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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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기적이자 선물이다 -하느님의 나라 삶의 세 보물- 이수철 프란치스코 요셉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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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17-02-26 ㅣ No.110356

 


2017.2.26. 연중 제28주일, 이사49,14-15 1코린4,1-55 마태6,24-3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삶은 기적이자 선물이다

-하느님의 나라 삶의 세 보물-



삶은 기적이자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기적이자 선물입니다. 


삶은 은총입니다.

삶은 축복입니다.

삶은 신비입니다.


삶은 아름답습니다. 

삶은 진실합니다. 

삶은 좋습니다. 

삶은 새롭습니다. 

삶은 놀랍습니다. 

너무나 많이 잊고, 잃고 지내는 참 좋은 삶입니다. 


아주 예전 세수 하다가 세수대야 밑바닥에 선명히 보였던 글자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Life is beautiful!”


“인생은 아름다워라!”,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삶에 대한 예의입니다. 

현재가 선물입니다. 영어 ‘present’ 단어가 이를 증명합니다. 

하느님의 선물로 가득한 현재의 기적입니다. 


삶이 ‘사실들facts’만 있고 

하느님이, 자연이, 시가, 깊이가, 여운이, 아름다움이, 고백이, 향기가 없으면 

너무 허전하고 허무합니다. 


삶은 시입니다. 

시같은 아름다운 인생, 향기로운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처럼,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하느님을 보세요. 

얼마나 감성이 풍부합니까? 

복음의 예수님을 보세요. 

그대로 시인이요 관상가요 신비가입니다. 


마침 며칠전의 신선한 감동도 생각납니다. 

멀리 남쪽 화순 수도원의 도반으로부터 받은 카톡의 사진과 시입니다. 

저의 영명축일 축하 메시지에 대한 화답입니다.


“고맙습니다. 이프란치스코 신부님! 

기쁨과 감사입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과 자비로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믿음, 희망, 사랑으로 뽈리카르보 신부 합장.”


이어지는 봄꽃 사진에 시가 감동이 되어 마음을 적셨습니다. 

환갑을 훌쩍 넘은 나이에 넘치는 감성이 경이로웠습니다.


“누구의 바람인가/누구의 기다림인가

 찻잔에 핀/한송이 매화

 누구의 설렘인가/누구의 그리움인가

 빈가슴 적시는/매화의 향기-(보리, ‘매향’)


전라남도 나주호옆에는 2월 중순이면 백매화꽃이 피고 능주 우체국옆에는 청매화가 그윽한 향기를 발한다 합니다. 

꽃사진과 함께 보내준 꽃향기의 선물같은 시가 참 고마웠고, 

“평강平康, 청안淸安하옵소서!!!” 마침 축복인사의 말마디도 좋았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살아야 하는 축복받은 삶입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기적이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선물이요 무슨 기적입니까? 

사랑의 기적이요 사랑의 선물입니다. 

희망의 기적이요 희망의 선물입니다. 

믿음의 선물이요 믿음의 기적입니다. 

이 모두를 종합하면 하느님의 기적이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오늘의 강론 주제는 ‘하느님의 나라 삶의 세 보물’입니다. 


보물이란 말에 연상되어 문득 떠오르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영성 깊은 노선배 수도자와의 대화입니다. 

늘 기쁘게 명랑하게 사는 왜관 수도원의 노 선배 수도자입니다. 

저와 선배 수도자와의 주고 받은 덕담입니다.


“신부님은 왜관수도원의 살아있는 보물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보물寶物이 아니라 고물古物입니다.”


아, 얼마나 기막히게 아름다운 역설의 진리입니까? 

겸양의 표현으로 고물이라 했지만 순간 고물이 보물임을 깨닫습니다. 


눈만 열리면 모두가 하느님의 선물이자 보물입니다. 

우리 수도원의 수사님들 역시 하나하나가 '신의 한수'같은 하느님의 보물들입니다. 

사실 불교 사찰에서는 노승老僧과 노목老木을 두 보물로 꼽습니다.


첫째, 사랑의 보물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가 짧지만 메시지의 여운은 강렬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동케 합니다.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바로 하느님의 사랑의 고백입니다. 

시온이 상징하는바 하느님이 우리를 잊었다고 칭얼대는 우리 모두입니다.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우리 모두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의 고백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잊었지 하느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보물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이웃을 사랑할 뿐 아니라 나도 사랑해야 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나를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듯이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얼마전 어느 분으로부터 받은 감동적인 글을 나눕니다.


