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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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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18년 전국 교구 교구장 사목교서

2097 굿뉴스 [goodnews] 스크랩 2017-12-08

 

2018년 전국 교구 교구장 사목교서

 

 서울대교구 

춘천교구

대전교구

인천교구

수원교구

원주교구

의정부교구

대구대교구

부산교구

청주교구

마산교구

안동교구 

광주대교구

전주교구

제주교구

군종교구

 

 

 

[서울대교구]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
- 사랑은 새로운 복음화의 열매 -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 10,37)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성령께서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구는 2012년 10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포하신 ‘신앙의 해’를 기점으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허약한 신앙을 튼튼하게 다지는 노력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노력은 신앙의 강화와 성장을 위하여 다섯 가지 사목 목표를 세워 매년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 ‘미사로 하나되는 신앙’,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이 그것입니다. 올해는 그 마지막 해로서 지금까지 다져온 신앙에 기초하여 우리 교구 전체가 사랑으로 열매를 맺는 삶을 실현하기를 기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치 친구를 대하시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과 사귀시며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1)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런 하느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초대에 합당하게 응답하려면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 안에 머물면서 그분 사랑을 닮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1요한 4,19 참조)을 깨닫고, 체험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지난 4년 동안 하느님의 말씀과 기도, 교회의 가르침과 미사 전례에 중점을 두고서 신앙의 기초를 튼튼하게 다져온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고, 체험하고, 머무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더욱 다져진 우리의 신앙을 토대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사랑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의 말씀처럼 “삶의 시작은 믿음이고, 완성은 사랑”2)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일생을 온전히 하느님 아버지와의 일치 안에서 사랑을 전하면서 사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사도 바오로는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야고보 역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야고 2,17)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사랑이 없는 믿음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믿음이 없는 사랑은 끊임없이 의심에 좌우되는 감정에 불과”3)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믿음에 기초한 사랑의 삶, 사랑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 신자답게 살려면, 먼저 우리를 사랑해주신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성실하게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4) 매일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려고 노력합시다. 이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고, 묵상하며, 체험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랑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5), 곧 예수님과의 친밀한 만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도 “모든 그리스도인이, 어디에 있든 바로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그분과 만나려는 마음, 날마다 끊임없이 그분을 찾으려는 열린 마음”6)을 가지라고 권고하십니다.
  성경 말씀과 기도,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는 사람은 그분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으로 변화되어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은 나뉠 수 없는 하나의 계명을 이루며 서로 성장과 성숙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며 또 이웃 사랑은 우리를 하느님께 대한 더 깊은 사랑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 기술의 엄청난 발전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영적 가난으로 고통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이들에게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육체적 차원은 물론 영적 차원에서도 실천되어야 합니다. ‘배고픈 이, 목마른 이, 헐벗은 이, 나그네 된 이, 병든 이, 감옥에 갇힌 이들의 힘이 되어 주고, 죽은 이들을 장사지내 주어야겠습니다. 또한 의심하는 이에게 조언하고, 모르는 이에게 가르쳐 주며, 죄인을 꾸짖고, 상처받은 이를 위로하며, 모욕한 자를 용서해 주고, 우리를 괴롭히는 자를 인내로이 견디며,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7)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묻는 율법 교사에게 예수님께서는 길에서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루카 10,29-37 참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아무 상관없지만 지금 이 순간 고통 받는 이들까지도 사랑해야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고,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면서 보여주신 사랑의 삶을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고 말씀 하십니다.

  당신 사랑 안에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각 본당과 기관에서는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들을 숙고하고 실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본당에서의 소공동체 모임이 이러한 사랑의 실천을 위한 도구로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제 여러분, 착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도록 노력합시다. 사제로 불림을 받은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선익과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사목 현장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돌보도록 합시다. 특히 각자의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육체적·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남녀 봉헌 생활자 여러분, 봉헌 생활 안에서 체험하는 하느님의 사랑과 복음의 기쁨을 교회와 세상에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관상 생활이든 사도적 생활이든 여러분의 고유한 카리스마를 통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일치와 성덕과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건설하는 사명에 열정을 지닌 이들”8)이 되도록 노력하여 주십시오.
  
  신자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가정 공동체와 본당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배우고 성장시켜가야겠습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올바르게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가정과 본당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작은 숯불 조각들이 모여 온기와 빛을 주는 하나의 커다란 숯불이 되듯 각자는 가정 공동체 안에서, 가정은 본당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사랑을 중심에 둔 공동체는 자신이 살아가는 학교, 직장, 사회 안에서 사랑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 한 해 하느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기도로 그분의 뜻을 더 헤아리며,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그분의 삶을 더 배우고, 미사 전례 안에서 그분의 사랑을 더 깨닫고 체험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의 열매를 맺는 신앙’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온 삶을 통해 하느님 사랑을 보여주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한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들과 복자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17년 대림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춘천교구]

신앙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 신(信)·망(望)·애(愛)의 삶으로 복음을 전합시다 -


     

지난 시간에 대한 감사
1. 돌아보면 지난 시간 속에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고 있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소중하고 귀한 우리 사제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마음으로 사랑해서 잊지 못할”(김대건 신부님의 마지막 옥중 편지 참조) 우리 착한 신자들이 또한 함께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 모든 분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 교구에 베풀어주신 한없는 사랑에 대해 오직 감사와 찬미드릴 뿐입니다.


내일을 위한 준비
2. 우리 춘천교구는 2019년에 교구설정 8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는 지난 2014년 사목교서를 통해 교구설정 8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 복음화율 10%와 주일미사 참례율 40%를 춘천교구의 모든 본당이 이루어야 할 하나의 목표로 제시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지난 4년 동안 각 본당에서 모두가 한 마음으로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자 노력했고, 그 모습은 분명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처럼 “모든 민족에게, 세상 끝 날까지”(마태 28,19-20 참조)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복음화(복음 선포의 시작)
3. 그러기 위해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무엇보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단지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를 향한 기쁜 소식의 선포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복음은 ‘가르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무언가를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진정으로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은 그 깨달음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가 먼저 복음을 ‘알고’, 알게 된 복음을 ‘깨달으며’, 깨달은 복음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근본으로 돌아감(복음 선포의 바탕)
4.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는 신자들이 예비 신자들을 가르치고 돌봄에 있어 “들으면서 믿고, 믿으면서 희망하고, 희망하면서 사랑하도록”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Augustinus · 『입문자 교리교육』 4,8 참조). 이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 소망, 사랑의 삶이 우리 신앙의 근본이 되며, 또한 복음 선포의 바탕이 되어야 함을 알려줍니다.


믿음, 소망, 사랑을 살아감(복음 선포의 방법)
5.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올 한 해 동안 특별히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의 삶을 묵상하고 살아감으로써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길 요청합니다.
첫 번째로 ‘믿음’을 살아가고 선포하기 위해 무엇보다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계시로써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신앙으로써 인간은 온전히 자신의 지성과 의지를 하느님께 복종시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142-143항 참조). 그러니 믿음의 삶을 살기위해 계시의 원천인 성경 말씀을 끊임없이 읽고, 묵상하며, 살아갑시다. 그렇게 생각과 말과 행동 속에 하느님 말씀을 깃들이게 하여,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살아있는 복음서가 되도록 합시다. 
 
6. 두 번째로 ‘소망’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무엇보다 전례와 성사에 능동적으로 참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전례와 성사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소망의 마음을 기도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 삶에 필요한 은총을 청하며 힘을 얻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주일미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례하기를 당부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선포하기 위해 매 주일 모인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생활에 있어, 복음 선포자가 되고 신앙의 증거자가 되도록 불림”을 받습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서『Dies Domini』 45항 참조). 그러니 무엇보다 열심히 주일미사 참례를 통해서, 더 나아가 평일미사에도 자주 참례함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얻고 그 은총의 힘으로 복음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시길 바랍니다.
 
7. 마지막으로 ‘사랑’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 참조)는 말씀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시니 우리도 하느님과 이웃에게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무관심의 질병’은 결국 내 자신과 공동체를 병들게 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니 특별히 예비 신자들과 새 영세자들, 어렵게 마음을 열고 성당을 다시 찾은 냉담 교우들, 그리고 소외된 이웃들을 보살피며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하느님의 사랑을 살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함께 신앙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우리
8. 이러한 신앙의 여정 속에 때로는 지칠 수도 있고, 상처받아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시길 바랍니다. 그 길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걸어가시는 길입니다.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분의 사랑이 함께하는 길입니다. 그러니 더욱더 그 사랑을 믿고, 소망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복음의 기쁨을 이웃들에게 전합시다. 그렇게 함께 우리의 신앙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든 여정에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 함께하길 기도하며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사랑 가득한 축복을 전합니다.

 

2017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
천주교 춘천 교구장 김운회 루카 주교

 

 

 

 

  

[대전교구]

교구 시노드를 살고,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공동체가 됩시다!

 

 

   주님 안에 사랑하는 사제, 수도자, 형제자매 여러분,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하여 우리나라를 둘러싼 주변국가의 군사적인 긴장이 매우 고조되어 있고, 그만큼 우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나라 안팎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복음 정신을 굳건히 살아가는 신자 여러분과 맡겨진 사도직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수도자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안고 우리 주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교구의 모든 사제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대전 교구는 2018년 ‘교구 설정 7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10년 전 우리는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이하여 “기억하고 행하여라”는 주제로, 교구의 역사를 정리하고 되돌아보면서 더욱 쇄신된 교회가 되고 더욱 깊은 신앙인이 되기를 다짐했습니다. 그런 지향으로 교구민들이 함께 시작한 도보 성지 순례는 우리의 중요한 신심 행사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또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도와 희생을 실천하기 위해 ‘한 끼 100원 나눔 운동’을 시작하여 오늘까지 국내외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제 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순교자들의 믿음 위에 세워진 우리 대전교구의 하느님 백성들에게 특별한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교황님의 방문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과 더불어 교회 쇄신에 큰 영감을 불어 넣어주었습니다. 우리 교구에서 2015년 12월 8일 ‘자비의 희년’ 시작과 함께, 교구 시노드를 개막한 것도 이러한 흐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곧 우리 교회에 주어진 많은 은총의 선물들을 주님 뜻에 더 알맞은 교회 모습으로 쇄신하라는 소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2018년은 교구 설정 70주년이면서 교구 시노드 본회의가 진행되는 시기입니다. 시노드는 교구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성령께서 이끌어 가시는 길을 걸으면서,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이 시대에 보다 신앙인답게 그리고 교회답게 살아가는 길을 발견하자는 희망의 표현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라는 예수님 말씀에 깊이 의지하고 간다면, 분명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교구 설정 70주년의 감사와 교구 쇄신의 희망인 시노드에 우리 모두 깊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참여를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교구 설정 70주년과 교구 시노드 본회의
   우리는 2015년 12월 8일 ‘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에 교황님이 선포하신 ‘자비의 희년’ 시작과 함께 교구 시노드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약 7개월의 기초단계와 1년간의 준비단계를 거치면서 많은 토론과 의견수렴의 기회를 가졌고, 이제 그 결과를 모아 시노드 본회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쇄신을 위해 사제와 수도자와 모든 평신도가 함께 하는 시노드 진행과 그 결실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여정이 되고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리 짧지 않은 지난 시간 시노드에 헌신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이제 진행될 본회의에 더욱 힘을 내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시노드가 우리의 개인적이며 공동체적인 신앙쇄신을 지향하는 만큼, 사제와 평신도에 관한 주요한 주제들이 다루어질 것이고, 준비단계보다 더 많은 인원이 직접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특징이며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순교신앙은 특별히 우리 교구의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시노드 본회의에서 이러한 순교정신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영감으로 다가오기를 기도합니다.

 

   교구 설정 70주년을 이끌어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전 교구민이 함께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는 기도운동을 펼쳐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기도는 시간을 하느님께 내어 드리며, 그 안에서 우리의 희망과 소원을 주님께 말씀드리면서 그분의 말씀을 듣는 은총의 여정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바치는 기도를 들으시면서 그 안에 들어오시어 당신 뜻을 알려주십니다. 주님 뜻에 맞는 신앙인과 교회로 새로이 태어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주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고 큰 은총으로 도와주시기를 청하며, 전 교구민이 마음을 모아 묵주기도 1억단을 봉헌하길 바랍니다.
   교회는 초대교회 때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소명을 느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참 행복의 첫째도 가난한 이를 향하고 있습니다.(마태 5,3 참조)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돕는 것은 주님의 중요한 가르침이며, 내적으로 가난한 삶은 곧 주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길입니다. 이런 정신으로 교구 설정 60주년을 감사하며 시작한 ‘한 끼 100원 나눔 운동’은 많은 본당과 교구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국내는 물론 해외의 어려운 지역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교구 설정 70주년에는 이러한 운동이 더 넓게 펼쳐지기를 희망합니다.

