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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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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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11-25 ㅣ No.116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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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제1독서 1마카 6,1-13

그 무렵

1 안티오코스 임금은 내륙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페르시아에 있는

엘리마이스라는 성읍이

은과 금이 많기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2 그 성읍의 신전은

무척 부유하였다.

거기에는 마케도니아 임금

필리포스의 아들로서

그리스의 첫 임금이 된

알렉산드로스가 남겨 놓은

금 방패와 가슴받이

갑옷과 무기도 있었다.
3 안티오코스는

그 성읍으로 가서

그곳을 점령하고

약탈하려 하였으나,

그 계획이 성읍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바람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4 그들이 그와 맞서 싸우니

오히려 그가 달아나게 되었다.

그는 크게 실망하며

그곳을 떠나 바빌론으로

향하였다.
5 그런데 어떤 사람이

페르시아로 안티오코스를

찾아와서, 유다 땅으로 갔던

군대가 패배하였다고

보고하였다.

6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앞장서 나아갔던

 리시아스가 유다인들

앞에서 패배하여 도망치고,

유다인들이 아군을

무찌르고 빼앗은 무기와

 병사와 많은 전리품으로

더욱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7 또 유다인들이

 안티오코스가 예루살렘

제단 위에 세웠던 역겨운

것을 부수어 버리고,

성소 둘레에 전처럼

높은 성벽을 쌓았으며,

그의 성읍인 벳 추르에도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다.
8 이 말을 들은 임금은

깜짝 놀라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던 대로

일이 되지 않아 실망한

나머지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웠다.
9 그는 계속되는 큰 실망

때문에 오랫동안 누워

있다가 마침내 죽음이

닥친 것을 느꼈다.

10 그래서 그는 자기

벗들을 모두 불러

놓고 말하였다.
“내 눈에서는 잠이

멀어지고 마음은 근심으로

무너져 내렸다네.

11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네.

 ‘도대체 내가 이 무슨

역경에 빠졌단 말인가?

내가 이 무슨 물살에

휘말렸단 말인가?

권력을 떨칠 때에는

나도 쓸모 있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는데 …….’
12 내가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이 이제 생각나네.

그곳에 있는 금은 기물들을

다 빼앗았을뿐더러,

까닭 없이 유다 주민들을

없애 버리려고

군대를 보냈던 거야.
13 그 때문에 나에게 불행이

닥쳤음을 깨달았네.

이제 나는 큰 실망을 안고

이국땅에서 죽어 가네.”

복음 루카 20,27-40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빠다킹’ 신부라고 불리는

제 별명을 참 잘 지었다는

말씀을 하시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거의 20년 가까이 사용한

별명인데 왜 마음에

들지 않지 않을까요?

빠다킹 신부라는 이름이

알려지면서 괜히 인터넷

 안에서 제 별명을 검색하는

고약한 습관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조명연’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하면 찾을 수

있는 정보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빠다킹’으로 검색하면

저의 글들이 쫙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저의 대한

평가까지도 나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글과

댓글들을 너무나 자주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제가 한심하게도 느껴지고,

‘빠다킹 이라는 별명만 없으면...’

이라는 생각으로

별명이 싫어진 것이지요.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유혹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궁금해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름을 검색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속속들이

죄다 찾아서 끝까지 읽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아무것도 보지 말아야 한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평가를 아예

보지 말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댓글도 읽지 않습니다.

 그러자 삶이 훨씬 자유로워지고,

 더불어서 빠다킹 이라는

별명도 다시 마음에 들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평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는 가슴이

아프거나 또는 화를 동반하지만.

자기 스스로의 평가는 가슴이

아프지도 화를 동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에 의해서 억지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에 어떤

평가를 얻었을까요?

대중으로부터는

큰 지지를 받았지만,

당시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종교지도자들로부터는 전혀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 했고,

예수님의 말씀에서 꼬투리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그들의 평가에

신경을 쓰셨다면 과연

그런 모습을 보였을까요?

즉, 안식일에 사람을 고쳐주고,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위선자라고

혼을 낼 수 있었을까요?
그들의 평가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집중했기 때문에,

그들이 반대하는 행동 역시

사랑의 길이라면 눈치 보지 않고

행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당시 종교지도자로서 큰 힘을

가지고 있었던 사두가이들의

부활이 없다는 의견을 단호하게

거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신 하느님 아버지의 평가는

어떨지 여기에 더

집중해보았으면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같은 실수도 누군가는
 감추기 바쁘고,
누군가는 내면의
키가 한 뼘쯤 자란다.
(박광수)
주님의 뜻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꼭 정답은 아니다."
며칠 전에 길을 가는데
어떤 중년의 형제님께서
어느 술집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한 자매님을 바라보면서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는데,
저렇게 대놓고 여자가
 담배를 피우네.”라고
큰소리로 말씀하시더군요.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담배를 피우는 여자는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섣부른 판단이
얼마나 잘못으로
나아가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꼭 옳지 않음을 이 문제를
 풀면서 생각해보십시오.
이런 남자는 과연 어떨까요?
1.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2. 여성 편력이 전혀 없고,
결혼은 죽기 전에 한 번
할 정도로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지고한 사
랑을 가졌다.
3. 채식주의자이다.
어떻습니까?
괜찮은 남자일까요?
바로 이 사람이 제2차
세계대전의 원흉으로
게르만 민족주의와
반유태주의로 많은
사람을 학살했던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좋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부분을 가지고서는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우리의 생각은
항상 정답을 향하지 않습니다.
어제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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