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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4일 (수)부활 제4주간 수요일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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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25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독서,복음서 역주, 주해

150547 김대군 [ahyin70u] 스크랩 2021-10-24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로마서 역주

8

12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을 따라 살아야 하도록 육에 빚진 자들이 아닙니다.

13 실상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영으로 된 몸의 행실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영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14 하느님의 영에 인도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15 실상 여러분은 여러분을 다시 불안에 (몰아넣는) 노예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양자 신분의 영을 받았습니다. 이 영 안에서 우리는 아빠, 아버지라고 외칩니다.

16 영 자신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 영과 함께 증거합니다.

17 자녀라면 또한 상속자, 하느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는 공동상속자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광을 같이 누리기 위해 (그분과 함께) 같이 고난을 받는다는 조건하에서입니다.

 

 

 

독서 주해

8

12

그리스도의 영적 힘에 순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는 육적 인간 조건, 이기적 욕망에 따라 살 의무가 없다.

 

13

죄의 몸”(10)과 같은 뜻을 가진다.

 

영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영의 인도를 따르는 이들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될 뿐아니라 하느님의 양자가 되고 그분의 축복을 상속받는다. 영은 하느님 자녀 신분의 토대다. 영의 힘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유일한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인이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써 세말에 부활의 영광을 상속받을 것이다.

 

14

15-16절에 관해 갈라 3.29-4.7 참조.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진술(8.14-17)의 신학적 배경에 간해 신명 8.2.5: 32.6.12; 예레 3.19;31.8-9; 이사63.10.14-16; 지혜 13.3 참조.

 

직역하면 아들들”. 신앙과 세례를 통해 시작된 하느님의 양자 신분은 영의 힘으로 구현된다.

 

15

양자 신분이라는 말은 구약성서에는 없다. 그리스와 로마 문화권에서 어떤 사람을 법적으로 양자로 살아 가족의 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을 표현하는 전문용어였다.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당신 백성과 맏아들로 삼으셨다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양자로 간택되었다는 바오로의 가르침에 신학적 기반을 제시했다. 바오로는 위의 용어를 채택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아버지 하느님의 부권에 속해 죄와 죽음의 노예살이에서 석방된다고 가르쳤다(17).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을 하느님 자녀로 만드는 영은 그들을 세례받기 전 노예 처지로 되돌아가 죄가 초래하는 죽음을 두려워하게 하지 않는다(7.6 참조).

 

하느님을 아빠로 부른 경우가 구약성서에는 없다. 예수가 그렇게 부르셨다(마르 14.36). 아빠라는 칭호는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신뢰와 친밀감을 드러낸다(갈라 4.6 참조).

 

17

그리스도는 외아드님으로서 부활의 영광을 상속받으셨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공동상속인이 되어 영의 중개로 영광을 상속받기 위해, 즉 아버지 하느님의 현존속에 살기 위해 그분 죽음에 참여해야 한다. 다른 서간에서는 영광(21). 하느님 나라(1고린 6.9.10;갈라 5.21). 불멸(1고린 15.50)을 상속받는다고 한다.

 

 

 

루가 복음서

 

루가복음 역주

13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11 그런데 보니 십팔 년 동안이나 병들게 하는 영에 사로잡힌 부인이 있었는데 그는 (허리가) 몹시 굽어 도무지 펼 수 없었다.

12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신 다음 그에게 부인, 당신은 당신 병에서 풀려났습니다하시고

13 그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나 그는 당장 바르게 되어 하느님을 찬양했다.

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것을 불쾌하게 여겨 군중에게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 때에 와서 치료를 받으시오. 안식일에는 안됩니다했다.

15 주께서는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누구나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몰고 가서는 물을 먹이지 않느냐

16 이 부인은 아브라함의 딸인데, 사탄이 그를 무려 십팔 년 동안이나 속박했다. 그런데 안식일이라 하여 이 속박에서 풀려나지 말았어야 한단 말이냐

17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나, 그분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망신을 당했으나 군중은 모두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룩된 그 모든 훌륭한 일을 두고 기뻐했다.

 

 

 

복음서 주해

10

치유이적사화는 으레 상황묘사, 기적적 치유, 치유 실증, 목격자들의 경탄 순으로 엮어지는 법이다. 이 단락도 상황묘사, 기적적 치유, 치유 실증 순으로 짜여 있으나, 결말에 기르러서 목격자들이 경탄하는 대신 회당장이 반론을 제기하는 점이 특이하다(14). 예수께서 병을 고쳐주신 순간에 논쟁이 야기된 까닭에 그렇게 된 것이다.

 

11

유다인들은 “(귀신)이 붙어서 병이 난다고 생각했다. 귀신들의 괴수가 사탄“(16)이다.

 

14

생명이 위독한 경우가 아니면 안식일에 병을 고쳐서는 안되었다.

 

16

비록 천한 짐승이라 할지라도 굶주릴세라 안식일에 외양간에서 풀어주거늘(15). 하물려 귀한 인간을, 그것도 18년 동안이나 병고로 신음해온 인간을 사탄에게서 해방시키지 않을까보냐(16) 하신 말씀에는 작은 것과 큰 것을 비교하는 대비논법이 드러난다.

 

17

17절은 루카의 가필인 것 같다. 루가는 모든이란 형용사로 전체성을 강조하기 일쑤인데, 여기에는 그 형용사가 세 번이나 겹쳐 나온다. 그런가 하면 여기 그분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와 똑같은 문체는 신약성서를 통틀어 루가복음에만 한 번 더 나온다.: ”여러분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21.15; 마르 13.11 개작). 또한 여기 이룩된되다동사의 분사를 형용사로 사용한 것인데 이런 용법은 신약성서를 통틀어 루마 2.15;13.17; 사도 10.37에서만 볼 수 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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