 

   마르코 복음을 읽고 필사하기
   우리는 교구 설정 70주년을 바라보면서, 주님 말씀을 익히고 말씀대로 살겠다는 지향을 담아 2015년부터 매년 4복음서를 하나씩 전 교구민이 필사하고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억눌린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으며 병든 이들을 치유하셨고 죽은 이들을 살리시기도 했습니다. 말씀은 주님의 가르침이며 동시에 주님 자신이기도 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말씀은 이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말씀이 그대로 우리 안에 스며들기를 기도하며, 성경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쓰는 것은 주님과의 온전한 일치를 원하는 아주 훌륭한 신앙행위라고 하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마태오 복음, 요한 복음, 루카 복음과 함께 했습니다. 2018년에는 우리 모두 마르코 복음과 함께 합시다.

 

   교구 설정 70주년과 평신도 희년
   2018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나고 우리나라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가 주교회의 인준을 받아 활동을 시작한지 50주년을 맞는 희년(禧年)입니다. ‘평신도 희년’과 “‘교구 설정 70주년’과 ‘교구 시노드’”를 기념하여 전대사(全大赦)의 은총을 받는 교령을 곧 발표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은혜로운 해를 하느님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합시다.

 

   주님 안에 사랑하는 사제, 수도자,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는 말씀은 교회가 근본적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된 선교 공동체라는 의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교회의 사목 쇄신을 요구하는 구조 개혁은 교회 공동체가 선교를 지향하는 모습이 되고자 할 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복음의 기쁨⌟ 27항 참조) 우리 교구의 시노드 진행에 열쇠가 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은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입니다. 교회는 늘 그러하였지만, 우리는 특별히 2015년 “자비의 희년” 선포 이후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을 해 왔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고 그 기쁨을 공유하는 공동체,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를 모든 이에게 전하는 선교 공동체가 되고자 우리 자신을 함께 돌아보고, 함께 길을 찾아가는 시노드가 되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이 결실이 교구 설정 70주년에 우리가 누리는 은총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성령의 이끄심과 성모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함께 은총의 2018년을 걸어갑시다!

 

천주강생 2017년 12월 3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

  

  

[인천교구]

 

세례 신앙 갱신의 해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2018년을 맞이하면서 저는 우리 교구 모든 신자들이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 신앙의 기초를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이는 세례성사 때 받은 은총을 항상 생각하며, 매일의 삶에서 세례 때의 신앙 고백을 늘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세례성사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봅시다.

 

  신앙의 시작은 각 개인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첫 번째 회개를 통해 교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참조. 교리교육 총지침 53항). 그리고 예비신자 교리교육을 통해 세례성사를 받게 됩니다. 부르심에 응답한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세례성사의 은총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믿어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주님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또한 세례성사의 은총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알게 하고 믿게 합니다. 그래서 세례성사를 거행하며 사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앙은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참하느님을 알고,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성인 입교예식서)

 

  세례성사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과거의 어둠 속을 걷는 이들이 아닙니다. 빛이신 그리스도,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희망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가 믿는 신앙의 기쁨을 알려주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예수님께 신앙을 고백한 것처럼, 우리는 주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기에 예수님 안에 늘 머물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입니다(요한 6,68 참조).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었으니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을 배우도록 합시다.’
  그래서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그분처럼 판단하며, 그분께서 사셨던 대로 살아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현대교리교육 20항) 이런 삶이 곧 세례성사의 신앙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믿음은 예수님을 온전히 모시고 따르겠다는 삶의 변화, 내적인 쇄신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할 뿐 아니라 내적인 변화를 통해 세상 안에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또한 그렇게 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완전성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포함하는 모든 칭호를 우리 내적 생활과 우리 말과 행동이라는 외적생활에 완전히 참여시키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데 있다고 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세례성사로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삶 안에서 세례성사의 은총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기본적인 신앙의 지식도 잊어버릴 때가 많으며, 때로는 예수님의 뜻보다는 세속의 뜻을 따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마음으로는 세속을 원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라는 성 이냐시오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올 한해 우리 신앙의 원천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과연 나는 세례 때의 신앙을 지금도 자신 있게 고백하고 있는가? 또한 그 고백대로 살고 있는가?”

 

  저는 세례 때의 신앙을 늘 새롭게 하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를 올 한 해 우리교구 모든 신자들이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예비신자 교리서를 읽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신앙에 대한 다양한 교리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례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하게 해 줍니다. 그러기에 예비신자 교리서를 모두가 다시 읽어봄으로써 우리가 믿는 신앙을 스스로가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리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고백하게 이끌어 줄 것입니다.

 

  두 번째. 본당에서는 모든 교우들이 참여하는 세례 갱신 예절을 거행하며, 이를 위한 피정도 진행하기를 바랍니다.
  각 본당에서는 모든 신자들에게 세례 갱신을 위한 기본 교육을 실시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신자들이 세례 갱신 예절에 참여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을 다시금 고백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 기본 교육 과정에서 가급적 피정을 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리고 유아들을 위한 세례도 많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주보성인에 대해 깊이 알고, 신앙의 모범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세례 때 받는 세례명은 단순히 아름다운 호칭이 아니라, 각자 자기 신앙의 주보성인입니다. 모두가 세례 때 받은 주보성인에 대해 알아보고, 그 성인의 모습을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2018년은 우리교구 모든 신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 구세주이심을 깊이 믿어 고백하고 살아가는 해가 되기를 바라며, 모든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풍성히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8-69)

 

 

기도 안에 일치를 이루며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 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

 

  

[수원교구]

 

새로운 방법, 새로운 선교

 

 

새롭게 출발하는 수원교구
1. 사랑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난 2013년 교구설정 50주년을 맞이하여 “50주년 교서”를 반포한 이래로 교서에서 제시한 “소통, 참여, 쇄신”이라는 세 가지 복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교구민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력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드러나는 이 세 가지 복음적 가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본받고 실천해야 하는 항구적인 것입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황권고『복음의 기쁨』을 반포하시면서 전 세계 교회에 ‘시대의 변화에 걸맞은 복음 선포를 위한 새로운 성찰’을 요청하셨습니다.1) 사실 우리 교구가 지난 3년간 “소통, 참여, 쇄신”이라는 주제로 자신을 돌아보며 복음적 가치에 충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한 것도 이러한 성찰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이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깊이 성찰하고 복음의 빛으로 조명하여 현실적으로 필요한 새로운 방법들을 모색해내야 합니다. 저는 이번 교서를 통하여 향후 3년 동안 우리 수원교구가 구체적으로 나아가야 할 복음 선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기술의 혁명, 가치의 혼란
2. 지금 세상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예고하며 새로운 기술혁명이 가져올 생활방식의 변화를 예견하느라 분주합니다. 무선 정보통신 영역이 경이롭게 확장되고, 과학기술의 발달이 고도화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맺는 관계방식이 상호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국면에 이르렀습니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러한 사람과 사물 사이의 유기적 진화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스스로 말하고 학습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은 다양한 사물과 결합하여 그동안 인간만이 가능했던 영역들을 대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로봇기술은 이미 산업현장에서 인간을 대체한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과 판단을 요구하는 영역까지 인공지능이 자리를 대신하려 합니다. 앞으로 그 영역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혹자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게 되고 더 나아가 인간을 지배하는 새로운 종(種)의 출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합니다.2) 그동안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왔던 영역에 더 유능한 존재가 등장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인간이 가치서열의 중심에서 뒤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위협받는 인간의 존엄
3. 이러한 가치의 혼란은 가치서열의 정점에 서있던 인간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가장 존엄한 존재였던 ‘인간’이 기능적 차원에서 인공지능에게 우위를 내어줌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잃게 되고, 사회적 지위의 상실은 존립의 기반을 위태롭게 하여, 결국에는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존엄의 권리’마저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기능적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불가피하게 맞닥뜨리는 사회적, 윤리적 차원을 간과한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인간성 상실의 재앙을 맞이할 것입니다.

 

직면한 현실, 다가오는 위기
4. 정당한 노동과 일정한 수입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유지하고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입니다.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일정한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미래에 대한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대규모 청년실업은 젊은이들의 사회 생활을 불안하게 만들고, 비정규직 일자리와 불특정한 수입은 가정의 안정과 평화를 위험에 부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하거나 늦추게 되고, 기존의 가정 역시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1인 가구’의 출현은 오늘의 우리사회가 불안정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지표입니다. 또한 가정과 노동에서 소외된 인간이 겪는 불안과 고독은 ‘개인주의적 불행’3)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전수의 단절
5. 지금까지 그리스도교 신앙전수는 가정공동체를 기반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가족구성원이 함께 모여 신앙 안에서 성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신앙을 가진 가정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기도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전수함으로써 그 맥을 이어가게 하였고 이는 교회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기반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갈수록 가정은 와해되고 젊은이는 소외되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가톨릭 신자들이 젊은 세대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수하는 데에 단절이 있었음을 더 이상 간과할 수만은 없습니다. 많은 이가 가톨릭 전통에 실망하여 이를 더 이상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녀들을 영세시키지 않고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는 다른 신앙 공동체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절의 원인들을 살펴보면, 가정 안에서 대화 부족, 대중 매체의 영향, 상대주의적 주관주의, 시장만 배불리는 무분별한 소비주의,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사는 사목의 결여, 교회 기관들의 환대 부재, 그리고 다종교 상황 속에서 신앙의 신비를 지키고 되살리는 데서 겪는 어려움 등이 있습니다.”4)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의 변화
6. 기술문명의 빠른 발전은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기성세대들은 아직 이전의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에 기반을 둔 채 새로운 기술문명에 적응해가는 반면에,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기술문명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세대와 세대 간의 단절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절은 세대 간의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최근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기성세대와 젊은이들 사이에 드러나는 자기주장의 표현방식과 내용들은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화적 도전들
7. 오늘날 소통방식의 변화는 새로운 대중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은폐되거나 축소되고 조작 가능했던 일들이 이제는 너무나도 쉽게 대중에게 노출되고 밝혀짐으로써 더 이상 갑의 횡포를 좌시하지 않는 대중문화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이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이라면 즉시 세상에 알려 대중으로부터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되게 하는 새로운 문화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또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식과 삶을 공유하고 나누는 방식에 있어서도 이전과는 판이한 새로운 유형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다양한 포털사이트를 통한 네트워크 서비스는 부단히 진화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한 새로운 차원의 소통방식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속지, 속인 등의 원칙이 적용되는 오프라인 형태의 공동체가 주류를 이루었었다면 앞으로는 지역과 소속, 계층과 계층을 넘나드는 온라인 형태의 공동체가 주류를 이룰 것입니다.

