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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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사목국의 바쁜 일을 도우며 (예전 이야기) /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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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리 [uree] 쪽지 캡슐

2019-03-23 ㅣ No.217664

 

교구 사목국의 바쁜 일을 도우며

배우리 프란치스코 (용산성당 전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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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르릉~
  새벽 5시.
  "아, 오늘도 신부님이... 또 뭘 부탁하시려고?"
  이런 새벽 전화는 거의 예상대로였다. 신부님은 오늘도 급히 도와 주어야 할 일이 있다면서 전화를 걸어 왔다.
  이렇게 이른 새벽에 전화를 안 주셔도 될 텐데... 신부님은 내가 딴 볼 일로 나갈지도 몰라 미리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어떤 사정이 있던 말던, 상대가 마음이 내키던 말던 신부님은 이렇게 아무 때나 소환(?) 명령을 하곤 하셨다.

  오태순 신부의 교구 사목국장 재임 시절 이야기이다.
  당시 신부님은 교구 설절 150주년 행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일로 무척 바쁘게 일하고 계셨다. 당시에 사목국에서 행사 외에 힘을 가장 쓴 것은 서울 1백여 개 본당의 연간 사목 계획의 수립과 실행에 관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각 본당이 어떤 계획 아래 어떤 식으로 사목을 해 나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아 우선 각 본당에서 사목계획서를 교구에 제출토록 하였다. 이 계획서 수립에 앞서 이에 대한 교구 지침이 필요하다시면서 신부님께서는 그 지침서 마련을 내게 일임하셨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신부님의 뜻을 받들어 차근차근 일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를 각 본당에 공문으로 발송하였다.
  얼마 후에 사목국 앞으로 교구의 거의 모든 성당에서 사목계획서를 보내 왔다. 사목국에서는 이를 일일이 검토하여 계획서가 미비한 본당에는 보완점을 지적해 다시 제출토록 하기도 하였다. (당시, 사목국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일부 본당에서의 불만이 감지되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병아리 신자(?)였던 나는 지금보다는 신심도 더 깊었던 것 같고. 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싶었던 때이기도 해서 신부님의 이 일에 기꺼이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내 개인적인 일도 많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제쳐놓고 사목국 일에 더 열심히 임했다.

  내가 신부님과 연을 맺게 된 것은 우리 대부이신 하승백(야구 해설가 하일성 부친) 회장의 추천에 의한 것이었다. 하 회장님은 당시 용산성당 총회장이시면서 교구 일도 하셨는데, 당시 성당 교육분과장이던 나를 교구에 연결시켜 주심에 따라 오 신부님과의 연을 맺게 되었다.

  오똑오뚝 오뚝이.
  나처럼 작달막하고 몸이 뚱뚱하신 오 신부님은 대중 앞에서 늘 자신을 "성씨가 오씨라서가 아니라 모습이 오뚝이를 닮아 사람들이 '오뚝이 신부'라고 별명을 붙여 불러 주는데 그게 싫지 않다고 하셨다. 오뚝이는 누가 쓰러뜨려도 흔들거리다가 다시 일어나지 않느냐면서 자신은 어떤 일에도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저 쭝뚱한 신부님의 몸 속에는 무엇이 들었기에 누구에게나 거침없이 아니 염치도 없이(?) 일을 도와 달라고 가리낌없이 청하실 수 있는 걸까?
  일벌레의 속성을 타고나신 오뚝이 오태순 신부. 아마도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까지는 일에서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하지 않으면 못 배겨 무언가 무조건 하실 것이다. 당신이 못하시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기어코 하실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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