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10.19 목/ 말씀을 춤추게 하는 열린 마음자리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스크랩 인쇄

이영숙 [20sook] 쪽지 캡슐

2017-10-18 ㅣ No.115539




연중 28주 목, 루카 11,47-54(17.10.19)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루카 11,50)





Denunciation of the Pharisees and Scholars of the Law





말씀을 춤추게 하는 열린 마음자리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율법교사들을 심하게 질책하십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11,47. 50)

율법교사들은 성경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율법이 주어지게 된 근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율법의 자구에만 매달렸습니다. 예언자들이 부르짖은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는 실천하지 않고 예언자들의 무덤만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저울질하였고, 말씀을 사리사욕의 방편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율법교사들은 율법을 해석하고 하느님의 뜻을 해설하는 데 배타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었지요. 그들은 이런 특권을 통해 하느님을 아는 지식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독점한 듯이 행세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목숨처럼 여기던 율법조항에 눈이 가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지식의 열쇠를 거머쥐고 다른 이들도 못 알아듣게 막아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구원 때문에 율법을 주셨지요. 그런데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은 눈이 멀어 율법의 정신은 멀리한 채, 율법을 삶의 절대적 기준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려 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무거운 짐을 지우면서도 자기들은 그것을 실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의 모습 어떻습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율법교사와 바리사이의 모습을 성찰하고 회개해야겠습니다. 말만 앞세우고 자신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관점이 더 낫고 옳다는 생각에 빠져 다른 이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이끄심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야겠지요.

우리도 바리사이들처럼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들으려고 하지 않거나 듣고도 못 들은 척하지는 않습니까? 내 중심에 맞추어 하느님의 말씀을 임의로 해석하고 그 틀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습니까? 자신이 지킬 수 있는 말씀들만 가려내어 실천하면서 하느님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스스로 오만에 빠져있지는 않습니까?

아울러 오늘 말씀에 비추어 교회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이 필요할 것입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를 평신도 위에 있는 더 거룩한 존재나 하느님의 권한을 독점한 이들로 여기지 말아야겠습니다. 또한 그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계제도나 교회 권력이 하느님 백성의 삶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사실 그런 모습 때문에 교회는 부패하고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이지요.

오늘도 복음이 주는 진정한 자유 안에서 말씀을 중심에 두고, 서로를 동등하게 존중하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우리 가운데 말씀이 살아 숨 쉬는 날이 되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1,461 2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