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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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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125497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18-11-27

 

제주도의 날씨도 바람과 함께 제법 추워졌습니다. 목초지의 풀은 깎여져서 커다란 뭉치가 되었습니다. 목장 주인들은 그 풀을 겨울을 지낼 소와 말들에게 줄 것입니다. 깨끗하게 깎여진 들판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두 가지입니다. 1년 동안 자란 풀들이 깨끗하게 정리된 것 같은 감정입니다. 들판은 다시 평평해 졌습니다. 내년 봄이면 어김없이 들판에는 새로운 풀들이 자랄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일몰이 어둠을 가져오는 표징이지만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어둠을 밝히는 일출이 있기 때문입니다.

 

들판과 풀은 변함없지 자리를 지키지만 그 들판과 풀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할 것입니다. 들판을 관리하는 사람, 들판을 스쳐가는 사람, 매일 들판을 거니는 사람은 각자의 입장과 처지에서 생각하고, 판단할 것입니다. 미술관에는 많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작품을 만든 작가는 나름대로의 의도와 생각을 작품을 통해서 드러냈을 것입니다. 작품을 보는 관람객은 자신들의 생각과 관점에 따라서 작품을 감상할 것입니다. 모든 관람객이 작가의 의도와 생각대로 작품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작가는 모든 관람객에게 자신의 의도와 생각을 설명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스스로 생명력을 갖는다고 합니다. 작가의 의도와 생각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작품과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

 

과학은 절대 불변의 진리를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졌고, 알려진 가치와 원리들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방법, 새로운 가치와 원리가 생기면 기존의 방법과 가치는 기꺼이 자리를 내어줍니다. 그렇다고 기존의 가치와 원리가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어달리기처럼 새로운 가치와 원리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의 문화, 역사, 삶의 방식을 담아서 남겨준 책입니다. 과학, 고고학이 발전하였고, 새로운 학문의 관점에서 성경을 바라보면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작가들의 손을 떠난 성경은 성령의 감도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전해 줄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성인은 성경해석의 3가지 차원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첫째는 자구적인 해석입니다. 성서를 있는 그대로의 글자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는 문화, 역사, 시대의 차이가 있기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성경도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리게네스 성인은 글자 그대로의 해석은 가장 초보적인 성경 읽기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비유적인 해석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비유를 들어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셨고, 하느님나라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비유는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씨 뿌리는 이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뜻을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셋째는 영적인 해석입니다. 교부들과 학자들은 성경의 말씀을 영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시대의 징표가 무엇인지 보았고, 그 시대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였습니다. 영적인 해석을 통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확실한 암호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영원한 생명,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암호를 알게 된 사연을 이야기 한 책입니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께서 자신들이 하느님을 만난 이야기를 꾸밈없이 이야기 합니다. 그럼에도 감동이 있는 글들입니다. 숨은 그림을 찾는 것처럼,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저마다 하느님께서 숨겨 놓으신 암호를 이웃 안에서, 내면의 부르심 안에서, 때로는 시련과 고통 중에서,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찾아내었습니다. 암호를 발견하기 전의 삶은 무의미하고 허망하였지만, 암호를 발현 한 후의 삶은 희망과 기쁨이 계속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확실한 암호를 알고 계시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차를 운전하기 전에 성호를 긋고, 기도한다면 그분은 암호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손에 스마트 폰 대신, 묵주를 들고 버스틀 타는 분도 암호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받기 보다는 먼저 사랑하려고 하고, 이해받으려 하기 보다는 먼저 이해하려는 분도 암호를 알고 있는 분입니다. ‘그럴 수가 있나라고 불평하기 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암호를 알고 있는 분입니다. 떨어지는 낙엽에서도, 하늘을 날아가는 구름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다면 또한 암호를 알고 있는 분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암호를 참 많은 곳에, 그리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남겨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 바다 깊은 곳에만 당신의 암호를 숨겨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주의 은하에만 당신의 암호를 숨겨 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철학의 논리 속에, 수학의 규칙 속에, 과학의 심오한 원리 속에만 숨겨 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의 웃음에도, 작은 들꽃에도,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에도 하느님의 암호는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암호를 우리들만 간직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그 암호를 나누어 주어도 좋아하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언젠가 우리가 만나야 될, 마지막 순간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그 끝에서 하느님과 대면할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암호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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