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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6일 (화)부활 제3주간 화요일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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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부활 제7주간 토요일

138583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0-05-29

요한복음으로 성서공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로 등장합니다. 요한은 이 제자라고 이야기됩니다. 이는 요한복음을 쓴 사람은 이 제자라는 말을 한 사람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에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는 요한복음을 쓴 공동체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는 다른 관점에서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이 다를까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으로 표현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고, 말씀이 하느님이셨다고 이야기합니다. 토마 사도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나와 하느님은 하나입니다. 나를 보는 사람은 하느님을 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공동체는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는 착한목자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입니다. 나는 세상을 이겼습니다.’ 이런 표현은 공관복음에서는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요한복음은 일관되게 복음서를 쓴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알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주는 물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죽었던 나자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지혜가 세상을 구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교회 안에도 영지주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런 영지주의를 이단으로 여겼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서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성서를 읽고 묵상하며 삶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서도, 아테네에서도,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이웃에게 전한다면 우리의 삶은 가브리엘행전, 요한행전, 바오로행전, 베드로행전, 안나행전, 마리아행전, 글라라행전, 리디아행전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행전을 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는 신앙생활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첫째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근심, 걱정은 모두 버려두고 살아야 합니다.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면 봄의 아름다움을, 철쭉의 싱그러움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유대인들의 고소로 죄인이 되어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었고, 나중에는 군인들이 지키는 가택연금을 당했습니다. 2년 동안 가택연금을 당하면서도 바오로 사도는 근심하거나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가택연금 중에도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느님께로 가는 여정과 같습니다. 때로 시련의 비가 내리기도 하고, 고통의 파도가 밀려오기도 하고, 고독과 외로움의 바람이 불기도 합니다. 그럴 때 일수록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면 우리는 구름에 가려진 태양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의 파도를 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멀리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에 있는 꽃들은 멀리서 볼 때 더욱 아름답습니다. 멀리서 바라볼 때 구름, 바람, 시냇물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너무 가까이서 보면 미처 피지 못한 꽃도 있고, 색이 바란 꽃도 있고, 이미 시들은 꽃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얼굴도 비슷합니다.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삶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주름도 있고, 점도 있고, 작은 상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웃도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허물과 단점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꽃은 분석하고 나누고 평가하면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만나는 이웃을 평가하고, 분석하여 판단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 안에 숨어있는 가능성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시적인 측면도 필요하겠지만 거시적인 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의로우신 주님은 의로운 일을 사랑하시니, 올곧은 이는 그분 얼굴 뵈오리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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