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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6일 (화)부활 제3주간 화요일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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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 푯대를 향해

131489 장병찬 [jesus_maria] 스크랩 2019-08-03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

[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 긴 고해를 하시는 분들은 명동성당의 상설고해소를 방문하세요 ]



푯대를 향해


그리스도인들의 푯대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푯대가 되십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걷고
주님이 베푸신 사랑을 본받아 이웃을 사랑하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충성하며 헌신하는 삶.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입니다.
세상은 종교적 잣대를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눈에 보이는 자신의 행동에 자책하며
스스로 하느님 곁을 떠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때 우리가 주님 곁을 떠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약해 넘어질 때.
우리는 더 더욱 주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청하지 말고
계속해서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주께로 더욱 가까이 향할 때
비로소 신앙의 방황은 그치고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새벽종소리)






실상 필요한 것 (루카 10,38-42)

(故김용배 신부)

 


복음은 주님께서 한번 마르타와 마리아가 사는 마을에 들르셨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기쁜 마음으로 자기 집에 예수님을 모셔 들였습니다. 마르타는 있는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준비하느라고 부산했습니다. 언니 마르타는 동생이 가만히 앉아서 예수님 말씀만 듣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마르타는 동생처럼 주님 말씀을 듣기 보다는 자기처럼 주님께 시중드는 일이 더 중하고 요긴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께, 자기 동생이 자기와 같이 시중드는 일을 거들도록 짜증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10,40). 그러나 주님은, 시중드는 일이 전부는 아니라고 마르타에게 타이르십니다(10,41).

오늘날에도 마르타와 비슷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면서도, 많은 일에 관여하며 이러쿵저러쿵합니다. 자기 생각이 가장 옳은 양 고집을 부리며 다른 사람의 일까지 함부로 비판합니다. 주님은 이것 저것 잡다한 많은 일에 마음을 다 쓰는 것은 필요 없는 일일 뿐 아니라, 자기의 생각과 자기가 걸어가는 길을 다른 사람의 그것보다 앞세워 우기거나 더 나아가 심지어 험담을 하는 일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도 아울러 암시하신는 듯합니다(10,41). 실상 필요한 것은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고 한 가지뿐이라고 주님은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하느님 말씀을 조용히 듣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행동은 옳은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10,42).

신앙인은 여러 가지 일에 마음을 빼앗겨 흐트려지게 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하나로 정리하여 실상 필요한 한 가지, 즉 "하느님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시켜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느님 말씀을 우리 모든 생활의 가장 으뜸가는 기준으로 삼고 어떤 누구의 말보다도 하느님 말씀을 항상 높은 정성으로 듣고 그 말씀을 통해 만사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각각 달리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모양의 부르심을 받았든지 간에 부르심에만 충실하면 되겠습니다. 또한 각기 달리 받은 부르심들을 우리는 서로서로 깊은 존경으로 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성소(하느님의 부르심)을 타인의 성소보다 우월한 위치에 놓으려는 생각은 고쳐야 할 것이며 더욱이 다른 사람의 성소를 경솔하게 비판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각각의 부르심에 충실하면서도 무엇보다도 필요한 한 가지, 즉 '하느님 말씀을 듣는 일'에 우리 모두 가장 우선적으로 부르심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하느님 말씀을 들음)을 택했다"(10,41-42).






오래전에 멸망했을 세상

(미사의 신비)

 


미사에 관한 성인들과 교회 박사들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 로렌스 유스티니안 성인 : "어떤한 기도나 선행도 미사만큼 주님께 기쁨이 되고, 우리에게 이로운 것은 없습니다."

* 알퐁소 성인 : "하느님 당신조차도 미사보다 더 성스럽고 훌륭한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미사는 그 가치가 무한합니다. 반면에 모든 성인과 천사들의 기도나 선행은 비록 하느님께 말할 수 없이 큰 영광을 드린다 해도 유한할 뿐이며 따라서 미사의 무한한 희생과 전혀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

* 토마스 성인은 미사야말로 제대 위에서 재현된 골고타 산의 희생이며, 신자들은 모든 미사에서 십자가의 희생과 같은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 요한 크리소스톰 성인 : "미사는 골고타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 보나벤뚜라 성인 : "미사는 주님의 사랑과 인간에  대한 은총의 요약입니다. 모든 미사는 그리스도의 성육화를 통해 인류에게 베풀어진 것과 동일한 은혜를 이끌어 냅니다."

* 클뤼니의 오도 성인 : "세상의 평화(샬롬)는 미사의 신비로부터  옵니다."

