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그냥 기적으로 보아야만 참된 믿음이 /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인쇄

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8-03-20 ㅣ No.11911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고 또 무엇을 믿으면서 희망을 가져야 하는가? 철학자 리히텐베르크(Lichtenberg)는 우리의 물음은 다 이 세 가지로 귀착된단다. 그런데 이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나.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기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당신께서 하실 일을 분명히 알고 계셨다. 그래서 그분 아들로서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충실히 수행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들로서 당신의 정체성을 아시어, 아버지에게서 받은 일을 수행하시었다. 가끔씩 우리도 각자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 때가 있다. 도대체 내가 누구이며, 왜 이렇게 살며 정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럴수록 하느님에게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할게다.

 

적어도 신앙인이라면 예수님의 제자로, 그분께서 이 땅에 이루실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마땅히 참여해야만 하리라. 이를 위해 어떤 거창한 계획이 필요 없다. 더 나은 가정과 이웃,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그저 작은 벽돌한 장 쌓는 심정으로 사는 거다. 예수님께서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작은 일이지만 예수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작은 것 같지만 지금 하는 우리 삶 안에 모든 답이 있으리라.

 

사람의 아들이 들어 올린 뒤의 의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거다. 더욱이 그곳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그분에게서 신성을 알아본다는 것은 참으로 난감하다. 이를 어떻게 이해할까? 하느님에게서 오시어 그분께로 되돌아가시는 분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리라. 이것은 우리 안에 넘치는 생명이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주어지니까.

 

이 주님 수난과 부활의 신비는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연다. 우리가 육신의 죽음만을 두려워한다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 진정한 삶과 죽음은 언제나 자신의 삶에서 결정되니까. 이곳의 삶에서 다가올 부활의 삶을 모른다면 저곳의 더 멋진 부활의 기쁨을 정녕 맛보지 못하게 될 것이니까.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8,23)’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리라. 세상에 속한 유다인들은 인간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분께서는 위에서 오셨기에 그들과는 의당 달랐다. 세속에서 살며 거꾸로만 보는 그들에게는 예수님은 당연히 이상한 이로만 보였을 게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동문서답만 한다.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그러면서 그분께서 하시는 일에 사사건건 제동이다. 기적까지도 사탄의 사주를 받은 일로 치부한다. 그러니 무슨 말인들 그들에게는 제대로 들릴 리가. 지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분이 아닌 탓일까? 그러기에 그토록 기다려 왔던 예수님인데도 몰라보니. 몰라보며 받아들이지 않으면 은총도 함께하지 않으리라.

 

누가 뭐래도 우리 역시 삶에 일어나는 무수히 반복되는 기적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숨 쉬는 것 자체가 기적 아니냐? 이 기적을 보도록 하는 게 믿음이다. 이 눈으로 바라만보면 숱한 기적들이 지금도 우리 곁의 도처에 있음을 느끼리라. 받아들이면 기적은 기적 그 모습으로 깨달아지니까. 그러면 유다인들이 그토록 배척하였던 그 예수님의 참 모습도 보일 게다. 그분께서 베푸신 기적을 보면서도 믿지 않았던 그들이지만 믿는다면 다 그게 우리에게는 기적으로 드러나리라. ‘믿지 않으면 의심이 끼어든다.’ 기적을 옆에 두고도 근심이다. 참 안타깝다. 그분마저도 안타까워하신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잘 모른다는 것도 어쩜 당연한 일일 게다. 그래서 모르는 것을 보는 게 믿음이라 했던가! ‘믿을 만한 것을 믿는 것은 누구나 다 한다. 확실한 증거를 갖다 들이대면 믿지 못할 이가 별로 없다. 하지만 그러한 물증이 없는데도 믿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닐 게다. 우리는 단지 논리와 물증을 앞세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냥 믿는 거다. 어렸을 때에 막무가내 부모님 말씀에 순종했듯이 그렇게 받아들이며 믿는다. 우리 먼 앞날마저도 그렇게 맡기면서 믿어보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600 1

추천 반대(0) 신고

십자가,부활,죽음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