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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사순제5주일 복음 (요한 7.53-8.11)

128840 김종업 [rlawhddjq] 2019-04-07

2019년 사순제5주일 복음

 간음한 여인

(요한 7.53-8.11)

53 그리고 나서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1 예수께서는 올리브산으로 가셨다. 2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또다시 성전에 나타나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 앉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 그 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앞에 내세우고 4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5 우리의 모세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6 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7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 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10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죄짓지 말라.' 하고 말씀하셨다.

 

성경에 읽다 보면 서로 모순이 되는 듯해 보이는 구절이 종종 나타나죠 그 중에서도 율법에 근거한 철저한 하느님에 공의와 하해같이 넓으신 하느님에 사랑에 대한 그런 구절들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요원해 보여요. 예를 들어서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마태복음 517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과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는 마태복음 913절 이 구절들을 보면 마치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듯 보이죠 완전히 모순되는 구절들이란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모순되어 보이는 하느님에 공의와 사랑이 어떻게 화해가 되어 해결이 되는 지를 보여주는 그림인 거에요

   율법과 은혜 이 둘이 어떻게 화해를 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는가 죄인들을 반드시 벌하셔야 하는 하느님에 공의와 당신이 선택하신 자들을 향한 하느님에 크고 넓은 사랑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서 구원을 완성해 내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오늘 본문에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인 거에요

 

본문 753절과 81절을 보세요 자 세상 사람들과 예수님에 가는 곳에 대한 기록이 나오죠 53절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님 이외에 모든 인간들은 다 어디로 돌아갔어요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올리브산으로 갔어요 왜 그랬죠.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거처가 있는데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었다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20절에 나오죠 그것을 이렇게 극명한 대조를 통하여 보여주는 거에요 우리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에 부유를 비우시고 스스로 가난하게 되시는 그게 십자가잖아요. (고린도후서 89) 십자가 구원은 바로 그 십자가 사랑에 의해 이루어질 것임을 미리 지금 힌트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늘에 왕자이신 예수님이 갈곳이 없어, 그들은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이분은 올리브산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3절을 보시면 그 주님이 다시 성전으로 들어가시는데요. 지난번에 성전에서 내가 물이다라고 왜치신 주님의 모습을 봤죠 오늘 본문에는 주님이 어떻게 옛 성전인 율법을 부정하시고 참성전에 모습을 드러내시는지가 잘 설명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내용이 7장에 옛 성전과 비교하여 또다시 이제 성전으로 배경이 주어지는 거에요 이 성전이 어떻게 참성전인 예수에게서 부정이 되는가를 보시는 거에요. 주님께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실때 바리사이인들과 율법학자들이 간음 중에 ,간음중에 얼마나 부끄러웠겠어요 나중에 붙들린 것도 아니고 간음중에 붙들려서 잡힌 여인. 남자는 도망갔어요 도망가고 여자만 붙들어 갖고 왔어요. 그 모습을 잘 그려보세요 지금 율법에 대명사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간음한 자는 쳐죽여야 된다라는 율법을 근거로 율법을 대표하는 그들이 율법을 들고 어떤 일을 고소하러 오는 거에요. 그리고 한쪽에는 이제 완전히 죄인임이 자명하게 드러난 한 죄인 여인, 간음한 여인이 대조되어 등장하는 거에요 그리고 예수님이 재판관으로 요렇게 서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간음중에 잡힌 여인은 자타가 공인한 죄인으로서 주님앞에 선 거고 나머지는 인제 고소하는 자들로 선거에요. 우린 이 대조를 잘 이해 해야돼요. 하느님을 대적하는 마귀에 대표적인 특징이 뭐에요 고소죠

묵시록 1210절 보세요 10 그 때 나는 하늘에서 큰 음성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 형제들을 무고하던 자들은 쫓겨났다. 밤낮으로 우리 하느님 앞에서 우리 형제들을 무고하던 자들이 쫓겨났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가 나타났고 하느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자 그들이 지금 마귀에 세력에 대표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쪽은 죄인임이 자명하게 들어났지만 이제 하느님에 의해 구원받을 의인으로, 義人의 대표가 등장하는 거에요 두 부류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쪽은 율법 한쪽은 은혜 그렇게 대조가 되는 거에요 하느님을 떠나 자기 스스로에 힘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죄인들은 남에 잘못이나 헛점을 들추어내서 고소를 하여 상대적인 우월감을 확보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요 그게 죄인들에 특징이에요 그것을 자기 방어 혹은 통제성향이라고 부르죠