* 예루살렘의 티모시 : "미사가 없었다면, 세상은 인간의 죄 때문에 오래 전에 멸망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한 하느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우리에게 많은 축복을 가져오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미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

* 로렌스 유스티니안 성인 : "미사에서 받는 무한한 은혜와 축복을 표현할 방법은 없습니다. 성스러운 미사를 드림으로써 죄인은 용서을 얻고, 선한 사람은 더욱 성스럽게 됩니다.  우리의 잘못은 옳게 고쳐지고 죄악은 뿌리 뽑혀집니다."

* 포르네리우스 : "은총의 상태에서 드리는 한번의 미사는 가장 길고 가장 고통스러운 순례보다 더욱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더 큰 축복과 은총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 마르샹 : "만약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모든 회개와 모든 기도와 모든 성인들의 선행을 바친다 하더라도, 만일 우리가 성삼위께 열두 사도들과 모든 순교자들의 고통을 바친다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은, 한 번의 미사보다 적은 기쁨을 하느님께 드립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미사는 진정 골고타 산의 희생과 동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사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아버지께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한 무한한 덕업과 고통과 굴욕을 바치십니다
."

(미사의 신비)







미사란 무엇인가?

(미사의 신비)

1. 미사 중에 하느님의 아드님이 다시 사람이 되십니다
따라서 모든 미사 중에, 무한한 은혜로 하느님의 성육화(聖肉化)의 신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그분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속에서 잉태되어 나셨던 신비와 진정 동일한 신비입니다.

[성인의 말씀]
* 성 아우구스티누스 : "사제의 직분은 얼마나 신비한가! 그의 손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사람이 되는도다!"


2.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그분은 모든 미사에서 베들레헴의 성탄과 똑같이 다시 태어나십니다.

[성인의 말씀]
* 성 요한 다마스체노 : "만약 여러분이 어떻게 빵이 예수의 몸으로 변하는가 저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령께서 사제에게 영광을 드러내시고, 축복받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하신 것처럼 사제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 성 보나벤뚜라 : "하느님은 제대에 내려오실 때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처음 내려오실 때와 꼭 같은 방식으로 오십니다."


3. 미사는 골고타 산의 희생과 같은 것입니다

미사 중에 주님은 성 금요일에 그랬던 것처럼 돌아가십니다. 미사는 골고타 산에서와 같은 무한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그 가치만큼 값진 은총을 가져다 줍니다. 미사는 골고타 산의 모방이나 기념이 아닙니다. 미사는 골고타 산과 똑같은 희생이며, 단지 겉보기로서만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미사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다시 피를 흘리시는 것입니다.

[성인의 말씀]
* 성 아우구스티누스 : "미사에서 그리스도는 죄인을 위해 새롭게 성혈을 흘리십니다."


4. 지상과 천국의 어떤 것도 단 한대의 미사만큼 하느님께 찬양을 올리거나 우리에게 은혜를 얻어주지 못합니다


5. 우리는 미사를 통해 주님께서 고대하시는 가장 큰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우리는 미사 중에 우리에게 내려주신 모든 은총에 대해 가장 완벽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또 미사는, 지은 죄에 대한 그 어떤 가혹한 회개나 고행보다도 더 큰 보속이 됩니다.


6. 죄인의 회개를 위해 미사의 성스러운 희생을 바치는 것처럼 좋은 일은 없습니다. 방황하는 아이들을 위해 어머니가 미사에 참례한다면, 남편을 위해 아내가 미사에 참례한다면, 아내를 위해 남편이 미사에 참례한다면 그들의 가족은 얼마나 행복해지겠습니까?


7. 아무리 열렬히 기도하거나 연도를 드려도 미사만큼 연옥영혼에게 큰 도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 중에는 우리의 아버지나 어머니, 그리고 친구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업이 번창하는 방법

(미사의 신비)

 


프랑스의 한 마을에 두 사업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계열의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번창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매우 근면하게 이른 아침부터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생활이 매우 곤궁스러워지자, 이 사람은 사업을 잘 하고 있는 친구에게 가서 그의 사업의 비밀을 배워야 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여보게, 내가 별다른 비밀을 가진 건 아닐세. 그저 자네가 하는 것처럼 일하고 있지. 자네와 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면, 나는 매일 미사에 참례한다는 것 뿐이라네. 내 진심어린 충고를 따라보겠나? 매일 미사에 참례해 보게. 그러면 주님께서 분명히 축복해 주실 걸게."

그 가난한 사업가는 충고받은 대로 했습니다. 가난했던 사업가의 신심도 매일 미사의 은총 안에서 더욱 더 깊어졌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여러 어려움들은 극복되었고, 사업은 기대보다 훨씬 더 번성했다고 합니다.






