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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것을 욕되게 하지 마라 (마태7:6)

140689 김종업 [rlawhddjq] 스크랩 2020-09-11

 

 

거룩한 것을 욕되게 하지 마라

(마태7:6)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혹자들은 이 말씀을 곡해하여 거룩한 하느님의 복음을믿지 않는 이에게 던지게 되면 오히려 해를 입게 된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는데그건 정말 얼토당토한 해석이며 오히려 그러면 전도를 어떻게 합니까 전도는 믿지 않는 이에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마태복음 6장의 염려에 대한 교훈에서 부터 출발을 해서 이해를 하면 훨씬 용이 합니다.

(마태 6:25~34)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무엇을 마실까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 들이지도 않는다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사람이 염려를 하기 시작한 것은 원죄로 하느님의 땅에서 축출을 당한 이후부터입니다인간은 원래 하느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서절대 순종의 자리에서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의 생명력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며 존재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은 포도나무이신 하느님에게 접붙임을 받은 가지들처럼 줄기이신 하느님께서 공급하시는 하느님의 생명력으로 존재하며 유지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특히 하느님의 백성은 절대 개별성을 챙기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아니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그러한 하느님을 머리로 한 집단적 존재거기에는 염려가 있을 수가 없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당신의 지혜와 능력으로순종의 자리에 내려가 있는 당신의 피조물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알아서 부으시는데 무슨 염려가 있겠습니까 나무가 틈실하면 가지는 아무 염려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피조물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가지의 자리를 벗어나원죄 후 스스로의 안전과 행복을 자기가 챙겨보겠노라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가지가 스스로 개별적인 포도나무가 되어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집단적 존재가 개별성을 챙기기 시작한 것입니다그때부터 인간은 자기들이 선악의 판단의 주체가 되어자신들이 가치와 힘이라고 합의를 한하느님이 아닌 이 세상의 것들로 스스로를 보호하고또한 그것들을 쟁취함으로 행복에 도달하려 시도를 좋은 재물과 인기와 건강과 도덕과 윤리 등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아무튼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안전과 행복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그래서 그러한 것들이 욕심만큼 채워지지 않을 때 염려라는 것을 하게 된 것입니다그러니까 염려는 자신의 영광 챙기기에 나선 타락한 개별자들에게 있어서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되는 것이며 개별자 자신의 뜻과 하느님의 뜻이 다름에서 오는 저주받은 감정인 것입니다그게 타락한 인간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창세전에 택해 놓으신 당신의 백성들을 그 인간의 나라에 계속 묻어두실 수가 없습니다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그 인간의 나라에서 건져내셨습니다그게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원래의 처음자리인 하느님에게 접붙임을 당한 집단적 존재로 회귀를 시켜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이 역사 속에서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삼는다든지안전의 방책으로 삼는다든지행복의 조건으로 삼는 등의 타락한 나라의 존재방식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어 마침내 모든 것을 다 부정하고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사는 자로 지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거기에서 염려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교회는 자신의 존재의 근거와 가치의 근거를 포도나무이신 하느님에게만 두는 자로 완성이 되어져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거기가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느님 나라와 백성들의 현세적 형국을 설명하시는 산상수훈에다가 염려의 이야기를 집어넣으신 것입니다너희들은 세상의 힘과 가치로 너희들의 인기와 명성을 챙기고너희들의 안전과 행복을 챙기는 그런 세상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지요우리 교회는 이제 세상의 힘과 가치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영광을 챙기는 이 세상 나라에서 벗어나하느님의 은혜로 경륜이 되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그러니 교회(우리)는 더 이상 이 역사 속에서의 자신의 가치 챙기기나존재 챙기기착함 챙기기에 조바심 낼 필요가 없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이제 이 세상의 먹을 것마실 것입을 것으로 염려하는 것을 그치라는 것입니다그리고 자신의 선악 판단에 의해 스스로의 안전과 행복을 챙기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닌 하느님의 은혜만을 붙드는 그 하느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그리고 아울러 우리 스스로 착한 일을 행하고선한 삶을 추구하여 만들어 내려고 하는인간 측에서의 의를 버리고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이 된 하느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로마3:21~22)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율법은인간들 스스로 자신들의 자존심과 영광을 챙기는 수단으로서의 인간들의 의인 것이고십자가가 바로 하느님이 준비하신 의라는 것입니다너희들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여너희들의 착한 일로 스스로의 인기와 평판과 명성을 챙겨 하느님 앞에 공로와 업적으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지 않으면 그 누구도그 어떤 착함과 업적과 공로를 내어 놓을지라도지옥의 유황불을 모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그게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는 주님의 말씀 속에 담긴 메시지입니다.

