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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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욱 신부의 {내맡긴 영혼은} 내맡겼다는것은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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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다 [pharm8891] 쪽지 캡슐

2017-08-14 ㅣ No.113880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내맡겼다는 것은 도대체? (2010, 10, 13)


거룩한 내맡김의 첫 봉헌자가 탄생한 지 거의 1년이 다 되갑니다.
지난 해(옮긴이- 2009년) 10월 18일에 미사를 통하여 이끌림이
거룩한 내맡김의 첫 봉헌을 했으니 말입니다.


지난 1년 동안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을 하신 분이 아마 적어도 120명 이상이 될 겁니다.
그동안 주님께서는 내맡긴 영혼들을 통하여 저에게 엄청난
경험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완전히 100%를 다 내맡긴 사람인가 아닌가를
저는 이제 거의 정확히 분별해 낼 수 있습니다.


그동안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을 한 사람 중에는 제가 아무리 보아도
100% 완전히 내맡긴 사람의 태도는 이렇지 않은데, 이렇지 않은데 해도,
자신은 완전히 100%를 다 내맡겼다고 빡빡 우기던 사람이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저도 잘 몰랐었기에 강하게 우기면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참으로 이상하다...내가 처음, 내맡김의 삶을 살아가는 초기에는
이러이러한 것은 이러이러 했고, 저러저러한 것은 저러저러 했는데
저 사람의 지금의 이러저러한 모습은 저게 아닌데..."


주님께서는 100% 내맡기지 못하여 저를 떠나간 사람들을 통하여
몇 가지를 저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100% 내맡긴 사람은
첫째로 무엇보다 "겸손"하며 "순명"을 할 줄 압니다.
영적 성장을 위하여 그 사람에게 필요한 "무엇을 하라"하면
좀 어려움이 있더라도 즉시 순명하여 행합니다.
마음이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싫은 소리(야단)를 들어도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그 소리를 다시 마음에 새겨 넣고 기분 나쁘지 않게 잘 받아들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됨을 지적해 주는 그 싫은 소리를 도저히
그냥 듣질 못합니다. 그 싫은 소리가 그 사람의 기분을 아주 크게
상하게 합니다. 그 사람 안에 숨어 있는 교만 마귀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기 때문입니다.


100% 내맡겼다는 어떤 유명 인사는 본인 스스로 저를
"영적 지도신부"로 삼기를 원하여 그것을 허락해 드렸음에도
끝내는 영적 지도신부의 지도를 따르지 않음으로 저를 떠나갔습니다.


저의 영적 지도는 "저의 영적체험"에 의한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저의 체험 외에 다른 어떤 신학 지식으로 지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저의 지혜를 "왕창"열어 주심으로 지도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과거에 저의 영적 지도는 완전히 "지식적"인 것이었음을 고백합니다.


100% 내맡긴 여러분도 그 "왕창"을 체험하시게 되면,
누구나 다 영적 지도가 가능해지고 누구보다 훌륭한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왕창을 체험하신 분은 제 말을 100% 믿으실 겁니다, 정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명오(明悟)"를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 왕창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나날이 조금씩 조금씩, 때로는 왕창, 또 조금씩 조금씩, 또 왕창 왕창,
또 조금씩 조금씩... 죽을 때까지.


둘째로, 100% 내맡긴 사람은 온 마음이 점점 하느님께로만 향하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하느님과 연관하여 생각하게 되고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더 잘 알아 뵐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더욱 더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도무지 떠나지 않습니다.


비천한 자신이 그 위대하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그 사실에
늘 감사의 눈물이 마르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고 뜨거워집니다.
하느님께 내맡겼기에 그렇게 되도록 하느님께서 점점 그렇게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끄심에 "생각없이" 삶을
내맡겨 드릴수록 더욱 그것이 빨라집니다.


자꾸 과거의 경험과 지식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오로지 "아멘"으로만 일관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을 따라하는 "말 따라쟁이"가 됩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따라하는 "몸 따라쟁이"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가장 원하시는 "영혼의 구원"에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100% 내맡긴 이에게 "영혼구원"보다 더 중요한 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영혼구원에 필요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느님 사랑에 빠져 혼자 독수공방(은수) 하지 않습니다.
독수공방은 하느님이 허락하신 소수의 사람에게만 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인간과 세상으로 열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위의 두 가지 외에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10~14"의 삶을 살게
됩니다.


