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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홍성남 신부님 / 제5회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135319 이정임 [rmskfk] 2020-01-15

홍성남 신부님의 행복한 신앙


 


제5회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진짜일까요? 참을 인자 셋이라는 뜻은 참고 또 참으면 내가 딴 사람한테 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그런 의미를 갖고 있죠. 정말 그럴까요? 잘 참고 사는 분들 계시잖아요. 참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화병이 생기죠. 살인을 면한다고 했어요. 물론 내가 대화하는데 저 사람이 나를 화를 나게 만들었어요. 그때 같이 화를 버럭 내면은 싸움이 벌어지고 잘못하면 맞아가지고 죽을 수 있죠. 그렇지만 화를 안 내면, 참으면 살인은 면합니다. 그런데 살인을 고 순간만 면합니다.


* 지나치게 참기만 하면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고 순간의 살인을 면하기 위해서 참는 것의 그 뒤의 후유증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참는다는 것을 리학에서는 억압을 한다고 얘기를 해요. 누룬다는 거죠. 물론 참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죠. 때로는 참을 줄도 알아야 되고, 때로는 지혜롭게 기다릴 줄도 알아야 되죠. 그런데 이게 너무 참으면 심리치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나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감정이고 또 행위고 간에 이것이 지나칠 때는 병적인 것으로 가기 쉽다는 것이 심리철학 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 심리철학 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억압, 참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 억압 (참는 것)은 생존의 필수 요소인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 중 하나이다.


내가 지나치게 무엇인가 참으면 반드시 그 후유증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중에 하나다 이제 화병입니다. 그런데 왜 참을까요? 이 억압이라는 것은 방어 기제라고 그래요. 내가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쓰는 그런 기제라고 합니다. 방어 기제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드리면, 정신분석인 정도언 선생이 방어 기제에 대해서 재미있게 설명한 것이 있어요. "마음은 순두부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단단한 껍질이 아니고, 몸이 더 튼튼하냐, 마음이 더 튼튼하냐? 하는 걸 제가 작년에 강의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마음이 튼튼하다고 얘기를 하셨는데 실제로는 안 그렇다는 거죠. 몸이 훨씬 더 튼튼합니다. 몸이 튼튼한 이유가 뭐냐 하면 상처에 대해서, 상처가 몸이나 마음이나 똑같이 상처를 받는데, 그 상처가 복원되는데, 아무는데 걸리는 시간이 몸은 시간이 짧은데 마음은  굉장히 길다는. 그리고 어떤 상처는 아예 아물지 않고 그냥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


* 상처가 복원되는 측면에서 보면 육체보다 마음이 훨씬 약하다.

 

그런데 그 마음이 약한 것을 갖다가 정도언 선생님은 "순두부 같다."라고 표현을 했어요. 순두부는 꾹 찌르면 그냥 쑥 들어가죠. 나오지도 않잖아요. 그냥 파인 상태로 있죠. 저는 "마음이 어린아이 살 같다."라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아이들 살은 조금만 건드려도 빨개지죠. 그리고 조금만 상처를 줘도 금방 상처가 납니다. 그래서 사람 마음은 아이들 살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참 많아요.


* "마음은 마치 순두부 같습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흔들리고 쉽게 뭉그러집니다."


