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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6일 (금)부활 제4주간 금요일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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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열한번째/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133082 김종업 [rlawhddjq] 스크랩 2019-10-10

 

열한번째날(2019.10.10)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골로 2.12-15)

(골로 2.12-15)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15 권세와 권력들의 무장을 해제하여 그들을 공공연한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을 이끌고 개선 행진을 하셨습니다. 아멘

 

오늘 본문에 바로 그 채무증서(빚 문서)가 등장합니다. 14절에 나오는 의문의 쓴 증서가 바로 법적인 효력을 가진 채무증서라는 의미에 케로그라폰 토이스 도그마 신이라는 단어에요 그 채무증서는 바로 우리의 빚이 적혀 있는 빚 문서였어요. 내가 무슨 빚을 진적이 있었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 계실텐데 그런데 그 채무증서를 십자가에 못박혀 없앴다는 거에요 따라서 그 누구도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진 빚에 대한 상환요청 즉 고소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말이에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의 그 빚 문서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채무증서가 존재했다라는 것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빚을 졌었다라는 말인데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어떤 빚을 졌던 것일까요 그리고 그 빚이 얼마나 큰 빚이기에 예수님의 목숨이 그 빚에 상환비용으로 지불이 되어야 했던 것일까요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라는 구절이 나오죠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에 형상을 좇아 지어졌어요. 인간만 이 세상 그 어떤 짐승도 그 어떤 피조물도 하느님에 형상을 따라 지어진 것이 없어요 천사도 마찬가집니다 하느님에 형상 아니에요 인간이 하느님에 형상으로 지어졌다고 하는 말은 오직 인간만이 도덕적으로 책임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를 해요 그래서 인간을 도덕적 피조물 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존재라는 것이 어떤 대상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맺은 대상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성향과 미덕을 올바로 발휘하는 상태를 도덕적 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의 형상으로 지어진 도덕적 피조물인 인간들에게만 당신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에게 요구되는 하느님 나라의 성향과 미덕에 관한 지침을 주셨어요 함께 더불어서 어우러져서 행복하게 살자는 거에요 그래서 인간들에게만 함께 더불어 살때 필요한 성향과 미덕에 대한 지침을 줬단 말이에요 그걸 율법이라고 하는 거에요.

율법은 성문화되어서 인간들에게 주어지기 전에 인간들에 마음속에 양심이라는 것으로 존재하기도 합니다 (로마서 2장참조) 그러니까 율법이란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가 하느님과의 관계속에서 하느님에 형상에 속한 성향과 미덕으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로 살수있는 삶에 원리와 규범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게 인간에게 적용되어도 괜찮아요 그런고로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는 그 율법을 쫓아 살때 가장 행복할 수 있어요 신약으로 가면 예수님께서 그 율법을 단 두 조항으로 축약을 시켜 주죠

(루가복음 1025-27)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킨다는것 즉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속에서 최상의 행복을 누리며 살기 위해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사랑하라고 하신 이웃을 사랑하는 거에요 그럼 율법지키는 거에요 그게 그때 인간은 가장 행복할 수 있어요 하느님을 자유로운 사랑으로 사랑할 때 그리고 내 이웃을 자유로운 사랑으로 사랑할 때 그들이 나에게 뭘 잘해줘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유로운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을때 그때 인간은 가장 행복하도록 지어진 거에요

