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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이웃 사랑의 본질(1)

134001 김중애 [ji5321] 스크랩 2019-11-21

 

 

이웃 사랑의 본질(1)

그리스도교적 형제애,

이웃사랑, 원수에 대한 사랑 등은

모두 하느님을 위하여 실천되는

애덕입니다.

사실 진심으로 하느님을

만유 위에 사랑하는 자만이

형제와 이웃 그리고 원수까지도

완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사랑의 여러가지

발생요인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기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목적으로

남에게 선심을 베풀때가 있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사랑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놓고

사람들을 초대할 때에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사는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마라.

그렇게 하면 너도 그들의

초대를 받아 네가 베풀어준 것을

도로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그러면 너는 행복하다.

그들은 갚지 못할 터이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주실 것이다."

(루카 14,12-14)

이기적인 목적으로

남을 사랑한다면 결코

도덕적인 선업이 될 수 없습니다.

남의 육체적 단점이나

정신적 장점들을 좋아하고

존중하는 동기에서

그를 사랑한다면

비록 그것이 초자연적 동기는

아닐지라도 그 사랑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 하느님의

은혜를 감지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이는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의 미모, 재능, 지식, 용기, 친절,

너그러움 등 자연적인 장점들 외에

그 사람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 안에 하느님의 모습이

반영되고 있을 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 계신다는 점까지 바라보고

그를 사랑한다면 이는 참된

초자연적 형제애나 이웃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외형적인 동기인 것입니다.

그레고리오 교황님께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생기고 또한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기르고 강하게 할 수 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웃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서로 동반자처럼

움직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려면 그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살펴보면 되는 것입니다.

곧 이웃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평가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사랑을 하는데에도 단계와

방법이 있는데 한 두 가지만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애덕의 실천단체 초보단계

다른사람에게 조금도 부정한 일이나

피해가 가는 일을 하지 않고

또 남이 자기에게 무례한 짓을 하거나

손해를 끼치더라도 거기에 대해

아무런 앙심도 품지않고 보복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덕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신앙인은 이러한 소극적인 단계를

넘어 적극적인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우선 우리는 남을 생각할 때

어떤 시기심이나 불편함 또는

경솔하게 남에게 혐의를 두는

의심 같은 것 등을 버리고

모든 것을 친절과 선의로

해석해야 합니다.

명백히 죄로 인정되는 경우에도

사실 이상의 억측을 해가며

과장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합니다.

죄가 불미스럽고 밉더라도

그 사람의 과거경력과

가정환경 그리고 그 죄를

저지르게 된 동기나 사유 등을

자세히 모르는 이상 자기가

판사인양 무책임한 비난을

해서는 안됩니다.

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

(마태7,1)

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남을 친절하고 관대하게

오랫동안 생각한다면

타인에게 어떤 만족감과

희열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만족감과 희열감은

우리의 내적 생활과는 깊은

관계가 없습니다.

본래 그와 같은 감동이나

정열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지

자유의지의 통제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들어 어떤 사람의 습성이나

성격이자기와는 완전히 다를 때,

우리는 자주 그 사람에게

까닭없이 혐오감을 느끼고

기피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한 감정을 억눌러가며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으려는

노력은 물론 이웃사랑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노력이 반복될수록

차차 내적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와 같이 타인에게 항상 호의를

가지게 되면 그 사람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만약 많은 고통중에 처하게 되면

진심으로 동정하고 위로하려고

마음먹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렇게 내적 생각과 감정에서

일어나는 선의적 관심과

호의적 태도가 습성으로 굳어질 때,

그 마음속에서 사랑에 넘치는

말이 흘러나옵니다.

그런 마음에서는 결코

악평이나 중상 비방이나

질투의 말이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 사랑에 입각한

형제애로써 될 수 있는 대로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변호하려고 애쓰게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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