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연중 제8주일: 가해: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스크랩 인쇄

강헌모 [kanghmo7] 쪽지 캡슐

2017-02-26 ㅣ No.110353

 

연중 제8주일: 가해: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라!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부를 이루어 안락한 생활, 행복을 보장받는 듯하지만, 그것이 모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의 생존 자체는 물론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의혹감을 갖게도 된다. 그리고 그것은 두려움으로 나타나게 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의 힘에만 의존했던 인간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두려움을 갖게 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오늘의 전례는 권고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보다 하느님께 더 의지할 때 보다 더 인간다워질 것이다. 만일 인간이 하느님께 그리고 그분의 섭리에 의탁하지 않는다면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1독서: 이사 49,14-15: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1독서에서도 신뢰와 희망에 관한 메시지가 모성적인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15) 하느님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큰 것이어서 결코 깨뜨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낙태를 보더라도 그렇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결코 거두지 않으실 것이다.

 

하느님의 당신 백성에 대한 사랑이(이사 54,8 참조) 자기 자녀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호세 11) 또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호세 1-2; 이사 1,21; 6,4-5; 예레 2,2; 3,1.6-12; 에제 16.23장 참조)으로 비유되지만, 모성적 사랑이 더 감동적이지 않는가? 그것은 모성적 사랑이야말로 완전히 무상적이며 온유함의 극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 마태 6,24-34: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말씀을 깊이 있게 가르치고 계시다. 하느님을 신뢰하기 위하여 우리가 어떤 위대한 역사의 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우리의 신뢰심을 키워가야 한다. 그분의 섭리는 우리의 삶 매 순간마다 현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숨 쉬는 공기, 빛을 비추어주는 해, 갈증을 풀어주는 물, 밭에서 자라고 있는 채소, 우주 공간으로 튕겨나가지 않도록 하는 만유인력의 법칙, 그리고 심장이 규칙적으로 잘 뛰어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것 모두가 하느님의 섭리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으로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섭리이다. 우리는 모두 이 모든 것을 지탱하고 있는 그 무한한 사랑의 숨결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우리가 맑은 눈으로 모든 창조물들을 보면서 그것들을 통해 드러나는 아버지의 사랑의 표지를 이해하고, 나아가 내일에 대한 신뢰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24) 여기서 말하는 맑은 눈이란 우리가 만든 우상에 빠지지 않을 때 가질 수 있다. “하느님과 재물의 관계가 그러하다. 하느님의 뜻은 재물의 요구와 대립된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행한다는 것, 즉 이웃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라는 그분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다. 반대로, 재물을 섬긴다는 것은 형제의 요구에 이기적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재물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결정적으로 하느님을 섬기라는 즉, 재물에 대한 이기주의적인 예속으로부터 해방을 선택하라는 권고가 내포되어있다. 다른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사랑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풂으로써 우상을 부숴 버려야 한다.”(G. Barbaglio, in I Vangeli, Assisi 1975, p. 192)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마라.”(25-32) 예수님께서는 게으름이나 준비 없는 태도를 옹호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다만 물질적인 것들을 가장 중요한 듯이 여기고 자신들의 힘만으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물질적인 것에 온통 신경을 쓰는 모습을 나무라시는 것이다. 자기 운명을 자기가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하느님은 그 사람 안에 계실 곳이 없게 된다. 그러기에 신앙을 잃게 되며 믿음이 약한 자들”(30)이 된다. 믿음이 약해질 때 걱정이 나타나고 삶을 병들게 한다.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27) 믿음으로 그 걱정을 없애야 한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33) 오늘 말씀의 요약이다. 이 말씀은 삶의 모든 차원과 가치의 균형을 다시 세워줄 수 있는 삶의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때에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삶을 살 때에 인간에게 필요한 것도 부족하지 않게 해주실 것이라고 하신다.

 

인간은 기도를 통해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그에 대해 감사를 드리지만, 그에게 있어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식이 아니라 기도하고 감사를 드리는 일이다. 기도와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식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했듯이 인간에게 음식을 마련해 준다.”(S. Kierkegaard)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34)는 말씀은 지금 이 순간을 잘 살라는 말씀이다. 이 순간을 잘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에 우리를 온통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으로써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다.

 

2독서: 1코린 4,1-5: 주님께서 마음 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이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모든 인간적 타산을 버리고 오직 하느님께 의탁하라고 한다. 코린토 교회의 분열이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나머지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3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160 2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