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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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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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9-12-07 ㅣ No.134392

14년 전의 일입니다. 저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방을 얻어 지냈습니다. 추운 겨울에 동창이 와서 하루 같이 지냈습니다. 주인에게 말하고 친구를 초대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에 벌어졌습니다. 친구와 주인이 화장실에서 만났습니다. 주인은 놀라서 당신 누구냐?’라고 물었고, 친구도 놀라서 그런 당신은 누구냐?’라고 했습니다. 저는 일어나서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하루 숙박비를 내겠다고 했지만 주인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말을 제게 했습니다. “I respect you, you also respect me!” 저는 정중하게 사과했고 주인은 저의 사과를 웃으면서 받아 주었습니다. 나중에는 동창이 와도 주인과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외국에는 없는 말인데 우리 말로는 모두가 이해하는 말이 있습니다. ‘갑질입니다. 돈은 많지만, 인품이 부족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을 뜻합니다. 권력은 있지만, 인품이 부족한 사람이 거부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을 뜻합니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힘을 이용해서 약한 이를 괴롭히는 행위가 갑질입니다. 서대문에서 뺨 맞고, 동대문에서 화풀이하는 것도 갑질입니다. 초대교회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부제를 선발했습니다. 가난한 이, 고아, 과부, 장애인이 나눔에서 차별받았습니다. 사도들은 공정한 분배를 위해서 부제를 선발했고, 오직 기도하는 일에만 전념했다고 합니다.

 

성서에도 갑질은 있었습니다. 카인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아 주지 않았다고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동생은 형에게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따지려면 하느님께 따져야 했습니다. 야곱의 삼촌 라반은 야곱에게 14년 동안 노동을 시켰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작은딸 라헬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7년 동안 일한 야곱은 결혼식에 큰딸 레아를 아내로 얻어야 했습니다. 야곱은 억울했지만,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서 삼촌의 집에서 7년 더 일해야 했습니다. 다윗은 충실한 부하의 아내를 탐했고, 부하는 전쟁터에서 죽도록 했습니다. 이세벨과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나봇에게 누명을 씌어 죽였습니다. 자신들은 더 좋은 포도원이 있었지만, 욕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나올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에 이사야 예언자는 놀라운 꿈을 이야기 합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 새싹이 돋을 것이고 그 싹이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영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느님의 영은 아브라함에게 강한 믿음을 주어서 새로운 민족이 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영은 모세에게 놀라운 지도력을 주어서 파라오의 압제를 벗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영은 지혜와 슬기의 영이며 경륜과 용맹의 영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영이 함께 하면 늑대가 어린양과 함께 놀고, 어린아이가 사자와 함께 놀 수 있게 만든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꿈이고, 이것은 어떠한 과학과 기술로도 이룩할 수 없는 새로운 질서입니다.

 

하느님의 영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거짓된 영들을 버려야 합니다. 무엇을 버려야 할까요? 나는 할 수 없다는 열등감을 버려야 합니다. 열등감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갈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상처를 곪게 만드는 미움과 분노를 버려야 합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러한 행위를 회개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거짓된 영들을 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변화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거짓된 영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오랫동안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늑대와 같았던 바오로 사도, 사자와 같았던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여서 순한 어린양과 같이 되었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새로운 기능의 제품을 만들 수 있지만, 사람의 영혼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은 낡은 영혼을 새롭게 변화시켜 줍니다. 하느님의 영은 이웃의 아픔을 보듬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 예언자가 보았던 꿈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혜와 슬기, 경륜과 용맹의 영으로 꿈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영을 받을 수 있으며, 하느님의 영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서로 뜻을 같이하게 하시어, 한마음 한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빕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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