 

그게 죄인들에 대표적인 특징인 거에요. 자기가 꼭데기에 올라가야 되고 자기가 스스로를 보호해야 되고 자기가 세상에 왕이 되야 되기 때문에 늘 남을 고소하게 되어 있어요 그들을 끌어 내려야 내가 올라가거든요 그래서 마귀에 대표적인 특징이 고소인 거에요 그들은 절대 자신의 무력함과 불가능함을 인정하지 않아요 예수 믿는 자들은 거기서 부터 시작하는 거잖아요 그러나 고소하는 자들, 죄인들의 특징은 절대 자신에 불가능함과 무력함을 인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율법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거에요 나는 지킬 수 있어 내가 지켜서 가고 말거야로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에 도움 없이도 스스로에 힘으로 행복에 이룰수 있다라는 것을 보이고 싶어하는 죄인들에 속성은 율법에 진의를 곡해하게 마련이죠. 그들은 죄를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에 필연성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주신 그 율법을 구원에 이르는 사다리로 생각한다 말이에요. 그들은 그렇게 율법을 구원에 이르는 사다리로 생각하여 열심히 율법을 지켜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존심도 지키고 하느님에 복도 받고 싶어 하는 거에요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줘요 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라는 존재는 하느님 앞에서 티끌에 불과하며 하느님에 은혜를 떠나서는 불가능한 죄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온전히 인정하고 하느님에 그 크심 앞에 항복하여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거에요 그래야 하느님이 이끄시는 참생명에 길을 순종하여 쫓아올 수 있으니깐요. 우리 하느님은 우리를 이끌고 진짜 참 행복 고지로 올라갈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항복하지 않고 우리 꽤를 내고 우리의 지혜를 내고 우리의 힘을 이용하여 자꾸 다른 데를 바라보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에요 못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완전히 부인하고 하느님이 끌고 가주세요 그때 우리는 참행복에 도달하는 거에요.

 

그래서 성도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뭐에요 자기 부인인거에요 자기 부인 나는 낫띵이야 아벨이야 그거 인정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한 사람만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는 거에요 결국 다 도망가고 그 사람만 구원에 이르게 되죠. 아이러니에요 내가 죄인이다 나는 인제 죽어야돼. 나는 어디도 갈 수 없어, 갈데가 없어 인제 죽어야 되니까. 그래서 예수님 앞에 남아있는 사람만 구원받고 힘이 남아서 도망간자들 물이 하는거 보고 냅다 뛰고 말거야 라고 했던 38년된 병자에 주변에 있던 자들 다 통해 있는 거에요

그 자들은 전부 도망가서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는 자들이 되어 버린 것이죠 함께 간음하다가 도망친 사람 또 간음하던 여인을 잡아온 사람들 그들은 자기들은 이제 예수님 앞에서 자기들에 죄가 확 들어나 버렸는데 그 재판관인 예수님 앞에서 도망간 자기들이 야 우리는 행운을 잡았어 자기들이 복받은 자들로 생각했을 거에요 그렇죠 그러나 정작 그건 복이 아니였어요 도망간 자들은 다 죽는 거에요 예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한 한 사람만 살아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고소하는 자들에 말을 들으시고는 몸을 굽혀서 땅에다가 뭔가를 쓰시죠 뭘 쓰셨을까요 이 나쁜놈들아 니들 꼬라지나 먼저 봐라 이거 쓰셨을까요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손으로 무엇을 직접 쓰신 사건이 세번 나오죠 첫번째는 십계명 돌판에다 쓰신 사건 두번째는 다니엘서에 나오는 벨사살 왕때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라고 벽에다 하느님의 손이 나와서 써버리죠 그리고세번째가 인제 오늘 사건인데요

