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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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3일[(녹)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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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11-23 ㅣ No.134042

 

2019년 11월 23일 토요일

[(녹)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말씀의 초대

안티오코스 임금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 때문에 자신에게 불행이

 닥쳤음을 깨닫고, 큰 실망을 안고

죽어 간다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고 하신다.

◎제1독서◎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 때문에

나는 큰 실망을 안고 죽어 가네.>
▥ 마카베오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6,1-13
그 무렵 1 안티오코스 임금은

내륙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페르시아에 있는

엘리마이스라는 성읍이
은과 금이 많기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2 그 성읍의 신전은

무척 부유하였다.
거기에는 마케도니아 임금

필리포스의 아들로서
그리스의 첫 임금이 된

알렉산드로스가 남겨 놓은
금 방패와 가슴받이

갑옷과 무기도 있었다.
3 안티오코스는 그 성읍으로

가서그곳을 점령하고

약탈하려 하였으나,
그 계획이 성읍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바람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4 그들이 그와 맞서

싸우니 오히려 그가

달아나게 되었다.
그는 크게 실망하며 그곳을

떠나 바빌론으로 향하였다.
5 그런데 어떤 사람이

페르시아로 안티오코스를

찾아와서, 유다 땅으로 갔던

군대가 패배하였다고 보고하였다.
6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앞장서 나아갔던 리시아스가
유다인들 앞에서 패배하여

도망치고, 유다인들이 아군을

무찌르고 빼앗은 무기와

병사와 많은 전리품으로

더욱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7 또 유다인들이
안티오코스가 예루살렘

제단 위에 세웠던 역겨운

것을 부수어 버리고,
성소 둘레에 전처럼

높은 성벽을 쌓았으며,
그의 성읍인 벳 추르에도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다.
8 이 말을 들은 임금은

깜짝 놀라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던 대로

일이 되지 않아 실망한 나머지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웠다.
9 그는 계속되는 큰 실망

때문에 오랫동안 누워 있다가
마침내 죽음이 닥친 것을 느꼈다.
10 그래서 그는 자기 벗들을

모두 불러 놓고 말하였다.
“내 눈에서는 잠이 멀어지고

 마음은 근심으로

무너져 내렸다네.
11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네.
‘도대체 내가 이 무슨

 역경에 빠졌단 말인가?
내가 이 무슨 물살에

휘말렸단 말인가?
권력을 떨칠 때에는

나도 쓸모 있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는데 …….’
12 내가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이 이제 생각나네.
그곳에 있는 금은 기물들을

다 빼앗았을뿐더러,
까닭 없이 유다 주민들을

없애 버리려고 군대를

보냈던 거야.
13 그 때문에 나에게 불행이

닥쳤음을 깨달았네.
이제 나는 큰 실망을 안고

 이국땅에서 죽어 가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2-3.4와 6.16과

19(◎ 15ㄷ 참조)
◎ 주님, 당신의 구원에

환호하오리다.
○ 주님, 제 마음 다하여 찬송하며,

당신의 기적들을 낱낱이 전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 찬미하나이다.

◎ 주님, 당신의 구원에

환호하오리다.
 ○ 제 원수들이 뒤로 물러가고,

 당신 앞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져 갔나이다.

당신은 민족들을 꾸짖으시고

악인을 없애셨으며,

그 이름을 영영

지워 버리셨나이다.

◎ 주님, 당신의 구원에

환호하오리다.
 ○ 민족들은 자기네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지고,

자기네가 쳐 놓은

그물에 제 발이 걸리네.

가난한 이는

영원히 잊히지 않고,

가련한 이들의 희망은

 영원토록 헛되지 않으리라.

◎ 주님, 당신의 구원에

환호하오리다.

◎복음환호송◎

2티모 1,10 참조
◎ 알렐루야.
○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7-40

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송◎

저는 하느님 곁에 있어 행복하옵니다.

주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으리이다.

◎오늘의묵상◎

사두가이들은 천사의 존재와

육신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것도

부인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한 생명이나

부활이라는 주제에서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예수님과도 의견의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도 바로 그 내용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부활이 있다면

설명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며

이성적으로 질문합니다.

곧, 율법은 형제가 죽으면

그 후사를 이어 주려고 죽은

형제의 아내를 맞아들이라고

가르치는데, 만일 부활이 있다고

한다면 죽고 난 뒤 부활하였을 때

그 부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대답하십니다.

부활이란 지금 현재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이 육신의 조건을

그대로 가지고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변화된

육신으로 되살아나서

천사들과 같아지기에

더 이상 세상의 연에 매여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불교가

 말하는 환생처럼 지금과 전혀

다른 존재로 되살아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현세에 매이지

않는 온전히 변화된 몸으로

부활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을

칭찬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바리사이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기에 예수님께 호의를

가집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예수님과 대립각을 세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조상의 전통보다 당신에 대한

믿음을 더 중시하시기 때문입니다.

곧,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은

 모두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그분을

죽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완전히

다른 몸으로 부활하심으로써,

진정 부활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오늘 제1독서는 역사적으로

유다인들을 가장 괴롭힌 임금

가운데 하나인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의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맞은

불행한 죽음의 원인이

예루살렘에 대한 그의

죄 때문이었음을 안티오코스가

직접 입으로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크게

실망하고 죽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그도 과연 부활을

누릴 수 있을까요? 원수들의

구원 문제는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판단하실 문제인 듯합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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