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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광평대군의 귀중한 인연[2010-03-22]

218905 박관우 [pgu77] 2019-10-19

 

필자는 오늘 참으로 귀중한 체험을 하였으니,그것은 다름아닌 필자가 출생한 번지의 현재의 위치를 찾아낸 것이다.

 

사실 오래전에 출생지를 찾으려고 현장답사한 적이 있었지만,그 당시에는 결국 찾지를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였으나,드디어 그 위치를 알게 되어 감개무량함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런데 사실은 출생지를 찾는 과정에서 쉽게 찾아지지 않아서 우선은 근처에 있는 고려대 안암병원을 찾아가게  되었으니,이와 관련된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태어난 곳은 서울 성북구 안암동 5가인데,예전의 지명유래와 관련된 기록을 통하여 안암동에 광평대군의 사당이 있어서 그 지명을 궁말이라 하였다고 전하는데,바로 거기가 오늘날의 안암동 3가라는 것이다.

 

여기서 광평대군을 소개하자면 조선왕조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5남으로서 20세라는 젊은 보령에 안암동에서 임종하시고,그 사당을 모셨던 것인데,며칠 전,광평대군파종회 관계자로부터 사당이 현재는 수서동 묘역으로 옮겨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자로서는 출생한 지역에 광평대군이 임종하고 오랜동안 사당이 모셔져 있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며칠전 종회 관계자와의 통화를 통하여 광평대군의 사당이 위치하고 있었던 현재의 위치에 안암병원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그러한 통화가 하나의 계기가 되어 오늘 당시 사당의 정확한 터를 알고 싶어서 안암병원을 현장답사하게 된 것이었으나,안타깝게도 정확한 위치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제 이야기를 증조부와 관련하여 언급한다면 증조부가 출생한 방골에 바로 광평대군파 가문이 거주하였다는 사실을 고향 어르신으로부터 듣고 그 가문의 후예이신 어느 할머니를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얼마전에 광평대군파종회에 족보관계로 하여 자문을 구한 적이 있었다.

 

사실은 직접 방문하여 족보에 대한 자문을 받을 생각이었는데,필자가 그로부터 며칠후에 정독도서관에서 그 할머니의 족보를 찾아 내면서 다시한번 광평대군과의 인연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미 칼럼에서 소개한 대로 고향 어르신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증조부에 대한 새로운 행적을 알게 된 것인데,이러한 어르신과 인터뷰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하여 주신 분도 광평대군파이시니,이런거 보면 필자와 광평대군파는 인연이 깊다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러한 광평대군에 대하여 보다 상세히 알고 싶은 마음에 지난 토요일에 다시 광평대군파종회에 전화를 하였으며,이번에 통화한 관계자는 매우 친절하게 광평대군에 대하여 소개를 하여 주어서 상세한 내력을 알 수 있었으며,그로부터 며칠뒤인 바로 오늘 광평대군의 사당터도 답사하고 이와 더불어 필자의 태어난 번지도 알게 되었으니,이를 일컬어 "일석이조(一石二鳥)" 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

 

그리고 광평대군파 할머니에 대하여 소개를 하였는데 며칠전 친정조카와의 통화를 통하여 현재생존해 계시며,건강하시다는 말씀을 듣고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필자가 이 할머니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이유는 당시 방골에 거주하였던 인물들이 거의 대부분 돌아가신 상황에서 방골에 거주하신 분으로서 어쩌면 증조부의 우두시술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가능성이 큰 분이기에 관심이 많았던 것인데,아직 뵌 것은 아니지만,일단 친정조카와 연락이 되었으니,조만간 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끝으로 필자는 광평대군의 유적과 관련된 지역에서 태어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며,더불어 그러한 광평대군의 후손들과 귀중한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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