첫번째 사건은 인간들에게 요구되는 율법에 관한 거에요 하느님께서 산위에서 그 율법을 쓰시는 동안 산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죠 그들이 에굽에서 봤던 풍요의 신인 아피스의 암소와 화돌에 황소 숭배를 기억하면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버리죠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는간음이잖아요 그러니까 하느님 말고 다른 우상을 섬기는게 간음이잖아요 그 간음 죄를 아래에서 하느님 백성들이 범하고 있는 거에요 그리고는 그 송아지를 가리켜 야훼다 이가 우리를 구원해 낸 야훼야 라고 그렇게 하느님을 모독했어요 자 그 거룩한 하느님 율법이, 하느님이 준비하시고 하느님이 쓰신 하느님에 율법이 그 간음에 현장으로 내려온 거에요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돌판을 던져서 깨버리죠. 그죠 율법이 내려와 죄를 심판하는 거에요 깨버리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와 공존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걸로 끝나나요 그럼 다 죽어야 되는 거에요 우리는 다시 올라가죠

그런데 두번째 벨사살 왕의 잔치에 나타난 하느님의 손은 뭐죠 다니엘서 5장을 보시면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성전에 그 금그릇 은그릇으로 술을 받아 마시고 금은동철과 나무 돌로 된 신들을 찬양한 그런 벨사살을 심판하셔서 그 날밤 다리오로 하여금 그를 죽이게 만드시는 거에요 그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라는 글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26 그 뜻은 이렇습니다. '므네' '하느님께서 왕의 나라 햇수를 세어 보시고 마감하셨다' 는 뜻입니다. 27 '드켈' '왕을 저울에 달아 보시니 무게가 모자랐다' 는 뜻입니다. 28 '브라신' '왕의 나라를 메대와 페르샤에게 갈라 주신다' 는 뜻입니다.' (다니엘5,26-28)

하느님에 저울에 부족한 자로 판명이 됐다라는건 뭐에요 하느님에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무엇을 쓰셨다라는 것은 율법에 근거한 심판을 의미하는 거에요

에레미야서로 가서 확인해보죠 에레미야 1712-13절 보세요 12 '한 처음에 높이 자리잡으신 빛나는 옥좌 있는 곳 그 곳이 우리의 성소입니다. 13 이스라엘의 희망은 야훼께 있습니다. 주님을 저버리고 어느 누가 부끄러운 꼴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맑은 물이 솟는 샘 야훼를 저버리고 어느 누가 땅에 쓴 글씨처럼 지워지지 않겠습니까

 

보세요 위에서 언급한 세 사건은 바로 이 예레미야의 말씀을 알기 쉬운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는 거에요 여기 보시면 땅과 생수이신 하느님 그리고 야훼를 떠나는 자 죄인 등에 오늘 본문에 등장인물과 소품들이 그대로 나오고 있죠 땅 생수이신 하느님을 떠나는 자 죄인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하느님 율법에 저울에 달아서 부족한 죄인들, 다른 말로 땅에 기록되어 죽어야 할 자들이 어떻게 살아나게 되는 가에 대한 복된 소식인 거에요 죄인들은 하느님 율법의 저울에 달아서 부족함 없이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다 죽어야 돼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로마서 310)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이 그 여인을 고소하던 자들에게 뭐라 그래요. 돌로 쳐라. 죽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에 근거하여 돌로쳐라 죽여라 라는 거에요 왜 그건 하느님이 말씀하신 율법이거든요 레위기 2010절에 나오잖아요