 

복음 선포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
8. 이렇듯 인간의 존엄이 도전받는 위기와 변화의 시대에 선교 활동은 교회의 가장 큰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선교 임무는 우선되어야 합니다.5) 사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6) 그러므로 우리는 갈수록 “개인주의적 불행”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더욱 절박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구원하신 한 사건이며, 한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세상을 대하는 삶의 방식과 소통의 방식이 바뀌고 있는데 여전히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우리가 선포하는 그리스도가 세상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복음 선포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다시 돌아갈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가 원천으로 돌아가 복음 본연의 참신함을 되찾고자 노력할 때마다 새로운 길들이 드러나고 창조적 방식들이 보이며, 또 다른 형태의 표현들과 더욱 설득력 있는 기호들과 오늘날의 세계에 새로운 의미를 갖는 어휘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모든 참다운 복음화 활동은 언제나 ‘새로운’ 것입니다.”7)

 

새로운 방법 – 통합사목
9. 기존의 사목은 가정을 중심으로 신앙의 전수가 이루어진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져 왔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본받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신자들을 인도하는 것이 사목의 주요한 목표였고, 이를 바탕으로 신앙 안에서 부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자녀교육과 어른공경을 중시하는 사목이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유교적 전통이 아직 남아있는 우리사회 안에서 신앙의 토착화를 이루는 유효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가정을 중심으로 한 신앙의 전수가 점차 사라지고 모든 것이 ‘개인화’ 되어 가는 세상의 추세에 따라 신앙 역시 ‘사사(私事)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좋으면 믿고 싫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를 온전히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기존의 사목방식을 고수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신자들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개인맞춤형 서비스를 추구하며 변화되어 가듯이 이제는 선교의 방법도 개인의 성향을 고려하여 다양하게 전개되어야 합니다. 기존의 사목이 세대와 계층을 구별하여 특화된 형태의 사목을 전개해 왔다면 이제는 ‘잘 짜인 그물망 구조의 통합사목’ 안으로 신자 각 개인이 들어와 참여함으로써 신앙을 키워가는 형태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10. 통합사목이란 모든 세대와 계층을 유기적 관계망 안에 놓고 접근하는 사목유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각 사목분야별로 갖추고 있는 그물들을 한데 모아서 하나의 유기적인 커다란 그물로 다시 짜는 소통과 협력의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수많은 지체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루는 교회의 신비와도 같습니다.(1코린 12장 참조) 이제는 통합사목의 그물망을 통해서 신자들이 각자의 성향과 적성에 따라 자신의 신앙생활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과 형태를 선택하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연구와 점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각 사목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이를 구체화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통합사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해줄 인재의 양성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계적인 과정과 지속적인 관리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각 분야별 평신도 양성 프로그램에 대한 통합 로드맵이 작성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이면서도 점진적인 교육과정이 마련되고 운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평신도 인재양성을 위한 전담기구의 설치와 전문 교육시설의 확충 또한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과제입니다.

 

새로운 선교 – 젊은이
11. 지역의 본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기존의 선교방식은 전통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세상의 변화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전혀 매력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미 젊은이들이 사라져버린 교회의 현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을 교회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이미 늦었습니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소통과 참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곳이 어디인지 부단히 찾아야 하고, 또한 그들의 언어로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부단히 새로운 형태의 표현들과 더욱 설득력 있는 기호들과 새로운 의미를 갖는 어휘들을 찾아내야 합니다.8) 특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더없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9) 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모든 일선 사목현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애정 어린 시선과 관심으로 젊은이들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
12. 통합사목의 범주는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까지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의 참여는 반드시 사회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더불어 예견되는 양극화와 인간의 소외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기준에 따라서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시도들을 견제하고 저지함으로써 사회의 발전이 인간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목현장에서 교회의 사회교리를 교육하고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통합사목의 실천이 사회적 차원에서 결실을 맺을 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쇄신의 길을 더욱 힘차게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13. 성령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영혼이십니다.10)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선포는 기도하며 일하는 복음 선포입니다.11)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이 기도 안에서 말씀과 만나고 주님과 성실한 대화를 나누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지 않으면, 우리의 활동은 쉽게 무의미해지고, 지치고, 열정도 사그라질 것입니다.12) 사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교 활동의 중심에서 우리와 함께 숨쉬고, 걷고, 이야기하고,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 안에서 성령과 일치를 이루지 않고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선포할 수 없습니다.

 

복음화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14. 성모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어머니이십니다.13) 예수님께서는 당신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로 내어주심으로써(요한 19,27) 당신 교회가 어머니의 여성다운 모습을 지니기를 바라십니다.14) “참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우리 옆에서 함께 걸어가시고 우리와 함께 싸우시며 끊임없이 하느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15) “마리아께서는 이 세상 안에, 인류 역사 안에,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 깃든 하느님의 신비를 바라보십니다.”16) 그렇기에 교회는 그분 안에 지닌 겸손과 온유, 정의와 사랑의 힘을 믿고 모범으로 따릅니다. 우리 모두 마리아께 어머니의 전구를 간청하며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교회에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도합시다.

복음화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1)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1항∼18항 참조.
2) 유발 하라리 저,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
3) “이는 안이하고 탐욕스러운 마음과 피상적인 쾌락에 대한 집착과 고립된 정신에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내적 생활이 자기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만 갇혀 있을 때, 더 이상 다른 이들을 위한 자리가 없어 가난한 이들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분 사랑의 고요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선행을 하고자 하는 열정도 식어 버립니다. 이는 신앙인들에게도 매우 현실적인 위험입니다. 많은 이가 이러한 위험에 빠져 삶을 잃어버리고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찬 사람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 2항.
4) 『복음의 기쁨』, 70항.
5) 『복음의 기쁨』, 15항.
6) 『복음의 기쁨』, 7항.
7) 『복음의 기쁨』, 11항.
8) 『복음의 기쁨』, 11항.
9) 『복음의 기쁨』, 7항.
10) 『복음의 기쁨』, 261항.
11) 『복음의 기쁨』, 262항.
12) 『복음의 기쁨』, 262항.
13) 『복음의 기쁨』, 284항.
14) 『복음의 기쁨』, 285항.
15) 『복음의 기쁨』, 286항.
16) 『복음의 기쁨』, 288항.

 

2017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원주교구]

우리를 구원하는 희망
-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로마8,24) -
 

 

 

♱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원주교구 교우 여러분, 수도자, 그리고 사제 여러분!
지난 해 우리는 ‘믿음의 해’를 보냈습니다. 저는 올해를 ‘희망의 해’로 선포합니다. ‘희망’은 ‘믿음’과 ‘사랑’과 더불어 하느님을 향한 삼덕(三德)을 이룹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희망을 “그리스도의 약속을 신뢰하며, 우리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성령의 은총의 도움으로, 우리의 행복인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하는 향주덕”(1817항)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였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고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왜 성당에 다니냐고 물으면, 예전에 할머님들은 ‘천당’ 가기 위해서라고 답을 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여러 가지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 ‘천국’, ‘천당’, ‘영원한 생명’, ‘영생’ 등입니다. 모두 같은 뜻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하느님 나라’의 또 다른 표현인 ‘하느님 대전’을 희망하며 신자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셨습니다. “부디 서러워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 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옥중서한]에서) 최양업 신부님은 ‘사향가(思鄕歌)’를 지어 신자들이 우리의 본 고향인 ‘하느님 나라’를 그리워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외친 첫 마디는 바로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설교의 핵심이었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이 희망을 의식주나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찾도록 가르치셨습니다(마태 6,33 참조). 예수님은 이 희망의 기쁨을 마치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기쁨에 비유하셨습니다(마태 13,44 참조). 무엇보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루카 4,43) 그 뿐만 아니라, 12사도들에게도 선교 사명으로 주셨습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마태 10,7) 72명의 제자들에게도 같은 사명을 주셨습니다(루카 10,9 참조). 오늘날 우리 교회의 사명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 라는 희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어느 추기경님이 발언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이 일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나라를 위해 고통을 받아내야 합니다. 바로 이 일이 전부입니다.”(토마섹 추기경, 1985년 세계주교대위원회 임시 총회 연설에서)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마태 6,9-13; 루카 11,1-4)가 얼마나 훌륭한 기도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기도’는 바로 ‘하느님 나라’를 위한 기도이며, ‘하느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알려주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빛나는 곳입니다. ‘하늘’에서는 천사들과 성인들에 의해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이 땅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느님이 영광을 받도록 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땅에서 하루하루 양식이 모두에게 나누어지고, 우리의 죄가 용서되듯이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고, 날마다 수 없이 다가오는 많은 유혹에 빠지지 않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닥쳐오는 악에서 보호된다면, 바로 거기에서부터 ‘하느님 나라’가 시작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악의 세력인 ‘사탄의 나라’가 한걸음 물러가는 만큼, ‘하느님 나라’가 한걸음 다가온다는 것(마태 12,28 참조)도 가르쳐 줍니다. 주님은 이 땅의 ‘하느님 나라’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 희망을 ‘종말론’이라는 교리를 통해 표현합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종말’을 공포와 두려움을 주는 것으로 변질시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종말론은 ‘희망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창조론이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게 창조한 세상’을 이야기하는 교리라고 하면, 그리스도교 종말론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게 창조한 세상을 보시기에 좋게 완성하신다.’는 것을 가르치는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종말론은 미래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자들의 부활’, ‘심판’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미사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희망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신비여,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미사경문] 중에서) 무엇보다 믿기 어려운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주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되고, 우리는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라’(1코린 15,14-19)했습니다. 우리가 불쌍한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을 희망하며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사도신경])

 

그리스도교 종말론은 개인적 차원에서 희망으로서의 ‘죽음’, ‘심판’, ‘천당’, ‘지옥’, 곧 사말(四末)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하느님 때문에 ‘죽음’을 넘어서 희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때문에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옳게 판단하시며,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떠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천당’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과 결별을 뜻하는 ‘지옥’은 모든 것을 잃지 않도록, 하느님을 잃지 않도록 우리에게 당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희망한다는 것을 바로 ‘하느님’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우리의 희망을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창조의 마지막입니다. 하느님을 얻는 것이 천국이요, 하느님을 잃는 것이 지옥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심사하는 것이 심판이요, 하느님이 우리를 정화하는 것이 연옥입니다.”(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의 [종말론]에서) 하느님 없이 ‘하느님 나라’는 없습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요, 절대적 희망입니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베네딕토 교황님은 이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떤 절망에도 흔들리지 않고 위대하고 참된 희망은 오로지 하느님, 우리를 ‘끝까지’ ‘다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사랑하시는 하느님 뿐이십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에서)

 

물론 하느님이 우리의 마지막이요, 절대적인 희망이지만, 우리에게는 이 참된 희망 이외에 우리들의 삶을 조금씩 조금씩 진전시키는 희망들이 필요합니다. 부부들이 백년해로하고, 자녀들이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그래서 손자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희망, 세상 끝 날까지 그래도 신뢰할 수 있는 교회에 대한 희망, 한반도의 평화와 대한민국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성장이라는 희망 등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희망의 토대는 여전히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입니다.

 

원주교구 교우 여러분! 그리고 수도자와 사제 여러분!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희망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합시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악의 세력을 쫓아냅시다. 이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하느님을 참고 기다리는 것은 믿음이요, 자신을 참고 견디는 것은 희망이며, 다른 이들을 참고 기다리는 것은 사랑이다.’(아델 베스타프로스)라는 말도 좋아합니다. 참고 기다립시다. 하느님을, 자신을 그리고 이웃을.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를 위해 수고하시는 여러분들에게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어 평화와 기쁨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아울러 성모님의 도우심을 기도합니다.

 

 

2017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 주교 조규만

 

   

[의정부교구]

 

통합사목, 낯설지만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

 

 

1.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과 본당에 가득 내리기를 빕니다. 금년 한 해도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희망과 사랑이 가득한 본당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데 우리 모두의 마음이 모아지기를 바랍니다.
금년은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요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본당이 지역에서 교회의 현존을 드러내듯이, 교구를 비롯한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나라가 처한 어려움과 위기 안에서 함께 고뇌하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한반도는 지금 강대국들 사이에서 평화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평화가 이 땅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우리들부터 평화의 사도로 살아야 합니다. 가정이나 이웃, 본당 공동체 안에서부터 화목과 일치를 위해 노력하며,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묵주기도와 밤 아홉 시에 드리는 주모경을 함께 바치도록 합시다.

 

2. 가정을 중심으로 사목 전반을 연계하는 통합사목


지난 2년간 우리 교구는 청소년사목을 주제로 두 차례의 사제연수를 가졌습니다. 위기에 처한 청소년사목의 해법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청소년사목만이 아니라 모든 사목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중장기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시선으로 사목 영역들을 재검토하여 새로운 사목의 틀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며, 이는 무엇보다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신자교육과 사목을 인간의 생애 전체로 확장하고 연계하는 ‘통합사목’이라는 인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올해 사제연수에서 사제들도 여기에 크게 호응해 주었다고 여겨집니다.