그렇게 여전히 이 세상의 힘과 권세로 자신의 안전과 행복을 챙기고스스로가 선악의 주체가 되어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열심에 의해 자신의 영광을 챙기려 하는 사람들로부터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심판입니다그래서 염려의 이야기 바로 다음에 심판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마태7:1~6) 1 “남을 심판하지 마라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3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어떻게 형제에게 가만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위선자야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심판이라는 것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게 된 타락한 인간들이 내어놓는자신들의 열심과 노력과 성과에 미치지 못하는 약하고 부족한 이들을 향한 독설이며자신들의 부족함을 감추고 스스로의 영광과 인기를 챙기기 위한 못난 개별자들의 폭력적 자구책입니다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의 세상에서는 하느님의 은혜가 아닌 스스로의 능력으로 자신의 안전과 인기와 명성과 영광과 행복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나 아닌 다른 이들이 나 자신보다 월등함을 소유하거나나 보다 더 잘난 자들이 나 자신에게 열등감을 주는 것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그리고 내가 성취해 놓은 업적에 미달하는 이들에게 나 자신을 자랑하여나의 영광을 취하고 싶어 하는 것이 타락한 아담들의 본성이기 때문에자기보다 연약하고 모자란 사람들을 향해 폭력적 판단을 거침없이 퍼붓는 것입니다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심판의 본질입니다. 하느님은 지금 모든 심판을 금하시는 것이 아닙니다하느님 자신이 지금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심판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경 여러 군데에 거짓 예언자나 거짓된 말씀에 대한 심판과 분별을 촉구하며그렇게 한 자들을 칭찬하는 대목이 많이 있지 않아요 따라서 성경이 금하는 심판이란자신의 영광을 챙기기 위한 인간 측의 선악 기준에 의한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영광을 무시하고 자신의 영광을 챙기려는세상의 아담 무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자신의 영광을 챙기기 위한 저주받을 심판밖에 할 줄 모르는 자들로 태어납니다거기에는 단 한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하느님으로 섬기며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사무엘하 12장에 보면 충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강간한 다윗이 나단의 이야기를 듣는 대목이 나옵니다

 

어떤 부자가 자신의 양도 많은데 이웃의 가난한 자가 자식처럼 키우던 단 한 마리의 양을 빼앗아 요리를 하여 자기 손님을 대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윗이 뭐라고 합니까 그런 놈은 당장 죽이고 양 새끼를 사배로 갚아주어야 한다고 노발대발합니다. 자기는 왕궁의 수많은 첩들이 있었음에도 충신의 아내를 강간하고 그것이 발각이 될까봐 충성된 장수를 죽여 버린 사람입니다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눈에 들어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합니다그리고는 겨우 티끌 같은 양 한 마리 빼앗아간 자에게 대노하는 것입니다그게 인간의 죄 성입니다그걸 자기 영광을 챙기기 위한 더러운 심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들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 기준과 근거로 삼는 것이 바로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율법을 모두 지켜내면 하느님 나라에 당당히 입성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하느님 이외에 하느님의 율법을 모두 지켜낼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율법은 자기를 죽여 원수를 살려내는 이웃사랑을 그 뿌리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자기 스스로 하느님처럼 되어 보겠다고 피조물의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인간들 중에 누가 그 사랑을 감히 흉내나 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오히려 이웃을 죽여 그 피로 자신의 배를 채워야 하는 좀비 같은 존재들인데어떻게 자기를 죽여 남을 살리는 하늘의 사랑을 합니까 그래서 그렇게 선한 율법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 하여 사는 인간들에게 주어지면 그 율법은 곧 자신의 훌륭함을 입증하고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데에만 쓰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그걸 지켜서 자신의 잘남을 입증해 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은 하느님이 마련하신 하느님의 의만을 의지 할 수밖에 없는지를 깨닫고 하느님의 은혜 뒤로 꼭꼭 숨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교만한 인간들은 최선을 다해 그 율법의 행위를 지켜내고 자신의 그 율법지킴을 근거로 다른 이들을 심판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입니다예수님은 그렇게 자신의 잘남과 자신의 인기와 자신의 명성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열심을 다해 지켜내는 율법지킴과그것을 근거로 내질러지는 타인에 대한 심판을 가리켜 위선이라고 일갈을 하십니다.