간음하다 잡힌 자는 돌로쳐서 죽여라 했으니까 예수님이 돌로 치긴 치는데 죄없는 자가 쳐라에요 그렇지만 돌로 쳐라입니다 죽여라에요 그리고는 다시 몸을 숙이시고 땅에다가 또 뭘 쓰셨어요 그랬더니 어른에서 젊은이까지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모두다 주님을 떠나가 버렸어요 그때 주님께서 그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않을 것이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어요 하느님 사랑이 부어진 거에요. 돌로 쳐라에서 하느님에 공의가 나타나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안으니 너는 가서 다시 죄를 범하지 말아라라고 사랑이 나왔어요 그럼 그 중간에 어떤 사건이 있어야 될거 아니에요 그걸 우리가 구약과 연결하여 한번 읽어 내 보자는 거에요 우리가 오늘 본문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키가 되는 단어가 8절에 다시라는 단어에요 88절보세요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자 하느님께서 직접 무언가를 쓰셨다가 다시 쓰셨던 사건이 구약에 있었죠 십계명 사건이죠. 쓰셨다가 깨버리고 다시 쓰신 사건 이 두 에피소드가 어떤 연관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안드세요 출애굽기에 십계명 돌판 이야기를 머리속에 떠올려 보세요 하느님께서 직접 쓰신 돌판 율법이 인간의 죄를 직면하자 심판이 일어났어요 개져버렸단 말입니다 그 일로 3천명이 죽었어요 심판이에요 그리고 두번째 다시 쓰신 십계명 돌판이 내려와서 어디로 들어가요 법궤 안으로 들어가는 거에요 그 두번째 돌판은 모세가 준비하고 하느님이 쓰신 돌판이죠 출애굽기 341절에보면 나오죠. 다른 말로 이 세상에 것과 하늘에 것이 합쳐저 만들어 진거에요 하느님이시면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거죠 그 율법이 법궤속으로 들어가 법궤 뚜껑으로 가려지는 거에요 그리고 그 법궤 뚜껑 위에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제물에 피가 부어져서 죄인들로 부터 율법이 가려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죄인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지금 그 이야기와 오늘 본문에 이야기가 똑같은 이야기인 거에요 그래서 그 법궤 위를 은혜가 베풀어 지는 자리 라고. 그런데 그 십계명 돌판에 그 두 이야기 사이에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삽입이 되어 있죠  출애굽기 3230 - 34절 보세요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일렀다. '너희가 이토록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을지 나 이제 야훼께 올라 가 보아야겠다.' 31 모세가 야훼께 되돌아가서 아뢰었다. '비옵니다. 이 백성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32 하지만 이제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만일 용서해 주지 않으시려거든 당신께서 손수 쓰신 기록에서 제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33 야훼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자는 누구든지 그의 이름을 나의 기록에서 지워 버린다. 34 너는 이제 곧 내가 말한 곳으로 백성을 데리고 가거라. 내 천사가 앞장서 갈 것이다. 내가 그들을 찾아 가 그들의 잘못을 따질 날이 반드시 오리라.'

 

모세의 중보사건이 그 두 돌판사이에 끼어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모세의 중보로 말미암아 하느님에 두번째 십계명 돌판이 오고 그들이 용서받게 된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도 바로 예수님의 그런 중보에 이야기가 가운데 삽입이 되어 그 죽어야 할 여인이 공의로 죽어야 할 여인이 사랑으로 살아나는 거에요 그런데 특이한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에 죄를 상징하는 금송아지를 가루로 만들어서 물에 타서 이스라엘에게 마시게 하죠 7장에서 내게로 와서 마셔라 라는 예수 그리스도에 이야기와 연결이 되는 거에요.

오늘 본문에도 똑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생수이신 예수님이 내가 물이다 그랬으니까 내가 생수다 그랬으니까 물이신 예수님이 죄를 상징하는 티끌에 섞여 버리는 모습이 나와요 예수님은 말씀이죠 예수님은 생수에요 생수이신 예수님의 말씀이 땅에 기록되니까 땅과 말씀이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과 생수와 죄가 티끌이 섞여 버리는 거에요 물과 금송아지 가루가 섞이는 것과 지금 똑같은 모양으로 예수님이 지금 섞이고 있는 거에요 그 모습이 글로 쓰는 거였고 그건 바로 심판이였단 말입니다. 그리고 티글이 섞여 버린 물이 죄인들에게 딱 제시가 되자 죄인들에 죄가 드러나고 양심에 가책을 받았다 그러잖아요. 딱 제시가 되자 그 죄인들에 죄가 드러나고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가버리는 거에요 아이고 하느님 잘못했습니다가 아니라 그 앞에서 죄가 들어나자 도망가 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티끌은 금송아지 가루처럼 죄와 죄인들을 상징하는 거에요 그 땅 그 티끌이 죄를 상징한다라는 것은 미가서에 잘 설명이 되어 있어요 미가서 717절 흙이나 핥는 뱀의 꼴을 만드시고 땅바닥을 기어 가는 벌레 신세가 되게 해 주십시오. 겁에 질려 저희의 요새에서 나와 부들부들 떨며 우리 하느님 야훼께로 오게 하십시오. 야훼 두려운 줄 알게 해 주십시오.

