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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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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0일(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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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10-20 ㅣ No.115577

 

2017년 10월 20일

[(녹)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불경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라며,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제1독서◎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4,1-8
형제 여러분,

1 혈육으로 우리 선조인

아브라함이 찾아 얻은 것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2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자랑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3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하였습니다.
4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품삯이 선물이 아니라 당연한

보수로 여겨집니다.

 5 그러나 일을 하지 않더라도

불경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받습니다.

6 그래서 다윗도 하느님께서

행위와는 상관없이 의로움을

인정해 주시는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7 “행복하여라,

불법을 용서받고

죄가 덮어진 사람들!

8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죄를 헤아리지

않으시는 사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2(31),1-2.5.11

(◎ 7 참조)
◎ 당신은 저의 피신처.

구원의 환호로

저를 감싸시나이다.
○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을 씻은 이!

 행복하여라,

주님이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영에 거짓이 없는 사람!

◎ 당신은 저의 피신처.

구원의 환호로

저를 감싸시나이다.
 ○ 제 잘못을 당신께 아뢰며,

제 허물을 감추지 않았나이다.

“주님께 저의 죄를 고백하나이다.”

 당신은 제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셨나이다.

◎ 당신은 저의 피신처.

구원의 환호로

저를 감싸시나이다.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마음 바른 이들아,

모두 환호하여라.

◎ 당신은 저의 피신처.

구원의 환호로

저를 감싸시나이다.

◎복음환호송◎

시편 33(32),22
◎ 알렐루야.
○ 주님, 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당신 자애를

저희에게 베푸소서.
◎ 알렐루야.

◎복음◎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7
그때에

1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2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4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5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7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두려움은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감정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격에 따라 두려움이 더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려움을 별로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두려움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지 못하게 막는

부정적 역할도 하지만,

그만큼 신중한 자세를 갖게 하는

긍정적 역할도 합니다.
여기서 더욱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늘 나라의 정의를

두려워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올곧게 붙잡아 줍니다.

반대로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고 굴복한다면,

그것은 비굴함과 비겁함으로

우리를 이끌어 줄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죽이는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지 말고,

육신을 죽인 다음 영혼을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자신이 오히려 세상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소통과 친교의

존재이시고,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가 되셨습니다.

우리 사이에 형제가 되어 오신

예수님 덕분에 우리 인간들

사이에도 형제애가 두터워지고,

복음의 기쁨을 “밝은 데에서”,

그리고 “지붕 위에서”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덕으로, 그리스도인은

위대하신 분을 두려워하고,

영원한 삶을 지향하며,

절대자이신 하느님과

소통하는 존재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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