 

(마태7:1~5) 1 “남을 심판하지 마라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3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어떻게 형제에게 가만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요 다른 이들의 눈 속에 있는 티는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데 정작 자기 눈에 들어 있는 들보는 감지도 못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죄인들인 것입니다그러니까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 자이며얼마나 추악한 자인지를 깨닫지 못하고다른 이들의 약점이나 허점이나 티를 비판하여자신의 우월감과 영광을 챙기려 하는 이들이 바로 눈에 들보가 들어있는 자들이며그들을 가리켜 위선자들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그들이 세상 나라 사람들입니다주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의만으로 통치가 되는 나라입니다거기에서는 개별적 업적이나 공로를 절대 인정해 주지 않는 곳입니다하느님의 교회는 애초부터 집단적으로 구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개별적 의나개별적 공로나 업적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그래서 거기는 오로지 하느님의 은혜만이 오롯이 드러나는 그런 곳입니다그곳에 사는 모든 이들은 전부 하느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면목 없고공로 없는 이들입니다그 나라에 어떻게 타인을 향한 비판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모든 인간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루가18:11~12)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느님제가 다른 사람들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바리사이가 하느님께 기도를 합니다그런데 그가 어떤 사람이냐면 강도짓곧 욕심을 부리지도 않고불의부정직하지도 않으며간음을 하지도 않는 자입니다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단식을 하고 십일조를 꼬박 꼬박 드리는 사람입니다종교적으로도덕적으로 너무나 깨끗하고성실하며훌륭한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뭐가 잘못입니까 왜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의롭다 칭찬을 받지 못하지요 그가 한 모든 행위가하느님의 영광을 위하고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세리라는 자와의 비교 상대적 우월감을 누리고자신의 깨끗함과 종교적 열심을 자랑하기 위함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하느님의 노여움을 유발해 낸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자랑과 자신의 유익과 자신의 영광을 챙기기 위한 깨끗함과 종교적 열심은 반드시 다른 이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느님의 율법을 율법의 본질인 사랑과 은혜로 풀어내지 못하고자신을 자랑하고남을 비방하는 데에 쓰는 자들은 반드시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너희가 하는 심판으로 너희가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의 진의입니다예수님은 인간의 강도불의간음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하느님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티끌 같은 것입니다죄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통용이 되는 용어가 아닙니다죄라는 것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그래서 다윗이 밧세바를 강간하고충신 우리야를 죽여 버리고서도 내가 하느님께만 범죄 하였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심판하시는 근거는 자기 사랑이라는 완악함입니다강도불의간음 등은 하느님의 하느님 되심에 큰 위해가 되지 않습니다그러나 하느님을 무시하고 그 분의 영광을 탈취하여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자기사랑은 하느님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행위입니다하느님이 진노하시는 것은 바로 인간의 자기사랑과 자기영광 챙기기입니다그게 들보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러한 들보를 끼운 채 티끌 같은 것들을 가리키며 치를 떤다는 말입니다. 하루살이는 걸러내는데 정작 낙타는 삼키고 있는 꼴입니다.

 

(야고4:11~12) 11 형제 여러분, 서로 헐뜯지 마십시오형제를 헐뜯거나 자기 형제를 심판하는 자는 법을 헐뜯고 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그대가 법을 심판하면법을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법의 심판자가 됩니다. 12 입법자와 심판자는 한 분뿐이십니다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는 그분이십니다그대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한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우리더러 그 들보를 빼라는 말씀인가요 아닙니다우리가 스스로 우리 눈에 들어있는 들보를 빼낼 수 있다면 우리는 자력구원을 이룰 수 있는 전능자가 되는 것입니다우리 눈에 들어 있는 그 들보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직후 인간들의 눈에 자리 잡은 것입니다.

