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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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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성모님의 별세와 승천에 대한 고찰

135318 박현희 [yesyes] 스크랩 2020-01-14

 


1, "내가 죽었었느냐? 영의 고상한 부분이 육체와 갈라지는 것을 죽음이라고 부르려고 한다면 죽었었다. 그러나 죽음이란 말로 육체에 생명을 주던 영혼이 육체와 갈라지는 것을, 영혼으로 생명을 받지 못하게 된 물질의 부패를 가리키고, 우선 무덤의 음산한 성격과 우선 이 모든 것 중에서 죽음의 고통을 가리킨다면 나는 죽지 않았었다. 내가 어떻게 죽었느냐, 아니 그보다도 어떻게 땅에서 하늘로, 우선 죽지 않는 부분을 가지고  그 다음에는 죽을 수 있는 부분을 가지고 건너갔더냐?  죄의 흠을 알지 못한 여인으로서는 마땅히 그랬어야 할 것과 같이 말이다.


그날 저녁 안식일의 휴식이 벌써 시작되었고, 나는 요한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예수와 예수의 일에 대해서, 저녁은 더없이 고요하였다. 안식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일하는 소리가 도무지 들리지 않았고, 시간이 늦어 사람과 새의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집 둘레에 있는 올리브 나무들만이 저녁 바람에 살랑거렸고, 날아다니는 천사들이 외따른 작은 집의 벽을 스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예수와 아버지와 하늘나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사랑과 사랑의 나라에대해 말하는 것은 활활 타는 불로 타오르는 것이고, 영을 해방해서 신비스럽게 날아 올라가라고 물질의 끈을 태워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불이 하느님께서 인간들이 당신을 섬기라고 이 세상에 보존해 두기위해 정해놓으신 한계 안에 있으면, 사람이 살고 불타면서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생명이 다하지 않고 생명의 완성을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 한계를 치우시고 하느님의 불이 마음대로 뚫고 들어가 영을 아무런 제한 없이 그에게로 끌어들이게 내버려 두시면, 그 때에는 영도 제한 없이 사랑에 응해서 물질과 갈라져 사랑이 끌고 청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그러면 귀양살이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날 저녁 내 영의 억제할 수 없는 열정과 한없는 활기에 어떤 아늑한 무기력과 물질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멀어진다는 신비로운 감정이 겹쳐졌다. 지성은 한층 더 생생하게 추리하며 하느님의 광휘속으로 빠져들어 갔는데 말이다. 내 외아들의 뜻에 따라 내 양자가 된 때부터 내 모든 행동을 다정스럽게 조심성있게 보아 온 요한은 침대에서 쉬라고 조용히 권하고 기도를 하면서 나를 지켰다.

 

내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는 동정 사도 요한이 속삭이는 말이었다. 그것이 내게는 요람 곁에서 부르는 어머니의 자장가와 같았다. 그 말들이 내 영의 말할 수 없이 숭고한 마지막 탈혼을 배웅해 주었다. 그 말들은 내 영을 하늘까지 배웅해 주었다. 이 감미로운 신비의 유일한 목격자인 요한은 내 옷과 베일을 바꾸지 않고, 내 몸을 씻지도 않고 향유를 바르지도 않고 내 흰 겉옷으로 싸서 혼자서 정돈했다.

 

요한의 영은 성신강림에서 내 승천에 이르는 이 주기의 둘째 삽화에 있는 그의 말로 분명히 알 수있는 것과 같이 내 육체가 부패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벌써 알고있었고, 사도에게 어떻게 해야할지를 일러주었다. 순결하고 다정하고 하느님의 신비와 멀리있는 동료들에 대해 조심성 있는 요한은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하느님의 다른 종들도 나를 다시 보고 . 이렇게 봄으로써 그들의 임무에서 오는 고생과 피로에 위로와 도움을 얻도록 그들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동료들이 올 것을 확신하는 것처럼 기다렸다. 

 

그러나 하느님의 명령은 달랐다. 그 명령은 언제나 그런 것처럼 사랑받는 제자에게는 좋은 것이었고 모든 믿는 이에게는 언제나 그런 것과같이 올바른 것이었다. 사랑받는 사도에게는 하느님께서 눈꺼풀을 무겁게 하셔서 잠으로 인해서 내 육체를 빼앗아 가는 것을 보는 지극한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였다.

