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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7일 (수)부활 제3주간 수요일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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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8.10.“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139994 송문숙 [moon6388] 스크랩 2020-08-10

 

요한 12, 24-26(성 라우렌시오 축일)

연일 장마 비가 계속 옵니다. 김수환추기경의 우산이란 글을 떠올려봅니다.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 우산을 더 이상 펼치지 않는 일이다.

성공이란 우산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요.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사랑이란 한쪽 어깨가 젖는데도 하나의 우산을 둘이 함께 쓰는 것이요.

이별이란 하나의 우산 속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우산을 펼치는 일이다.

연인이란 비오는 날 우산 속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요.

부부란 비오는 날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갈 줄 알면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비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우산이다.

한 사람이 또 한사람의 우산이 되어줄 때, 한사람은 또 한사람의 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다음,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헬라인들이 예수님 뵙기를 청합니다. 그러자 이를 알리는 필립보와 안드레아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때가 왔음을, “인자가 영광스럽게 될 시간이 왔습니다.”(요한 12,23)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대체 어떤 힘이 이 밀알을 죽음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까 묘하게도 죽음으로 밀어붙이는 그 힘은 생명력입니다. 생명의 힘이야말로 밀알을 죽게 할 수 있는 힘입니다. 죽을 수 있는 힘, 그것은 살리기 위해 죽을 수 있는 힘입니다. 죽어야 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살리기 위해 죽을 수 있는 힘이 생명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밀알이 땅에 떨어져야 하고, 죽어 묻혀야 하고, 묻혀 사라져 자신이 없어져야 하고, 그러고서야 비로소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니 죽음의 고통은 생명을 드러내기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곧 죽음의 고통은 자기를 벗게 하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요, 새 생명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여기에서, 셈족의 언어관습에서 “미워하다”라는 단어는 “사랑하다”라는 말과 관련하여 쓰여서 “덜 사랑하다”, “지고의 가치로 여기지 않다”라는 의미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 대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당위성을 말해줍니다. 곧 땅에서의 죽음이 생명의 끝이 아니라, ‘참된 생명(“영원한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바로 참된 실재를 보존하는 길이며, 미래에 대한 신뢰와 의탁, 곧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개방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요한 12,26)

이는 섬긴다는 것따른다는 것의 긴밀한 연관성을 말해줍니다. 누군가가 따른다고 말하면서 따르는 그를 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따름이 아닐 것입니다. 또 섬긴다고 말하면서 그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도 진정한 섬김이 아닐 것입니다. 곧 그분을 따라나섰다고 해서 그분을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따라 나서서 그분을 섬길 때라야 진정 따르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의 성소의 길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라 나서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분을 섬기지 않고 여전히 따라 나선 자신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집과 가족을 떠나는 왔지만 떠나온 자기를 아직 떠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영광스럽게 될 시간이 왔다.”(요한 12,23)고 알립니다. 그리고 ‘당신을 섬기는 사람은 당신을 영광스럽게 할 그 죽음의 길에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그분의 죽음의 길에 함께 할 때 비로소 우리는 ‘당신을 따르는 것’이 됩니다.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2코린 9,10).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요한 12,26)

주님!

함께 있는 이를 존중하게 하소서!

함께 있는 이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서 함께 있는 저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시듯,

저 역시 곁에 있는 형제를 종중하고, 함께 있는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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