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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9일 (금)부활 제3주간 금요일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가톨릭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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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5.01)

129411 김중애 [ji5321] 스크랩 2019-05-01

 

2019년 5월 1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 5,17-26

그 무렵

17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18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1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20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21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한편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들은

 모여 와서 최고 의회 곧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원로단을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22 경비병들이 감옥에

이르러 보니 사도들이

없으므로 되돌아가 보고하였다.

23 “저희가 보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습니다. 그

런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사도들 때문에 몹시 당황해하였다.

 25 그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보고하였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6 그러자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워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복음 요한 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앞에는

많은 길들이 놓여집니다.

물론 지금 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만이 최선이고 가장 큰 행복으로

인도해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즉, 주님께서 더 좋은 길을 제시하시는데

내가 가고자 하는 길만을 고집하면서

더 좋은 길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몇 년 전, 5년째 임용고시 시험을

보고 있다는 청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매번 1차 시험에는 합격을 하는데,

늘 2차 시험에서 떨어진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 길만이 자신의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험공부를 하고 또 응시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서

 “다른 더 좋은 길도 있지 않을까요?”

라고 물었지만, 지금까지 노력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끝을 보겠다는 말을 합니다.
이 청년은 결국 임용고시에 합격을 했고

어느 중학교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만나게 되었는데

교직생활이 너무나 힘들다는 푸념을

털어놓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선생님의 자리였지만,

폭력적인 중학생들이 너무 무서워졌고

그러다보니 선생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 교직이 과연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무엇이 맞는 것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선택한 길이

반드시 최고의 길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을 굳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정말로 원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라면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마음과 행동을 가져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자신을 내려놓고

바라볼 수 있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사랑의

지극함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아버지께서

세상에 주신 대단히 귀중한 선물이지요.

세상에 당신 아들을 주신 것은 생명 자체,

 곧 죽음을 쳐부술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느님의 모든 일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에 목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하느님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우리를 힘들게

하시기 위해 끊임없이 골탕 먹일

 궁리를 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

반대로 당신을 굳게 믿고 따르는 이에게

실망을 주시지 않는

자비의 하느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것을 주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작은 일에 감동하고,

웃고, 따뜻해지는 능력을 가지면

 언제든 행복할 수 있다.

(강미영)

(예수님과 요셉성인의 부자상)


성가정에 대해...

화가족의 행복은 누군가의

희생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가족 때문에 힘들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자신에게 희생만을 요구하는 가족의

모습에서 점점 지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불만을 이야기하면

“너는 우리 가족이야.

그러니 당연히 해줘야지.”,

 “너만 감당하면 모두가 편해져.”,

 “너는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네가 좀 참으면 되잖아.”

등의 말이 되돌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간의 희생은

그 어떤 관계보다도

더 외로울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가족이라는 한 묶음으로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 안에서 내가 누군지를

모르게 됩니다.

그러나 진짜 관계에서는

서로의 모습이 더욱 더 선명해지고

이를 통해서 진짜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응원하면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이 보여주신 성가정입니다.

(성가정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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