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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부르심 받은자의 태도)

132303 김중애 [ji5321] 스크랩 2019-09-05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

부르심 받은자의 태도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그 따르려는 사람이 결국

우리 자신들이겠죠.

첫 번째 사람은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

다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세 번째 사람도 본인이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이

나를 따라 오너라합니다.

세 사람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주님 가시는 곳이면

다 따라가겠습니다.’ 하자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한마디로 첫 번째 따르는 사람에게는

나 따르려면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하십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하느님 앞에

봉헌하는 4대 희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도의 희생,

두 번째는 절제의 희생,

세 번째는 육신의 희생,

네 번째는 물질의 희생입니다.

다른 말로 최소한 이 4가지를 희생해야만

예수님을 따랐을 수 있다는 것이죠.

예수님의 인생은 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참 고단하고 피곤한 삶이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우리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과의 그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아갑니다.

왜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따를 때 희생을 해야 하느냐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억지로 끌려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여러분 중에 예수님에게 속아서

이 자리에 와 계신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 제자들 역시 강제로 3년 동안

노예처럼 끌려 쫓아다닌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도 열두 제자들도 예수님의

그 진실에 매혹 당했고,

그분이 제시하는 영원한 세상에 매혹을

당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사제도 영원한 세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분명 노력과 희생이 요구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도 희생을 치르는데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많은 희생이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 것 얻기 위해서는

온갖 머리를 다 짜내고 살지만,

영원한 세상에 가기 위하여

여러분이 투자하시는 기도의 희생,

절제의 희생, 육신의 희생, 물질의 희생은

삶 가운데 얼마나 되겠습니까

희생은 눈곱만큼도 안 하고 은총은

더 큰 것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에게

희생을 각오해야 된다고 하십니다.

이 세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 세상 것 얻으려고 투자하는

모든 것의 십 분의 일이라도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데 써야 될 겁니다.

4대 희생이 뭐라고 했습니까

기도, 절제, 육신, 물질, 이것은

최소한의 희생이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각자의 악습을 이기는 것도

큰 희생이고,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데

늘 걸려 넘어지는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한테는 희생이 아닌데

나한테는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큰 희생이라면 넘어서야 됩니다.

이러한 4대 희생 이외에 우리 각자 각자가

희생거리를 찾아보면 왜 없겠습니까

기도, 절제, 육신, 물질이라는 4대 희생은

넓게 해석하면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절제할 게 얼마나 많습니까

입 절제 중요하죠.

기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희생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되는 거죠.

나 오늘 한 시간 기도했으니

희생했어, 아닙니다.

기도는 해야 되는 겁니다. 의무입니다.

기쁨입니다, 그리고 권리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어디에 어떻게

기도해야 될 지도 모르지만,

예수님은 최소한 우리들에게

주님의 기도는 가르쳐주지 않았는가!

아무튼 예수님은 나 따르려면 고달플 거다.

희생 없이 따를 생각마라.’ 하십니다.

두 번째 사람한테는

나를 따라 오너라하고

예수님 쪽에서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 무슨 핑계를 대면서

나중에 가겠다고 거래요

아버지 장사를 치르고 난 다음에

따라가겠다.’ 라고 그럽니다.

그러자 죽은 자의 장례는 죽은 자에게

맡기고 찍소리 말로 나 따라 와하십니다.

얼핏 듣기에는 무자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성경을 자세히 묵상하고 원문을 읽어보면

그 사람의 부친은 죽지도 않았습니다.

죽어가는 것도 아닌 것으로 나옵니다.

한마디로 핑계를 대고 당장 따르기를 미룰 때

쓰는 표현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천천히 할 게요.’ 할 때 늘 쓰는 핑계가

아버지 장사 치르고 할 게.’입니다.

진짜 아버지가 죽은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죽어가는 것도 아니에요.

아버지가 살아있어도 뭔가 당장하기 싫을 때

유대인들은 늘 농담 반 진담 반,

아 아버지 장례 치르고 따라갈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시죠

모든 일에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이 있는 데,

그 순간을 미루다가 놓치면

목적하는 일을 이룰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내 안에서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면서 들어라!’

할 때 있으면 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행해라!’ 할 때는 행해야 됩니다.

뭔가 기분 좋을 때 즉시 이행 않으면

행동은 점점 어려워진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영적으로 거룩한 충동이 있을 때

그때 바로 즉시 계산하지 말고

행하라는 겁니다.

누군가에 자선을 베풀고 싶을 때

바로 즉시 베풀라는 겁니다.

누군가에게 화해를 청하고 싶을 때는

미루지 말고 화해를 청하라는 얘기입니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받고 싶을 때는

미루지 말고 용서를 청하라는 겁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싶을 때는

솔직하게 도움을 즉시 청하라는 겁니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는

미루지 말고 말하라는 겁니다.