"나는 마음이 강건해."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계신대 그렇지 않다는 거죠. 강한 척하는 거지 강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죠. 그리고 그 상처가 오래 남습니다. 이렇게 여린 마음을 잘 보호하기 위해서 누구나 마음의 경호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마음의 경호실에서는 다양한 경호작전들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방어기제라고 부릅니다.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내 마음 안에 경호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죠. 그것이 방어기재라는 것인데 이 방어기제는 두렵거나 불쾌한 상황이거나 욕구불만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서 자동적으로 취하는 적응 행위를 말합니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 아무도 날 공격하지 않아요. 아무도 날 욕하지 않아요. 날 건드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내가 방어할 이유가 없겠죠. 그런데 인간사라는 게 그렇지 않잖아요. 늘 좋은 사람만 만나는 게 아니라 안 좋은 사람도 만나야 되기 때문에 자칫하면 욕을 먹을 수도 있고 그렇단 말이죠. 그런데 내 주위 여건이 뭔가 이렇게 나한테 적대적인 그런 여건이 있을 때 내가 나를 지켜야 된단 말이죠. 그래서 생겨난 게 방어기제인데 이 방어기제 중에서 이 억압이라는 기재도 생겼다는 것인데. 상이 두렵고, 불쾌하고, 욕구불만에 직면했을 때, 그런데 이런 것들을 표출했을 때 오히려 내가 얻는 것다 잃는 것이 많다고 판단했을 때 방어기제 같은 거를 쓰죠.


그래서 "참자! 참을 인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 그러면서 꾹꾹 참습니다. 이런 방어기제가 자신을 아끼는 수호천사가 될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타고난 기질, 내 부모가 쓰는 방어기제, 어려서 겪은 어려움의 종류. 방어기제를 쓰고 난 후에 도움이 되었는지 아니면 쓰면서 힘들었는지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선택합니다. 이렇게 선택된 방어기제는 나의 성격 속에 녹아들어 평생을 함께 합니다.


방어기제라는 것이 매번마다 다양하게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쓰는 게 몇 개가 있어요. 참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은 참는 걸 가지고 평생을 산다는 거죠. "아, 저 사람 참을성이 많아." 그 사람은 지금 그 얘기만 들은 게 아니라 어렸을 때도 "아, 쟤는 잘 참아." 그 얘기를 듣고, 나이 먹어서도 "아, 저분은 잘 참는 분이야." 얘기를 듣는다는 거죠. 왜 그럼 방어기제를 안 바꾸는가? 그 방어기제가 자기방어 수단인 거예요. 자기 무기가 되는 거죠. 잘 안 바꾼단 말이죠. 그런데 이 억압이라는 방어기제가 불편한 상황에서 나를 살아남게 만드는, 보호해 주는 그런 생존의  기제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문제는 이거를 너무 많이 쓰게 되면 생기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라는 거죠. 그게 화병입니다.


살다 보면 이 분노라는 게 생기는데 이 분노라는 것은, 참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나한테 욕을 했어요. 분노가 생겼습니다. 화가 났어요. 그런데 같이 욕을 했으면 좋겠는데 상대방이 직장 상사예요. 팼으면 좋겠는데 상대방이 나보다 힘이 더 세요. 뭘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아, 저 사람이 나한테 돈 빌려준  사람이야. 그럼 이제 참아야지 어떡하겠어요. 그래서 눌러 참아요. 참는 게 이기는 거야. 참는 게 복이야 참을 인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해. 꾹꾹 눌러 참았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안에 들어와 있는 분노가, 얘가 가만히 있냐? 아니라는 거죠. 화가 났을 때 여러분들 마음이나 신체에 어떤 현상이 생깁니까? 화가 났을 때 몸에서 어떤 반응이 나타나요? 열나고, 소화 안 되고, 잠도 안 오고. 화가 났을 때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증상, 이 증상을 얘기하면, 내가 날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내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내가 세세하게 다 얘기를 해 주면 내 몸이 알아들어요.