(창세3:5~7)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자 선과 악을 스스로의 기준으로 판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그게 타락한 인간의 밝아진 눈입니다그런데 주님은 그런 이들을 가리켜 본다고 하는 자들은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간 측에서는 자신들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되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데하느님은 그게 바로 눈먼 것이라고 반대로 말씀을 하십니다그렇게 인간들이 스스로의 기준으로 선과 악을 규정하고그것을 근거로 서로의 행위를 판단하고 비방하며그러한 것들을 잘 지키는 모습을 훌륭한 인간상으로 추앙하는 것 자체가 눈에 들보가 들어있는 자들의 삶이라는 것입니다그들이 위선자이며그들이 바로 개와 돼지라는 것입니다.

 

심판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던 주님이 갑자기 개와 돼지의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거룩한 것과 진주를 그들에게는 절대 주지 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여기에서 거룩한 것과 진주는 하느님의 은혜를 담은 은혜의 복음이며그러한 하느님의 은혜를 죄인들에게 전하러 오신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건 저의 추론이 아닙니다오늘 본문과 바로 밑에 붙어 있는 내용을 연결해서 보겠습니다.

(마태7:6~11)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7 “청하여라너희에게 주실 것이다찾아라너희가 얻을 것이다문을 두드려라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찾는 이는 얻고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구하라찾으라두드리라는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그리고 너희들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모두 줄 것이고찾아질 것이고열릴 것이랍니다개와 돼지들은 절대 거룩한 것과 진주를 받을 수 없습니다그런데 어떤 무리에게는 그 거룩한 것과 진주를 구하라고 하십니다그리고 그들에게는 반드시 그것을 주신답니다

병행구절이 있는 루가복음으로 가서 그 거룩한 것과 진주가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루가11:9~13)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청하여라너희에게 주실 것이다찾아라너희가 얻을 것이다문을 두드려라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찾는 이는 얻고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거룩한 것과 진주가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그렇다면 누구나 열심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성령이 주어질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그렇다면 주님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이 이야기의 핵심은 구하라찾으라두드리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신다에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그 구하라의 구절들은 그 밑에 붙어 있는 황금 율이라 불리는 내용과 함께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7:12)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성령을 구하라그러면 줄 것이다라고 하신 주님께서 갑자기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어떤 내용을 연결시키시는데 그게 소위 황금 율그리스도교 윤리의 황금 같은 근본이라는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으로 연결을 시키십니다이게 연결이 되세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앞의 원인과 뒤의 결과를 일관성과 통일성으로 연결을 하는 접속사입니다따라서 그러므로라는 단어가 나오면 앞의 내용이 어떤 것이며뒤의 결론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잘 구별해야 합니다 12절을 올바로 해석을 하기 위해 그러므로의 앞부분즉 원인의 부분을 찾아내야 하는데거기에 유용한 열쇄가 율법과 예언서라는 어구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는 말씀이 바로 율법이요 예언서라는 말씀인데그 율법과 예언서에 관한 내용이 본문 바로 앞인 마태복음 5장에 나옵니다.

 

(마태5:17~20)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는 중간에 내가 율법과 예언서를 완전케 하러 왔다고 말씀을 하시면서그렇게 당신처럼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버리지 않고 행하며 가르치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예수님이 모든 율법을 다 행하시고 완성하셨으며 가르치셨습니다오직 그 분만이 큰 자입니다그리고는 이어서 너희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십니다그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율법지킴이라는 것을 근거로 한인간적 의로는 절대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그래서 천국백성들에게는 다른 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다른 의가 뭐라고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그 은혜의 의를 전가 받은 자만이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그리고는 여러 가지 행함에 대한 교훈을 쏟아 놓으십니다살인에 대한 교훈과간음에 대한 교훈이혼맹세원수사랑구제기도, 단재물하느님나라와 하느님나라의 의염려비판그리고 거룩한 것과 진주를 구하는 문제 등을 나열하시고는, ‘그러므로로 결론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이것이 율법과 예언서다.’