 

또 믿는 이들에게는 또 한 가지 진리를 주셨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육신의 부활과 의인들에게 주시는 영원하고 복된 생명의 보상을 믿게 하시려는 것이었고, 신약의 가장 강력하고 가장 기분좋은 진리인 내 원죄없는 잉태와 동정녀로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 내 모성을 믿게 하시려는 것이었고 육체의 의욕으로 태어나지 않고 하느님의 혼례로, 그리고 내 태중에 넣어진 하느님의 씨에서 태어난 참 하느님이요 참 사람인 내 아들의 천주성과 인성을 믿게 하시려는 것이었고, 끝으로 하늘에는 의인과 죄인 모두에 대하여 염려하는 사랑으로 두근거리고 모두를 복된 고향에서 영원히 데리고있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어머니인 내 마음이 있다는 것을 믿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천사들이 나를 작은 집에서 데리고 나왔을 때 내 영이 벌써 내게 돌아와 있었느냐? 아니다. 내 영은 이땅에 다시 내려오지 않게 되어 있었다. 하느님의 옥좌 앞에서 흠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과 귀양살이의 곳, 하나이시요 세위이신 내 주님과 갈라져 있게 하는 때와 장소가 영원히 버려졌을 때, 내 영은 내 영혼 가운데로 돌아와 찬란하게 빛나며 육체를 잠에서 끌어냈다.

 

그러므로 내가 육신과 영혼으로 하늘에 올라간 것은 예수의 경우와 같이 나 자신의 힘으로 한것이 아니라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렇게 한 것이다. 나는 그 불가해하고 신비로운 잠에서 깨어나 일어났고, 마침내 내 육체는 영광스럽게 된 육체들의 완전을 얻었기 때문에 날아갔다. 그리고 나는 사랑했다. 나는 다시만난 내 아들을 사랑했고, 하나이시요 세위이신 내 주님을 사랑했다. 영원히 사는 모든 인간의 운명이 그런것과 같이 나는 주님을 사랑했다."

 

 

2. 그의 최후가 왔을 때, 내 어머니 마리아는 모든 향기를 발산한 다음에 별 아래에서 몸을 구부리고 꽃받침을 닫는 기진맥진한 백합꽃처럼 침대에 누워 하느님에 대한 마지막이고 차분한 명상에 잠기려고 둘레에 있는 '모든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으셨다. 마리아의 수호 천사는 하느님의 명령이 정한 시간에 절박한 탈혼이 그 영을 육체에서 분리시키고 땅에서 영원히 분리시키기를 초조히 기다리며 그 쉬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때 벌써 하늘에서는 하느님의 다정스럽고 매력있는 명령이 내려오고 있었다. 


한편 이 세상의 천사인 요한도 이 신비스러운 휴식을 들여다보며 그를 떠나려는 어머니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숨을 거두신 것을 보고는 속되고 호기심 많은 눈을 피해서 죽음을 초월하여 그렇게도 아름답고 조용하게 주무시는 하느님의 티없는 정배요 어머니로 그대로 계시도록 또 지켰다.

 

토마가 마리아의 유골 항아리를 다시 열었더니 꽃밖에 없더라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전설이다. 어떤 무덤에서도 마리아의 시체가 들어 있지 않았었다. 인간적인 의미로는 마리아의 시체가 결코 없었다. 그것은 마리아가 생명을 가진 누구나가 죽는 것같이 돌아가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다만 하느님의 명령으로 영과 갈라졌을 뿐이었고 당신을 앞서 간 영과 더불어 그의 지극히 거룩하신 육체가 다시 결합한 것이었다. 황홀이 끝나면, 즉 영이 정상 상태로 돌아오면 탈혼도 끝나는 일반적인 법칙과는 반대로 이 경우에는 마리아의 육체가 죽음의 침대에 오래 머물러 있은 후에 영에게 돌아온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있다. 나는 내 능력 말고 다른 도움 없이 무덤에서 나왔다.  마리아는 나에게로, 하느님께로, 하늘로, 소름끼치고 음산한 부패가있는 무덤을 거치지 않고 왔다. 그것은 하느님의 가장 눈부신 기적의 하나였다. 에녹과 엘리야가 주님께 소중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없어져서 하느님만이 아시고 하늘에 사는 주민들만이 아는 어떤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을 생각하면 사실은 유일한 기적은 아니다. 그들은 의인들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성덕이 하느님께만 떨어지는 내 어머니와 비교하면 그래도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의 시체와 무덤의 유물은 없다. 마리아는 무덤을 거치지 않았고, 그의 육체는 하늘로 올려졌기 때문이다.
   