* 화를 참기만 하면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그러니까 "아, 남들 다 그렇게 사는데 나는 괜찮고." 그러면 그때부터 병이나기 시작해요. 그래서 자안에서 일어나는 증상들을 굉장히 세세히 다 말을 해 주는 것이 건강에 좋아요. 열나고, 잠도 안 오고, 청소한다? 청소하는데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고 막 열 나가지고 한단 말이죠. 예,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똑같이 너무 많이 참으면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일단은 이렇게 잘 참으면은 심리적으로 변비 현상이 나타난다.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음식을 먹으면 배설물이 생기고 그 배설물을 배설하지 않고 그냥 두게 되면 변비가 생긴다고 그랬죠. 똑같이 내 안에 있는 분노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냥 잘 참고 안에다 두면 얘가 심리적인 변비를 만듭니다. 그래서 이렇게 심리적인 변비 상태에 걸리면은 사람 얼굴이 굉장히 심각해져요. 불안하니까. 화장실 안 가고 계속 참고 사는 분들은 불안하잖아요. 이게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그래서 얼굴이 늘 불안한 거예요. 심각하죠. 이게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그런데 이거를 내보낸다는 거를 생각을 못 하니까 그냥 눌러 안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분들은 예민해요. 당연하죠. 예민할 수밖에 없죠. 건드리면 나올지 모르니까. 그래서 옆에 오지도 못하게 해요. 또 뒤끝이 많아요. 화를 많이 갖고 있으면, 그리고 제일 안 좋은 게 이 화를 갖고 있으면 이 화라고 하는 것이 에너지 덩어리거든요. 얘가 사람 몸의 신체 부위 중에서 제일 약한 데를 공격을 한답니다. 그래서 암의 원인이 된다는.


* 결국 화는 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성당에 다니는 자매님들 중에 착하고 말 없는 자매님들이 암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은 신자분들이 "저렇게 착한 자매를 왜 하느님이 데려가시냐?"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하느님이 절대로 안 데려가셨어요. 본인이 이렇게 살아가지고 암에 걸려서 죽은 겁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그거를 다 가둬 놓고 산다는 게 이게 사실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살아 있을 때도 이렇게 심리적인 그런 부작용, 신체적인 부작용을 갖다 안게 되는 것이 이제 억압이라는 방어기제인데 지나친 억압, 그런데 지나친 억압을 하다가 죽으면은 어떻게 될까요? 원귀가 된다고 그러죠. 사람이 죽으면은 바로 승천하는 영혼이 있는가 하면, 못 떠나고서 지상을 헤매는 귀신들도 있다고 하잖아요. 내 마음 안에서 분노가 많은 채로, 이게 해소가 안 된 채로 죽으면 이게 한 덩어리거든요. 분노가 한이거든요. 이 한을 갖고 죽으면 그게 원귀가 된다고 얘기를 하죠. 그 원귀가 진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비유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또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고 얘기를 했는데 살인은 면하는데 살인은 할 수가 있어요. 가끔 욱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런 사람들 성격이 대개 어떻습니까? 다혈질이고 평소에 이런 사람들이 욱 합니까? 아니에요. 아주 착한 사람들, 평소에 말 한마디도 없고 조용한 사람들이 어느 날 사고를 칩니다. 사람을 죽이고 그래요. 그게 왜 그런가?


이 화라는 감정을 갖다가 내리누르고 눌렸다가 이게 사람의 자아가 화를 누르는 힘이 있어요. 언제까지 누를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스프링을 갖다가 막 눌렀어요. 그런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예요. 어느 날 힘이 달려서 딱 놓으면은 탁 튀어나오죠. 똑같이 분노도 그렇다는 거예요. 분노도 누르고 눌렀는데 이게 에너지 덩어리라고 그랬습니다. 이게 눌렸다가 마치 화산 터지듯이 확 올라오게 돼요


내가 늘 냉정하고 내 의지를 딱 지키고 있으면 지키는데, 사람이 어떻게 24시간을 그렇게 객관성 유지를 하고 눌러 놓고 그렇게 살 수 있겠어요. 그런 사람은 없어요. 그냥 인간은 감성적인 동물이고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사람 마음은 여리다고 그랬습니다. 여리고 또 어려요. 여린 데다가 어린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까 계속 얘를 눌러 놓고 살 수가 없어요.


