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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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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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8-05-20 ㅣ No.120573

 

부모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저는 1963415일에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았으니 부모님의 체질과 성격을 물려받았습니다. 어머니는 건강한 체질이십니다. 80세가 넘으셨어도 치아가 건강합니다. 상한 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혈압도 정상이십니다. 흰머리도 거의 없으십니다. 아버님은 강직한 성격을 지니셨고, 문제를 해결하는 식견이 있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셨습니다. 아버님은 치아도 건강하지 않으셨고, 혈압도 높으셨고, 머리카락도 일찍 하얗게 되셨습니다.

 

아버님의 성격과 어머님의 체질을 닮았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버님의 체질을 꼭 닮았습니다. 치아도 건강한 편이 아니라서 딱딱한 음식을 잘 먹지 못합니다. 혈압도 일찍부터 높아서 늘 신경을 써야 합니다. 30대가 되면서부터 염색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성격을 닮아서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편입니다. 신속한 판단이 필요할 경우에 많이 망설이는 편입니다.

 

지금은 아버님의 체질을 닮은 것도, 어머님의 성격을 닮은 것도 감사드리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치아가 좋지 않기 때문에 잘 관리를 하였고, 아직은 상한 치아도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꾸준한 운동을 통해서 혈압을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염색을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덕분에 젊어 보인다는 말도 듣습니다.

사목을 하는 면에서는 어머님의 성격을 닮은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강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앞장서서 사목을 하는 사제도 필요하지만, 부드러운 성격으로 뒤에서 밀어주는 사제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앞장서 갈 때면 바람을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뒤에서 밀면 시간을 걸리지만 큰 무리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부모님의 어떤 모습을 닮으셨는지요?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교회가 시작된 날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성령의 은사를 이야기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무엇을 위해서 있을까요?

1독서에서 성령의 은사는 소통을 위해서 필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하면 피부색이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생각이 달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공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함께하면 이념이 달라도, 계층이 달라도, 세대가 달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 교회는 성령의 은사와 함께하고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성령의 은사는 평화와 용서를 위해서 필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평화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에서 시작될 수도 있지만 평화는 용서하면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루가 복음 15장은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돌아온 동생을 용서하지 못했던 큰 아들처럼 생활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잘못한 이웃을 위해서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가정, 교회는 성령의 은사와 함께 하고 있을까요?

 

오늘 제2독서에서 성령의 은사는 공동선을 위해서 필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427일에 판문점 선언이 있었습니다. 주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었습니다. 평화와 번영은 서로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던 적대감을 버리면서 시작됩니다. 평화와 번영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굳건해질 때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한반도와 우리 민족에 함께 하셔서 평화의 꽃이 활짝 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공동선을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가장 헐벗고, 가장 굶주리고, 가장 아픈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예수님께 해 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고, 공동의 선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 교회는 성령의 은사와 함께하고 있을까요?

 

성령강림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들의 마음을 열어 성령의 은사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예전에 읽은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하느님은 멀리만 계신다.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그리스도는 과거에 머무신다.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복음은 죽은 문자에 불과하다.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교회란 한낱 조직에 불과하다.

 

성령이 계시면 부활하신 하느님 여기 계시고

복음은 찬란한 생명력을 내뿜고

교회는 성삼위와의 통교를 의미하고

권위는 해방자의 섬김이 되며

선교는 성령강림의 축제가 된다.

 

전례와 그리고 미사는 하느님나라에 미리 참여함이 되고

인간의 행위는 성령으로 하느님으로 가득 차리라! 아멘.”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내면서 나는 나의 이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 관계가 분노와 미움, 욕심과 질투입니까? 아니면 평화와 기쁨, 용서와 사랑입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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