그런데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순종을 바탕으로 유발이 되는 거죠 왜냐면 순종하지 않을때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있을 수 없잖아요 따라서 사랑으로 축약이 되는 율법 지킴 이라는건 순종이라는 다리를 거치지 않고는 절대 불가능한 거에요 그래서 하느님은 최초의 율법을 선악과를 먹지 말아라라는 순종에 명령으로 주신 거에요 그게 최초의 율법이거든요 이렇게 율법은 도덕적 피조물인 인간이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그 관계에 대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성향과 미덕에 관한 것들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을 말해요 그런데 성경은 타락한 인간이 그 율법을 지켜서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속에서 도덕적 존재로 절대 살 수 없다 라고 명시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도저히 인간을 사랑할 수 없고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타락이라는 것 자체가 곧 불순종이고 불순종은 율법에 반대편에서 율법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로마서 319절 보세요 19 우리가 알다시피, 율법이 말하는 것은 모두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래서 모든 입은 다물어지고 온 세상은 하느님 앞에 유죄임이 드러납니다.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심판에서 건질라고 율법을 준게 아니라 심판아래 있게 할라고 율법을 줬데요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것 이외에 다른 것을 할 수 없다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타락한 상태에서 인간들에게 주어진 율법은 그것을 받은 자들이 그것을 잘 지켜내어서 행복에 도달하도록 주어진게 아니라 죄인들에 무력함을 폭로하기 위해 주어진 거에요 더러운지를 율법을 던져줌으로 해서 깨닫게 해주는 거에요 우리는 율법을 알지만 율법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양심이라는 것에 의해서 이세상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그들은 알아요 그게 율법에 역할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과 양심이라는 건 너희들이 얼마나 더러운 존재인지를 확인하라고 주신 거에요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양심좀 있어라 도둑놈아 이렇게 이야기해서는 안되요 양심 가지고 너희들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달으라고 줬데니깐요 그 양심가지고 깨끗이 살라고 준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아직 여러분은 율법 아래에 있는 그 육신을 따라 더 많은 삶을 살잖아요 그러니까 함부로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있다, 나는 사랑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 하시면 안되요 아직까지 우리는 못합니다.

자 그렇게 살도록 지어진 자들이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가장 행복하도록 지어진 자들이 그것과 정 반대로 살고 있음을 고발하는 채무증서 그것이 바로 율법인 거에요 왜 하느님이 십자가에서 그 채무증서 율법을 도말했는가 잘 배우란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니 이웃을 사랑하라로 요약이 되는 하느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나도 내 힘으로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나 자신만을 사랑하고 나에 배만을 채우기 위해서 살아가면서 그 율법에 의해 우리에 죄인됨을 폭로당할때요

마귀가 마치 채권자처럼 채무증서를 드리밀면서 우리를 고소하는 거에요 너 이거 어겼지 저거 어겼지 이렇게 채무증서 율법을 드리민다 말이에요. 우리는 죄를 지을때 마다 하느님께 빚을 지는 거구요 .. 하느님이 하느님에 형상으로 지어놨는데 그 하느님에 형상대로 살아야 되는 인간들이 죄를 짓는 다는건 하느님에게 빚을 지는 거에요 그게 채무입니다 우리는 빚을 지고 있는거구 그게 죄라는 것을 들어내는게 바로 율법인데 그 율법이라는 채무증서를 마귀가 쓰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에요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두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없어졌다는 거에요 그거 십자가에 못 박아서 없애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 율법이라는 채무증서를 십자가로 없애 버리셨다라고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어요 성경이,

그 말은 예수로 하여금 율법을 모두 완성케 해서 우리에게 전가시켜줌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율법이 우리를 고소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씀이에요 그게 율법에 마침이 되신 예수라는 어구가 가진 진의입니다 따라서 이제 마귀는 완전히 그 율법이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어서 우리를 고소할 수 없게 되어 버렸어요 성도를 향한 마귀의 유일한 무기가 그거였단 말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그걸 없애버리셨어요

고린도전서 1555절 보세요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마귀는 인간을 고소하고 죽음으로 끌고 갈수 있는 자신에 유일한 무기였던 율법, 채무증서를 하느님께 빼앗겨 버렸어요 그래서 그 채무증서를 가지고 죄를 입증하여 성도를 죽음이라는 독침으로 쏘려 했던 마귀의 그 모든 궈계가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무력화 되어 버린 거에요 우리 아버지가 빚을 모두 청산해 버리시고 채무증서까지 빼앗아서 전부 십자가로 불태워 버리셨어요 여러분은 어떤 빚도 없어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따라서 여러분이 지금도 율법에 얽매어서 성도는 안식일을 꼭 지켜야 한다느니 절기를 지켜야 한다느니 주일 미사를 꼭 해야 한다느니 착하게 살지 않으면 구원이 취소될 수도 있다느니 그런 가르침에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고 두려워하면 안되는 거에요 그들을 율법주의자 라고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렇다고 주일날 성당 함부로 막 빼먹고 놀러가라 그러는 이야기 아니에요

아에 채무증서가 없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그 누구도 그 어떤 것으로도 여러분을 고소할 수 없어요 상습적으로 교통위반을 하던 사람에게 교통법규가 모두 없어졌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는 여전히 교통 위반을 하고 있는데 법이 없어져서 그를 범법자로 고소할수가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바로 그러한 원리인 거에요