 

이에 우리 교구는 이를 추진할 기구로서 ‘통합사목센터’(가칭)를 설립하여 현재 성인사목, 청소년사목, 사회사목 등으로 분절화된 교구의 사목 시스템을 연계하는 한편 현장인 지역과 지구, 본당과의 소통과 협력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통합사목이 무엇인지,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 것인지 아직 답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출발시켜야 할 필요를 절감하였기에 첫 발을 내딛으려 하는 것입니다. 사제단과 교구민 모두의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3. 교구 사목의 10년 청사진을 제시한 교구장 사목서한 「착한 목자」


지난 2014년 교구 설립 10주년을 맞이하여 향후 교구의 미래 10년을 내다보며 작성한 사목서한 「착한 목자」의 내용을 요약하여 올해의 사목지침서의 모두에 제시하였습니다. 이 서한은 교구 설립 10주년에 실시한 교구 신자들의 의식 실태조사와 교구의 내외적 현실 조건, 보편교회의 사목방침 등을 모두 고려하여 마련되었습니다. 우리 교구는 이 문헌의 기조를 계속 유지해 나갈 것입니다. 중요한 사목 방안이 생기면 여기에 추가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요약본만이 아니라 전문을 틈틈이 살펴 본당 사목에 지속적으로 참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4. 보다 구체적인 실천과 평가가 이루어지는 사목


교구장 사목교서와 교구의 사목지침이 의례적인 선언으로 끝나지 않도록 3개 사목국에서 보다 구체적인 사목적 실천 방안과 움직임을 아래에 제안해 주었습니다. 모든 사목이 열매 맺는 자리는 본당입니다. 본당은 지역사회에 현존하는 교회입니다. 본당 사목에 잘 반영하여 한 해를 살고, 또 이것을 잘 평가해 다음해를 위한 발판으로 삼아 주십시오. 교우 여러분과 수도자들, 그리고 형제 사제들의 수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7년 대림 1주일
천주교 의정부 교구장 이기헌 베드로 주교

 

 

 

  

[대구대교구]

새로운 서약, 새로운 희망
- 성모당 봉헌 100주년을 맞으며 -
 


 

친애하는 교구민 여러분들에게 하느님께서 풍성히 강복하시기를 빕니다.

 

2018년, 새로운 전례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지난 한 해 교구는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 어려움은 우리들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서 바로잡아 주시려는 것과 같은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2018년은 그저 한 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다시 태어나는 교회가 되는 새로운 한 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늘 쇄신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고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교회 본연의 모습을 늘 새롭게 살아내야 합니다.

 

몇 년 전 우리 교구는 ‘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제2차 교구 시노드’를 개최하였습니다. 새로운 100년을 위해 결의한 시노드의 내용을 작년까지 한 해에 하나씩 사목의 중점으로 삼고 실천해 왔습니다. 실천이 미흡한 부분은 더 연구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올해 우리 교구는 ‘성모당 봉헌 100주년’을 맞이하여, 초대 교구장이셨던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 교구 설립 당시 주보로 모신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도움을 청했던 그 원의와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100년 전 성모당이 봉헌될 때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 우리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너 어디 있느냐?”(창세기 3.9) 라는 하느님의 질문에 답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구, 본당 그리고 신자 개개인이 하느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모습인지 반성하고 교회의 참모습, 신앙인의 참모습을 찾아 나갑시다.

 

1911년 6월 11일에 주교서품을 받은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는 6월 26일 대구로 부임하셔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주일인 7월 2일에 루르드 성모님을 교구주보로 선포하시고 세 가지 청원을 성모님께 드렸습니다. 바로 주교관(교구청사) 건립신학교 설립 그리고 주교좌성당의 증축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힘들었던 당시에, 놀랍게도 몇 년 만에 이 세 가지 청원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1918년 10월 13일에 루르드의 마사비엘 동굴과 꼭 닮은 성모당을 성모님께 약속드린 대로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봉헌된 성모당은 우리 교구의 기초가 다져진 것을 기념하는 약속의 결실이요 은총의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는 교구 초창기의 절박한 상황보다 더 절실한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드망즈 주교님의 청원은 교구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었고, 지금의 우리에게 그 청원은 다시금 신앙생활의 기본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드망즈 주교님의 첫 번째 원의는 주교관(교구청사)건립이었습니다.
현재 교구청사가 낡고 여러 부서가 떨어져 있어 불편한 상황이지만 새 교구청사 건립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교구의 쇄신과 발전입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 속에서 교회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고자 노력하고 교회의 사명인 복음화의 과업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온 힘을 다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 시대, 이 사회에 펼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교구의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복음화를 위해 한마음이 되어 헌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드망즈 주교님의 두 번째 원의는 신학교 건립이었습니다.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방인사제양성을 위한 신학교가 다른 무엇보다 절실했던 것입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성소자 발굴과 사제양성을 위한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최근 신학교와 수도회의 지원자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성소계발을 위해 성소국, 수도회, 신학교 자체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합니다. 먼저 각 가정과 본당에서 관심을 가지고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무엇이 참된 가치를 지닌 삶인지를 가르쳐 주고, 사제들과 수도자들도 자신의 삶으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됨의 행복을 전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사제는 서품으로써 그 양성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교육으로 이어져야 합니다(교황청 사제양성지침 81항). 시기별 연수와 교육, 안식년 등 다양한 모습의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기쁨으로 사목하는 사제, 일치하는 사제단이 되도록 지혜를 모으고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드망즈 주교님의 세 번째 원의는 주교좌성당(현 계산성당)의 증축이었습니다.
100년 전 대구읍내에는 본당이 하나 밖에 없었지만, 오늘날 우리 교구는 본당 162개, 신자 수 50만에 이르렀습니다. 반면, 쉬는 교우는 급증하였고 입교자들의 수도 점점 줄고 있습니다. 우리 본당과 가정이 하느님의 사랑과 복음의 기쁨이 충만한 본당과 가정이 되기를 청원합시다. 형제적 사랑과 성령의 은총이 충만한 공동체는 선교의 보루가 될 것입니다. 외적 지표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하고, 내적 성장과 신앙의 성숙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신앙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본당 사목에는 모든 본당 구성원이 방관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본당의 조직을 정비하고, 신심 활동 단체들도 원래의 취지와 지향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가정이 먼저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드망즈 주교님의 세 가지 청원은 바로 이 시대 우리의 청원입니다. 교구 초창기의 순수함과 절실한 마음으로 돌아갑시다. 그리하여 개인과 가정, 본당과 기관들을 포함한 온 교구가 현재의 모습을 진단하고 쇄신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여 그에 필요한 은혜를 청하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가 당시 드망즈 주교님의 마음으로 돌아가 본당, 가정, 개인별로 기본에 충실한 신앙을 약속하고 2020년까지 3년간 이러한 원의와 희망으로 살아갑시다. 그리하여 3년이 지난 후 성모당 봉헌과 같은 감사와 은총의 선물을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합시다. 성모당 봉헌 100주년을 맞으며 교구 쇄신, 신앙 쇄신의 열망을 가지시기를 모든 교구민들에게 청합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성인 성녀님,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17년 12월 3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 환 길 (타대오) 대주교

 

 

  

[부산교구]

신망애를 통한 본당 공동체의 영적 쇄신 (1)
‘믿음의 해’

 

 

  지난 해 교구설립 60주년에 우리는 ‘본당 복음화의 해’를 지내면서, 본당 공동체의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종합적인 성찰과 실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5년간의 새 복음화 여정을 마친 이 시점에서, 교구 초창기 ‘믿음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미래를 전망해 봅니다.

 

  1957년 교구설립 당시, 교구 공동체는 묵주기도 100만단을 봉헌하며 열정적 신심으로 뜨겁게 불타올랐습니다. 그러한 신실한 믿음의 생활은 12개였던 교구 내 본당을 10여년 만에 27개 본당으로 발전시키는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1960년대의 한국사회는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과 구도를 갈구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때에 교구 공동체는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사랑의 길을 제시하며 참된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1982년에는 국내 최초로 ‘교구 공의회’를 개최하여 교구 구성원들이 깊은 숙고와 각성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교구설정 50주년인 지난 2007년부터는 양적 성장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새 복음화’에 주력하며 신앙의 내실을 다져오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사상과 문화는, 인간 삶의 최종 심급자(審級者)인 하느님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이는 인간 자신의 우상화와 가치관의 혼돈으로 이어져, 결국 극단적 주관주의와 도덕적 상대주의, 기술만능주의와 물질만능주의 등을 초래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는 하느님을 향한 불변의 가치를 지향하면서, 인내로이 정화의 길을 걸어가는 영적 공동체로 거듭나야 합니다. 실상 ‘신앙의 사막화’가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본당 공동체가 그러한 영적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어려운 현실은 삶의 근본 의미를 되새기고, 믿음의 보화가 주는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교구 초창기에 지녔던 굳건한 신앙과 뜨거운 열정을 회복하여, 참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길을 새롭게 열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사랑으로 표현되며 참된 생명을 향한 희망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교구 공동체는 앞으로 3년간, ‘믿음(信), 희망(望), 사랑(愛)’을 통해 본당 공동체의 영적 쇄신을 이루고자 합니다. 2018년 ‘믿음의 해’, 2019년 ‘희망의 해’, 그리고 2020년 ‘사랑의 해’의 여정에 교구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믿음과 사랑의 갑옷을 입고 구원의 희망을 투구로 씁시다.”(1테살 5,8) 그리하여 사막에서부터 믿음의 풀밭으로 나아와, 사랑의 삶과 구원의 희망이 넘쳐나도록 해야 합니다.

 

  2018년 ‘믿음의 해’는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히브 12,2) 주 그리스도께 새롭게 돌아서라는 초대에 응답하는 해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중심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세상을 헤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삶은 메아리 없는 삶이 아니라, 조금씩 세상을 밝히고 새로운 사랑의 길을 여는 빛과 소금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은 단순히 개인주의적인 개념이나 사적인 견해가 아니라 교회로부터 전승된 공동체적 신앙이기에, ‘교회의 여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믿음을 더욱 키워나가야 하겠습니다.
  2018년 ‘믿음의 해’에 교구의 모든 이들이 교구 초창기의 신심과 열정을 되살려 ‘교회의 여정’에 함께하여, ‘믿음의 기쁨’을 되찾고 ‘신앙의 보화’를 전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 실 천 사 항 >
1. 미사 참례를 통한 믿음 증진
2. 냉담교우 믿음 회복 운동
3. 묵주기도 1억단 봉헌
4. 믿음 증진을 위한 본당 단체 피정
  
- 믿음 강화 피정 프로그램 운영(정하상바오로영성관)

 

 

천주교 부산교구장 황 철 수 바오로 주교

 


  

[청주교구]

주님과 함께 ‘이웃으로, 세계로’ 제3차 둘째 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교구 공동체의 해
- 교구 설정 60주년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 교구에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2017년에 우리 교구 공동체는 온 세상을 향한 복음화의 열망을 담아 ‘온 세상의 복음화를 준비하는 공동체’가 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새해에는 이러한 준비와 노력을 발판 삼아 온 세상을 향한 복음화의 사명을 굳게 다짐하며, 2018년을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교구 공동체의 해’로 정하였습니다.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이하며
2. 2018년은 청주교구가 설정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58년 6월 23일 비오 12세 교황님께서는 충청북도 감목대리구를 ‘청주대목구’(淸州代牧區)로 설정하셨고(교황 비오 12세, 「청주대목구 설정 칙서」, 1958.6.23.), 파 야고보(James Vincent Pardy) 신부를 초대 청주대목구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이후 요한 23세 교황님께서는 1962년 3월 10일 한국 천주교회에 정식으로 교계 제도가 설정되었음을 선포하셨고, 이에 따라 청주대목구는 청주교구로 승격되었습니다.
청주교구는 1958년 당시 17개 본당, 141개 공소에 메리놀회 사제 25명, 신자는 21,036명이었으며, 충청북도 전역을 관할 구역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 해 1년간 세례자는 5,172명이었으며, 예비 신자수도 6천여 명이 될 정도로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해 힘쓰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교구에는 한국인 사제가 없었기에 모든 본당에는 미국에서 파견된 메리놀회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감목대리구로 설정된 1953년부터 마지막으로 선교사가 파견된 1978년까지 청주교구에서 사목한 메리놀회 선교 사제는 모두 74명이었습니다.