“신부님, 어제 돌아오는 길에 한가지 사실을 알아 차렸습니다. 

얼마전부터 제가 제 자신에게 잘 대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큰 변화입니다. 

이 변화에 근원은 신부님께서 주신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아직은 사랑이 희미하지만 신부님을 통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제 영혼에 사랑의 싹이 트기 시작했나 봅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사랑밖엔 답이 없습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사랑 결핍은 만병의 근원이요 만병통치약은 사랑뿐입니다.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알아 차리는 것이요 

이런 하느님을, 그리고 하느님의 선물인 이웃과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 희망의 보물입니다.


오늘 독서순입니다. 

제1독서에 이사야서에서 착안한 사랑 보물에 이은 제2독서 착안한 희망 보물입니다. 

제가 작년 5월부터 지금까지 무릎 치료를 받으면서 요즘 들어 깊이 깨닫는 것이 ‘희망이 약藥이다’라는 진리입니다. 

하느님 주신 최고의 명약이 희망입니다. 


오늘 화답송 세 번째 구절이 큰 위로가 됩니다.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내 희망이 오리니, 내 영혼아, 그분을 고요히 기다려라.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흔들리지 않으리라.”(시편62,6-7). 


희망하면 희망하는 대로 됩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자비에 절대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 영원토록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것보다 심신에 더 좋은 약은 없습니다. 

하느님만이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그러니 절망은 얼마나 치명적인 큰 해악인지요. 


그러나 이런 희망 역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할 때 주시는 희망의 보물, 희망의 선물입니다. 

저는 바오로의 다음 확신에 넘치는 고백에서 그의 샘솟는 희망을 읽었습니다.


“나는 누구의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을 심판하지 마십시오. 

진정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자는 아무도, 자기도 심판하지 않습니다. 


이래야 세상 칭찬에, 세상 비난에, 세상 심판에 초연할 수 있습니다. 

심판은 자비로운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열렬히 희망할 때 심판은 저절로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주님을 닮아 한없이 너그럽고 여유롭고 자비로워집니다. 

희망으로 이미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셋째, 믿음의 보물입니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세상에 큰 보물은 행복은 없습니다. 

믿음의 눈이 닫혀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보다 재물을 주인으로 섬기지만 

믿음의 눈이 열린 이들은 하느님만을 주인으로 섬깁니다. 


화답송 세 번째 시편이 참 좋습니다.


“내 구원, 내 영광이 하느님께 있고, 내 든든한 바위, 내 피신처 하느님 안에 있네. 

백성아,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아라.”(시편62,8-9ㄴ).


하느님과 재물,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만 주인으로 섬길 때 참으로 자유로운 삶입니다. 

온갖 두려움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되어 참 자유인이 됩니다. 


믿음의 눈이 활짝 열리면 

우리도 하느님의 선물로 가득한 세상에 감동, 감탄, 감격하는 예수님처럼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이 활짝 열린 신비가 예수님은 

우리 모두 하늘의 새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들에 핀 나리 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라 하십니다. 

하늘의 새들도 이렇게 먹이시고 들판의 꽃들도 이렇게 챙기시는데 

너희는 얼마나 잘 먹이고 챙기겠느냐 우리의 믿음 부족을 꾸짖으십니다. 


답은 믿음뿐입니다. 

믿음 부족에서 파생되는 온갖 복잡하고 혼란한 일들입니다. 

믿음이 좋을수록 단순한 삶에 걱정도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다음 예수님 말씀은 믿음 약한 우리 모두를 향한 단비 같은 사랑의 질책입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한 줄을 아신다.

---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고 오늘 하루 여기만 행복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만 추구하라 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입니다. 


오늘 복음의 절정이자 결론입니다. 

믿음의 승리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중심에 모시고 섬기며 사는 삶의 자리 바로 거기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참 좋은 믿음의 선물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야 단순한 삶에 충만한 행복입니다. 

주님은 오늘 사순시기에 앞선 연중 제8주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사랑, 희망, 믿음의 하느님의 나라 삶의 세 보물을 선물로 주십니다.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내 구원이 오리니, 내 영혼 그분을 고요히 기다리네.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흔들리지 않으리라.”(시편62,2-3).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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