* 화를 적절하게 풀어내지 않으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어느 땐가 경계를 소홀히 해서 딱 놓으면 그때 이놈이 확 올라오는, 올라와 가지고 사고를 칩니다. 일본에서는 몇 년 전인가 중학생이 자기 엄마를 토막 살인을 낸 사건이 있었어요. 자기 어머니를 완전히 다 잘라 가지고 냉장고에 집어넣어 버렸어요. 그게 사건 보도가 났었는데, 그 중학생인 아들이 그렇게 착한 애였다는 거예요. 엄마는 잔소리가 심한 엄마였대요. 그러니까 얘가 어릴 때부터 클 때까지 엄마 잔소리를 들어서 "참자, 참자." 그러다가 중학생 때 터져 버린 거예요. 엄마를 토막을 내 버렸어요. 얼마나 화를 오래 참았던지.

 

이게 참다가 화를 내는 사람들은 이성이 마비가 됩니다. 눈도 뒤집힌다고 그러잖아요. 화가 폭발하면. 그래서 참는다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게 너무 지나친 억압을 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 그런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분노라는 것은 음식을 먹었는데 배가 아파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죠? 화장실 가야죠. 배설을 해야지, 그래서 속이 비어야지 그다음에 행복한 얼굴을 하고 다니지요. 분노도 마찬가지예요. 분노도 내 마음 안에 분노가 이게 적정량만 있어야 된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게 넘쳤어요. 넘쳐가지고 제 사람의 입으로 나올 동 말 동해요. 분노가 밖으로 나오면 뭐죠? 욕이죠. 목까지 올라왔어요. 그때는 어떻게 해야 돼요? 배설을 해야 돼요.


* 자기가 수용할 수 없는 분노는 배설을 하듯이 풀어내야 한다.

 

그런데 욕이라는 게 다른 말로 하면, 분노 배설이에요. 배설. 이 배설이라는 거에 대해서 "아, 뭐 저런 표현을 자꾸 쓰나? ^^* 왜 자꾸 배설 이야기만 해!" ^^* 아주 고깝게 보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는데 그런 분들은 대개 강박증이 있는 분들이에요. 청결 강박. 깨끗함과 더러움을 구분하는 분들. 그런 분들은 치료 좀 받으셔야 돼요.^^

 

사람이 건강하려면 세 가지 요소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그래요. 세 가지 잘 해야 되는지, 건강하려면 제일 먼저 잘해야 되는 게 뭐죠? 자, 여행을 가시면 행복한 여행을 하려면 세 가지 일을 잘 해야 됩니다. 뭐, 뭐, 뭐예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이 세 개예요. 여행 가면 금방 느껴요.

 

여행 갔는데 음식이 안 맞아. 저는 여행 가면 참 힘든데, 특히 유럽 쪽에 가면 먹기만 하면 설사를 하니까 먹지를 못하겠는 거예요. 언제 화장실을 또 내가 가겠다고 그럴 때만 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때마다 아, 잘 먹어야 돼. 그리고 머리만 대면 잘 자야 돼. 그리고 하여간 그냥 못 싸가지고 하, 불편한 게 아니라 그냥 화장실에 앉기만 하면 바로바로 나와야 돼. 이게 참 여행을 잘하는 그런 조건인데 이게 우리가 인생을 사는 데에도 똑같다는 말이에요. 조건이.

 

인생을 사는 데도 내 안에 불편한 감정이 있을 때 이거 배설을 잘 하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방법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언제 배설을 하는가? 적정량을 넘어섰을 때, 그러니까 시도 때로 없이 하는 게 아닙니다. 시도 때도 없이 한다고 그러면 그거는 강아지죠. ^^* 개들은 시도 때도 없이 싸잖아요. 저희 집에도 강아지가 한 마리 있는데 영국 종이라고 얘기를 들었는데 똥 싸는 거 봐서는 똥개 같거든요.^* 아무 데나 싸고 그래요.