내맡긴 영혼은 이상의 삶을 체험하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은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아주 간절하고, 그래서 하느님 뜻대로 살아갈 맹세 수준의 100%의
굳은 결심을 봉헌해 드렸다면, 또한 하느님께서는 그 결심을 100%
다 완전히 받아 주셨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삶을 "묵묵히"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100% 내맡겼다 해서 그 사람이 저절로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부족함은 전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내맡김의 전과 후의 차이는 실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왜냐하면 내맡기기 전의 나의 부족함은 내 안에 있었지만
내맡김 이후의 나의 부족함은 하느님 안에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내맡김 이후부터는 나의 부족함도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이, 부족함마저도 완전히 다
하느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내맡김 이후부터 나의 부족함을 관리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내맡긴 영혼은 오로지
"하느님께만 집중하는 삶"을 살며, 자신 안에 일어나는 모든 부족함과
죄들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직도 부족함 투성이인 자신의 모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바로 "겸손"인 것입니다.


겸손하면 겸손할수록 하느님이 당신 곁으로 빨리 이끌어 주십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의 이끄심에 무조건적으로 충실합니다.


그래서, 내맡김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보잘 것 없는 자신의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들이대지 않습니다.
내맡김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 하나하나를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며
주시는 "느낌"을 매우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느낌을 통하여 내맡긴 영혼을 이끌어 주십니다.
느낌을 소중히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에 쉽게 이끌려 나갑니다.
마침내 느낌은 "영감"으로 변화합니다.


"영감"은 성인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영감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의 선물입니다.
영감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당신이 받은 어떤 영감 때문에
사제수품 이후에도 1년 반 이상이나 첫 미사를 봉헌하지 않았답니다.
사제가 품을 받았는데 1년 반 동안이나 첫 미사를 봉헌하지 않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그 만큼 성인이 "영감에 충실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머리로, 지식으로, 경험으로 따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성인의 예를 말씀드리고 이어서 바로 저의 체험을 말씀드려서
좀 죄송하지만,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영적성장을 위해 정말 조심스럽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느낌"과 느낌을 통한 "아님말구"를 거쳐서 얻어지는 "영감"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려 드리기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약 1년 반 전에 어떤 영감을 받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평일미사"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중입니다.
평일미사는 "의무사항"이 아닙니다.


"평일미사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중"이라는 말을 잘 알아 들으셔야 합니다.
사제에게 있어서의 "미사"는 가장 중요한 몫 중의 하나입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은 미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태양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미사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제는 매일 미사를 올립니다.
저도 산으로 들어와서 살면서 정말로 기쁘고 벅차게 매일미사를 봉헌해
왔습니다. 본당에서 많은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것도 좋지만
자연이 확 트인 아름다운 산 속에 살면서 하느님의 피조물을 바라보며
피조물들과 함께 봉헌하는 미사도 정말 기쁩니다.


이곳에서의 매일의 미사는 저에게 있어서 "하루 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창"을 체험한 뒤 얼마 후에 갑자기 미사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아주 강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 미사를 봉헌하고 싶은 강한 느낌(충동)이나 상황이 주어지지 않으면
평일 미사를 봉헌하지 않고 있는 중입니다.


반대로 말씀드리면, 강한 느낌과 상황이 주어지면
언제든 평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씀입니다.


언제 다시 매일매일 평일미사를 봉헌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약 1년 반~ 2년 정도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영감을 저는 아주 확신하기에
어떤 영감이든 거기에 저의 지식이나 경험을 완전히 배제합니다.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따릅니다.


제가 그렇게 철저히 "느낌"을 소중히 했고 "아님말구"에 순종했기에
수시로 "영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여러분도 느낌을 소중히 여기시라는 뜻에서 저의 체험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린 것입니다.


정말로 내맡긴 영혼은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얽매임"이 없습니다.
얽매임과 내맡김은 완전히 서로 극대 극입니다.


따라서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 자꾸 얽매이는 사람은 내맡긴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초보이기에 처음부터 완전해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완전을 바라는 것도 내맡김이 아닙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 얽매이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하느님을 정말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저절로 하느님께만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만 집중하면 저절로 과거의 지식이나 경험을 쉽게
멀리할 수 있게 됩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사람의 마음은 하나이기에 두 마음을 지닐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마음 중 하나는 분명 거짓 마음일 겁니다.


"아무도 두 두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섬길 수 없다."(마태 6,24)


하느님께 온 마음을 다하는데 어떻게 세상의 지식이나 경험에
얽매이겠습니까?
내맡긴 영혼은 매순간 떠오르는 "느낌"과 "영감"에 집중하며
거기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내맡김은 진정한 자유의 삶을 줍니다.
우리를 "내맡김의 길"로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다시 한 번 더
깊은 감사를 드리며, 그분의 이끄심에 충실한
"내맡긴 영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 번 빛을 받아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선한 말씀과 앞으로 올 세상의 힘을 맛본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면, 그들을 새롭게 회개하도록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욕을 보이는 것입니다."(히브 6,4-6)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히브 6,12)


http://cafe.daum.net/likeamaria/


(소리로 듣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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