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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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사물을 분석부터 하지만 어린이는 사물과 하나가 되려고 합니다--- 도나 오쉐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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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대 [yongdae_kim] 쪽지 캡슐

2017-06-23 ㅣ No.112798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5-30)

 

 

 

프랑스의 신비주의자 쟌느 귀용 부인(Mde Guyon, 1648-1717)이 말했습니다.

 

어린이들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 않으며

 

의심을 잘 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일이 드뭅니다.

 

그들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성령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어른들은

 

하느님의 역사(役事)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다가 하느님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사랑의 기술을 가르친다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언어를 가르칠 필요가 없으며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지하고 순진한 사람들은 먼저 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하느님의 영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준비하게 하고

 

방법을 터득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면 목자들도 예언자로 바꾸시며,

 

구태여 성전에서 기도하지 않아도

 

넓은 문을 활짝 여시어 누구든지 들어가게 하십니다.

 

지혜의 영은 거리에서 큰 소리로

 

순진한 사람은 이 문으로 들어오시오!’하고 외칩니다.(잠언 9,4)”

 

 

 

나는 아이슬란드에 살고 있는 여덟 살 먹은 미국 소녀

(가족 중에 아이슬란드 말을 가장 잘했기 때문에)에게 아이슬란드 말을 배우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느냐고 묻자 그 소녀가

 

하루나 이틀 또는 일 주일 정도면 충분합니다.”하고 답했습니다.

 

소녀는 아이슬란드 말을 배운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아이슬란드 친구들과 놀기만 했을 뿐입니다.

 

아이들은 말을 자연스럽게 배우지만

 

어른들은 문법이나 회화법과 같은 방법과 절차를 먼저 배우려고 합니다.

 

우리는 직접 경험하는 능력을 잃어버렸으므로

 

모든 일에 지침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무언가를 분석하려고 하지만 어린이들은 아이들과 어울리려고만 합니다.

우리는 분석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함으로써

 

자신의 다른 능력을 이용하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나는 많이 배운 사람들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자신을 알려고는 하지 않고 많이 아는 것을 명예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비웃지만

 

엉뚱한 것에 정신이 팔려 있는 교수를 마음 속으로 존경합니다.

 

그러나 체스터튼(Chesterton)이 말했듯이

 

미친 사람은 정신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만 매달려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른 능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능력을 무시하고 사용하지 않듯이

 

마음을 무시하게 되면 야만인이라고 불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미개한 감정이나 의지를 관대하게 생각하고

 

심지어는 키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락에 맥을 못 추고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은 미개한 사람들이 아닌가요?

 

 

 

감정이나 의지를 무시하게 되면 결코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이나 탐욕에 관한 만화만 배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존경하고 관심을 보이는 것이며

하나가 된다는 깊은 뜻을 갖고 있지만

분석(analysis)’은 반대로 분열시킨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교육제도는 어린이들의 타고난 능력을 키워주지 못하고

 

사회처럼 위험한 환경에 내버려둠으로써 미친 사회에 물들게 하고 있습니다.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고 하신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세 도시에는 유식한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논쟁을 하시느라고 몹시 피곤해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코라진과 벳사이다에는 지식인들의 흔적이 전혀 없이 사라져버렸고

카페르나움에는 폐허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만은 영원히 잊지 않고 계속 되고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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