여러분을 향해 채무증서로 준비되어 있던 율법이 십자가에서 죽어버렸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되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며 도둑질을 해도 되요 원리상으로는 잘 이해하셔야 됩니다 저는 지금 방종을 조장하는게 아니에요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해방이 그 자유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을 고소할 법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 어떤 파렴치한 죄를 범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서 기소가 되지 않아요

이 말은 복음안에서 우리 성도들이 어떤 자유를 얻게 되었는지를 잘 나타내준 말이에요 그러나 아울러 그렇게 자유롭게 된 자들이 반드시 도달해야 하며 도달하게 될 사랑과 순종이라는 목적지를 함께 제시해 주고 있는 거에요

거짓말을 해도 채무증서가 날라오고 화를 내도 채무증서가 날라와요 부부싸움을 해도 채무증서가 날라오고 자식들에게 짜증을 내도 채무증서가 날라와요 마귀는 채무증서를 죄책감이라는 그럴싸한 가면을 씨워서 우리에게 드리 밀어요 그런데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때마다 불안에 떨고 그때마다 두려움에 떨면서 혹시 하느님이 벌을 내리셔서 내 구원을 취소해 버리시는건 아닐까 혹시 난 가짜 아닌가 이렇게 불안해 하고 두려워 한단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주의자들에게 뭐라 그랬죠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이야기 했단 말입니다 율법주의자들에게 그들이 무슨 죄를 지어서 대단한 죄를 지어서 거짓말을 하고 간음을 하고 살인을 하고 그래서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이야기 한게 아니라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그렇게 열심히 깨끗하게 살았더니 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이야기 했대니깐요 오히려 간음한 여자와 살인자들은 내 친구들아 이리로 와라라고 이야기 했어요 율법을 지키겠다고 깨끗하게 착하게 열심히 산 사람들에게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이야기를 해 놓고 진짜 살인을 저질르고 진짜 간음을 한 여자는 내 친구들아 이리와 나와 함께 먹자라고 이야기 했다 말입니다 잘 분별하셔야 되요 복음이 뭔지

이 시대는 너무 불명확하여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저렇게 살아야 되는지 뭐가 복음인지를 확실히 정의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살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요한사도가 그의 서신서에서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다라고 까지 이야기를 한거에요 죄책감 갖지 말라는 거에요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거에요 하느님의 은혜앞에서 뻔뻔스러워지라는 거에요

갈라디아서 221절 보세요 21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통하여 의로움이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착하게 사는 것으로 천국 간다면 예수는 헛되이 죽은거다라고 이야기 하는 거에요 우리가 자꾸 우리의 실수나 넘어짐으로 불안해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두려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거에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채무증서를 없애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거에요 더 뻔뻔스러워지세요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저주하고 부인한 베드로가 나중에 슬금슬금 기어와서 제가 주님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잖아요요렇게 돼야 되요

야 정말 남자답게 목메달아 죽지 그러면 유다에요 내 죄는 내가 책임진다 나 목메달아 죽을거야 그러면 유다되는 거에요 를 져 놓고 슬금슬금 기어와서 하느님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잖아요 요 뻔뻔스러운 요놈이 성도인거에요 그게 은혜안에서 사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면 죄책감도 갖지 말라는 말인가... 반성도 하지 말라는 말인가 ..아니요 그렇게 우리가 실수를 하고 넘어지고 죄를 지을때마다 우리의 실체를 인정하세요. 맞아 이래서 예수가 내려 와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거야 라고 내 실체를 인정하세요 그걸 올바른 반성이라고 그러는 거에요 여러분 내가 왜 또 이런 일을 저질렀지 이게 반성 아닙니다 그게 반성이 아니라 나는 정말 하느님의 은혜가 아니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자구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게 반성이에요 그래서 나에 대한 신뢰를 자꾸 내려놓고 내 안에 살고 계신다고 하는 그 예수가 밖으로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그렇게 하느님 앞에 부르짓는거 그것을 반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그래서 제게는 예수님에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고 십자가를 붙들게 되면 그 십자가 복음이 우리를 바꿔가는 거에요