지금 기도하고 싶을 때는 차 속이든 길가든,

TV를 보고 있든 바로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 거룩한 순간을 놓쳐버리면

다시 거룩한 순간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느낍니다.

하느님께 감사하고 싶을 때는

생각만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든지

표현하라는 겁니다.

미루면 미룰수록 손해 본다는 겁니다.

두 번째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에게

하신 말씀은 핑계되지 말고 성령이

너에게 뭔가 말을 하실 때는 원할 때는

즉시 바로 시작하라는 겁니다.

세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처럼 역시

주님 따르겠습니다.’ 합니다.

그런데 따르기는 따르는데,

가족에게 작별인사하고 난 다음에

따를게요.’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쟁기를 쥐고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밭을 바르게 갈 수 없어요.

어깨 너머로 옆으로 뒤돌아보는 자가

밭이랑을 곱게 갈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오려는 자는

지는 해를 보고 걷든 자가 아 아니라,

뒤돌아 세상을 보고 걷는 자가 아니라,

여명을 걷는 자이기 때문에 과거에 집착해서

현실을 망치고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내 옆에 계심을 분명히 믿고서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얘기합니다.

하느님을 향해 영원의 밭고랑을

정확히 갈기 위해 우리는 세 가지

하느님에 대한 결의를 보여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께 대한 사랑!

오직 예수님께 대한 순명!

오직 예수님께 대한 충성!

오직이라는 말이 왜 붙었을까요

오직은 순도를 나타냅니다.

여러분들 손에 끼고 있는 묵주반지가

14K이나 18K이냐 24K 순금이듯이,

순도 100프로를 지향하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있어야하고,

순도 100프로를 지향하는 예수님께 대한

순명으로 불타고 있어야 하고,

순도 100프로를 지향하는 예수님께 대한

충성이 있어야 됩니다.

설령 100프로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목표만큼은 순도 100프로짜리

사랑, 순명, 충성이 되어야 됩니다.

어떤 이는 80프로 순명을 하다

20프로의 불순물에 80프로 순명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그런데 애초 목표를

예수님을 적당히 사랑할 거고,

기분 내키면 충성할 거고,

마음 내키면 하느님께

순명할 거야하는 자가 어떻게 영혼의

밭고랑을 제대로 갈 수 있겠는가

사방을 다 둘러보면서 밭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겠습니까

내 영혼의 농사를 어떻게

지을 수 있겠습니까

요약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따르려는 세 사람,

우리 자신이라 생각할 수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나를 따르려면 희생을 각오해라.

4대 희생, 기도의 희생, 절제의 희생,

육신의 희생, 물질의 희생.

최소한 이 4가지의 희생은

각오하고 따라야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감언이설로

꼬드긴 적이 없습니다.

나만 따르면 불행 끝 행복시작,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길가다가 자빠져도 금가락지 앞에

자빠지게 하겠다.’

그렇게 감언이설로

우리를 꼬드긴 적이 없습니다.

나를 따르려면 네 십자가를

네가 지고 따라라.

그리고 내 왕국은 지상이 아니라

죽어서 영원한 세상에서

수천 배로 갚아줄 것이다.

두 번째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에게

하신 충고는 자꾸 핑계대지 말라.

핑계대지 말고 하느님이 너에게 원하신 것

순명하고 성령이 원하실 때는 즉시 행하라!

하느님께 감사 예물 드리고 싶을 때는

바로 즉시 드려라.

그 순간 지나면 다시 돈 아까운 것에요.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을 때는 즉시 도와줘라.

하느님을 따르려는 자에게 하신

세 번째 충고는 과거에 살아서

교만해지지 말아라.

쟁기를 잡고 뒤라는 것은 과거입니다.

앞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입니다.

예수님이 이끌어 주시는 앞을

보고 살아야합니다.

뒤를 바라보는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눠요.

나는 과거에 이러했는데하며

교만해질 수도 있고, 또 반대로

비참해질 수가 있어.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것만

자꾸 떠오르고 자꾸 비참한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리하지 말고 하느님이 이끌어 주시는 데로

오로지 앞만 쳐다보고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미래도 하느님이 알아서 야훼이레

선한 쪽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현재의 삶이 매순간 순간마다

마지막 순간이라는 마음으로 사는 자가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그래서 세 단어로 줄이면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주님이

직접 얘기하시기를 첫째는 희생해야 된다.

두 번째 순명해야 된다,

핑계되지 마라, 세 번째 충성해야 된다.

뒤돌아보지 마라.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이분들은

그 후에 예수님을 따라갔는지

안 따라갔는지 이름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모르지만,

따라간 사람도 있을 거고

아버지 장사지낸다고 갔다 안 온

사람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 세 사람들의 모습이

뒤죽박죽이 되어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나 따르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얘기하십니다.

과연 내가 예수님이 얘기하고

계시는 것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지 되돌아봅시다. 아멘

2019년 연중 제13주일 (6/30)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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