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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9 -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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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10-19 ㅣ No.115540




2017
10 19 () 가해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Memorial of Saints John de Brebeuf and Isaac Jogues, Priests, and Companions, Martyrs
Thursday of the Twenty-eighth Week in Ordinary Time
(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성 이사악 조그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 기념일)

로마서 3,21-30 / 에페소서 1,1-10
루카복음 11,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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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3,21-30

형제 여러분, 21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26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27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 행위의 법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28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29
하느님은 유다인들만의 하느님이십니까?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은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30 정녕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Reading 1


Rom 3:21-30

Brothers and sisters:
Now the righteousness of God has been manifested apart from the law, though testified to by the law and the prophets, the righteousness of God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for all who believe.
For there is no distinction; all have sinned and are deprived of the glory of God.
They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in Christ Jesus, whom God set forth as an expiation, through faith, by his Blood, to prove his righteousness because of the forgiveness of sins previously committed, through the forbearance of God
? to prove his righteousness in the present time, that he might be righteous and justify the one who has faith in Jesus.

What occasion is there then for boasting? It is ruled out.
On what principle, that of works?
No, rather on the principle of faith.
For we consider that a person is justified by faith apart from works of the law.
Does God belong to Jews alone?
Does he not belong to Gentiles, too?
Yes, also to Gentiles, for God is one and will justify the circumcised on the basis of faith and the uncircumcised through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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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1,1-10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에페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사는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Reading 1


EPH 1:1-10

Paul, an Apostle of Christ Jesus by the will of God, to the holy ones who are in Ephesus and faithful in Christ Jesus: grace to you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Blessed be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who has blessed us in Christ with every spiritual blessing in the heavens, as he chose us in him,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to be holy and without blemish before him.
In love he destined us for adoption to himself through Jesus Christ, in accord with the favor of his will, for the praise of the glory of his grace that he granted us in the beloved.

In Christ we have redemption by his Blood, the forgiveness of transgressions, in accord with the riches of his grace that he lavished upon us.
In all wisdom and insight, he has made known to us the mystery of his will in accord with his favor that he set forth in him as a plan for the fullness of times, to sum up all things in Christ, in heaven an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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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Gospel


Lk 11:47-54

The Lord said:
"Woe to you who build the memorials of the prophets whom your fathers killed.
Consequently, you bear witness and give consent to the deeds of your ancestors, for they killed them and you do the building.
Therefore, the wisdom of God said, 'I will send to them prophets and Apostles; some of them they will kill and persecute' in order that this generation might be charged with the blood of all the prophets shed sinc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from the blood of Abel to the blood of Zechariah who died between the altar and the temple building.
Yes, I tell you, this generation will be charged with their blood!
Woe to you, scholars of the law!
You have taken away the key of knowledge.
You yourselves did not enter and you stopped those trying to enter."
When Jesus left, the scribes and Pharisees began to act with hostility toward him and to interrogate him about many things, for they were plotting to catch him at something he might 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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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10 19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성 이사악 조그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 기념일)



인간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소통하면서, 상대방의 표현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상대방이 하는 표현의 배경이나 논리를 따지면서 그 말의 정확도를 가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자는 소통의 방식이고, 후자는 학문의 방식입니다. 올바르게 소통하고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이 방식들을 잘 조합해야만 마음을 다해 대화할 수 있고, 올바른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좀 더 근본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과 나를 포함한 공동체 전체를 위한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공감이고,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그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망각한다면, 인간의 이기심과 사리사욕의 도구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구약 시대부터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입니다. 그렇지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으로 그 말씀을 재단하고 평가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가진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자기의 권리와 이득을 챙기려는 무기로 삼았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죽어 간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은 이 세대, 곧 공동체 전체가 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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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 10 13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의 위선과 교만을 향한 예수님의 ‘불행 선언’은 가혹하리만큼 엄중하십니다. 명색이 유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이들인데 군중들 앞에서 그렇게 모욕을 당한다면, 그들이 독한 앙심을 품고 예수님을 없애려고 모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양심을 지키고, 옳은 일에 굶주리며 정의에 앞장서고, 진리를 외치며 불의와 맞설 수 있는 용기는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닙니다. 막상 내게 닥칠 위협이나 보복을 생각하면 차라리 무관심하거나, 내 할 일만 잘하고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진리 앞에 용기를 지닌 이들이 있습니다. 권력 앞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억눌린 이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신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무관심했던 자신들 때문에 겪게 된 이 사회의 엄청난 모순과 권력의 폭력을 좌시할 수 없음을 몸으로 직접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정책 입안으로, 공직자들의 안일함과 부정부패로, 독점적 경제 체제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부 기득권층의 욕심으로 바닥 인생을 겪은 이들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결심으로 거리로, 광장으로, 온라인 사회 관계망을 통한 진실 알림이로 목소리를 냅니다.
내가 겪지 않았다고 없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들의 가장 큰 죄를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라고 경고하십니다. 혹시 우리도 편견에 사로잡혀 나는 물론, 세상의 예언자들까지도 침묵의 벽으로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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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10 15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는 장면들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어떻게 예상하셨을까요? 신학자들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거부와 박해를 받았다는 점을 예수님께서 잘 아셨기에 당신의 죽음을 예감하셨으리라고 말합니다.
예언자들을 죽인 과거 세대의 후손들이 지금 예수님 앞에 있습니다. 조상들이 살해한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은 조상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예언자들이 옳았음을 드러내는 행위이겠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칭찬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조상들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지 않고, 그들을 존경하면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자신들은 물론 다른 이들을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들도 조상들과 똑같이 예언자를 죽이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입증합니다.
이러한 바리사이들의 태도와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이렇게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우리 세대가 박해하고 있는 예언자들은 누구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아니, 다음 내용을 자문해 보셔도 충분합니다. “나에게 옳은 말을 해 주는 사람을 어떻게 맞이하는가? 진리 편에서 사회 정의와 공동선을 부르짖는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톨릭 사회 교리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이 시대에 태어나시더라도, 거부와 박해를 당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요 비극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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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 10 16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녀 헤드비제스 수도자 기념일)
(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동정 기념일)