3. "내 아들을 잉태한 것은 황홀한 일이었고, 아들을 낳은 것은 더 황홀한 것이었으며,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늘로 건너가는 것은 황홀한 가운데에서 가장 황홀한 것이었다.  수난 동안만 아무런 황홀도 내 혹독한 고통을 참아견딜수 있게 하지 못했다. 내가 거기서 하늘로 올라간 집도 예수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라자로의 수많은 선심 중의 하나였다. 예수가 승천한 곳 가까이에 있는 게쎄마니 동산의 작은 집이었다. 그 집의 흔적을 찾으려고 해도 소용없다. 로마인들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파괴될 때에 그 집도 황폐하게 되었고, 그 잔해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흩어져 버렸다."


 

4. "내 아들의 탄생이 내게는 하나의 탈혼이었고, 그 시간에 내가 붙잡혀 들어간 하느님 안에서의 황홀에서 내 아기를 품에 안고 나 자신과 이 땅에 돌아온 것과 같은 모양으로 부적당하게 내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도 하느님 안에서의 황홀이었다. 성령강림날 아침의 그 찬란한 빛 가운데에서 내가 받았던 약속을 믿고, 나는 사랑이 나를 그 안으로 빼앗아 가려고 마지막으로 오는 순간이 가까워진 것이, 나를 항상 불사르고 있던 사랑의 불이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었다.


내 쪽에서는 나이 먹어 갈수록 영원한 사랑속에 혼합되기를 바라는 소원이 내 안에서 더 커지고 있었다. 내게 그런 소망을 품게 하는 것은 내 아들과 다시 결합하기를 바라는 갈망과 내가 하느님의 옥좌 아래에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영험이 있는 사람으로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어느 때보다도 그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점점 더 정열적이고 더 빠른 감정을 가지고 내 영혼의 온 힘을 기울여 하늘을 향해 부르짖곤 했다. '주 예수, 오세요! 영원한 사랑 오세요!" 하고.

 

내게는 목이타는 꽃에 내리는 이슬과 같은 성체가 내게 생명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성체가 내 마음의 억제할 수없는 불안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이제는 거룩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하느님인 내 아들을 받아, 마치 내 동정녀의 몸 안에 그를 가졌던 것과 같이 내 안에 지니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게 되었다.나 자신 전체가 하나이시요 세위히신 하느님을 원속에 가려진 분으로가 아니라, 하늘 한가운데에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미래에도 계실 그대로의 하느님 뵙기를 원했다.


내 아들 자신도 성체의 격정속에 무한한 갈망의 포옹으로 나를 불타오르게 하고, 그의 사랑의 힘으로 내 안에 올 때마다 말하자면 내 영혼을 첫번 격정 속으로 빼앗아 가고 그 다음에는 무한히 다정스럽게 '어머니!'하고 나를 부르면서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아들도 나를 그의 곁에 두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더이상 다른 것을 바라는 것이 없게 되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산 마지막 시기에는 새로 태어난 교회를 보호할 욕망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느님을 차지하면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확신으로 인해서 하느님을 차지하고자 하는 갈망 속에 모든 것이 사라졌었다.


그리스도인들아, 이 전적인 사랑에 도달하여라. 이 세상의 것은 모두 가치를 잃는다. 오직 하느님만을 쳐다보아라. 욕망의 가난(욕망이 적은 것)이 헤아릴수 없는 재물인데 너희들이 이것으로 부유하게 되면 하느님께서는 너희들의 영위로 몸을 구부리시고 우선 가르치고, 그 다음에는 사로잡으신다.

 

그러면 너희들은 그분과 더불어 성부, 성자, 성령께로 올라가 그분들을 알고, 영원히 행복하게 그분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너희 형제들을 위해 그분들의  은총의 재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형제들과 함께 있지 않을 때만큼 그들을 위해 활동할 수있는 때는 결코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하느님의 빛과 결합한 빛이 되어야 한다.


