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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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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30 주일

141647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0-10-24

애잔한 음색의 가수 심수봉이 있습니다. 19791026일에 대통령의 만찬에 함께 했었습니다. 어느덧 41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당시에 장충동에서 석간이었던 동아일보를 배달하고 있었습니다. 신문은 호외를 발행했습니다.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경제성장과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헌신했던 대통령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긴급조치와 중앙정보부를 통해서 무고한 사람을 가두고 간첩으로 조작하면서 장기집권을 하였던 대통령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게도 1026일은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가수 심수봉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을 겁니다. 시련과 아픔이 있었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서 새롭게 가정을 이루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만든 노래가 사랑밖에 난 몰라입니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때문에 내일은 행복할 거야. 얼굴도 아니 멋도 아니 아니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했어요. 지나간 세월모두 잊어버리게 당신 없이 아무것도 이제 할 수 없어 사랑밖에 난 몰라.’

 

시간을 되돌려 2000년 전 갈릴래아를 생각합니다.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 예수님을 만나서 삶이 변화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절망과 고통의 삶이었지만 감사와 기쁨의 삶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부들을 부르셨습니다. 어부들은 그물과 배를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눈이 멀었던 소경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소경은 예수님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운명에 처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운명적으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저 여인에게 먼저 돌을 던지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여인의 죄를 묻지 않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어 드렸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사랑밖에 모르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입니다. 둘째도 이와 같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루가복음에서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강도를 당해서 쓰러진 사람이 있었는데 사제와 레위인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당한 사람을 업고 여관으로 데려갔습니다.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치료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에게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누가 강도당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습니까율법학자는 대답하였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하십시오.”

 

오늘 탈출기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가난한 사람, 고아나 과부를 업신여기거나,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들에게 받을 것이 있어도 무리해서 그들의 처지가 너무 힘들지 않도록 하십시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과부나 고아를 돌보아 주는 것은 우리가 선행을 베푸는 것이고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나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가난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가난한 분들의 불편을 함께 고민하고, 나눈다면 그곳에서부터 하느님나라는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과 질병, 굶주림과 헐벗음이 있는 것은 재물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의료의 수준이 낮아서도 압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입을 것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우리가 소유하려고 하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나눈다면, 우리가 서로의 접근을 쉽게 받아들인다면,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공감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넉넉하게 채우고도 많은 것들이 남을 것입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예수님 시대에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한다면 오억 명을 먹이고도 넘치도록 남을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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