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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꽃이 피는 것도 아름답지만 지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128992 김중애 [ji5321] 스크랩 2019-04-13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꽃이 피는 것도 아름답지만 지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우리 나라의 봄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 한껏 자태를 자랑하니,

원없이 눈요기를 할 수 있습니다.

샛노란 개나리며 화사한 벚꽃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네 청춘이 짧듯이

꿈결같은 봄날 역시 짧습니다.

한쪽에서는 벌써 작별 인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니,

할머니 손을 꼭 잡고 하교하는

손녀의 얼굴 위로 새하얀

꽃잎들이 하염없이 흩날리며

떨어집니다.

할머니의 얼굴에도,

손녀의 얼굴에도 새하얀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꽃이 피는 것도 눈물겹도록

아름답지만, 꽃이 지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눈물겹고

아름답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소멸되는 것,

사라지는 것도 분명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존재와 소멸

사이의 경계에 서서 끝없는

갈등과 방황을 거듭합니다.

관건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는 것,

다시 말해서 충만히,

열정을 지니고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이미 소멸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무의미한 삶, 열정이 사라진 삶,

이미 비존재로 전락해서 허깨비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비참한 현실을 보시고,

진정으로 사는 것이 어떤 삶인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의 지상생활은

불과 33년뿐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준비기간 30년을 빼면

불과 3년 간의 공생활

기간 뿐이었습니다.

이 시기 예수님께서는 그야말로

참 삶을 사셨습니다.

가치와 의미로 충만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 삶은 곧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걸맞는 , 다시 말해서 아버지께

철저히 순명하는 삶이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존재와

소멸 사이의 경계에 서계십니다.

살기등등한 유다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이란 존재를

소멸시키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존재와 소멸 사이의 경계를

허무신 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잇단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으시며 당당하십니다.

그분은 생명은 물론 죽음조차

정복하신 메시아시기 때문입니다.

은혜롭게도 예수님께서는

사흘간의 수난과 죽음의 시기,

잠시 이 땅 위에서 소멸되시지만,

언제 그랬냐는듯이 즉시 소멸에서

존재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오십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영광스런

부활로 죽을 운명인 우리,

완전히 소멸될 운명의 우리들에게도

영광스럽게 부활하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은총에로 초대하십니다.

감사하며 찬미드리며 마지못해 사는

하루가 아니라 열정으로

충만한 하루를 살아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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