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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이끄심을 느꼈던 하루 - 윤경재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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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5-21 ㅣ No.112149

 

 

 

성령의 이끄심을 느꼈던 하루

 

- 윤경재 요셉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요한14,16~19)

 

 

 

 

최근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어떤 사람과 그의 친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래 자네, 그리스도인이 됐다지?” “”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많이 알겠군. 어디 좀 들어보세. 삼위일체라는 말은 무엇인가? 설명을 좀 해보게.” “글쎄, 잘 모르겠는걸.” “예수께서는 생전에 설교를 몇 번쯤 하셨나?” “잘 모르겠는데......” “그럼, 현재 활동하는 수많은 사이비 종파들은 어떻게 된 거지?” “글쎄, 나도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잘 모르겠는걸.” “아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말하고선 그리스도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잖아!”

 

자네 말이 맞아.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교리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네. 부끄러워. 하지만 이 사실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어. 3년 전에 내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을 때는 난 주정뱅이였고 빚도 많았고 내 가정은 산산조각이 돼가고 있었지. 저녁마다 처자식들은 내가 집에 들어오는 걸 무서워했어. 그러나 이젠 술도 끊었고 빚도 갚았고 우리 가정은 참으로 화목해졌어. 저녁마다 아이들은 목이 빠져라 나를 기다리게 되었거든. 이게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이루어주신 것일세.” 나는 지독한 죄인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신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지.”

 

지난 주 모처럼 구역모임에서 부부 동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배티 성지가 많이 바뀌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장소를 정하였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더니만, 마침 514일이 배티 성지 주임신부이신 김웅렬 토마스아퀴나스 신부님의 사제서품 34주년이라고 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잔치 집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어 한결 기분이 좋았습니다. 첫 사제서품 때 입으셨던 제의를 입고 미사를 드리시는 신부님께서도 감회가 깊은 듯 평소보다 상기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미사 시간이 두 시간이 넘었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무엇인줄 아느냐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 강론 말씀은 귀에 쏙쏙 들어왔고, 우리는 듣는 내내 웃음소리가 멈출 줄 모르고 시간이 지나가는 줄도 잊었습니다. 청중을 흡인하는 강론은 김웅렬 신부님의 카리스마로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믿음은 죽기까지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셔두는 것이다.”라는 말씀은 간명하면서도 뇌리에 남았습니다. 그러려면 순명의 자세가 필요하며, 그런 믿음의 자세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나 성령께서 도우시면 가능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배티는 순교성지로서 박해기 교우 촌으로, 최양업 신부님께서 활동하시던 본당으로 역할을 하였습니다. 조선대목구 최초의 신학교가 자리를 잡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최양업 신부님 기념 성당이 두 군데, 또 기념 박물관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박물관이 인상 깊었습니다. 전시 방법이나 건물 구조가 독특해서 천주교 역사를 찬찬히 음미할 수 있었으며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전시물로 녹아들고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박물관 구조 자체가 하나의 전시 예술품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말 깊은 생각과 공들여 지었다고 감탄하게 됩니다. 박물관이 전시품을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서 관객과 호흡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건축 디자인의 우수함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였습니다. 박물관을 설계한 분의 정신을 읽어 낼 수 있었습니다. 전시관의 주색채가 희고, 비록 작지만 강렬한 임팩트를 통해 백색 순교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깊은 산속 이곳저곳에 자리 잡은 배티 성지는 여유를 갖고 둘러보아야 제 맛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순교자 무덤 터도 세 군데에 걸쳐 흩어져 있으며, 옛 신학교 자리와 십자가의 길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께서 살아생전에 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전국을 돌며 사목 활동하시던 거리가 무려 구만 리가 된다고 하는데 그 거리를 몸소 느껴보라는 듯합니다.

 

피의 순교나 백색 순교 모두 쉽지 않은 신앙의 길입니다. 그 험난한 길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걸을 수 없다고 김웅렬 신부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의 도움만이 가능하게 이끌 것이라 하십니다. 서품 34주년을 회고하시면서 앞으로 남은 생애도 과연 성령께서 자신을 어떤 길로 이끌지 궁금하다고 하십니다.

 

며칠 전 남성구역 모임 총무를 하며 열심히 신앙생활하던 교우가 이른 나이에 병으로 고생하다가 선종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남기고 떠난 그 형제님을 생각하며 우리는 성지순례를 진지하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늦봄이지만 황사와 미세먼지로 찌들 수밖에 없어 우울했던 요사이 배티 성지에 찾아 온 우리 구역 식구들은 커다란 은총을 느꼈습니다. 모처럼 맑은 하늘을 만나 시원한 숲속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실 수 있었습니다. 고즈넉한 숲속 십자가의 길, 가슴으로 품어주는 성모상, 우뚝 솟은 현양탑, 이곳저곳 무명 순교자 무덤 터, 예술로 승화한 최양업 박물관 등등 우리는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체험한 배티 성지 순례는 시간과 공간을 축약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종이를 찢어 붙이듯, 한 장의 훌륭한 그림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뜻밖에 만나는 김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의 서품 기념일에 함께 하면서 신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동안 지쳤던 마음을 추슬러 원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커다란 위안을 마음속에 담으며 먼저 가신 민 토마스 아퀴나스 형제님께서 주님 품 안에서 안식을 누리실 거라는 믿음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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