일본에서 주로 작품 활동을 해 오며 현대 미술의 대가로 인정받는 이우환 화백은, 자신의 미술 세계의 바탕을 엿보게 하는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비평으로도 유명합니다. 그가 일본 미술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주목 받던 60년대 말에 쓴 글 가운데 현대 미술을 지배하는 주관주의와 관념주의에 대한 비판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하이데거의 기본 통찰을 받아들여 오늘날의 문명과 예술의 근본 문제를 이렇게 진단합니다. “세계를 구상 실현을 위한 대상화의 소재로 규정하고 모든 것을 그 인식 대상으로 몰아세우는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은 근대의 특유한 의식 작용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는 세계로부터 떼어 내어 인간적 표상물로 새기고, 다시 세계 그 자체마저도 이미지화하기 때문이다. (중략) 이처럼 표상 작용에 의해 세계 전반을 ‘인간’의 소유 아래 두려는 점에서 허상 생산의 물량적이고 산업 주의적인 성격이 드러난다”(『만남을 찾아서』에서).
이에 따라 그는 세계를 인간의 관점으로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만남’을 지향하는 것이 예술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지나 공기, 시간과 같이 존재하는 것과의 불가분의 관계에서 바로 그것이 나무이며, 돌이며, 인간인 것처럼, 오히려 의식 자체를 표상 작용에서 해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세계는 만남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다. 또 세계는 대상 의식을 초월한 상호 매개의 열린 장소이자 안과 밖이 같이 있는 장소이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불행하다고 꾸짖으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명예에 집착하였습니다. 이러한 행위의 뿌리에는 자신의 관점으로 계명을 ‘표상’할 뿐 다가온 하느님 나라를 ‘지각’하지 못한 ‘인식의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1독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은총의 세계’와 만나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선입관에 제한된 ‘세계상’에서 해방되어, 자신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은총의 세계와 만나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길이라는 사실을, 한 예술가의 통찰과 함께 다시 한 번 성찰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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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10 17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오래 전의 일입니다만, 군대 생활을 할 때 강릉에 무장 공비가 나타났다고 해 50일 넘게 강원도 산간에서 매복하며 지낸 적이 있습니다. 매복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땅을 파고 그 속에서 두꺼운 옷이나 담요만을 가지고 밤낮으로 숨어 지내는 것을 뜻합니다. 잠시 틈내어 물 흐르는 곳으로 가 양치질하고 얼른 머리를 감을 정도이지, 대부분은 구덩이(참호) 속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니 50여 일 동안 목욕을 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겉옷은 말할 것도 없고 속옷조차 일주일에 겨우 한 번 갈아입었으니, 얼마나 더러웠겠습니까? 그런데 한 주 두 주 시간이 흐르면서 제 몸이 더러워졌는지 잘 느껴지지 않고 냄새 나는지조차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기나긴 매복이 끝나고 부대에 복귀하여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으니 그제야 몸과 마음이 개운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오랜 기간 지저분하게 지내면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지, 또 씻어야 할 필요조차 잘 느끼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보고 불행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겉은 말끔하였을지 모르나, 속은 더러웠습니다. 조상들도 깨끗하지 못해서 예언자들의 경고조차 귀담아듣지 않을뿐더러 그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오늘 복음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러한 조상들의 뒤를 이어 양심이 무디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그들은 자기 조상들처럼 예수님을 박해하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처럼 죄가 쌓이고 쌓인 나머지 자신들이 얼마나 더러운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속을 자주 깨끗하게 씻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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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10 18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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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 1013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상영된 적이 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추리 소설이 그렇듯, 내용이 너무 어둡고 마치 실화처럼 묘사되어 있어서 교회에 대한 이해가 아직 약한 신자들과 비신자들에게 가톨릭 교회에 대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중세의 한 수도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그곳 수도원장이 당시 종교 재판의 조사관이었던 윌리엄 수사에게 살인 사건을 조사하도록 의뢰합니다. 그런데도 살인이 계속되자 수도원 안은 묵시록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퍼져 나갈 정도로 온통 어둡고 괴기스러운 분위기에 빠져듭니다. 그러나 냉철하고 이성적인 윌리엄 수사는 모든 살인 사건이 수도원의 장서관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끈질기게 수사를 하여 마침내 장서관의 비밀의 방에서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밝혀냅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수도원의 늙은 수사 ‘호르헤’였습니다. 호르헤는 수사들의 웃음과 풍자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없어지게 하여 기독교의 중심 사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호르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웃음과 희극 풍자에 관하여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책의 책장마다 독극물을 발라 두었고, 그 책을 본 사람들은 모두 죽었던 것입니다. 그의 범행 동기를 파헤친 윌리암 수사는 이렇게 소리칩니다.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 ……. 이런 게 바로 악마야!
“소설은 거짓을 가지고 진실을 이야기하고, 전기는 진실을 가지고 허구를 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록 이 이야기의 내용은 거짓이지만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진실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지닌 종교적인 독선과 아집, 위선적이고 배타적인 행동, 편협하고 경직된 사고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호되게 나무라시는 것과 이 소설에서 주고자 하는 것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를 경계하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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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10 14)
(
성 갈리스토 1세 교황 순교자 기념일)