천사와 장미

(미사의 신비)



어떤 가난한 농부가 몇 년째 매일 미사를 참례하고 있었습니다. 이 농부가 어느 추운 아침에 눈 덮인 들판을 가로질러 교회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농부는 그의 뒤에서 발자국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돌아보니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장미가 한가득 들어있는 바구니를 안고 농부의 수호천사가 뒤따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천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제여, 이 장미들은 형제가 미사에 가기위해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또한 천국에서 형제를 기다리는 영광스러운 상을 표시하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형제여, 이보다 훨씬 더 큰 은총은 바로 미사 성제를 통해서 받게 된답니다."






성합을 둘러싼 천상의 고리

(미사의 신비)

성 하논은 코론의 주교였는데, 어느 날 성찬의 전례동안 천상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밝게 빛나는 둥근 고리가 성합을 둘러싸고는 그 속으로 빨려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인은 깊은 경외감에서 미사를 계속 해나가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님은 매 미사에서 이런 신비를 보이십니다. 단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존엄으로 이 땅위에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시는 무한하고 전능하신 바로 그 분이십니다. 왜 우리는 이를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십자가의 운반을 거들어 준 키레네 사람 시몬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가톨릭출판사)



사랑하는 영혼들아!
나를 따라 오너라. 군중들이 골고타로 몰려오고 있다. 이 악한 무리들은 내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죽을까 염려하여 십자가 운반을 거들어 줄 사람을 구하자는 데 동의한다. 그래서 군중들 중에서 시몬이라는 사람을 불러낸다. 내 뒤에서 십자가를 거들고 있는 그에 대해 두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아라.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이나, 품삯을 받고 십자가 운반을 거들어 주고 있다. 이 사람이 나와 함께 십자가를 나누어지고 있으나, 하고 싶어서 거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악의 무리들이 시켜서 마지못해 거들고 있다.
그는 십자가의 무게 때문에 힘이 부치게 되자, 십자가가 내 어깨 위로 쏠리게 밀어 부쳤다. 그래서 도중에 나는 두 번이나 더 넘어졌다.
이 사람은 내 십자가의 한 부분을 짊어지고 있으나 전체를 다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몬을 보면서 두 가지 상황에서 비유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시몬처럼 내 뒤에서 십자가를 거드는 영혼들은 많이 있다. 내가 십자가를 함께 지자고 요청하면 나의 십자가를 걸머지겠다는데 동의한다. 그리고 자신의 완전한 생활을 목표로 하여 나를 따르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이런 영혼들은 자기 이익이나, 자기 만족을 위한 세상일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지면, 십자가가 몸에서 떨어지도록 내버려둔다.

이런 영혼들은 가능하면 고통을 적게 받으려고 꾀를 부리며, 다른 영혼들에게 사랑과 자비의 덕을 베풀기에 인색하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겸손도 없고, 힘이 드는 비천한 일이나 번거러운 일은 아예 할 엄두도 내지 않는다. 이런 영혼들은 마지못해 십자가를 짊어졌던 것을 후회하며, 자기 편의와 유흥에 알맞는 일만 찾아다닌다. 
한 마디로 자기 이익을 위해 나를 따르는 이기적인 영혼들이다. 
이들은 자기들을 속박하는 일을 피해 다니다가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마지 못해 받아들이는 영혼들이다.

이들이 나의 십자가 운반을 거들 때에, 전심 전력하지 않으므로 그 가치는 미미하다. 자기 구원에 없어서는 안될 만큼만 수고하기 때문에, 간신히 구원에 이를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영혼들은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신의 욕구보다 내가 모든 영혼들을 위해 감수하고 있는 고통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골고타를 향하여 가고 있는 나를 따르겠다고 결심한 영혼들도 많이 있다.
이런 영혼들은 신앙생활이 완전히 자리잡힌 영혼들이다. 이들은 십자가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짊어지려고, 자기 일생을 모두 헌신하여 봉사하는 영혼들이다. 자신들이 나의 십자가를 지는 대신, 나를 쉬게 하고 위로하겠다는 갸륵한 뜻을 지닌 영혼들이다.

이들은 내가 요구하는 모든 일에 자신들을 희생하며, 나의 뜻에 부합되는 일만 찾아다닌다. 이들은 포상을 받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십자가 지는 일을 수고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이들은 내가 시키는 일이 힘들고 피곤하다는 내색도 하지 않고 묵묵히 해나간다. 이들의 유일한 목적은 나에게 자기 사랑을 증명해 보이고, 나의 마음을 위로하는데 있다. 나는 나의 십자가를 갖가지 종류로 바꾸어, 이 영혼들에게 지워준다.