 

그런데 사람들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 이걸 내가 내 보낼 때가 됐다는 걸 느낍니다. 왜냐하면 불편하거든요. 뭔가 이렇게 다 찬 느낌이 들어요. 그럴 때는 과감하게 배설을 시켜야 됩니다. 그럼 이게 그다음에 문제가 뭐냐? 어떻게 배설을 시킬 것인가?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어떻게 배설을 시킬 것인가를 설명을 들려야 되는데, 고 전에 문제가 뭐냐 하면,

 

 

배설 행위 자체를 죄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재작년인가? 할머니 한 분이 오셔 가지고, 고해성사 보러 왔다고 그러시는데, 고해성사 거리가 아니라서 말씀을 드리는데,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화를 냈어요." 그러시는 거예요. 왜 화를 내셨느냐고 그랬더니 할머니가 딸이 하나 있는데 딸이 미국에 산대요. 딸이 너무 그리운데  가서 볼 수는 없고, 할아버지 성격이 굉장히 강하셔서 할머니를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가 쥐 죽은 듯이 사시는 분이었는데 꿈에서 딸을 만났대요. 그래서 모녀가 서로 상봉을 하고 끌어안고 막 울고 있는데 갑자기 "나 물 뜨러 가!" 그러는 소리가 들리더래요. 할아버지가 새벽에 약수터에 가시면서 소리를 질렀다고. 이 할머니가 이제 놀래서 깨셔 가지고 처음으로 욕을 하셨대요. "저 영감태기 죽지도 않고, ^^* 새벽부터 소리 나 지르고 ..." ^^*

 

그런데 제가 그 얘기를 듣고 걱정이 된 게 "할아버지가 가만히 계셨어요?"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문 닫고 한참 저기 간 다음에 문에다 대고 하셨다는 거예요. 그럼 그건 죄가 아니라고 그랬더니 "그런데 제가 욕을 했는데 죄가 아니냐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게 저희 신자분들의 문제예요. 내가 사람한테 직접 화를 내는 거 하고, 내가 그냥 혼자서 화를 내 가지고 푸는 거 하고는 다른 거거든요. 

 

쉽게 말하면 내가 배설을 했는데, 남이 잠자고 있는 얼굴에다 가서 쌌어요. 이거는 죄죠. 화장실에 가서 혼자 쌌어요. 이거는 죄가 아니죠. 그런 어떤 구분을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이 할머니 같은 경우에는 화장실 가서 혼자 하셨는데도 죄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런 죄책감을 갖고 있는 신자분들이 의외로 많으세요.

 

그런 배설 행위 자체는 죄가 아니다. 분노의 배설은 해소인데 이거는 죄가 아니다. 그냥 해소일뿐이에요. 화장실 가서 배변하듯이 그것도 똑같은 행위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한 얘기는 배설은 죄가 아니다, 분노 해소, 배설이 죄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고요. 다음 주에 드릴 말씀은 그럼 어떻게 이걸 해소를 하는가? 어떻게 분노 배설을 하는가? 그 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들려야 될 것 같습니다.

 

천주교 신자분들은 교리를 배울 때부터 참으라는 그런 교리를 많이 들으셨고, 또 천주교 오는 분들은 대개 유교적인 전통을 가진 그런 집의 분들이 천주교에 많이 들어오세요. 그러니까 이미 참고 살아온 분들인데 성당에 오셔서 더 많이 참아 가지고 화병에 걸리기 직전 분들이 굉장히 많으세요.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의 절반 이상이 신경증 환자라고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해소하는 방법을 아시면 돼요. 그러니까 죄책감 없이 편안한 방법으로, 그리고 각자 가지고 있는 분노의 양에 따라서 맞는 그런 해소를 하신다면 편안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강의 주제가 행복한 신앙이거든요. 신앙생활을 통해서 행복해져야지 신앙생활을 했는데 뭔가 불편하다 그러면 말이 안 되겠죠.

 

다음 주에는 배설하는 방법에 대해서, 기쁨에 대해서 한 번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숙제로 나는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해소를 한다. 여러분들이 쓰는 방법을 여기서 알려주시면 또 이 방송을 보는 많은 분들이 참고로 하실 수 있을 거고, 잘 하면 여러분들도 강사로 초빙해서 ^^* 잘 싸는 법에 대해서 이렇게 강의가 좀 될지 모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https://cafe.naver.com/withbiblestudy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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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님, 행복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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