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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26 주일(이민자의 날)

141033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0-09-26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 방법은 거리 지키기와 마스크 착용입니다. 꼭 필요한 모임만 참석하고 가능하면 모임을 자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손을 자주 씻는 것도 코로나19의 감염을 막는 방법입니다. 정부의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손실을 감수하고 방역지침을 지키고 있습니다. 답답함을 감수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코로나19의 확산이 멈추지 않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종교적인 신념을 이유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있습니다. 박해도, 두려움도, 환난도, 칼도 그리스도와 맺어진 하느님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확진된 목회자가 예배를 통해서 신도들을 감염시킨다면 결코 착한 목자가 아닙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중세에 페스트는 많은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페스트는 신앙을 통해서는 결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적인 신념으로 이웃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은 광신입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규모 모임을 가지면서 거리두기를 하지 않기도 합니다. 위치 정보를 감추기 위해서 휴대폰의 전원을 꺼놓기도 합니다. 확진되었으면서도 동선을 알려주지 않기도 합니다. 검사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코로나19는 정치적인 대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코로나19는 사상과 이념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무고한 사람이 감염되어 사망한다면 반드시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손실을 주고, 삶에 불편을 준다면 이 또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서, 종교인이라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방인이라고 해서, 죄인이라고 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구별하지 않듯이 하느님께서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바이러스는 정부의 방역지침을 준수하고, 개인위생을 철저하게 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방인일지라도, 죄인일지라도 회개하고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바이러스는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해도, 재능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정부의 방역지침을 어기고, 개인위생을 소홀히 하면 쉽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듯이 바이러스는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삶에 커다란 피해를 주게 됩니다. 율법학자라고 해도, 바이사리파라고 해도, 종교인이라고 해도 회개하지 않고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느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기름부음 받았던 다윗도, 하느님께로부터 지혜를 받았던 솔로몬도 회개하지 않으면 하느님과 멀어졌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였습니다. 다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만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본당에서도 여러 교육기회가 있습니다. 성서공부, 레지오, 성령기도회, 대림특강 같은 기회입니다. 평일미사는 하루의 삶을 돌아보고 말씀 안에서 하느님께로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런 자리에 열심히 참여하는 분들은 축복의 말씀을 듣기 때문에 신앙이 더욱 강해집니다.

 

하지만 그런 기회에 함께 하지 못하면 뜨거웠던 신앙도 점차 식어가는 것을 봅니다. 저의 동창 중에서도 교구의 행사나, 피정, 교육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은 교육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기 때문에 본당에서의 사목도 기쁘게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교육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 친구들은 동창 모임에도 자주 오지 않는 친구들은 나중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거의 표시가 나지 않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훨씬 기쁘게 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하느님께 사랑받은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정부의 방역지침을 어기고 예배를 강행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빙자한 이기적인 태도입니다. 검사를 거부하고, 동선을 알리지 않는 것도 이기적인 태도입니다. 자가 격리의 대상으로 통보를 받았으면서도 공공장소에 다니는 것도 이기적인 태도입니다. 확진 판정을 받고도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이기적인 태도입니다. 코로나19는 나만 아픈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웃을 아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고 합니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라고 합니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나의 건강을 위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의 행동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가 대구와 경북에 심각한 피해를 줄 때였습니다. 전국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대구와 경북으로 달려갔습니다. 전국의 소방대원들이 자원해서 달려갔습니다. 우한에서 온 교민들을 받아들인 천안과 아산의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지치고 힘든 사람을 우선적으로 보듬어 주는 것이 신앙입니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해주는 것이 신앙입니다.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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