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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3일 (화)부활 제4주간 화요일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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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7.22)

131269 김중애 [ji5321] 스크랩 2019-07-22

 

2019년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제1독서 아가 3,1-4ㄴ

신부가 이렇게 말한다.
1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2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3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았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4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복음 요한 20,1-2.11-18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미사를 시작하면서 신자들이
봉헌한 미사예물에 적혀 있는
지향을 읽습니다
(물론 지향이 너무 많으면 읽을 수가
없지만 최대한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미사지향이 제대 위에 올라가
봉헌되었다는 것이 중요하지,
미사지향을 읽는 것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읽는 이유는
저 역시 이 지향으로 기도하겠다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제대 위에 봉헌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 봉헌의 마음으로
사제와 함께 미사를 하면 됩니다.
 하지만 지향이 불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미사 후에 어떤 자매님께서 제게 와서
기분 좋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미사 지향에 적혀 있는 이름을
잘못 불렀다는 것입니다.
우선 사과를 하면서 봉헌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영 마음이 좋지 않은 것 같더군요.
 봉헌한 것으로 충분해야 하는데,
그 이상을 생각하기에 봉헌 자체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찍은 사진이 모두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초점을
정확하게 맞추지 못했을 때에는
어쩔 수없이 지우게 됩니다.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초점을 제대로 맞추는 것입니다.
 즉, 내가 찍고 싶은 곳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춰야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 안에서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데,
 부수적인 것에 더 큰 관심을
이면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보면,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울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해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요.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듭니다. 
왜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님이었는데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마리아의 초점은 예수님께 맞춰져 있지
 않고, ‘죽음’에 맞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서
엉뚱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주로 세속적인 것들은 크고 화려해서
내 눈에 확 띄게 마련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디에나 계시는
주님이지만, 그 곳에 계신
주님을 발견하기란 렇게
쉽지 않습니다.
다른 것들이 내 눈을 가득 채우고
 그것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주님께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적극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라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고백을
우리 역시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그리스도의 성혈 한 방울로도

온 세상을 구할 수 있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알렉산더 이바노프,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봉헌

어떤 분으로부터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초봉헌대에서 자신의 초에

 불을 붙이기 위해 불이 붙어있는

 옆의 초에 심지를 대려는

순간 어떤 자매님께서

 “왜 남의 초를 만지시는 거예요?”

라고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제 초에 불을 옮겨

붙이려는 것인데 안 되나요?”
그러자 단호하게 “안돼요.

 그러지 마세요.”라는 것입니다.
봉헌한 것으로 충분한데,

그 이상을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봉헌한 자신의 초에 심지조차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누가 자신이 봉헌한 초를

건드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봉헌하고서도 부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과연 이런

 봉헌을 기쁘게 받아들이실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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