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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9일 (금)부활 제3주간 금요일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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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9.6.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거기 그들 가운데 나도 있다.”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140570 송문숙 [moon6388] 스크랩 2020-09-06

  마태 18,15-20(연중 23 주일)

 

오늘 말씀전례는 잘못된 형제의 교정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아가서 잘못된 세상의 교정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1독서>에서 예언자 에제키엘은 말합니다.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에제 33,7-8)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타일러라. 단 둘이 만나 타이르고, 말을 듣지 않으면 다른 증인을 데려가

                타이르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려라.”(마태 18,15-17 참조)

 

이는 우리가 곧 교회가 잘못된 형제들과 혹은 잘못된 세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책임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규칙서(4)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잘못한 형제를 고쳐주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살인행위와 같다.  

                왜냐하면, 잘못한 형제는 마치 독 있는 뱀에 물린 상태와 같은데,

                그 독을 빼내어주지 않고 그대로 나두는 것은 잔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도 <복음의 기쁨>에서 하셨습니다.

                ‘진리와 사랑 앞에서 몸을 숨기는 것은 자살행위다.’(272항 참조)

이는 모두 타인과 세계와 우리 자신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깊은 유대와 긴밀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형제의 잘못에 내가 책임이 있으며, 세상의 잘못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형제의 잘못과 세상의 불의에 눈감게 되면 자살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로마 13,10)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형제를 교정하면서 그 방법과 절차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혼자 단독으로 조용히 타이르는 교정이요,

<둘째>는 두세 사람이 함께 하는 교정이요,

 <셋째>는 교회를 통한 교정하는 것이요,

<넷째>는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는 것을 통한 교정입니다.

 

<복음>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단지 잘못한 형제에 대한 형식적인 교정방법과 절차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스며있는 사랑과 배려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타인을 남이라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의 지체라는 사실에서 옵니다. 그러기에, 잘못된 것의 교정이 우선적으로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극한 형제적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또 한편으로, 우리가 교정 받을 때는 한갓 잔소리쯤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형제적 사랑으로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어떤 형제가 잘못했을 때는, 먼저 그의 잘못을 앞세우기에 앞서 그가 바로 내 형제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비록 그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는 죄인이기 이전에, 바로 내 형제, 나는 그의 형제라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죄를 찾아내어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회개시켜 그들과 함께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일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8,18)

 

교회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권한, 풀기와 매기의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매는 권한은 최종적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매는 조건이 풀어지면, 교회는 항상 풀어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죄인이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

 

그러니, 이 세상에서 함께 마음을 모으는 일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이루는 것은 모인 사람의 수가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사랑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을 모으는 바로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거기 그들 가운데 나도 있다.”(마태 18,20).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마태 18,15)

 

주님!

형제의 잘못을 앞세우기에 앞서,

그가 내 형제임을 알게 하소서!

형제가 잘 되기를 위해, 기도할 줄을 알게 하소서!

그의 잘못이 드러나거든,

그에게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함을 알게 하소서.

힘을 모아 사랑하게 하소서!

그를 돕는 길은 죄를 찾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데 있음을 알게 하소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우리의 사랑만으로는 안 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이신 당신께 의탁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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