 

갈등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가나안 부인이 매우 슬퍼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 가서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말하면서

 

주님의 도움을 청했던 것처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영혼의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는

 

하느님을 찾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되며

 

응답으로 무한히 기쁘게 내면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영혼의 한숨으로

 

너무나 깊고 슬프므로 무한한 공간을 지나서 하느님의 마음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바오로 성인이 말했듯이 우리를 위하여 성령께서 간구해주시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형제 자매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를 이렇게 준비시키시면

 

다른 준비는 전혀 필요 없게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영혼의 울부짖음을 하느님께서 듣지 못하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적 고통과 외적인 고난을 용감하게 참고 견뎌내어야,

 

온 하늘에 큰 소리로 울부짖어야만,

 

역사하시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몹시 가혹한 시련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렇게 형언할 수 없이 막막할 때

 

더욱더 하느님께 간절하게 매달리고 하느님께만 의존하고

 

하느님을 위하여 참아내려면,

 

하느님께 봉사하는 줄도 모를 정도로 자기를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영혼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어떻게 자비의 문을 닫아버리실 수

 

있느냐고 울부짖게 되더라도 영혼은 하느님께 항상 진실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가나안 부인에게 자비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가나안 부인이 그리스도를 따라가면서 큰 소리로 기도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가나안 부인을 돌려보내시라고 간청해도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하고 말씀하시면서

냉정하게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찬양하고 기도를 들어주십사 하고 간청해도

 

다음과 같이 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거절하셨을 뿐만 아니라 더 모욕적인 말씀을 하시어

 

가나안 부인은 아무 가치도 없는 개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모욕적일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몰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가나안 부인은 그래도 꾸준히 참으며 주님의 개처럼

 

하느님의 뜻에 따르려고 주님의 분부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 심한 괄시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부인을 개라고 부르시고

 

부인은 자신이 개보다도 못한 가련한 강아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인은 이렇게 완전히 자기를 버리고 진심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가나안 부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뜻을 알려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고 거룩한가요?

 

이런 사람은 말로만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고 경건한 마음만도 아니었고

진심으로 간절히 하느님의 뜻을 알려고만 합니다.

 

간절해야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괴로움과 고통과 부끄러움은 인간의 영혼에 가장 좋지 않지만,

 

하느님을 흔들림 없이 믿고, 가나안 부인을 주님께서 거부하셨을 때처럼

 

주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것으로 믿을수록

 

주님께서 틀림없이 자비를 베푸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부인은 주님께서 심하게 대하실수록

 

주님의 자비를 더욱더 간절하게 청했는데,

 

자신이 하느님께 청한 것은 모두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는 참된 믿음을 갖게 되는 주님의 길입니다.

 

이와 같이 내적 외적 불행에도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하느님께서 인도해주시기만을 기대하고 아무 불평 없이

 

구원해주실 때까지 참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사람은 중개인이 전혀 없이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첩경을 발견한 것인데,

 

이 길은 하느님 앞에서 모든 피조물을 보면서 자기를 완전히 버려야 하는 길로

모든 기쁨을 버리고 죽을 때까지 하느님만 믿으며

 

마음을 완전히 비워야만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주님께서 가나안 부인에게 ,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진실하고 믿음이 깊은 이 영혼에게도 꼭 같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나

 

내가 사랑하는 이여, 나에게 청하는 것은 모두 가득 받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고 여러분의 것들을 모두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은총을 줄 테니 나의 영혼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나와 하나가 되도록 하여라.”하는 말씀을 듣게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자기를 버린 만큼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하느님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느님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가나안 부인과 같은 한 소녀의 예를 들기로 합니다.