사랑과 나눔을 통한 지역 복음화
3.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단지 본당 사목에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교사들은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나눔이 진정한 복음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많은 신자들은 고맙게도 메리놀회 선교사들을 통해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각 지역과 본당 단위로 구호물자 지급과 양곡지원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나아가 미국 가톨릭 구제회의 후원 아래 농촌 소득 증대 운동과 지역 개발 사업이 추진되기도 하였습니다. 
청주교구 평신도들 역시 ‘지역 사회 복음화’라는 사목방향에 맞추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빈첸시오회의 활성화와 레지오 활동을 바탕으로 하여 나눔과 봉사, 선교 활동이 확대 되었습니다.
이러한 열성적이며 헌신적인 선교사들과 교구민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 교구는 77개 본당, 16만 6천여 명의 신자와 191명의 사제, 3개의 중고등학교와 3개의 장애인 특수학교, 그리고 60여 개의 사회복지 시설과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습니다.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4. 교구 설정 60주년을 기억하고 기념한다는 것은 단지 60년 전에 교구가 설정된 사실을 경축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는 교구에 한결같이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에 감사하며, 아울러 그 동안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사목을 하신 신부님들과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왔던 모든 교구민들을 기억하며 감사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 우리 교구 공동체는 그동안 받아왔던 인적 물적 도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더 어렵고 더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사랑의 나눔 운동으로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는 교구 공동체가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청주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이하여 열렸던 교구 시노드의 후속 사목교서는 온 세상 복음화의 사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선교와 해외 선교에 더욱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실천해야 할 것을 다음과 같이 당부하고 있습니다. “화해와 일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더욱 기도하며, 나아가 북녘 동포들에게 나눔을 베풀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주님과 함께 이웃으로」, 25항). 또한 “교구 공동체는 ... 해외 선교에 필요한 인력을 선발하여 파견하고, 각 본당 공동체와 해외 선교 후원회가 서로 협력하여 그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여 지원하는 데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주님과 함께 이웃으로」, 26항).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이하여 청주교구의 초석을 놓고 기틀을 마련한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복음화에 대한 열정이 교구 사제와 교구민 모두에게 계승되어, 지역사회의 복음화뿐만 아니라 북한과 해외 선교를 통해 온 세상 복음화에 정진하는 교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교구 공동체의 실천 사항
5. 교구는 2018년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교구 공동체의 해’를 구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선교 사목 분야에서는 북한선교와 해외선교를 위한 인적, 물적 지원과 노력에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선교 활동을 펼 수 있도록 해외 선교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여 파견하고, 그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여 지원할 것입니다. 또한 몇몇의 선교사 양성이 아닌 교구 공동체 전체가 선교 열성을 갖도록 ‘듣고 기도하고 행동하는 선교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입니다. 
청소년 사목 분야에서는 청소년·청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삶을 통해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청소년들의 복음화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의 삶을 배우는 어린이 복음화 캠프, 신앙인의 삶을 배우는 청소년 봉사동아리 활성화, 그리고 복음을 살고 실천하여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청년 선교사(CYMT) 양성 프로그램을 실시할 것입니다.
가정 사목 분야에서는 교구 이주 사목과 협력하여 다문화 가정과 새터민 가정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할 것입니다. 아울러 가정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생애 주기에 따라 체계화하여 그룹웨어를 통해 공유할 것이며, 본당에서 이를 사목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또한 본당 신자의 노령화에 따른 사목적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본당 사목과 연계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특히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이하여 교구 역사 및 문화 관련 자료를 발굴 수집하고 교구 성장에 기여한 공로자를 찾아 기록 정리할 것입니다. 아울러 감사와 나눔을 주제로 일련의 행사를 추진할 것입니다. 

매괴 성모님에게 도움을 청하며
6. 끝으로, 교구 공동체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도움이신 매괴의 성모님께서 전구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신자 여러분의 가정과 교구 공동체, 그리고 지역 사회에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 가득히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2017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
청주교구장 장 봉 훈 가브리엘 주교

   

[마산교구]

2018년 교구장 사목교서  

 

 

1. ‘마음의 귀’를 쫑긋 세우기
  아직 주교라고 불리기조차 어색한 사람이 ‘사목교서(司牧敎書)’ 라는 – 교우분들께는 아주 낯선 제목의 - 글을 올리게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목교서라는 말은 다른 게 아니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요한 10,3 참조) 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 교구 안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드리는 글이라 여겨집니다.
극히 상징적이긴 합니다만 제가 여러분의 주교요 목자라면, 그렇다면 여러분은 양들로서 제  목소리를 잘 알아듣습니까? 자기 목소리 하나에도 끝내 책임질 수 없는 부끄러운 인간인 저와 제 동료 사제들의 목소리를 여러분들은 어떻게 알아듣고 이해하고 따르며 50주년이 되는 지금껏 살아오셨는지... 그것이 오히려 하나의 신비가 아니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마산교구의 오늘은 하느님의 손길 그분의 자비 없이는 있을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없이는 스스로 서있을 수조차 없는 존재들입니다.(이사야 7,9 참조) 그러니 목자들도 양들도 모두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도록 ‘마음의 귀’를 쫑긋 세웁시다. ‘육신의 귀’에는 오늘의 “여야(與野)”처럼 늘상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일이 다반사겠지만, 사랑으로 오래 참으며 형성된 ‘마음의 귀’ 안에는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한 진정성이 귀하게 살아있을 겁니다.

 

2. 카이사르의 것 하느님의 것
  참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디를 가도 개인을 자유롭게 가만두지 않습니다. ‘여냐 야냐’ ‘종북이냐 수구냐’ 양자택일을 강요당합니다. 심지어 우리 가톨릭 교회 안에도 이런 현상이 심심찮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저는 예수님처럼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마태오 22,21 참조). 그러니까 신자로서 자기가 ‘여’인 사람은 ‘여’로 살면서도 ‘여’로만 살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근본을 하느님의 진리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야’인 사람도 ‘야’로서만 살지 말고 ‘여’를 더 높은 진리 추구를 향한 삶의 동반자로 여겨야 한다는 얘깁니다. 아버지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또한 귀하게 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여 야’ 의 현실로 살면서도 보다 진실한 ‘여’, 보다 거룩한 ‘야’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하기 시작하는 ‘여’와 저렇게 실행해가는 ‘야’를 우리는 참된 교회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3. 이스탄불의 어린사제
  이렇게 진리에로 거룩함에로 불리었지만 여기 우리네 인간 삶이란 참으로 힘겹고 불안하고 무상하기만 합니다. 이제 이런 불안한 목장에서 살고 있는 우리 신부님들과 교우분들께 제가 참 좋아하는 글 한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이스탄불의 어린사제’입니다. 저에게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폭설이 쏟아져 내리는 이스탄불 밤거리에서
커다란 구두통을 멘 아이를 만났다
야곱은 집도 나라도 말글도 빼앗긴 채
하카리에서 강제이주당한 쿠르드 소년이었다

 

오늘은 눈 때문에 일도 공치고 밥도 굶었다며
진눈깨비 쏟아지는 하늘을 쳐다보며
작은 어깨를 으쓱한다
나는 선 채로 젖은 구두를 닦은 뒤
뭐가 젤 먹고 싶냐고 물었다
야곱은 전구알같이 커진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더니 빅맥, 빅맥이요!
눈부신 맥도날드 유리창을 가리킨다

 

학교도 못 가고 날마다 이 거리를 헤매면서
유리창 밖에서 얼마나 빅맥이 먹고 싶었을까
나는 처음으로 맥도날드 자동문 안으로 들어섰다
야곱은 커다란 햄버거를 굶주린 사자새끼처럼
덥썩 물어 삼키다 말고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담배를 물었다
세입쯤 먹었을까
야곱은 남은 햄버거를 슬쩍 감추더니
다 먹었다며 그만 나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창밖에는 흰 눈을 머리에 쓴
대여섯 살 소녀와 아이들이 유리에 바짝 붙어
뚫어져라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야곱은 앞으로 만날 때마다
아홉 번 공짜로 구두를 닦아주겠다며
까만 새끼손가락을 걸며 환하게 웃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길 건너 골목길로 뛰어들어갔다

 

아, 나는 그만 보고 말았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몰래 남긴 햄버거를
손으로 떼어 어린 동생들에게
한입 한입 넣어주는 야곱의 모습을

 

이스탄불의 풍요와 여행자들의 낭만이 흐르는
눈 내리는 까페 거리의 어둑한 뒷골목에서
나라 뺏긴 쿠르드의 눈물과 가난과
의지와 희망을 영성체처럼
한입 한입 떼어 지성스레 넣어주는
쿠르드의 어린 사제 야곱의 모습을

 

특히 우리 교구 젊은 신부님들께 혀를 깨무는 마음으로 이 어린 쿠르드 소년의 마음이 되어줄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사랑하는 우리 교우분들께서 다음 세 가지 성경 말씀에 많이 귀 기울여 주시길 빕니다. 주님 안에 늘 건강하소서.

 

1.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해 몸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공동번역: 요한 17,17)
2.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로마 12,9)
3. 너희와 함께 머무르는 이방인을 너희 본토인 가운데 한 사람처럼 여겨야 한다.
   그를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레위 19,34)

 

 

2018년을 준비하는 대림절에
교구장 배기현 콘스탄틴 주교

 

   

[안동교구]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본당의 쇄신-

 

 

  1. 지금 우리 교구는 2019년 교구설정 50주년을 준비하며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는 말씀아래 ‘쇄신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이 쇄신 운동은 교구 고유의 모습을 찾기 위한 운동입니다. 교구 고유의 모습은 교구를 이루고 있는 가정과 본당으로부터 출발해야 하기에 작년에는 ‘가정의 쇄신’을 통하여 참된 가정 교회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고, 올해는 ‘본당의 쇄신’을 위해 함께 마음과 힘을 모으고자 합니다.

 

  본당은 친교의 집입니다.


  2. 먼저 본당이 어떻게 집이 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가정이 가장 작은 교회의 단위로서 모든 교회 공동체의 토대를 이룬다는 생각은 가정의 쇄신 없이 본당의 쇄신도 불가능하다는 발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가정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 매우 다르지만 함께합니다. 가정에서는 타인과의 관계의 근본적인 태도를 배웁니다. 본당은 바로 이러해야 합니다.” 그리고 집은 가정의 중요한 토대입니다.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편안하고 따뜻한’ 집에서 힘을 얻듯이, 본당 소속 모든 신자들도 사랑과 일치로 친교를 이룬 본당에서 영적인 힘을 얻어 그 힘으로 세상을 위한 일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당은 또한 혼자 소외되어 살아가는 사람, 집이 없는 사람,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집과 가정이 될 때’(‘새로운 본당’, P.23), 진정으로 친교를 이루고 친교를 사는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3. ‘친교’란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말합니다. ‘친교’라는 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을 특징짓는 중요한 말마디 중 하나입니다. 이 말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천명한 데서 비롯되며 이 말은 ‘백성’이라는 말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교회의 참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백성의 친교를 사는 교회’의 모습을 통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구원공동체’의 모습을 이 지상에서부터 구현해나가는 사명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본당이 친교의 집이어야 한다는 것도 바로 교회의 이러한 기본 사명을 잘 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4. 교회의 친교가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공동체 모델은 무엇보다도 초대교회 첫 신자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2~47) 이처럼 ‘교회의 친교’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초대교회 첫 신자들의 공동체 생활을 오늘날 본당의 전형으로 여기는 이도 있습니다. 이렇게 “본당은 오로지 ‘형제애로 한 마음을 이룬 하느님의 가족’이며, ‘형제애가 감돌고 따뜻이 사람을 맞아 주는 큰집’이고, ‘신자들의 공동체’입니다.”(평신도 그리스도인, 26항) 본당 공동체 안에는 하느님과의 친교, 형제적 친교, 교계적 친교가 잘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곧 함께 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함께 형제들이 서로를 위해 주고 사랑하며, 사제와 신자들이 함께 기쁨의 친교를 일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당도 가정처럼 ‘친교의 학교’가 되는 것입니다.

 

  본당은 백성이 함께 기도하는 집입니다.


  5.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본당에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도 들으며 하느님 백성의 전례를 거행합니다. 전례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신앙을 고백하며 본당 공동체의 쇄신을 이루어 나갑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2017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은 한국천주교회의 본당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1975년 이후 42년 만에 개정된 새로운 전례서로 새로운 분위기에서 모든 본당 공동체가 성찬례를 거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전례의 쇄신 안에서 본당의 쇄신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새로 나온 「로마 미사경본」(제3표준판) 자체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지속된 전례의 쇄신과 적응을 위한 오랜 노고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6. ‘성찬례가 교회를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전례의 쇄신으로 본당의 쇄신을 이룬다.’는 뜻으로 알아들으면 어떨까합니다. “전례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교회는 복음화 됩니다. 전례는 또한 복음과 활동을 경축하는 것이며 자신을 내어주는 새로운 힘의 원천입니다.”(「복음의 기쁨」, 24항) 우리 공동체가 모여 드리는 미사성제는 천상잔치의 미리 맛봄입니다. 특별히 모든 신자들이 함께 모여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주일은 “즐거움과 휴식의 날이 되도록”(전례헌장 106항) 해야 합니다. 미사성제가 엄숙하고 경건하게 거행되어야겠지만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성체를 모심으로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사제와 신자가 함께 노력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7. “교회는 기도하는 대로 믿는다.”(Lex orandi, lex credendi)는 교회 격언이 있습니다. 신자들은 본당 안에서 기도하는 방법도 배우고 믿음도 키워나갑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당은 기도하는 학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례 받은 새 영세자가 기도하는 법을 잘 모를 때 다양하게 기도하는 방법을 익히고 배울 수 있는 곳도 본당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우고 익히는 것도 바로 본당 생활을 통해서입니다.