 

이처럼 흙은 뱀이 먹는거 즉 뱀이 장악할 수 있는 상태로 되어 있는 대상 다른 말로 죄와 죄인들을 말하는 거에요. 예수님과 죄인들이 섞여서 예수가 죄인이 되고 죄인들이 예수가 되는 그 은혜를 하느님의 은혜를 떠난 죄인들은 절대 인정을 못하는 거에요 내가 내 힘이 남아있는데 왜 내가 은혜를 받아야돼 라고 도망가 버리는 거고 그 앞에서 나는 죄인이에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나에게 은혜 배풀어 주지 않으면 나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어요라는 사람만 그 복음을 받아들인다라는 뜻입니다 자 그렇게 티끌을 섞은 물 앞에서 죄가 드러나게 되는 사건은 민수기에 잘 나와있어요 민수기 511-13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네가 그들에게 전할 말은 이렇다. 누구든지 아내가 자기를 배신하고 13 자기 몰래 외간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하여 몸을 더럽히고 숨기고 있는데도 아무 증인이 없고, 또 현장에서 붙들리지도 않았을 경우

이거 간음 이야기죠. 간음은 뭐에요 죄인들이 하느님 말고 다른 것을 쫓아 다른 것을 힘삼고 그 세상에 힘으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믿고 행동하는거 그걸 간음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여기 여인은 누구에요 죄인들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왜 맨날 여자만 갖고 그래 그러지 말란 말이에요 그거 상징이란 말이에요 아셨죠

 

민수기 514- 19 14 남편이 자기 아내가 몸을 더럽혔으므로 질투심에 사로잡혀 아내를 질투하게 되거나, 아내가 몸을 더럽히지 않았는데도 질투심에 사로잡혀 아내를 질투하게 되면, 15 그 남편은 자기 아내를 사제에게 데리고 가서 아내를 위하여 보릿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드려야 한다. 그것은 질투 때문에 바치는 곡식예물이요, 죄를 생각하여 고백하게 하는 곡식예물이므로 그 위에 기름을 따르거나 향을 얹어서는 안 된다. 16 사제는 그 여인을 가까이 오게 하여 야훼 앞에 세워라. 17 그리고, 거룩한 물을 오지그릇에 떠 놓고 성막 바닥에 있는 먼지를 긁어서 그 물에 탄 다음, 18 그 여인을 야훼앞에 세운 채 머리를 풀게 하여라. 그리고 나서 질투 때문에 바치는 곡식예물, 곧 죄를 고백하게 하는 곡식예물을 여인의 두 손바닥에 들려 주어라. 그리고 사제는 저주를 내려 고통을 주는 물을 손에 들고 19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맹세를 시켜라. '외간남자와 한 자리에 든 일이 있느냐 네가 유부녀로서 남편을 배신하고 몸을 더럽힌 일이 있느냐 만일 그런 일이 없다면 저주를 내려 고통을 주는 이 물이 너를 해롭게 하지 못할 것이다.

