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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마음을 정결하게 지키는 방법

127541 김현아 [estherlove] 스크랩 2019-02-12

 




2019년 다해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마음을 정결하게 지키는 방법> 

 


  복음: 마르코 7,14-23




내림

LORENZETTI, Pietro 작, (1325)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에서 한 권사님의 사례가 있어 인용합니다. 그 권사님의 간증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교회에서 매우 인정받는 신도입니다. 매일 새벽예배에 빠지는 적이 없고 단식과 기도를 철저히 수행하는 분이셨습니다. 일어나기 싫어도 매일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깨워주었다고 합니다.

 

그날도 한 존재가 자신의 방에 들어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분은 얼른 일어나 앉아 저기 혹시 누구세요 예수님이세요 천사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존재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합니다. 마귀의 얼굴을 한 이가 자신을 보며 웃고 있더랍니다.

 

마귀가 왜 매일 새벽예배에 가도록 나를 깨웠을까

그 이유를 그날 새벽예배에 가서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나는 매일 새벽예배를 거른 적이 없는데, 새벽 예배에 한 번도 안 나오는 장로들은 뭐야’, 혹은 나는 자주 단식하는데 단식 한 번도 하지 않는 목사님은 뭐지라며 자신도 모르게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새벽예배 나오는 것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줄 알았더니 결국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어 더럽히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면서 외적인 모습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판단했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속은 썩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음이 더러우면 다 더러운 것이고, 마음이 깨끗해야 다 깨끗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마음을 건드릴 수 없기 때문에 손을 씻고 먹던 안 씻고 먹던 우리를 더럽힐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더러우면 다 더러운 것이고 마음이 깨끗하면 다 깨끗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더럽혀지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이 말씀은 모든 악은 인간 마음에서 나온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인간 마음 안에 악의 원천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악의 원천은 뱀과 파라오로 상징되는 자아입니다. 그 자아로부터 나오는 나쁜 욕구가 사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모든 악행은 다 자아의 욕구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자아의 세 욕구가 세속-육신-마귀인데 예수님께서 나열하신 저 모든 것들은 이 세 욕구에 다 포함됩니다.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지키는 방법은 자아의 욕구들이 올라오지 않게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정결해지려면 자아가 욕구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욕구는 이미 우리 안에 넣어져있기 때문에, 그 욕구를 발로 밟고 다른 욕구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의 가장 상징적인 모습이 바로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것입니다. 인간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물속에 빠져들게 되어 있습니다. 자아의 욕구에 오염된다는 뜻입니다. 그 자아의 욕구가 원죄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태어났기에 자신의 힘만으로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자아의 욕구와 반대되는 욕구를 받아들여야하는데 그 욕구를 우리는 신성(神性)’이라 합니다. 하느님의 본성은 사랑이신데 사랑도 욕구입니다. 자아의 욕구와 반대되는 욕구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아의 욕구에 빠지지 않고 그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그도 자아의 욕구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니 다시 자아의 욕구에 빠져듭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정결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을 우리는 기도라 합니다. 저는 신학교 때에 성무일도 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았습니다. 기도시간이 끝나도 어깨가 뻐근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저는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은 것입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그 바라보는 대상과의 대화의 시작이기에 생각도 그분에게 머물러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기도한다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육체-영혼-(마음)’입니다. 이는 마치 개울--바다처럼 서로 영향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개울이 오염되면 강이 오염되고 강이 오염되면 바다가 오염됩니다. 그런데 바다가 오염되면 그 오염된 것을 먹은 물고기를 또 인간이 먹기 때문에 인간이 비록 땅에 살기는 하지만 역시 오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는 감각입니다. 우리가 감각으로 안 좋은 것들을 들여보내면 그것들이 영혼을 오염시킵니다. 영혼은 이성이 작용을 하는 부분인데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에 의해 생각이 오염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오염되면 마음이 오염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마음이 오염되면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들은 오염된 것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말과 행위, 생각과 욕구가 모두 더러운 것들이 나와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에게도 해를 끼치게 됩니다.

 

 

제가 첫 보좌를 할 때 주임신부님이 편찮으셔서 13,000명이 넘는 성당에서 혼자 미사를 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주일미사 여섯 대인데 제가 다섯 대를 했습니다. 고해성사는 미사 시작 전과 후에 계속 주어야했습니다. 주일 저녁쯤 되면 초죽음이 되고 이미 하루 종일 마신 성혈로 정신이 오락가락합니다. 그러다가 실수를 여러 번 했습니다. 제가 성찬례를 하면서 미사 끝나고 청년들과 술자리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혈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말아 먹어라...”

국수 생각을 했나봅니다. 물론 신자분들은 신부가 고생을 하는 것을 다 아시고 계셨기에 잘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겉으로 보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보고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보고는 있지만 보고 있지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을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그분을 본받으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결한 이들이었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술자리를 보고 있었고 그렇게 거룩한 순간에도 마음이 더러워질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항상 기도하고, 항상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것은 자신의 모든 감각을 예수님을 바라보고 듣고 느끼는 데 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아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물 위를 걷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자신을 보며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이 모두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데 사용되어 정결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기뻐지게 되는데 이것이 마음이 정결한 상태입니다. 마음이 기쁘지 않다면 그 사람은 부정한 것입니다.

 

항상 예수님께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고 예수님께로부터 오시는 성령을 육체로, 영혼으로, 영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우리 자신을 정결하게 지킬 수 있고 나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들이 거룩할 수 있습니다. 매 순간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모든 것에서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그렇게 마음을 기쁨과 평화로 유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죄로부터 구원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 구입 문의 하시는 분이 많으셔서 알려드립니다.^^

하상출판사(Tel 031-243-1880)로 전화주문 하시거나, 

바오로딸에서 주문 가능합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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