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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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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2020년 9월 26일[(녹)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141027 김중애 [ji5321] 스크랩 2020-09-26

2020년 9월 26일 토요일

[(녹)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제1독서

<<먼지가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이 하느님께 되돌아가기 전에

젊음의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 코헬렛의 말씀입니다. 11,9―12,8
9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10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12,1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이런 시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네가

말할 때가 오기 전에.
2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3 그때 집을 지키는 자들은

흐느적거리고 힘센

사내들은 등이 굽는다.
맷돌 가는 여종들은 수가

줄어 손을 놓고 창문으로

내다보던 여인들은 생기를 잃는다.
4 길로 난 맞미닫이문은 닫히고,

맷돌 소리는 줄어든다. 새들이

지저귀는 시간에 일어나지만

노랫소리는 모두 희미해진다.
5 오르막을 두려워하게 되고

길에서도 무서움이 앞선다.
편도나무는 꽃이 한창이고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
참양각초는 싹을 터뜨리는데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거리에는

조객들이 돌아다닌다.
6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7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8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0(89),3-4.5-6.12-13.14와 17(◎ 1)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당신은 말씀하시나이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 당신이 그들을 쓸어 내시니,

그들은 아침에 든 선잠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 같사옵니다.

 아침에 돋아나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리나이다.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소서.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복음 환호송

2티모 1,10 참조
◎ 알렐루야.
○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43ㄴ-45
그때에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송

시편 119(118),4-5 참조
주님은 규정을 내리시어

 어김없이 지키라 하셨나이다.

당신 법령을 지키도록

저의 길을 굳건하게 하소서.
오늘의 묵상

제자들이 다가올 예수님의

 수난을 두려워한 이유는 명백합니다.

자신들이 바란 예수님과 실제 예수님

사이의 깊고 깊은 간극 때문이었지요.

그 간극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로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제자들의

두려움은 일종의 비겁함입니다.

대개 비겁함은 제 잇속 계산과 상응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이유가

종교적이고 신앙적이지만은 아닐 테지요.

당시는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멋진 메시아를 기다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른바 묵시적 열광의 시대를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살아갔습니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내일의 달콤한 인생을 향한

묵시적 환상은 활개를 칩니다. 그런 열망을

단번에 꺾어 버리신 예수님의 수난 예고에

제자들은 허탈과 허무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뚜벅뚜벅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루카 복음은 19장까지 열한 개의 장

(9,51―19,48)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오르시는 예수님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수난을 향한 예수님의 발걸음은

얼마간의 비겁함과 얼마간의 두려움이

뒤섞인, 그야말로 제자들이 복잡한

감정의 다발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에

다가갈수록 점차 다듬어진 신앙의

정수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꼬여 버린 삶의 방향에 안절

부절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제자들입니다. 신앙이란 알아듣고

깨닫는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몰라서 무모하게 내맡기는 의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찌 그리스도의

신비와 그 수난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겠습니까. 그저 일상 속에

벌어지는 모든 일에 그분께서

 함께하신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 내는 것이겠지요. 잘 모르지만

이 몸짓이 앎의 또 다른 조각이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살아 내야 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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