똑같은 이야기가 또 나오고 있어요 거룩한 물에 티끌을 담아요 그릇은 뭐에요 흙 하느님인데 흙인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거룩한 물을 담고 있는 분은 누구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죄인들을 담아 버리는 것입니다

 

민수기 520- 28 20 너는 유부녀로서 남편을 배신하고 몸을 더럽힌 일이 있느냐 외간남자와 한 자리에 든 적이 있느냐' 21 그리고 사제는 그 여인에게, 저주를 받아도 좋다는 맹세를 하게 하고 나서 이렇게 일러라. '그렇다면 주께서 너의 겨레 가운데서 맹세하신 대로 너를 저주받는 본보기로 삼아 네 허벅지가 말라 비틀어지고 배가 부어 오르게 하실 것이다. 22 저주를 내리는 이 물이 네 뱃속에 들어 가면 배가 부어 오르고 허벅지가 말라 비틀어질 것이다.' 여인이 '좋습니다. 좋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23 사제는 그 저주를 글로 써서 그 저주를 내리는 물에 씻어라. 그리고 24 그 저주를 내려 고통을 주는 물을 여인에게 주어 마시게 하면 저주를 내리는 물이 그의 뱃속에 들어 가서 고통을 겪게 할 것이다. 25 사제는 그 여인의 손에서 질투 때문에 바치는 곡식예물을 받아, 주 앞에 흔들어 바치고 제단으로 가져가거라. 26 사제는 그 곡식예물을 바친다는 표시로 한 웅큼 집어 내어 제단에서 사르고 나서 그 물을 여인에게 주어 마시게 하여라. 27 그 물을 여인에게 마시게 하였을 때, 그 여인이 정말 몸을 더럽혀서 남편을 배신한 일이 있었다면, 그 저주를 내리는 물이 들어 가면서 여인은 배가 부어 오르고 허벅지가 말라 비틀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제 겨레 가운데서 저주를 받은 여인의 본보기가 되리라. 28 그러나, 만일 그 여인이 몸을 더럽힌 일이 없어 깨끗하다면,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자식을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여인이 간음을 했는지 안했는지 판별을 할때 율법이 정한 규레인 거에요 그러나 이것은 단순이 간음한 여인의 판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죠. 여기서 여인은 신부인 교회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리고 간음은 하느님 이외에 다른것을 자신의 힘으로 삼으려 하는 인간의 죄를 상징하는 거구요. 남편에게 범죄함을 의심받는 여인은 그러니까 죄인은 거룩한 물에 티끌을 넣어 마시게 해보면 판별이 난다는 거에요 여기서 그릇에 담긴 거룩한 물은 예수 그리스도라 그랬어요 하느님이시면서 인간의 몸인 질그릇로 오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23절에 보면은 그 말씀이 하느님의 말씀, 저주에 말이라고 나왔지만 그게 하느님에 말씀이란 말이죠 하느님의 말씀이 물에 섟이잖아요 그 물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란 말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죄가 들어가서 죄인들이 그 생수의 물을 마시는 모양으로 죄 있음과 죄 없음이 판별이 된다라는 뜻인 거에요 그러니까 창세전에 선택된 사람들은 그 물을 마시고 죄없는 자로 선포가 되는 것이고, 자신의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그 은혜의 복음을 받아드리는 거고, 그들은 물을 마신다 말이에요 갈증이 나니까 또 하느님에 선택에서 제외되어 유기된 자들은 예수라는 그 물에 의해 죄인으로 확인이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기에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복음을 안받아 드리는 거죠 은혜를 안받아 드리는 거에요. 자기에 힘으로 율법을 지키겠다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율법적으로 가는 사람이 죄인이고, 하느님 저는 낫띵이에요 저는 아무것도 못해요 항복 하고 그 물을 받아 드리는 사람,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 그 사람이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간음한 여인의 죄가 예수의 죄가 되어 예수가 죽고 그 여인이 살아나는 거에요 그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와 티끌들이 죄인들이 연합하여 생수와 티끌이 연합하여 예수가 죄인이 되고 죄인이 예수가 되는 그 은혜에 복음을 그 여인이 받아드린 것입니다 그걸 믿으면 우리도 간음한 여인처럼 살아나는 거에요 그것만 믿으면 그 이야기하는 거에요 구원은 그렇게 인간의 율법지킴과는 전혀 관계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은혜로만 말미암는 거에요 예수를 마시는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다른 길이 없어요