그 십자가 복음이 우리를 바꿔가는 거지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지 다음부터는 더 열심히 해볼꺼야 내일은 우리 남편한데 절대 잔소리 안할거야 그 다음날 더 난리에요 그러잖아요 내가 나를 고칠려고 하면요 절대로 안바꿔요 거기에서 나를 인정하고 복음을 꼭 붙들고 오세요 살아서 운동력이 있는건 말씀밖에 없어요

교통법규가 없어졌는데 야 이제는 스탑사인 이런거 다 필요없지 막다녀야지 막다녀야지 다녀보니까 여기 받히고 저기 받히고 야 교통법규 없다고 막 살다가 큰일 나겠구나 지 스스로 지킬 수 있게 끔 하느님이 만들어 주세요 법은 없어졌어요 여러분을 기소할 수 있는 법은 없어졌는데 이제 그때부터 하느님이 자발적인 순종을 내어 놓는 내 자식으로 만들어 가신다니깐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그게 바로 복음인 거에요

여러분이 죄를 지을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다 보면 마귀가 내밀어 버린 그 가짜 채무증서에 속아서 아버지가 갚아 버린 빚을 자기가 또 갚는 바보같은 짓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 죄책감을 상쇄시키기 위해서 무리하게 헌금도 하고 무리하게 새벽미사도 나와요 그게 여러분 빚을 갖는 건줄 아세요 여러분 그게 율법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런거 하지 말라는거 아니에요 만약에 여러분이 하느님에게 뭘 잘보이기 위해서 그런 짓을 한다면 여러분은 그렇게 죽어라고 헌금하고 지옥갈거에요 그건 복음 아니잖아요 그건 짐이잖아요.

 

우리 아버지가 빚 다 갚아 버리고 채무 증서까지 찟어 발겨 버리셨다니까요 아니 태워버리셨어요 십자가에 박아가지고 그래서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을 고소할 수 없어요 진짜에요 여러분은 자유에요 자신의 무력함과 불가능함이 폭로된 현장에서 면목없어 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양심있는 성도의 모습 아니에요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어요 자신의 죄가 폭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이가 진짜 성도에요 이제 우리가 과연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렸던 율법주의자에서 벗어나 있는지 아닌지 한번 진단해 보세요 율법주의자는 절대 구원 못받습니다.

첫번째로 여러분은 구약의 율법의 조항 어느 하나라도 여전히 묶여서 그것으로 불안해 하고 고민하고 계십니까 대부분 여기에는 아니요 라고 대답할 수 있어요 그렇죠 곱표 그럼

두번째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구원과 하느님 나라에 완성에 여러분의 공로가 단 1%라도 기여를 한다고 생각하세요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것도 엑스

세번째 우리의 구원과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 우리의 공로가 단 1%라도 기여를 할 수 없다면 지금 나에게 이루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인데 여러분은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나는 아무개보다도 이런 면에 있어서 조금 나 라고 생각해 본적이 한번도 없습니까 많죠 근데 여러분이 율법주의자가 아니란 말이에요 내 생각에는 나는 저사람보다는 조금 더 착한것 같애 나는 저사람보다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 있어 나는 저사람 보다는 성경을 더 많이 알어 나는 저사람보다는 훨씬 도덕적야 훨씬 더 깨끗해 이런 생각 안해보셨냐 말에요 우리가 그러한 생각에 잡혀 있을 때에 우리는 그 순간 율법주의자 독사의 새끼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더 당황스러워 해야할 질문은 네번째 질문이에요 여러분에게 해꼬지를 한 사람은 그게 어떠한 것이라도 할지라도 용서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어렵죠 용서와 율법주의가 무슨 상관이 있는게 마태복음 1821절 이하에 보면 용서에 관한 비유가 하나 나오죠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어요 선생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를 해줘야 됩니까 당시에 랍비들은요 세번이 맥시멈이라고 가르쳐 줬어요 세번까진 용서해줘라 베드로가 저는 고거에 두배에다 하나 더한거 일곱번 용서해 줄 수 있어요 라고 잘난척 할라고 예수님한테 일곱번쯤이면 됩니까 라고 물은 거에요

그때 예수님이 일곱번씩 70번 그 어구는 사실 한글성경이 조금 오버해서 번역을 한건데 그 단어는 헵두메콘타키스라는 단어 70이라는 단어와 헵타 7이라는 고 단어가 이렇게 붙어 있던 단언데 일흔번씩 일곱 이렇게 곱하기로 그냥 해석을 하는 바람에 490번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490이어도 되고...77이어도 되요 그 어구는 일곱이라는 숫자를 들이대면서 이정도면 되겠죠 하고 한 베드로의 질문에 거기에 10을 곱한 숫자에 70이라는 숫자로 응대를 하심으로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없을 만큼 그러니까 끝없이 용서를 해줘라는 예수님의 강조 어법이였던 거에요