 

그러니까 앞에 장황하게 나열되어 있는 예수님의 명령이 모두 뭐라는 것입니까 율법과 예언서에 의해 요구되었던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5장 17절에서 그 율법과 예언서를 누가 완성하신다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인 것입니다예수님이 다 지켜내셨고 그 분이 지키셔서 완성하신 율법과 예언서를 우리에게 그대로 전가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바로 그 일이 남에게 대접 받기를 원하여 먼저 남을 대접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로마10:2~4) 2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보다시피 하느님의 의를 모르는 인간 측의 열심은 전부 헛 것입니다예수님은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쉬운 말로 율법으로 의롭게 되던 시대를 예수가 종지부를 찍어 버리셨다는 말씀입니다이제 열심히 율법을 지켜 자신의 의를 쌓는 시대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그분이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 하셨고 율법의 시대를 마치셨으니까요.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이고형제를 보고 밥통이라고 불러도 지옥 불에 떨어진답니다우리는 도저히 그 주님의 요구들을 지켜낼 재간이 없습니다어떻게 오른편 뺨을 때린 사람에게 왼편 뺨을 또 내 놓습니까 어떻게 강제로 오리를 가자고 우기는 사람과 십리를 함께 가줍니까 어떻게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합니까 어떻게 하늘에만 재물을 쌓으면서 살며어떻게 먹을 것마실 것입을 것으로 염려를 안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 세상 나라에 살면서 은혜로만 사는 하느님 나라를 먼저 구하며어떻게 우리를 부정하고 부인하는 하느님의 의만을 구하면서 살아요 어떻게 심판을 안하며어떻게 성령만 구하며 삽니까 그게 다 율법과 예언서의 요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과 예언서는 모두 우리 측의 가능성을 기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필연성을 주지시키고 확증하는 것입니다그 율법과 예언서를 예수가 다 이루시어 우리에게 거저 전가시켜 주셨습니다그게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신예수님의 일즉 율법과 예언서였다는 말씀입니다그래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이것이 율법이요 예언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황금율내가 남에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대접해야 한다는 용의주도함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그런 건 이 세상에서도 비난을 받을 짓입니다그건 순수한 대접이 아니라 음흉한 보상과 반대급부를 전제한 불쾌한 대접이잖아요 어떻게 대접을 받기 위해서 대접을 합니까 그게 무슨 대접입니까 그런데 율법과 예언서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시기 위해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접해 주셨나요 당신의 목숨을 바쳐 우리의 죄를 없애시고당신이 평생 지키신 완벽한 율법지킴의 삶을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셨습니다그게 예수께서 완전케 하신 율법과 예언서입니다. 

 

(마태22:36~40) 36 “스승님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율법과 예언서의 강령을 주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하느님을 목숨 걸어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그게 십자가입니다목숨을 바쳐 하느님을 사랑하느라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고당신의 몸처럼 원수를 사랑하느라 원수의 독배를 대신 마신 것입니다그게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대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과 예언서의 성취는 대접을 해 준 자들에게 대접을 받기 위한 성취입니다그렇다면 우리가 내어 놓아야 할 예수님에 대한 대접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다른 것 없습니다그냥 예수님의 은혜를 덥석 받아들이는 것입니다그게 예수님에 대한 대접입니다.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이게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예수님의 대접이라면 우리가 주님께 내어 놓아야 할 대접은 이러한 것입니다.

 