 

소녀는 아직도 살아 있으며 사건은 4년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소녀는 사건이 일어나자 하느님과 성모님과 모든 성인들을 보는 것 같아

너무나 황홀해했지만 자신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와 같이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으며 지옥의 고통과도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옥에 떨어진 영혼은

 

강제로 하느님과 성인들로부터 격리됨으로써

 

하느님을 더 이상 볼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착한 소녀는 괴로워하며 이제는 성모님과 성인들을 보려고 했지만

 

성모님과 성인들은 하느님의 기쁨에 빠져

 

잠시도 소녀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소녀가 구원해달라고 외쳤지만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예수님께 자비를 청했지만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소녀를 몹시 꾸짖으시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직까지 너는 은총을 받을 자격도 없지 않느냐?”

 

소녀는 성모님도 성인들도 구세주도

 

자신을 도우시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하느님께로 직접 가서 말했습니다.

 

오 나의 영원하신 하느님, 불행하게 된 저를 아무도 도우려고 하지 않나이다!

 

창조주이신 영원한 하느님 아버지, 저는 겸손하게 당신의 의로운 심판을 받겠나이다.

이 지옥 같은 놀라운 고통이

 

당신의 뜻이라면 영원히 겪겠사오니

 

제게서 당신의 뜻을 영원히 이루소서.

 

당신의 뜻에 제 모든 것을 맡기겠나이다.

 

하느님 아버지, 당신께서 저 안에서 그리고 저로 인하여 기뻐하신다면

 

저는 영원히 저를 버리겠나이다.”

 

소녀는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자

 

자신이 있던 곳에서 나와 하느님께서 계신 깊은 곳에 빠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심연으로 빠져 하느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나는 소녀가 평생 죄를 짓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도 소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가끔 하느님을 거스르고 세상 것들에 집착하기도 하는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하느님과 하나가 되려고 할까요?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느님의 섭리라면 지옥의 고통도 영원히 참고 견디려고 한

 

독실한 믿음을 가진 소녀로부터 우리 모두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도생활을 시작해도 소녀처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4, 5년 안에 수행이 끝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동료들에게 습관처럼 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님들, 저가 영원히 주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저를 위하여 주님께 기도해주세요.”

 

그러나 여러분이 바른 길을 가고 있다면

 

전혀 그런 영광을 생각하지도 않으려고 할 것이고

 

하느님의 친구들 중 가장 낮은 반열에도

 

끼이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가장 낮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그러면 보다 높이 올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은 모두 비천하게 되어

 

낮은 곳으로 던져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눈이나 사람의 눈으로 보아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어떤 곳에 두려고 하시는지 알 수 있게

 

하느님께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그 자리에 만족하며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마십시오.

 

 

 

형제 자매 여러분, 무슨 일을 하더라도

 

부족하든 풍족하든 영적(靈的)인 일이든 육적(肉的)인 일이든

 

하느님께서 영혼 안으로 들어오시도록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자기를 완전히 버리십시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벌거벗고

 

거지 옷을 입고 바위나 가시나무 위에서 금식을 하는 것보다는

 

하느님의 사랑에 조금이라도 근접하려면

 

위와 같은 덕을 조금이라도 쌓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돼먹지 않은 자신의 수행방법을 따르는 것보다

 

일 분이라도 자기를 버리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이 가장 칭찬 받을 수 있는 길이고 첩경이며

 

가장 쉬운 길이고 가장 유익한 길입니다.

 

오 하느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가서

 

당신과 같은 덕을 갖추고 새로운 생명을 얻으려고는 하지 않고

 

당신께서 주시는 소중한 은총의 기회를 잃고 방황하고 있나이까?

 

이들은 자장가를 듣고 하느님을 잊고 잠든 것처럼

 

열심히 정진했을 때 주어지는 은총을 모르는 채

 

매년 수행을 계속하고 있나이다.

 

이들은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초보자처럼 깨달음에서 멀어져 있으니

 

정말 불쌍한 존재이나이다.

 

이들이 자기 수행법이 해로운 줄 알았다면

 

고집스럽게 자기 수행을 한답시고 허송세월하여

 

골수가 마르게 하고 피가 얼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이나이다.

 

 

 

오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저희가 당신처럼 살 수 있게 

 

기꺼이 저희가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의 영원한 섭리를 따르게 해주소서. 아멘.

 

<사순절 두 번째 주일의 두 번째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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