그리고는 일만 달란트 빚진자와 일백 데나리온 빚진자를 등장시켜서 용서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시죠 만 달란트는 지금 돈으로 따지면 약 18천억원 정도가 되는 돈이에요 어떤 개인이 그것도 고대시대에 고만한 돈을 빚을 진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거에요 당시 유대인들이 유대민족 전체가 로마에 냈던 일년 세금이 800달란트였어요 근데 일만 달란트는 얼마나 큰 돈이에요 한 나라 전체에 세금이 800달란트였다니깐요 그런데 일만 달란트를 빚졌데요 그 일만 달란트 빚진 자는 바로 우리 죄인들을 대표하는 자에요 너희들이 그렇게 빚진 자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불순종 함으로 해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큰 부채를 져서 ..율법이라는 그 채무증서를 가지고.. 영원한 감옥에서 그 댓가를 치뤄야 하는 구원받기 전에 죄인들의 실존이 바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인거에요 그 빚을 다 갚기 위해서 어떤 댓가가 치뤄져야 하는지 마태복음으로가서 한번 직접 보자구요

마태복음1825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놈 보세요 다 갚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자신의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못갚는게 죄의 부채라는 걸 보여주는 거에요 여기에서 그런데 그 빚진 자가 그 주인한테 참으세요 갚으리이다 그래요 그게 부정과거 명령형이거든요 한번만 기회를 주면 내가 다 갚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이게 율법주의입니다 갚을 테니까 걱정하지마 여러분 일만 달란트는 노동자가 20만년을 매일 같이 일해서 한푼도 안써야 그돈을 모을 수 있어요 20만년 근데 그 빚을 어떻게 갚겠다고 갚을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이러고 있냐구요

갚긴 뭘 갚아요 여러분들이 헌금 많이 한다고 하느님의 은혜에 뭔가 보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교회에서 봉사 많이 한다고 하느님의 은혜에 뭔가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선교 많이 한다고 여러분이 하느님께 그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어요 나 제사지내고 율법지키는 것으로 한번 갚아 볼께 라고 나선거에요 그들에게 한 말입니다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에요 또 니들이 뭘 갚어 뭘 할 수 있다는거야 물어보는 거에요 주인이 그러한 자를 불쌍히 여겨서 은혜로 그 빚을 전부 탕감해 줬어요 그냥 은혜로 그걸 구원이라 그래요 18천억의 빚을 그냥 은혜로 없던걸로 해 그래버렸습니다 그게 구원이에요 근데 그 일만 달란트 탕감 받는 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났어요 그랬더니 갑자기 목을 조르고요 감옥에다가 쳐 넣어 버렸어요 100데니라온은 1만 달란트의 60만분의 1에요