(요한1:11~12)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보다시피 우리가 예수님에게 내어 놓아야 할 대접은 그 분의 은혜와 공로를 믿어드리는 것입니다. 그 분의 은혜를 전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우리의 행위나 우리의 공로를 전면 부인한다는 말입니다그리고 우리의 소원과 기대가 버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그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대접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거부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야망과 세상 적 소원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말이지요그게 우리 주님에 대한 푸대접인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먼저 대접하신 예수님에게 내어 놓아야 하는 대접은우리 자신의 모든 능력과 가능성과 행위를 전면 다 부인해 버리는 것입니다그게 하느님 나라 백성의 온전한 생활양식입니다예수가 그 하느님 나라 백성의 생활양식을 이 세상에서 그대로 살다가 가신 것입니다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신앙을 내려놓고예수에 대한 신앙으로 돌아서기로 한 것입니다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예수를 대접한 것입니다그런데 그 대접은 한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역사와 인생 속에서 완성되어져 가는 대접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힘을 기각하고하느님 이외의 것에 가 있던 내 마음이 하느님께로 돌이키는 자기부인의 삶이 우리 삶 속에 속속 나타나는 것입니다한 마디로 세상에서의 정 떼기 과정이 모두 예수님을 향한 대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먼저 자기의 모든 능력과 가능성과 지혜를 부인하고 하느님이 부으시는 것으로만 살다가 가셨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은 반드시 우리를 당신과 같은 삶을 사는 자로 만들어 내시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먼저 대접을 하시고 반드시 대접을 챙겨 가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남에게 대접을 받기 위해서 남을 대접한다.’라는 다소 엉뚱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이렇게 그리스도는 우리를 낳고(대접하고우리는 그리스도를 낳는 것입니다그게 우리가 내 놓아야 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대접인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십자가로 우리 성도를 창조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창조가 되는 것입니다그런데 그렇게 창조가 된 하느님의 백성들은 역사와 인생 속에서그리고 육신 속에서 그리스도를 낳게 됩니다그래서 요한묵시록에서 여자인 교회가 예수를 낳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해 먼저 하느님 백성 대접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에게 믿음이라는 대접을 내어 놓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믿음은 전적인 신뢰요전적인 의뢰이며전적인 의존을 말합니다. 그렇게 예수 믿는 믿음이라는 것은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부정하고 자신의 모든 행위와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므로우리는 점점 이 율법에 의해 모든 것이 판단이 되고 서열이 매겨지는 세상 나라가 아닌은혜에 의해 선악이 구별되는 하느님 나라를 구하게 되는 것이고그 어떤 공로도 없이 선물로만 받게 되는 하느님의 의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따라서 그들은 이제 율법에 의한 선악의 원리로 다른 이들을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자신들도 똑같은 마귀의 세간 노릇을 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성도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율법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영광과 인기를 위해남을 심판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수시로 폭로 당하게 됩니다그들은 이제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폭로 당하면서 여전히 자신의 눈에 들보가 들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그리고 자신들은 지금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종교행위와 착한 일과 율법 지킴의 행위를 근사하게 포장하여 하느님 앞에 자랑거리로 내어 놓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한 마디로 신이 위선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느님의 폭로에 의해 자신의 눈에 교활한 위선의 들보가 들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것을 들보가 빠졌다소경이 눈을 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러니까 들보가 빠지는 것은 우리 자신이 깨끗하고 순결하게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이 아니라우리 눈에 들보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바로 그 지점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거기에서 자기부인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개와 돼지는 거룩한 것진주즉 하느님의 은혜의 선물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그게 왜 중요한 것인지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요즘은 애견인들이 많아서 실제로 개의 생일에 개에게 보석 목걸이를 선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개들이 그 보석의 귀중함을 압니까 모릅니다같은 형국으로 개와 돼지들은 하느님의 은혜라는 보석을 알아보지 못합니다왜냐하면 개와 돼지에게는 개와 돼지가 추구하는 행위와 율법이라는 또 다른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그들에게는 여전히 세상 나라가 최고이며하느님의 의가 아닌 자신들의 의가 더 가치가 있습니다그래서 십자가와 은혜라는 하느님 나라의 진주가 그들 앞에 떨어지면 그들은 자존심이 상해서 그 진주를 던진 이를 물어 뜯습니다그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율법을 열심히 지키던 자들에게그거 아니니까 회개하고 나를 믿으라고 했더니 자존심이 상해서 그 분을 죽여 버렸습니다그들이 개돼지라는 것입니다.

 

(시편49:20) 20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모인 데로 가서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라. 21 영화 속에 있으면서도 지각없는 사람은 도살되는 짐승과 같다.

그런데 율법과 예언서를 예수가 완성하셨습니다그래서 개와 돼지에게 거룩한 것과 진주가 폭력적으로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하느님의 은혜가 성령과 함께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눈에서 들보가 빠진 자들이 되는 것이며그러한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비판밖에 할 줄 모르는 자들이며여전히 은혜라는 보석을 갖고도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모르는 개나 돼지라는 것을 자각하고 인정하게 됩니다그래서 그들은 또 다시 은혜와 성령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들이 구하고찾고두드리는 것은 반드시 주신다는 겁니다왜요 이미 들어와 있으니까요.