 

  본당은 동네의 샘입니다.


  8. 본당은 “갈증을 느끼는 모든 사람이 찾아 드는 ‘동네의 샘’”(「평신도 그리스도인」, 27항)이 되어야 합니다. 본당은 지역의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집이 되어야 하고,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의 목마름을 풀어드렸듯이 본당은 목마른 자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즉 지역의 신자들뿐만 아니라 지역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 구성원으로 생각하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지역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해야 하며 본당 공동체는 그들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9. “본당 공동체는 항상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다면 한 때 갈릴래아의 거리를 다니셨던 것처럼 어디를 다니실까? 누구를 방문하실까? 누구와 말씀을 나누실까? 무엇을 하실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하면 금방 떠오르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분명 사제관이나 본당에만 머물러 계시지는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21세기의 본당은 자주 성당 문 앞에서 서성이는 이주민들을 발견하면서 온 세상을 향해 열린 인간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합니다.”(새로운 본당, P.47)

 

  평신도 희년의 축복을 함께 나누는 본당


  10. 한국천주교회는 2017년 평신도 주일인 11월 19일부터 2018년 평신도 주일인 11월 11일까지 1년을 ‘평신도 희년’으로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2018년에 설립 50주년을 맞는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한국 평협)는 주교회의에 평신도 희년 선포를 요청했고, 주교회의는 전국 모든 신자들이 평신도 사도직을 보다 활발히 실천하고 확신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 희년을 선포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희년의 특별은사인 전대사를 모든 신자들이 받을 수 있도록 교황청 내사원의 특별 허락도 받았습니다. 각 교구에서는 ‘평신도 희년 전대사 지침’을 발표하면서 모든 신자들이 희년의 축복을 누리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모든 본당들은 신자들이 희년의 축복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사목적인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1. 한국 평협은 “내가 너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는 말씀을 주제로 삼아, 신심운동으로는 전대사 참여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를 위한 기도운동을 벌이고, 실천운동으로는 「그리스도인답게 살겠습니다.」운동의 지속적인 실천과 함께 희년의 정신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실천운동을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그 예로 전·월세 올리지 않기, 원수진 이웃과 화해하고 용서하기, 냉담교우 회두 권면, 가난한 나라 어린이 원격 입양 운동 등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한국 평협이 바라보는 평신도 희년의 궁극적 목표는 본당 공동체 복원입니다. 빈부 차이와 사회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박해시절 교우촌에서 모두가 형제자매로 지냈던 것처럼, 본당 공동체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를 실천하는 공동체로 탈바꿈(쇄신)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평협은 평신도 희년 상본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를 담았습니다. 평신도는 사목자를 존경하고 사목자는 착한 목자로서 신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행복한 본당 공동체를 구현하자는 바람에서입니다.(가톨릭 신문, 2017년 11월 19일, 11면 참조) 이를 위해서 우리 안동교구에서는 특별히 강 깔래 신부와 복자 박상근 마티아의 만남과 우정을 하나의 모델로 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동교구 평신도 희년 전대사 지침’에서 전대사 조건 중 하나로 문경 마원성지 순례를 첨가하였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본당


  12. 한 평신도가 원하는 ‘이상적’ 본당의 꿈 하나를 소개합니다. “저에게는 ‘이상적’ 본당이라고 할 때 연상이 되는 것은 밤낮 밝혀놓은 창가의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신자에게 기억되는 특별한 메시지처럼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를 통해 구원에 필요한 것을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밤낮으로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본당 사제가 있습니다. 교회를 떠난 모든 자녀에게 ‘우리는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우리에게 돌아오십시오.’라고 말하는 등불과 같습니다.”(새로운 본당, P.15-1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주 하느님 안에서 본당의 쇄신을 통하여 누리는 축복과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2017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
천주교 안동교구 교구장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광주대교구]

본당의 해 II
-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
 

 

 

1. “본당의 해 II”를 시작하며
  우리 광주대교구는 지난 2012년 교구설정 75주년을 맞이하여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에 초점을 두고 교구 사목비전을 설정하였습니다.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절실한 요청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구는 그 첫 단계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가정의 해’,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본당의 해 I’로 정하여 가정과 본당의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가정과 본당의 공동체성은 단숨에 성취되거나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꾸준한 관심과 노력 속에서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본당의 해 Ⅱ를 시작하는 2018년을 목전에 두고, 우리 가정과 본당의 복음화 상태 그리고 공동체의 일치와 활성화 정도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짐과 함께 우리 교구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동안 ‘본당의 해 II’로 정하여 본당의 복음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자 합니다.

 

  본당의 공동체성은 복음 선포(Kerygma-Martyria)와 전례(Liturgia), 친교(Koinonia)와 봉사(Diakonia)를 통해 비로소 실현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강조하셨습니다. “본당은 그 지역에서 사는 교회의 현존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인 생활이 성장하는 장소이며, 대화와 선포, 아낌없는 사랑 실천, 그리고 예배와 기념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또한 본당은 “공동체들의 공동체이고, 길을 가다가 목마른 이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지성소이며, 지속적인 선교 활동의 중심지입니다.”
 우리 교구가 사목비전을 통해 이런 본당의 모습을 구체화하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는 보편교회의 지향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공동체상은 본당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그리스도교 공동체 및 단체가 지향해야 한다는 것도 당연합니다.
 
2. “본당의 해 II”와 사목 중점사항
  우리 교구는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라는 사목비전과 더불어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사목 중점사항을 설정하였습니다. 공동체성 강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 이루기, 사제단의 사목 교류 강화 및 지구사목 활성화가 그것입니다. 이 네 가지 사목 중점사항은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를 위하여 사목의 우선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이며, 공동체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쏟아야 할 분야입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사목 중점사항이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고 상호보완적인 작용을 할 때 ‘본당의 해 II’는 더욱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공동체성 강화
  오늘날 공동체성 강화를 위한 교회의 노력은 더욱 요긴해졌습니다. 특히 가정공동체가 가족의 유대와 결속을 약화시키는 갖가지 도전들과 어려움들 속에 놓여 있음을 직시합니다. 가정이 “친교와 기도의 자리, 복음의 참된 학교”가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살아 있는 세포”가 되도록 가정공동체의 본질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가정과 더불어 본당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본당의 공동체성 증진 또한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영세자 증가비율은 거의 답보상태인 반면, 쉬는 교우의 비율은 점차 증가추세이고, 주일미사 참례자(2016년 현재 16.7%)는 감소추세가 뚜렷합니다.
 특히 쉬는 교우 문제는 우리 교회가 오래 전부터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새 신자와 쉬는 교우들에게 좀 더 깊은 관심을 쏟아 그들이 성사생활에서 ‘맛’을 느낄 수 있는 후속 돌봄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또한 교회의 공동체성 증진을 위한 노력은 교회 내적인 차원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고유한 몫이 있습니다. 우선 각 본당이 지역사회의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고, 살기 좋은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데 함께 함으로써 공동체성을 증진하는 데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교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이 형제적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없이 우리 민족의 진정한 공동체성 회복과 민족의 오랜 염원인 통일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
  본당 공동체 안에는 드러나지 않는 가난한 이들, 즉 홀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연로한 어르신, 폐품을 수거하여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면서 생활고를 겪는 어르신 그리고 약간의 지적 장애와 대화 단절로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누군가의 도움, 관심 그리고 대화를 갈망합니다. 이들은 현시대의 가난한 이들이며 우리 신앙 공동체는 이러한 약한 이들, 관심과 사랑, 뭔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은 교회의 믿음, 곧 “가난한 사람이 되시어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 곁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사랑의 실천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별한 형태의 선택을 말하는 것으로, 교회의 전통 전체가 이를 증언”합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는 가난한 이들이 사회에 온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가난한 이들의 해방과 발전을 위한 하느님의 도구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루카 4,18-19 참조)에서 중심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자비의 얼굴>에서 새로운 표현으로 일깨워주십니다. “말과 행동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고, 현대 사회의 새로운 노예살이에 얽매인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자신 안에 갇혀 있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 다시 볼 수 있도록 하고, 존엄성을 빼앗긴 모든 이가 다시 그 존엄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의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 뜻 깊은 실천이 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없애고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발전을 촉진” 하는 것도 교회의 소명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 이루기
  우리 교회가 그동안 신앙 전수를 위하여 청소년들에게 쏟은 열정과 노력은 이제 변화된 사회상황 속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 사목은 이제 본당공동체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이루어지거나 또 청소년들을 순전히 사목의 대상으로만 간주해서는 그 목적을 성취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 안에서 “공동체 전체가 젊은이들을 복음화하고 교육하여야 한다는 인식과 젊은이들이 더 많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것은 사실 청소년 사목의 기본 방향을 매우 잘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모든 거리, 모든 광장, 세상의 모든 곳에서 예수님을 기쁘게 전하는 ‘신앙의 길잡이’”로 나설 수 있도록 본당공동체 전체 구성원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은 본당의 주변부에 밀려나 있는 청소년이 본당공동체 안에서 스스로 복음화의 주역이 되도록 하는 본당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청소년을 본당이나 성인중심의 공동체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본당공동체 전체 속에 자리매김하고, 본당의 사목비전을 청소년과 성인이 서로 공유하며, 상호 다각적인 친교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아울러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청소년과 청소년 사목협력자를 지속적으로 양성하여 청소년 스스로 “젊은이들의 사도”
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본당공동체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4) 사제단의 사목 교류 강화 및 지구사목 활성화
  사제들의 사목활동이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희망이 되기 위해서 사목 쇄신은 불가피합니다. 사목 쇄신은 무엇보다도 복음과 공동체를 모든 사목활동의 중심으로 삼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제가 변화되면 모든 것이 변화될 수 있다는 말은 사제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기준을 우선적으로 취하고, 하느님 백성의 구원과 행복을 위하여 더욱 겸손하게 봉사한다면 우리 사제들의 사목활동은 큰 희망이 될 것입니다. 평신도들을 존중하여 그들이 교회활동에 참여하고 함께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고, 저마다 지닌 역량과 지혜를 충만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롭고 열린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공동체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사제단의 일치와 상호협력은 사목활동의 개인주의를 넘어 사목적 연속성과 일관성을 위해 매우 필요하며, 그 결실이 언제나 풍요롭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또한 사제단의 사목 교류 강화는 구체적으로 지구사목의 활성화를 통해서 심화할 수 있습니다. 지구사목은 사제단의 연대만이 아니라 본당들 간의 연대라는 점에서 매우 뜻이 깊습니다. 이런 사목적인 연대를 통해서 지구의 사목적인 현안을 공동으로 대처하고 지구 내 이웃본당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세상 사람들을 향해 열린 지구사목의 취지는 지구 내 가난한 이들을 향한 우선적인 사랑을 공동으로 실천함으로써 더욱 뚜렷해질 것입니다.

 

3. 복음 묵상과 실천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봉사합시다!


  모든 사람은 공동체를 이루도록 초대되었습니다.
 또한 공동체를 건설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적인 소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고, 오직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 하셨다.”는 것도 그런 뜻입니다.