질병에서 오는 고통의 십자가, 자기 취미나 재능에 상반되는 일을 하는데서 오는 불편의 십자가, 윗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데서 오는 억울함과 서운함의 십자가, 십자가인 줄도 모른 체 날벼락처럼 자기에게 지워지는 황당함의 십자가 등등, 어떠한 형태로든지 자신들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완전한 자기 의지와 순종하는 마음으로 짊어진다.
이 영혼들은 나의 성심을 사랑하는 일과 다른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일이라면, 열과 성의를 다하여 그때 그때의 상황에 가장 적절한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진다.

나의 사랑에 감화된 이 영혼들은 나의 십자가 때문에 고통을 당하거나 천박한 지위에 떨어질 때도 있지만, 후에 그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할만큼 큰 수고의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영혼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수확에 감복하여, 나의 십자가를 숭배하고 나에게 그 십자가를 봉헌하며, 나의 영광을 현양하기 위해 짊어졌던 십자가를 세상을 향해 높이 쳐들 것이다.

오! 이런 영혼들이야말로 사랑 외에 아무런 이익을 바라지 않고 진정으로 십자가를 질줄 아는 복된 영혼들이며, 내가 안심하고 쉴 수 있도록 배려하고 나를 현양(顯揚)하는 영혼들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메어준 십자가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고, 고통 당한 만큼의 효과를 당장 볼 수 없을지라도, 너희들이 쌓아온 노고가 헛되고 무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여라. 나중에는 틀림없이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될 것이다.

진실한 영혼들은 자기가 짊어진 십자가의 고통과 수고에 대한 값어치를 계산하지 않으며, 그 어떤 포상도 바라지 않는다. 또 하느님께 크나큰 영광이 될 것이라 생각되는 일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찾아내어 실천하며, 하느님을 위하는 일을 하였다 하여 자기가 수고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진실한 영혼들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자기 과업을 성실하게 수행하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는 일은 전혀 없다. 또한 뭇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고, 박해받는 상황에 처하게 될지라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다.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동기가 사랑에 있으니, 오로지 그 사랑에 결과를 맡길 뿐이다. 고통과 수고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진실한 영혼들이다. 그들이 바라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나를 위로하고, 나를 안식하게 하며, 나에게 영광을 바치겠다는 것뿐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나의 십자가를 통채로 받아, 자기 어깨에 짊어지는 이유이다.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가톨릭출판사) 


 




우리 문제에 깔린 하느님의 뜻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우리를 쓰러뜨리거나 진보하도록 만든다. 그것은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겪게 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선을 이루시는 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 문제들이 가져 온 유익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단지 부딪힌 문제들에 대해서 만 화를 낼뿐이다.

여기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삶을 세우기 위해 문제들을 어떻게 이용하시는 지 다섯가지 대답이 있다.


1. 하느님께서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하신다

때때로 하느님께서는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불을 밝혀주신다. 문제들은 종종 우리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고, 방향 전환의 계기를 제공한다. 하느님께서는 문제를 통해 당신의 주의를 끌려고 애쓰고 계실 것이다.
"깊은 상처는 악을 씻고 매질은 배 속 깊은 곳을 씻는다." (잠언 20,30)


2. 하느님께서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를 관찰하신다

사람들은 차봉지와 같다. 만약 당신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 지 알고 싶다면, 그냥 뜨거운 물에 넣어보면 된다. 하느님께서 문제를 통해 당신의 신앙을 시험하신 적이 있는가? 그때 당신은 어떤 모습을 드러내었는가?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야고보 1,2-3)


3. 하느님께서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를 교정하신다

어떤 교훈은 고통과 실패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어린 자녀가 뜨거운 난로는 만지면 안 된다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도 실제로 만져보고 데인 후에야 그 말의 뜻을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때로 우리는 건강, 돈, 인간관계 등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닫는다.
"제가 고통을 겪은 것은 좋은 일이니 당신의 법령을 배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이 좋습니다. 수천의 금과 은보다 좋습니다." (시편 119,71-72)


4. 하느님께서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를 보호하신다

만약 어떤 문제가 좀더 심각한 다른 문제 때문에 상처받는 것을 막아 준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이 될 수 있다. 지난 해에 한 친구는 그의 사장이 시킨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그의 실직은 분명히 하나의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일년 후에 비리를 통해 회사가 운영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에는, 그 일로 인해서 감옥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다.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50,20)


5. 하느님께서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를 완전하게 만드신다

문제들이 올바로 대처되었을 때에는 우리의 인격과 삶을 더욱 아름답게 다듬어준다. 하느님은 당신의 안락보다는 당신의 인생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로마 5,3-4)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건 모르고 있건 간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에 함께 하신다는 것이며, 또 우리가 그분과 함께 모든 일을 행할 때 모든 것이 잘 된다는 것이다.

(창골산 봉서방)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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