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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9.11)

140685 김중애 [ji5321] 스크랩 2020-09-11

2020년 9월 11일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제1독서 1코린 9,16-19.22ㄴ-27
형제 여러분, 16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17 내가 내 자유의사로 이 일을
 한다면 나는 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한다면 나에게
직무가 맡겨진 것입니다.
18 그렇다면 내가 받는 삯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것에 따른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입니다.
19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2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24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이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25 모든 경기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화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27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복음 루카 6,39-42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중학교 때, 학교 옆에 커다란
시립 도서관이 생겼습니다.
공부하는 곳이 학교와 집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선택지로
‘도서관’이 더해진 것입니다.
더군다나 도서관의 지하 매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음식을 팔고 있었습니다.
 ‘컵라면’. 지금은 흔하고 또 종류도
많았지만, 당시에 컵라면은 정말로
새롭고 놀라운 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도서관에 가는 것을
더욱더 좋아했습니다. 집이나
 학교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공부하다
보니 집중도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기말고사 바로 전날, 도서관에 갔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제 친구가 보이는
 것입니다. 도서관 구석에서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있더군요.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모른 척을 했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이 친구에게
“공부 많이 했어?”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이 친구는 “나 어떻게 하지?
온종일 텔레비전만 봤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봤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말했을까요?
“나도 그런데. 나도 텔레비전
보느라 공부 하나도 못 했어.”
왜 서로 거짓말을 했을까요?
시험 망쳤을 때의 보험을 미리
 두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시험성적이
나쁘면 창피하니까 말이지요.
 바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어서 때로는 거짓말도 하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먼저 바라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낮추고 나를 높이려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에서 나오는
판단은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복음 말씀은 어제의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이어지는 비유들로, 주님의 뜻을
 잘 드러내 줍니다. 우리가 남을
심판하면 최후의 심판 때 같은
모습으로 단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을 심판하려고 할 때,
 나 역시 같은 죄를 어쩌면 그보다도
 더 큰 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단죄받지 않을 것입니다. 남을
심판하려는 마음조차 먹지 말라고
주님께서는 단호하게 우리를 설득하십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시선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큰 잘못들과
거역하는 욕정들에서 나 자신부터
건져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에야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을
바로 잡을 자격이 생기지 않을까요?
오늘 독서의 사도 바오로처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힘쓸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부터
바로 잡은 사람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좌절의 시간은 잊어라.
그러나 그것이 준
교훈은 절대 잊지 마라.
(하버트 S.캐시)
알고 싶어요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깨어 님 얼굴 본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날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그대 생각하다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바쁠 때 전화해오 내 목소리 반갑나요?
내가 많이 어여쁜가요? 진정 날 사랑하나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얘기를 해 주세요. 
고등학교 때 많이 듣고 또 많이
불렀던 가수 이선희 씨의 ‘알고 싶어요’라는
노래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생기면서 알고
싶은 것이 많아지고 궁금해진다는 내용이지요.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 궁금한 것은 없나요?
그냥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입으로만 믿는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알고 싶네요.
(수원교구 요당리 성지의 성모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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