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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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눈으로/고난 - 쓴 것인가, 좋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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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10-14 ㅣ No.115422

 

고난 - 쓴 것인가, 좋은 것인가

세금과 죽음 외에

인생에서 또 하나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은

고난이다.

인생은 우리 가운데

일부에게는 아주 심하게

상처를 입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덜 상처를 입힌다.

그러나 고통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고난의 결과로 더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헬렌 켈러에게

역경이 없었더라면

그처럼 훌륭한 여성이

 되었으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에게는

고통은 절망으로 이끌어 가고

서서히 자기 파멸의 길로

이끌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의 불만은

왕왕 분노로 변하고

감정적이거나 신체적인

폭력으로 분출되어 버린다.

널리 알려진"준주성범"에

토마스 아 캠피스는

고난은 쓰라린 체험이

될 수 있다고 언명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고난을

잠재적으로 유일한 것으로

받아들일 경우,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고난을 순수하게

부정적으로 본다면

우리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축복은

문제점으로 가장을 하고서

우리의 인생에 들어온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역경을 향해서 개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언제든 학생이 준비를 끝내면,

선생님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라는 말이 있다.

역경 속에 숨어 있는

축복을 찾으려고 하면

우리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난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세 가지

이익을 상기시키고 싶다.

첫번째 이익은,

우리가 올바른 태도를

개발하려고 한다면,

고난은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더욱 깊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이가 30대 중반인

관상심장발작증에 걸린

조지라는 좋은 친구가 있었다.

그는 너무나 쇠약해서

짧은 거리밖에는

걸을 수가 없으며,

주로 앉아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데 40대가 되자

조지는 코의 절제를

포함해서 얼굴의 암 때문에

20여 차례의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어젠가 나는 조지에게

그렇게 많은 병을 가지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 친구의 대답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이것들은 하느님께서

 애정을 담아서 나에게

나누어 준 카드이고,

내가 애정을 담아서

게임을 할 카드일세."

나는 이 말이 나타내 준,

하느님의 지혜에 대한 깊은

신뢰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

고난이 줄 수 있는

두 번째 축복은,

우리 인생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신호이다.

"당신의 고통에 대해서

하느님께 감사하십시오." 하고

평생을 나환자 거주지에서

일해 온 폴 브랜드 박사는

 역설하고 있다.

나환자는 모든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경고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브랜드박사는 설명한다.

나환들의 손가락은

그들에게 병원균의 침입을

알리는 고통이 없기 때문에

손가락은 뚝뚝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고통은 그것을 듣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항상 여러분에게

무엇인가 말을 하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위가 뒤틀리는 증상이나

두통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자기 파괴적인 방법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경고해 준다.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신체적, 감정적,

사회적인 불쾌감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면,

자기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결코 될 수 없는 것이

되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관은

우리에게 자신이 누구이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식을 갖게 해준다.

자명한 일이지만

순례란 개인이

성스러운 장소로 여행을

가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하느님의

집으로 가고 있다.

 하느님의 집은 영원히

우리의 집이 될 것이다.

고난은 언제나

우리에게 아직도 집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 순례처럼 -

상기시켜 준다.

우리의 인생에서

 어둠고 곤란한 시기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항복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우리가

비현실적인 짓을

 하려고 한다면,

하느님이 원하는 것처럼

이 여행을 즐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모든 문제에서

 약속을 발견하고

우리의 인생에

심각한 문제로

 위장을 하고

들어온 많은 축복을

발견하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도록 하자.

(믿음의 눈으로)

존 파웰 지음

정성호 옮김

-성바오로 펴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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