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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8. 다윗의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님 강론-

139194 이복선 [lbs] 스크랩 2020-06-30

 

 

 

“모든 이가 종종 일관성을 상실하는 죄를 짓습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고결함을 줍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몇 달 전부터 교황청 사도궁 도서관에서 인터넷 생중계로 수요 일반알현을 진행해 오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님과의 관계를 보증하는 기도에 시간을 할애하라고 초대했다. 교황은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을 이어가면서 전통적으로 “시편을 쓴 위대한 예술가”라고 불리운 다윗에 초점을 맞춰 설명했다. 이날 오전에 있었던 수요 일반알현은 7월 여름 휴가를 앞둔 마지막 일반알현이며, 오는 8월 5일 수요일에 재개한다. 주일 삼종기도는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번역 김호열 신부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8. 다윗의 기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기도에 관한 교리 교육 여정에서 오늘 우리는 다윗 왕을 만납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느님의 큰 사랑을 받은 그는 특별한 사명을 위해 선택되었으며, 하느님 백성과 우리의 믿음의 역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복음서 안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다윗의 아들”이라고 불리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다윗처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약속에 따르면 다윗의 후손 중에서 메시아가 나옵니다. 다윗은 온전히 아버지께 순종하고,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충실히 실현하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왕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79항 참조). 

 

다윗의 이야기는 그가 아버지 이사이의 양떼를 치던 베들레헴 주변의 언덕에서 시작합니다. 그는 많은 형제들의 막둥이로, 아직 소년이었습니다. 예언자 사무엘이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새로운 왕을 찾으러 갔을 때, 다윗의 아버지는 마치 자신의 어린 아들을 잊은 것처럼 보입니다(1사무 16,1-13 참조). 그는 들판에서 일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바람, 자연의 소리들, 태양 빛의 친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의 영혼을 위로할 유일한 친구는 비파였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혼자 비파를 연주하고, 자신의 하느님께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또한 무릿매(새총)를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습니다.

 

다윗은 무엇보다도 목동입니다. 그는 동물들을 돌보고, 위험에 처한 동물들을 보호하고, 동물들이 먹을 양식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 백성을 돌보아야 했을 때에도, 양을 칠 때와 크게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목동의 모습이 자주 반복되어 나옵니다. 예수님 또한 자신을 “착한 목자”로 정의하십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도둑의 행동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시고, 양들을 인도하시고, 양들 각각의 이름을 아십니다(요한 10,11-18 참조). 

다윗은 자신의 첫 번째 직업(목동)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따라서 예언자 나단이 그의 심각한 죄에 대해 책망했을 때(2사무 12,1-15 참조), 다윗은 자신이 나쁜 목자였고, 애지중지하는 유일한 양을 가진 이에게서 그 양을 약탈했고, 자신은 더 이상 겸손한 종이 아니라 권력에 찌들고 죽이며 약탈하는 약탈꾼이라는 것을 즉각 이해합니다.

 

다윗의 소명에 내재한 두 번째 특징은 바로 시인으로서의 영혼입니다. 이 작은 관찰을 통해 우리는 다윗이, 사회에서 오랫동안 고립되어 살도록 강요된 사람들과 같이, 저속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반면, 그는 음악과 노래를 좋아하는 감수성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하프는 항상 그와 함께 했습니다. 때로는 하느님께 기쁨의 찬가를 불러 드리기 위해(2사무 6,16 참조), 다른 때는 슬픔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위해 하프를 연주했습니다(시편 51,3 참조).

 

그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조용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눈길은 실타래처럼 풀리는 일들 뒤에 있는 더 큰 신비를 포착했습니다. 기도는 바로 그곳에서 나옵니다. 곧, 삶은 불시에 우리를 잡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시와 음악, 감사와 찬미, 혹은 눈물과 간청을 불러 일으키는 놀라운 신비라는 확신에서 나옵니다. 한 사람에게 시적 차원이 없을 때, 말하자면 시를 누락했을 때, 그의 영혼은 절뚝거립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다윗을 가리켜 시편을 쓴 위대한 예술가라고 말합니다. 시편들은 그 시작 부분에 자주 이스라엘 왕과 그의 삶의 크고 작은 고귀한 사건들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합니다.

 

다윗은 좋은 목자가 되는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이 임무에 부응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역사와 관련해 중요한 점은 또 다른 왕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그 왕을 선포하고 예표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다윗을 보며, 다윗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그는 성자인 동시에 죄인이었으며, 박해를 받았으나 박해자이기도 했으며, 희생자인 동시에 가해자였습니다. 이는 모순입니다. 다윗은 이 모든 것이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또한 종종 우리 삶에서 반대되는 특성이 있음을 봅니다. 삶의 드라마 안에서 모든 사람은 종종 일관성을 상실하는 죄를 짓습니다. 다윗의 삶에는 단 하나의 핵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일치를 가져오는 것, 곧 그의 기도입니다. 그것은 결코 꺼지지 않는 목소리입니다. 성자인 다윗은 기도합니다. 죄인인 다윗도 기도합니다. 박해 받은 다윗은 기도합니다. 박해자인 다윗도 기도합니다. 희생자인 다윗은 기도합니다. 가해자인 다윗도 기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삶의 핵심입니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결코 꺼지지 않는 목소리입니다. 기쁨의 소리나 슬픔의 소리를 취하는 목소리입니다. 항상 똑같은 기도입니다. 단지 멜로디만 바뀌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윗은 모든 것, 곧 기쁨과 죄, 고통과 사랑, 우정과 질병을 하느님과의 대화 안으로 들어가게 하도록 우리를 가르칩니다. 모든 것은 언제나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계시는 “당신(하느님)”께 드리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고독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기도의 힘입니다. 인생에서 기도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모든 사람 안에 기도의 힘이 있습니다. 기도는 여러분에게 고결함을 선사합니다. 다윗은 기도하기 때문에 고결합니다. 가해자가 기도하고 회개하면, 기도 덕분에 그에게 고결함이 다시 되돌아옵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고결함을 줍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로 들어가는 것을 보증합니다. 하느님은 삶의 수많은 좋거나 나쁜 시련 중에 있는 인간 여정의 진정한 동반자이십니다. 기도가 항상 그렇게 해줍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저는 두렵습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주님, 저를 용서하십시오.’ 다윗이 박해를 받고 도망쳐야 했을 때도 하느님께 대한 그의 신뢰는 굳건했으며, 아무도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만약 나의 하느님께서 나를 이처럼 비참하게 하신다면, 이로써 그분은 당신이 하고 계신 바를 알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고결함이 우리를 하느님의 손에 내어 맡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상처입은 (하느님의) 그 손이 우리가 가진 유일하게 안전한 손입니다. 

 

 

출처: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0-06/papa-francesco-udienza-generale-preghiera-davide.html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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