이렇게 하느님에 공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행이 되고 예수가 죽어 버리는 거죠. 공의가 예수 안에서 실행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퍼부어진 거란 말이죠 어떻게 하느님의 공의와 사랑이 화해를 하게 됐는지 아시겠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공의와 사랑이 요렇게 회해가 되는 것입니다 조화를 이루게 된 거에요. 우리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것을 믿음이라고 해요 은혜의 믿음. 그러니까 믿음은 나로서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자각하고 다른말로 나로서는 절대 참 행복에 이를 수 없어 이 세상 것들로 내 힘으로는 절대 참행복에 이를 수 없어 라는 것을 자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은혜의 물을 마시는 자기 부인과 절대 순종에 행위를 수반하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죄인들은 끝까지 자기에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죠 자기에 죄가 드러났을 때에 주님 앞에 엎드려서 주님에 은혜를 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 자리를 떠나버리는 것으로 자신에 자존심을 지키려 하는 것이 죄인들인 거에요. 여전히 율법을 붙들고 있는 거에요 여전히 힘이 남아 있는 거에요 여전히 자신들에 가능성을 놓고 싶지 않은 거죠 스스로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믿는 거에요

왜 주님이 초막절 끝날에 내가 물이니까 나를 마셔라 라고 말씀하시는 바로 고 뒤에 장면에요 이야기가 붙어 있는지 이제 아시겠죠 이 이야기는 단순히 공의보다 더 큰 하느님에 사랑 그 이야기가 아니에요 십자가 복음 은혜가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상징하는 옛 성전에서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 율법을 부정하고 밟아 버리고 은혜로 죄를 이겨 버리는 모습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 이야기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배경이 성전인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구원을 얻은 여인에게 이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그러죠

그런 은혜를 이제 이해한 우리는 간음한 우리의 이름이 그 흙에 기록되어 우리가 저주받아 죽어야 할 처지였는데 우리에 이름을 예수님이 싹 지워 버리고 자기에 이름을 거기에 써 버리신 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죽어 버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살아났어요 이제 곧 돌에 맞아 죽을 줄 알고 있었는데 다 도망가고 예수님이 얘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을테니까 이제가서 죄짓지 말어라고 이야기하셨어요.

자 이 복음을 아는 자들이 어떻게 살겠냐구요 여전히 그 죄를 지을까요 우리들이 그 자리에서 서있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나 이제 곧 죽어요 나 이제 돌아맞아 이제 짱돌맞아 죽어야 되는데 예수님이 대신 맞아 죽으시고 그 예수님이 죽어가시면서 나에게 이야기하셨어요 얘야 내가 너를 대신해서 이렇게 죽어 준다 그러니까 이제 내 말을 들어 가서 죄 짓지 말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그 복음을 믿는 사람이 여전히 똑같은 상태에 머물겠냐구요 그러니까 복음을 아는 만큼 변화되어져 가는 거에요 복음을 이해하는 만큼 그 깊이 만큼 변화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교를 놔두고 그냥 그 예수님에게 짱돌맞아 죽어가시는 예수님 앞에 가서 예수님 병 낫게 해달라니까 왜 그렇게 누워있어 아니 내 소원은 안 이뤄주고 왜 그렇게 맞아 죽어 가고 있어 좀 일어나봐 이게 바리사이인이라니깐요 늘 그런 약한 모습으로 온거야 자기 때문에 자기에 그 연약함이 되어 죽으러 오셨기 때문에 그렇게 약한 모습으로 오신 것이지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약한 모습으로 온거 아니거든요

 

자기 때문에 그렇게 약한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죽어가신 예수님 앞에서 너 왜 그렇게 죽어가 정치적인 군사적인 메시아로 와서 그 화려한 다윗 왕국을 건설해 줘야 되잖아 재건해 줘야 되잖아 회복시켜 줘야 되잖아 왜 그렇게 죽어 진짜 그렇게 죽을거야 그래 죽어 그러고 자기도 찍는 거죠 그게 바리사이인들 이라구요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오늘날에도 그런 바리사이인같은 독사의 자식들이 교회 안에 앉아 있다니깐요 그 죽어가는 예수님에게 왜 나를 못 도와주는거야 외치고 있다니깐요

나를 대신하여 돌에 맞아 죽어가시는 그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죄 앉짓는 자로 변해가는 거에요 그게 그리스도교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인 거에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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