 

  우리 교회의 공동체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준은 자비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자비 실천은 지속적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자비의 얼굴>에서 강조하는 바와 같이 “우리 본당과 공동체, 단체와 운동, 곧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서는 누구든지 자비의 안식처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자비는 분명 세상 사람들에게도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하는 교회의 사명은 복음의 기쁨 속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사명은 자신만의 안위와 세계를 벗어나 예수님과 인격적 만남을 이루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봉사하며, 모든 피조물과 친교를 이룰 때 비로소 완수될 수 있습니다. 보다 더 아름다운 공동체와 세상을 위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헌신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 힘은 우리 모두가 매일 복음을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 일상 안에서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는 삶이 근간을 이룰 때 가능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건설은 혼자의 힘으로만 이룰 수 없습니다. 언제나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또 더 사랑하고자 하는 원의로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정결케 하여 오로지 ‘하느님 나라 건설’ 곧 나의 주변이 ‘사랑의 왕국’이 되기를 염원하는 신앙과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뜻과 힘과 마음을 모을 때 희망은 현실이 됩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건설에 투신하고,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 선포의 주역으로 살아가도록 지지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될 때, 시대를 거슬러 복음의 가치와 희망을 살아가는 예언자적인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2017년 11월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광주대교구
대교구장 김 희 중 히지노 대주교

 

   

[전주교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로마 12,2)
-교구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

 

 

   

  1.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1코린 1,3) 하느님께서는 지난 해 우리 교구설정 80주년을 맞이하여 새 교구장을 보내주셨습니다. 새 직무로 부름을 받은 저는 지난 2017년 5월 13일 주교서품과 착좌미사로 제8대 교구장 직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구를 위해 헌신하신 이병호 빈첸시오 주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새 교구장으로 부름을 받은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늘 부족함을 절감하는 저에게는 교구장의 직무가 너무도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느님께 의탁하고, 우리 교구의 신부님과 수도자와 평신도의 기도와 협조에 힘입어 제게 맡겨진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자 합니다.

 

  2. 최근 40여 년 동안 보편교회 안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꾸준히 강조된 것은 ‘새로운 복음화’입니다. 이 새로운 복음화는 성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1979년 처음으로 사용하시고 제19차 라틴아메리카 주교 총회(1983)에서 공식적으로 다루어졌으며, 그 후 각종 문건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되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도 기회가 닿는 대로 새로운 복음화를 거론하셨고, 이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기 위해 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2012)까지 개최하셨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현 교황님께서 전 세계의 모든 교회를 위해 계획적으로 펴내신 「복음의 기쁨」도 사실상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지침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복음전파는 주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지상사명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새로운 복음화는 틀림없이 보편교회 안에서 더 깊이 그리고 더 다양한 모습으로 강조될 것입니다. 이러한 보편교회의 큰 흐름에 따라 저는 새로운 복음화에 초점을 맞추어 교구장 직무를 수행하고자 합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는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는 새로운 복음화를 추진하라는 긴급명령으로 들립니다.

 

  3. 새로운 복음화는 선교나 복음화 혹은 재복음화와 구분됩니다. ‘선교’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전통적 선교 개념에는 교회 확장의 이념과 호교론적인 의미가 크게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선교의 개념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그리스도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생활하는 것을 의미하는 ‘복음화’로 대체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복음이 일상의 구체적인 생활과 연관되고 영향을 주어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삶 전체의 복음화를 뜻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재복음화’는 이미 복음화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반복하여 복음화를 시도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에 비해 ‘새로운 복음화’는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화를 이룬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개념이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던 라틴아메리카에 관련시키면, 새로운 복음화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확산과 유사 종교 출현이라는 당시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상황과 환경 변화에 직면하여 용감하게 새로운 길을 내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길을 위해서는 특히 ‘새로운 열정,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변화된 새로운 환경과 상황을 읽고 해석하려는 분명한 의지가 필요하고 또 그러한 조건에 알맞게 복음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새로운 복음화는 복음화 사명을 현실적 맥락 안에서 잘 실천하려는 노력이자 시도이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새로운 상황과 조건에 맞는 복음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복음화의 목적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더욱 성숙한 교회 공동체의 형성”(평신도 그리스도인 34항)입니다.

 

  4. 한국 교회가 처한 사회 환경과 여건을 돌아보면, 한국 교회 역시 새로운 복음화가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더불어 편리함과 안락함을 누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인 빈곤을 겪고 있습니다. 고도의 경제 발전은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겨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 곧 정신적, 윤리적, 신앙적 가치를 외면하게 하였습니다. 정신적 가치보다는 물질적 가치를 우선시하고, 경제적 성공만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극심한 개인주의, 소비주의, 상대주의, 현대판 영지주의 등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최근 들어 팽배해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사회 부조리와 경제적 불평등과 소외현상을 구조적으로 심화시켜 경제적·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상황은 신앙생활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신자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영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경제적 성공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은 교회 안에서도 영향을 끼쳐 신자들 역시 많은 부분 사회적 성공과 물질적 축복을 바라는 기복신앙에 머물고 신앙인의 본질적인 사명과 책무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삶의 본질적인 기준과 목적이 아니라 부분적인 것으로 여기고, 신앙 때문에 겪어야 하는 사회적 제약이나 불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시련이 닥치고 어려움이 생기면 세상의 불의와 부정과 타협하고 쉽게 신앙을 저버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교구의 통계표에 그대로 반영되어 드러납니다. 작년 12월 기준으로 보면, 우리 교구의 복음화율은 전국 평균에 약간 밑돕니다. 우리 교구의 주일미사 참석 신자 비율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고, 쉬고 있거나 행방불명으로 파악된 신자비율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우려스러운 현실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비록 통계이지만, 이는 우리 교구민의 신앙생활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 교회의 미래가 밝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어진 교회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되며, 더더구나 잘못되어가는 사회 현실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현실이 교회에 우호적이지 않지만, 그 현실을 복음의 정신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복음화, 곧 시대적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여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돌아가 복음의 실천을 새롭게 모색하는 일입니다.

 

  5. 그런데 새로운 복음화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우선적으로 꾀해야 할 노력은 우리 자신의 내적 쇄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가 끊임없이 복음화 되지 않는다면 (세상을) 복음화하지 못하기”(복음의 기쁨 174항)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가 물질만능주의라는 세상의 거센 흐름과 도전에 휘말리지 않고 세상의 모든 영역을 복음적 가치 기준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교회가 먼저 복음화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저는 2018년을 ‘신앙 쇄신의 해’로 정하고 교구의 내적 복음화를 추진하고자 합니다. 교구의 내적 복음화가 새로운 복음화의 첫 여정입니다.
  제 마음속에는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이 크게 울려 퍼집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로마 12,2) 그런데 어떻게 해야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의 신원을 잃지 않고 신앙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습니까? 영적으로 쇄신되기 위해서 우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요한 3,7) 합니다. 우리는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야 할 필요성을 느낄 때마다 특히 초대교회를 찾아가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며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교회로서 모든 시대의 교회에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초대교회에 대해 사도행전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이 증언에는 우리의 신앙 쇄신에 필요한 다섯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그 요소들을 새로운 한 해 동안 우리가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내용으로 제안합니다.

 

  6. 첫째,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당시 사도들의 가르침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에 열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초대교회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고 믿음을 심화하여 늘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게는 버팀과 활력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영혼의 양식 그리고 영성 생활의 순수하고도 영구적인 원천이 되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계시헌장 21항)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언제나 성경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모든 신자가 성경을 자주 읽음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존귀한 지식’(필립 3,8)을 얻도록 강력하고 각별하게 권고합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계시헌장, 25항) 따라서 2018년 한 해 동안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더 자주 읽고 묵상하며 필사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이 새롭게 되고 활성화되도록 노력합시다.

 

  7. 둘째, 교회의 가르침을 적극 배웁시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기꺼이 배움으로써 당시에 성행하던 우상숭배와 그릇된 가르침을 물리치고 사도들과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참된 신앙을 더욱 굳게 다졌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혼란하게 하고 참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여러 가치관들과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탁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뜻을 명확하게 깨닫기 위해서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해야 합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이 시대에 우리 신앙인이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소중한 나침반과 같습니다.
  교회의 가르침 가운데 현대 신앙인에게 가장 독보적인 문헌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과 「가톨릭교회 교리서」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은 이천년 교회의 역사 안에서 체험된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과 내용을 종합한 것으로서 성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대로 “20세기의 교회에 내려진 큰 은총”(새 천년기 57항)입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신앙의 유산(Fidei depositum)을 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성경에서 교부들에 이르기까지, 또 신학자들과 선인들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신앙에 관하여 성찰하고 발전시켜 온 수많은 방법들과 신앙의 진리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와 구원 계획의 놀라운 단일성을 깨달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 성령을 통하여 거룩한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서 인간이 되신 분, 인류의 구원자,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적 위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신앙의 유산 3항) 따라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과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성실히 배우고 익혀서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이 다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복음의 기쁨」도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는, 더할 나위없는 나침반입니다.

 

  8. 셋째, 미사성제를 더욱 정성껏 봉헌합시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모여 빵을 떼어 나누었습니다.”(사도 2,46) 이를 통해 신자들이 부활하신 주님과 일치를 이루고 신자들 상호간의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성찬례를 통하여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한 몸, 곧 교회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성찬례를 통해서 세워지고 구체화되고 성장합니다. 과연 성찬례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전례헌장 11항)입니다.
  미사성제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내어 주신 몸과,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마태 26,28) 피를 받아 모십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예수님 안에 머무르고, 예수님도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힘으로 살게 됩니다(요한 6,57 참조). 따라서 성찬례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의 양식으로 내어 주시는 진정한 잔치입니다. 이 신비를 주님께서는 친히 거듭 이렇게 강조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이 결코 아닙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요한 6,55)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사성제를 자주 참여하고, 더욱 정성껏 봉헌하기 위해 미사 전에 성실히 준비하는 시간을 내도록 합시다. 그리고 주님께서 참으로 현존하시는 성체를 공경합시다. “교회와 세상은 마땅히 성체를 공경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의 성사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흠숭 안에서, 신앙으로 충만하며, 중대한 잘못과 세상의 죄를 속죄하겠다는 열린 마음으로 드리는 묵상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시간을 거부하지 맙시다. 우리의 흠숭이 중단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주님의 식탁 3항)

 

  9. 넷째, 기도에 더욱 마음을 모으고 시간을 냅시다. 초대교회는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사도 2,42) 그래서 주님의 현존을 늘 가까이 느끼고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깊은 갈망은 하느님과의 일치, 곧 그분과 함께 친교를 이루며 기쁨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갈망을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표현하는 행위”(토마스 아퀴나스)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란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는 것이며”(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결국 하느님을 깊이 만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기도는 이렇게 하느님과의 대화, 하느님과의 내밀한 우정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참된 기도는 구체적인 열매를 맺습니다. 말하자면 기도는 삶의 방향을 전환시켜 이웃에게로 온전히 돌아서도록 이끕니다. 기도는 사랑의 실천이 중대하다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세상에 구체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힘과 용기까지 줍니다. 따라서 기도는 믿음의 가장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표현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은 항상 반복하여 꾸준하게 기도할 것을 강조하고 또한 실제로 기도의 많은 모범을 보여줍니다. 시편은 기도의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특히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며 사셨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루카 4,16) 회당에 가셨으며, 당신 활동의 전환점마다 홀로 하느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따라서 기도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없습니다. 아니 참된 자기 자신도 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삶은 고요한 삶의 중심축을 잃어 자신의 존재와 신원을 거의 외적으로만 확인하게 되고, 소유에 치우치고 방어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초대교회의 모범에 따라 아침·저녁기도와 삼종기도 등 일상기도에 충실하고 또한 자주 기도의 시간을 냄으로써 하루하루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어 그분과 일치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10. 마지막으로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합시다. 초대교회가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던”(사도 2,47) 까닭은 말씀을 듣고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고, 재산을 처분하여 사람들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사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그러므로 우리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자비의 물질적 사업을 새로 발견합시다. 곧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며,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나그네들을 따뜻이 맞아주며, 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고,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주며, 죽은 이들을 묻어주는 것입니다. 또한 자비의 영적 활동도 잊지 맙시다. 곧 의심하는 이들에게 조언하고, 모르는 이들에게 가르쳐 주며, 죄인들을 꾸짖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며, 우리를 모욕한 자들을 용서해 주고,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을 인내로이 견디며, 산 이 와 죽은 이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자비의 얼굴, 15항) 이러한 사랑의 실천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우리는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신앙을 고백하고,
  고백한 신앙의 내용을 성찬례와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거행하고,
  거행한 신앙을 사랑의 행동으로 증거합니다.

 

  2018년 한 해 동안 우리 교구민이 모두가 다섯 가지의 제안에 따라 ‘신앙을 쇄신함으로써 새로운 복음화의 길’에 들어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구의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자신을 하느님께 제물로 봉헌하는 순교를 통하여 새로운 복음화의 탁월한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본당과 신심단체는 연 1회 교구 내의 순교 성지들을 순례함으로써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신앙을 증거했던 순교자들의 삶을 배우고 실천하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신앙의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가득 누리시기를 빕니다.