마태복음 1828-30절 보세요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여기서 멱살을 잡다 푸니그 라는 단어는 마르코복음 5장에서 2천마리에 돼지때가 물에 들어가서 몰살 당할때 썼던 그 단어거든요 푸니그 죽기 직전까지 목을 졸랐다는 것입니다 이게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이 세상에 손해에 대해서는 요만큼도 손해를 볼려고 하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인 거에요 하느님이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해 줬는데 구원을 줬더니 자기에게 요만큼 손해 끼친자를 목을 졸라서 거의 죽이더라는 거에요 돼지때 처럼 푸니그 목졸르다가 감옥에다가 확 갔다 쳐 넣었어요 이때 주인이 저놈봐라 일만 달란트 탕감해 줬더니 백데리나온을 빚진 자를 목을 저렇게 조르고 감옥에다가 갖다 쳐 넣어 제 댓구와 감옥에다가 넣고 그 빚 다 갚을 때 까지 너 여기 있어라고 이야기 했어요 20만년 갚아야 되는 그 돈을 감옥에서 갚아라라고 이야기 했어요 영원히 지옥에서 불타라 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너무나 갚비싼 것이라서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갚을 길이 없어서 값없이 줄 수 밖에 없었던 일만 달란트 짜리 구원, 값없이 준데니까 너무 싼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세상을 다 합해서 하느님 앞에 내 놓아도 여러분 한 사람의 구원의 값이 안된다 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값없이 줄 수 밖에 없었던 거지 그게 무슨 값어치가 없는 것이라서 값없이 준거 아닙니다. 그 일만 달란트 짜리 구원 앞에서 그 영생이라는 은혜의 선물을 받은 이들이 백데나리온에 불과한 이 세상에 손해에 일희일비 하는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를 경각시켜 주는 비유인 거에요 너희들이 정말 구원의 가치를 알고 있느냐 그리고 그것이 전적인 은혜로 거져 주었다라는 것을 정말 아느냐 라는 그런 물음인 거에요 만일 알고 있다면 그 18천억짜리 은혜 앞에서 왜 2천원짜리 손해를 그렇게 분해 하느냐 라고 그렇게 묻는 거에요 백데나리온 2천원 이 비유는 용서 안하면 구원을 취소해 버리겠다라는 협박이 아니라 구원에 가치를 좀 깨달아 알아서 큰 안목으로 큰 사랑으로 살아라라는 뜻이에요 우리는 율법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에요 우리가 받은 은혜는 하느님께 다시 갚을 길이 없는 너무나 엄청난 거에요 그런데 그러한 채무 변제를 받은 우리가 고작 백데나리온을 손해 보았다고 해서 악착같이 자기의 권리와 유익을 챙기려고 한다면 정말 우리가 하느님의 은혜를 올바로 이해한 사람들이 맞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 전체에 힘과 가치를 다 합해도 백데나리온이에요 2천원이란 뜻이거든요 돈좀 벌었다고 18천억 짜리 구원앞에서 마치 그 2천원짜리 가치 이세상의 힘이 18천억짜리 구원보다 더 큰 것인양 교만을 떨고 너스레를 떤다면 그게 어찌 구원받은 자가 맞겠느냐 라는 말인거에요 돈 백만불만 벌어도 어께에 힘들어 가잖아요

실지로 사도행전에서 사도바오로가 꽁꽁 묶인 채로 아그리빠하고 베스또에게 뭐라 그래요 왕과 총독이였잖아요 너희들이 나처럼 됐으면 좋겠다 아니 꽁꽁 묶인 죄수가 왕한테 당신이 나처럼 됬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니들이 가진 왕의 자리는 이천원짜리거든 내가 갖고 있는 구원은 18천억 1만 달란트 짜리에요 나는 절대 안바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자리로 안갈거거든 니들이 나처럼 됐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을 어떻게 용서했습니까 자기를 죽인거에요 요셉이 나중에 알았어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느님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것을 알았어요 창세기 마지막 장에서 요셉이 그러잖아요 하느님이 나 판거라고 당신들이 판거 아니라 하느님이 판거라고, 보세요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어요 니 후손들을 애굽에 들여보내서 430년 동안 거기에서 종살이 하게 한 다음에 다시 출애굽시킬 것이다라고 아브라함에게 먼저 약속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거기에 들어가서 애굽의 총리가 되야 된다 말입니다 근데 달랑 70명 밖에 안되는 유랑 부족이에요 애굽으로 70명 들어갔으니까 70명 밖에 안되는 그 유랑부족에 아들이 당시 세계에 패권을 지고 있던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는 확률이 얼마에요 제로에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형들을 통해서 요셉을 애굽으로 들여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거에요 요셉이 그걸 알았기 때문에 야 형들이 하느님에 그 엄청난 계획속에서 하느님에게 사용된 이들이구나 그러니까 오히려 불쌍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자식들까지 내가 다 돌볼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이야기 한 거에요 우리에게 해꼬지 한 사람들이 그렇게 우리 인생에서 쓰여질 수 있어요 오히려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그때마다 하늘을 보세요 제발 큰 안목으로 하늘을 보세요 스테파노가 어떻게 자기를 돌로 때려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그들을 위해서 기도 해주면서 죽었죠 하늘을 봤어요 하늘을 봤더니 하느남과 예수님이 자기를 내려다 보고 있어요 하느님 나라가 보였다라는 거에요 천국이 보였다 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평소에 내가 너무나 가고 싶었던 천국이 지금 바로 조기서 날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사도바오로처럼 하느님이 나를 불러가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 억지로 있었던 거거든요 그런데 하느님 나라를 내가 보고 있는데 어떤 놈들이 와갖고 나를 짱돌로 계속 찍고 있어요 한번 찍을때 마다 나는 하느님 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그가 그걸 알은 거에요 그래서 그들을 고마움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짱돌을,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잠시 주어진 모든 것이 다 우리의 거룩을 위해 필요한 어떤 것들이거든요 그걸 내꺼라고 자꾸 생각하니까 내가 손해봤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걸 도구로 써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갈수도 있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것도 성도는 손해를 볼 수가 없어요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로 이미 용서받았지만 지금도 현제형으로 계속 용서받고 있어요 그게 구원에 과거시제 현제시제 아닙니까 만약에 하느님이 지금 이 인생속에서 어느 순간 여러분에게 내릴 용서를 딱 멈췄다고 생각해 보세요 거기서 끝나는 겁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의 인생에서 만난 모든 사람을 다 떠올려 보세요 그 사람들 전부 불러서 여기서 줄을 쫙 세워놨어요 그중에 우리를 용서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잊고 살아서 그러지 있어요 그 사람들이 죽을때까지 우리를 용서 못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찝찝하죠 끔찍합니다 그러니까 먼저 용서해 주란 말입니다. 하느님이 여러분을 용서 안해주면 큰일나는 거에요 그런데 그분이 18천억짜리 용서를 여러분에게 줬어요 근데 왜 2천원짜리 용서를 못한단 말입니까 그걸 하느님보다 더 큰 가치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구원 앞에서 여러분이 용서를 못하는거 아니에요