구하라찾으라두드리라의 의미를 확실하게 아시겠지요 그렇게 우리 성도는 하느님의 은혜를 떠난 우리 자신이 짐승이었으며지금도 여전히 그 개돼지의 습성은 우리 안에 남아서 수시로 우리를 개돼지로 살게 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것에 치를 떠는 자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거기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를 놓게 되고하느님의 은혜를 꼭 붙드는 자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코헬 3:17~19) 17 나는 속으로 말하였다. ‘의인도 악인도 하느님께서는 심판하시니 모든 일과 모든 행동에 때가 있기 때문이다.’ 18 나는 인간의 아들들에 관하여 속으로 생각하였다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어 그들 자신이 다만 짐승일 뿐임을 깨닫게 하신다고. 19 사실 인간의 아들들의 운명이나 짐승의 운명이나 매한가지다짐승이 죽는 것처럼 인간도 죽으며 모두 같은 목숨을 지녔다인간이 짐승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모든 것이 허무이기 때문이다.

어떠세요 하느님께서 우리 인생의 목적을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자기가 짐승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 함이랍니다한 마디로 자신은 하느님의 은혜가 없었으면 개나 돼지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죽은 흙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주시는 믿음의 선물이 없이는 그걸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자신이 신이 되어 살고 있는 이 세상 나라에자신이 개나 돼지보다 못한 존재라는 자각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들이 진짜 개이고그들이 진짜 돼지입니다그런데 그러한 개와 돼지들 중 한 무리에게 하느님의 은혜가 부어졌습니다그 은혜 받은 개와 돼지들은 자신들의 원래 정체처음 자리가 개 와 돼지 같은 죽은 흙임을 절절하게 자각하게 됩니다그들에게 남을 향한 심판이 있을까요 아울러 다른 이들의 업신여김이나 무시 등이 그렇게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겨질까요

성도는 개와 돼지에서 멋진 슈퍼맨이나 배트맨으로 능력이 업그레이드되는 자가 아닙니다성도는 오히려 자신이 개와 돼지였고지금도 개와 돼지의 마귀적 속성을 여전히 간직한 자라는 것을 올바로 자각하며 하느님의 은혜와 자비를 붙들고 겸손한 피조물의 자리로 내려가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분명 거룩한 진주참된 하늘의 보석이 있는데 우리의 눈에는 들보가 끼어 있어서 그 보배를 더러운 돼지우리에 쳐 박아 버리는 삶을 수시로 살고 있음을 주님의 말씀 앞에서 폭로 당하세요그리고 여전한 나의 개돼지 됨에 통곡을 하십시오그러나 그 자리에서 그대로 포기하지 마시고, 그 개와 돼지를 덮으시는 예수님의 풍성한 은혜의 장으로 나아가시란 말입니다. 자꾸 개돼지 그러니까 기분 나쁜가요

 

(2베드2:22) 22 “개는 자기가 게운 데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돼지는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창에 뒹군다.”는 속담이 그들에게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딱 우리 모습 아닙니까 하늘의 의로 닦아주었다고 하는데도 또 자기가 싸 놓은 똥통으로 들어가 버리고진짜 하늘의 양식을 풍성하게 차려주어도 자기가 토해 놓은 더러운 세상의 힘을 주워 먹고 있는 우리 모습이잖아요그런데도 우리가 개돼지가 아니란 말입니까 우리 좀 전에 전도서(코헬렛)에서 읽었잖아요 우리 인생의 목적은 우리가 짐승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그런 존재임을 확실하게 깨닫고 하느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 것이지우리의 업적과 공로와 노력과 열심을 동원해 하느님의 환심을 사는 자가 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마태15:25~28)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그렇습니다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성도는 자신이 개라는 것을 통렬하게 자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그리고 자신은 주인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감지덕지하며 받아먹으며 살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매순간 배워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찾고두드리게 되는 것이며이미 구하여 얻으시고당신의 백성을 다 찾아내셨으며그들을 품에 안고 천국 문을 두드려 열어 버리신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 거룩한 하느님 나라로 입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뭐였습니까 다 이루었다입니다조금 남아 있으니 너희들이 다 완료하고 올라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다 이루었으니 그것만 믿고 달려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전히 개처럼 돼지처럼 진주를 알아보지 못하고그 거룩한 하늘의 보석인 복음을 무시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들에게는 절대 진주를 던지지 말라고 하셨던 하느님께서 당신의 무한하신 은혜의 보자기를 펴시어 우리를 덮으시고 여전한 개와 돼지를 하늘의 왕자와 공주로 바꾸어 주셨다는 이 감격적인 은혜의 현실에 행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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