 

  신앙의 가장 뛰어난 모범을 보여주신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한국의 순교 성인들과 복자들이여,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17년 12월 3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전주교구장 주교 김선태 (사도요한)

 

 

 

  

[제주교구]

생태적 증거의 삶을 사는 소공동체
-제주는 하느님이 주신 보물입니다.-
 

 

 

  제주는 120만 년 전부터 지구 깊숙한 곳에서 분출한 마그마가 바다를 뚫고 솟아올라 용암섬이 되었고, 2만5천 년 전에 이르러서야 오늘의 꼴을 갖추고 사람 살 수 있는 땅으로 빚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제주를 준비하시는 데 걸린 기간이 백만 년도 훨씬 넘는 긴 세월이었습니다. 제주는 아직 신선한 공기, 깨끗한 지하수, 한반도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나무들과 동물들이 가득하여 많은 방문객을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고 보물입니다. 그런데 최근 불과 몇 년 사이에 제주도로 이주하는 인구가 급증하여, 역사상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생태계 전체의 심각한 변화가 이 섬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비료, 농약, 축산폐수와 생활하수로 인하여 지하수 수질이 매우 악화되고 있습니다(제주특별자치도 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도 2차 지하수 조사결과 서부지역 3개관정과 남부지역 1개 관정의 질산성질소(NO3-N) 농도는 먹는 물 수질기준 10mg/L을 초과하고 있고, 지난 10월부터 애월과 한림, 대정 등 제주 서부지역에서는 사설 지하수 신규허가가 전면 금지됨). 이주민 증가와 자본유입으로 제주 지역 부동산은 급등하고, 10가구 중 4가구가 무주택입니다. 제주도민 가구당 차량보유대수는 전국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과도한 교통량으로 전국에서 인구 100만이 안 되는 곳에서 유일하게 대중교통 전용차로제를 시작하였습니다. 제주지역 쓰레기 매립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작년, 올해에만 12,000톤의 쓰레기를 타지로 반출하고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국내에서 더 이상 받아주는 지자체가 없어, 톤당 반출비 약 20만 원을 들여 외국으로 겨우 내보내고 있습니다. 제주지역 하수종말처리장은 급증한 관광객과 유입인구 증가로 온전한 하수처리 능력을 상실하고, 기준치의 5배까지 이르는 오염수를 장기간 방류한 결과 한국환경공단으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제주 인근 바다는 풍성하던 해초류, 어패류들이 모두 사라지며 죽음의 바다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주도라는 몸의 내장이 도저히 소화하지 못할 과도한 물량을 쏟아부어, 지금 모든 장기가 파열되기 직전의 위기 상황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은 이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당장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또 하나의 대규모 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하나밖에 없는 보물을 우리 스스로 파괴하는 잘못된 판단입니다. 지금 우리는 조물주가 100만 년 넘는 오랜 세월을 두고 정성스레 가꾸고 빚어주신 보물섬 제주를 회복불능 상태로 조각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피조물들은 인간의 자의적인 지배 아래에 예속되는 단순한 대상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멋대로 부리고, 버리고, 없애도 좋은 존재가 아닙니다. ‘다른 피조물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인간)가 아닙니다’(‘찬미받으소서’ 83). 우리 눈에 보잘것없게 보이는 피조물들도 각각 고유한 존재 이유와 가치를 지닙니다. 모든 피조물은 우리와 함께 궁극적인 종착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도록 초대받은 동반자들입니다. ‘물질세계 전체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나타냅니다. 흙과 물과 산, 이 모든 것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어루만지십니다’(‘찬미받으소서’ 84). 제주의 오름, 바람, 돌, 물, 나무, 억새, 바다, 동물, 물고기 모두 우리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아무리 하찮은 피조물이라도 ‘형제’나 ‘누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욕심 때문에 이 피조물들을 남용하고 훼손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형제와 누이를 뿌리치고 그분의 사랑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인간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사회와 자연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세계관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에 속하므로 자연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합니다’(‘찬미받으소서’ 139). 지구상의 다양한 생물종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관계망을 형성하며 서로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이 생태계 전체의 조화와 공존의 고리를 수호하고 지키도록 초대받은 존재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절대적으로 지배해 온 ‘발전’이라는 무의식적 굴레에서 우리는 해방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조건 없이 항상 최우선해 온 기계론적 ‘발전’은 결코 인류 문명의 절대적인 명제가 아닙니다. 환경이 악화되고, 인간 삶의 질이 추락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는 발전은 참된 발전이 아니라 몰락입니다. 

  아직은 되돌릴 수 있습니다. ‘생산과 소비의 속도를 줄이면 다른 형태의 진보와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찬미받으소서’ 191). 인류 공동의 집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여 좀 더 검소한 생활을 실천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베네딕토 16세, 2010년 세계평화의 날 담화, 9항). 그러나 구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자신의 생활양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생활양식을 바꾸고 소비를 조절하면, 기업은 현명한 소비자들의 연대로 압력을 받고 기업의 생산방식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찬미받으소서’ 206).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대하며 함께 힘을 결집하면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제주 고래의 조냥 정신을 살려내어야 하겠습니다. ‘난방을 하는 대신에 옷을 더 껴입고, 플라스틱이나 종이의 사용을 삼가고, 물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적당히 먹을 만큼만 요리하고, 생명체를 사랑으로 돌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승용차 함께 타기를 실천하고 나무를 심고, 불필요한 전등을 끄는’(‘찬미받으소서’ 211) 등의 행동들을 공동 운동으로 펼쳐나가면 우리는 제주를 살리고 지구를 살릴 수 있습니다. 


2017년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제주 교구 감목 강우일

 

 

 

  

[군종교구]

“군 복음화, 변함없는 열정으로”  

 

 

친애하는 교구민, 군종사제, 그리고 수녀 여러분,


저는 금년의 사목표어를 지난해의 사목표어 “군 복음화, 새 열정으로”에 이어서 “군 복음화, 변함없는 열정으로”로 정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지난해의 사목표어 둘째 마디인 “새 열정으로”의 “열정”을 지속시키기 위함입니다. 달리 말하면 군 복음화의 열정을 지속시킬 필요성과 중요성 때문입니다.

 

사람의 집중도가 지속되기 어렵듯이 열정도 지속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열정이 감소하거나 심지어 식어버리면 그것은 자연히 게으름으로 이끌어가게 되고 이 게으름은 마침내 사명감의 상실 혹은 책임감의 상실로 이끌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군 복음화를 위한 우리 각자의 열정을 변함없이 지속시키는 노력을 다 함께 하여 복음화의 결실이 꾸준히 맺히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이 표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변함없는 복음화 열정을 그 누구보다 사도 성 바오로에게서 보고 있습니다. 특히 다음의 사도 말씀이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2티모 4,7-8) 우리 모두 나 자신의 복음화와 모든 이의 복음화를 위해 변함없는 열정으로 최선을 다하도록 합시다.

 

저는 작년에 제시한 구체적인 실천 사항들을 대부분 다시 언급하면서 몇 가지를 수정하고 보충하고자 합니다.

 

1. 복음화는 두 가지 차원을 지닙니다. 하나는, 하느님을 모르는 군인들과 군 가족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고 회개하여 세례를 받게 하는 일입니다. 사도 성 바오로께서 당신이 지극히 사랑하고 아낀 영적인 아들 디모테오에게 주시는 권고를 들읍시다. “그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2티모 4,5) 다른 하나는, 군종 사제들과 군종 사목에 임하는 수녀들이 중심이 되어 기존 신자들을 영적으로 돌보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닮아가게 하는 일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 주님께서 승천 직전 당신의 지상 대리자로 임명하고자 하시는 사도 성 베드로에게 당부하신 말씀을 늘 기억하도록 합시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5) 그리고 신자들 역시 스스로 지속적인 회개 생활을 통해 신앙과 희망과 사랑의 덕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일입니다. 이 모두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늘 청해야 합니다.

 

2.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노력은 군종 사제, 수녀, 평신도들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전교에 있어, 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몇 가지 방법 곧 사랑 넘치는 삶의 표양을 보여주는 것, 필요할 때 그리고 적절할 때 하느님의 말씀(특히 사도신경이 담고 있는 신앙의 내용들)을 직접 전하는 일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이들이 하느님을 알고 믿어 구원의 은혜를 입도록 꾸준히 기도하는 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나병환자나 정신병 환자 등 고통 받는 병자들을 기꺼이 만나주시고 기꺼이 치유해주셨고 배고픈 이들에게 빵을 많게 하는 기적을 행하시어 먹이셨고, 세리나 다른 죄인들을 역시 기꺼이 만나 벗이 되어 주셨고, 당신 스스로 겸손의 모범을 보이면서 섬김을 받기 보다는 섬기는 삶을 택하셨습니다. 주님의 이런 삶의 위대한 모범은 당신이 행하신 기적들과 함께 영혼들을 당신께로 이끄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 사랑의 삶의 표양에 이어, 우리는 필요할 때 그리고 적절할 때, 회개와 하느님 나라를 직접 전하도록 합시다. 저는 우리 주님께서 전도를 시작하실 때 하신 지극히 짧은 다음의 설교가 우리의 복음 선포 설교의 중심이 되었으면 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이 두 말씀의 표현은 서로 조금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회개”와 “하느님 나라”와 “복음”- 이 세 요소를 늘 염두에 두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 세 요소를 전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복음의 중심 내용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어느 성서학자에 의하면 사도 성 바오로께서는 신약성경에서 120회 이상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도 바오로 사도의 이 강조점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또한 우리 주님의 기도생활을 본받아 나와 내 가족의 구원과 함께 세상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도록 합시다. 저는 주요 기도서인 ‘성무일도’의 총 지침서 한 부분을 인용합니다. “아버지께로부터 당신 사명의 계시를 받을 때, 사도들을 부르시기 전에, 빵을 많게 하신 기적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리실 때, 산에서 변모되실 때, 귀머거리를 치유하실 때, 라자로를 죽음에서 일으키실 때, 베드로에게 신앙 고백을 요구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치실 때, 어린이들을 축복하실 때, 베드로를 위해 기도드리실 때, 이 모든 경우에 주님은 기도하셨다.”(4항)

 

3. 현재의 우리 교구에서 복음전파 활동은 대부분 군종 사제들과 군종교구에서 소임을 수행하는 수녀들과 소수의 평신도 선교사들(약 30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군종 사제들이 자신이 담당하는 군부대 지역이 광범하고 거기에다 평신도 선교사를 모시기 어려운 형편일 때에는, 그 근처의 남자 수도회나 여자 수도회 회원들을 찾아내어 도움을 청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군에서는 일반 교구에서와는 달리 비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때 일반적으로 시간 여유가 적기에, 저희 군종 사제들의 공동 노력으로 군 현실에 맞는 교리서 편찬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고, 금년에는 사용이 가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이 교리서를 보충할 보충 영상물도 제작하여 배포할 예정이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영상물은 기존 신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4. 할 수 있으면, 본당 단독으로 혹은 주변 군 본당들과 합동으로 사순, 대림절 피정을 실시하고, 이 두 전례 시기의 피정만이 아니라 별도의 피정 계획도 가졌으면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각 본당 별로 가능하면 일 년에 한 번 성지순례를 갖기를 권장하고 싶습니다.

 

5. 군에서는 군인과 그 가족들만이 아니고 군종 사제도 이동이 잦은 편이기에 장기간의 재교육 혹은 영속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영속교육인 ‘성경공부’를 권장합니다. 신·구약 중에서 한 두 개의 성경을 택해 군종 사제나 수녀의 지도하에 진행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성경공부라 할 수 있는 ‘성경 읽기’와 ‘성경 쓰기’를 적극 권장하고 싶습니다. ‘성경 쓰기’는 우리 교구에서 매우 모범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기쁩니다. 군종교구의 본당에서는 레지오 마리에나 꾸르실료 같은 신심 단체의 지속성이 어려워 대부분의 본당에는 이러한 신심단체가 없습니다. 신심단체가 있는 본당에서는 본당신부가 각별한 관심을 갖고 이 단체들을 도와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일학교 운영 역시 대부분의 본당에서 어려움을 느끼기에, 본당신부는 어린이들에 대한 별도의 신앙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 년에 몇 차례 실시해주길 요청합니다.

 

 

2017년 대림 제1주일에
천주교 군종교구장 유수일 F.하비에르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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