여러분이 누구에게 복수를 하기 시작하잖아요 우리가 바로 그 상황으로 치닫는 거에요 사람은 미워하면서 닮는다 그러죠 며느리들이 시어머니 막 욕하면서 그 시어머니랑 똑같이 되어가 는거 못보세요 미움은 자기가 미워하는 그 대상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그 더러움을 나에게로 계속 끌어오는 거에요 나를 자해하는 거에요 인간이 누구를 미워할 때 용서하지 못할때 바로 고 대상이 갖고 있는 그것으로 나를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미움이라 그래요

그래서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을 그대로 담게 되는 거에요 내가 나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묶여 있어요 놔주세요 좋은 사람 마음에 두고 사는 것도 그것도 삼일이면은 실증이 나는데 왜 원수를 끝까지 내 마음속에 집어 넣고 살아요 놔주세요.

인간은 내 안에 있는 죄와 더러움을 숨기고 싶어해요 그래서 그걸 숨기는 방법으로 뭘 택하냐면 나와 가장 비슷한 죄와 어두움을 갖고 있는 이를 택해서 그를 공격하는 것으로 거기에 내 내안에 있는 내가 감추고 싶고 공격하여 죽여버리고 싶은 이 죄가 거기에 있거든요 그래서 그걸 미워하고 공격하는 것으로 내 안에 것을 감출려고 한다구요 우리가 지금 누구를 죽도록 미워하고 있다는건 바로 우리가 그모습이라는것과 100% 똑같은 말이에요 백프로, 그게 프로젝션이라는 것입니다.

용서하세요 우리 하느님 아버지가 얼마나 가슴 아파 하시겠습니까 부모가 제일 힘들고 가슴아플때가 언젠지 아세요 자기 새끼들이 서로 싸우고 얼굴 안보고 서로 욕하고 그러면서 살때에요 아무리 용돈 많이 줘도 아무리 맛있는거 많이 사줘두요 그 엄마는 독약을 씹는 것처럼 눈물로 그거 삼켜요 여러분은 엄마 가슴에 아버지 가슴에 도끼로 쩍쩍 찍고 있는 거에요 아버지 엄마 죽이고 있는 거에요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가장 마음 아파 하실게 뭘거 같아요 내 새끼들이 사랑하라고 만들어 준 공동체 속에서 서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험담하고 싸울때 우리 하느님이 제일 슬퍼하세요

용서하세요 섬기시고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았잖아요 100% 은혜로 그런데 2천원짜리 때문에 용서를 못하고 있어요 그러면 율법주의자에요 율법주의자는 뭐다 뱀이요 독사의 새끼인 거에요 그들은 절대 천국 볼수 없어요 오늘 용서해야 되요 화해하세요 아셨죠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은 분들이에요 율법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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