구약 시대 때 예언자들은 누구입니까? 우선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언자라고 해도 틀린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삼직(三職) 가운데 예언자직이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예언자직을 수행해야 합니다.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던 예언자는 사회의 지도자들과 싸워야 했고, 더러는 군중과 맞서야 했기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에게 수난을 당해 왔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세상의 욕심이 충돌했기 때문이지요. 그 충돌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예언자가 있습니다. 이 예언자는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예언자직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더 이상 하느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칭 경건하다는 신앙인이면서도, 주님의 말씀을 자신들과 세상의 구미에 맞게 사람들에게 가르쳐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자신들의 조상처럼, 업신여기고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그들에게 책임을 추궁하시고 불행을 선언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요.
오늘날 만일 우리 신앙인들이 예언자의 삶을 피하려 들고 세상의 편에 선다면, 우리 또한 주님 보시기에 불행하고 형편없는 가짜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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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10 15)
(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옛 중국의 요순 시대 이야기입니다. 요 임금은 왕위를 ‘허유’라는 사람에게 물려주려 합니다. 하지만 허유는 싫다고 사양하며 도망을 갑니다. 도피하던 그가 어떤 사람의 집에 묵었는데, 집주인은 허유가 자신의 모자를 훔쳐 갈까 봐 감춰 둡니다. 허유는 천하를 마다하고 도망쳐 온 사람인데, 집주인은 모자를 잃을까 봐 방비를 한 것입니다. 허유라는 사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모르면 엉뚱하게 대합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도 예수님을 몰랐기에 독한 앙심을 품습니다. 예수님을 옭아매고 곤경에 빠뜨리려 합니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을 율법을 망가뜨리러 오신 분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이 오해가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말씀을 멈추시거나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조용히 당신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누구나 오해하고 오해를 받습니다. 때로는 억울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앙심과 보복이 떠오른다면 극복해야 합니다. 감정에 휩쓸리면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로 돌아가게 됩니다. 인내와 기도로써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애쓴다면 ‘예수님을 닮는 행동’이 됩니다. 내 인생을 떠받칠 또 하나의 ‘십자가를 지는 행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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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10 16)
(
성녀 헤드비제스 수도자 기념일)
(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동정 기념일)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군중과 맞서야 했고 죽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거부한 이도 많았고, 예언자가 싫어 도망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주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모든 예언자는 부르심의 초기부터 힘든 삶을 삽니다. 끊임없이 고통을 견디어 내는 생활입니다. 기도와 희생과 은총만이 버팀목이 됩니다. 그러한 시련을 통해 비로소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누구라도 말씀을 받지 못하면 전할 수 없는 법입니다.
이렇듯 예언자의 삶은 고통입니다. 하지만 고통이 싫어 피하려 들면 말씀을 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삶이 길어지면 결국은 자신의 말을 전하려 합니다. 나중엔 자신의 말을 하느님의 말인 양 착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거짓 예언자로 바뀐 그들의 실체를 폭로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려 합니다.
예언자는 있어야 합니다. 어느 단체든 조직이든 예언자는 존재해야 합니다. 그들을 통해 주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을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언자가 사라지기에 불안한 조직이 됩니다. 신앙인들이 예언자의 삶을 피하려 들기에 악한 기운이 교회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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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10 18)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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