영원한 빛에 접근한 내가 생각했던 대로였다. 내 영적인 눈에 열려진 하늘에서 내려와 내 영혼을 거두어 가려고 다가오는 찬란한 빛과 목소리에 눌려 모든 것이 빛깔, 목소리와 존재를 잃었다.
그 시간에 내가 내 아들의 도움도 받아 몹시 기뻐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다정스러운 내 예수는 즉 영원하신 삼위일체의 셋째 위이신 성령께서 내게 내 생애의 세번째 입맞춤을 하셨을 때 성부와 함께 있었다. 
이 입맞춤은 지극히 강력하게 신성한 것이어서 내 영혼은 정신을 잃고 그것을 쳐다보며 마치 백합꽃의 꽃받침에 있는 이슬 한 방울이 태양에 빨려 들어가듯이 그 입맞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래서 나는 내 영과 호산나 소리와 더불어 내가 항상 흠숭한 삼위의 발 아래로 올라갔다. 그런 다음 불빛깔 거미발에 물린 진주처럼 내가 하늘에 태어나는 영원한 날 나를 보좌하려고 온 천사들의 무리에게 처음에는 도움을 받고 그 다음에는 그들의 앞장을 서서 내 예수가 하늘 문턱에서부터 기다리고, 또 세상에 있을 때의 내 의인 남편과 우리 민족의 왕들과 족장들, 그리고 최초의 성인들과 순교자들이 문지방에서 기다리는 가운데 끝없는 기쁨의 나라로 들어갔다. 하느님의 보잘 것없는 종으로서 수많은 고통과 모욕을 겪은 다음 모후로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문은 나를 차지하는 기쁨, 그 모후를 가지는 기쁨을 간직한 채 닫혔다. 모든 사람의 육체 중에서 오직 내 육체만이 마지막날 부활과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에 영광스럽게 되었다."


5,"내 겸손한 마음으로는 나를 위하여 하늘에 그다지도 많은 영광이 마련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 할 수가 없었다. 내 생각에는 하느님을 모셨기 때문에 거룩하게 된 내 인간 육체가 부패를 겪지 않으리라는 확신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느님이 생명이시고, 또 하느님께서 어떤 피조물에 당신 자신을 넘치도록 가득 채우시면 그 행동이 죽음의 부패를 막는 향유 같기 때문이다.


나는 티없는 채로 남아 있고, 순결하고 생산력이 있는 포옹으로 하느님과 결합했을 뿐만 아니라, 내 태중에 숨어서 인간의 육체로 당신을 감싸는데 골몰하고 계신 천주성의 발로가 내 지극히 깊은 은밀한 곳까지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인자하신 영원한 분께서 당신 여종에게 내 아들의 손의 접촉을 내 지체에 다시 느끼고, 그의 포옹과 입맞춤을 다시 받고, 내 귀로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내 눈으로 그의 얼굴을 보는 기쁨을 마련하셨으리라는 것은. 그런일이 내게 주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고, 바라지도 않았었다. 이 지복이 내 영에 주어지는 것만으로는 내게는 충분했고, 그것으로 벌써 내 자아는 지극히 행복이 가득찼을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그분에 의해 지상낙원에서 죽지 않고 천상낙원 즉 영원한 나라로 건너가도록 운명지어진 사람에 대해서 창조하실때 처음가지셨던 당신 생각을 입증하시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티없는 내가 이 세상의 생명이 끝나자 마자 영혼과 육신을 가지고 하늘에 올라가기를 원하신 것이다.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에 대해 생각하시고 원하신 것을 말하는 증언이다.

그것은 잘못을 모르는 죄없는 생활을 하고 나서 어떤 사람이 집의 문지방을 넘어 궁궐에 들어가는 것처럼 이 세상의 생명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조용히 건너가는 것이었다. 사람은 하느님께서 그에게 주신 그의 자아의 완전을, 하느님의 생각으로는 하느님과 은총에 충실한 채로 있는 모든 인간이 가지게 되어 있는 육체와 영의 전적인 완전으로 더 증가시키면서 물질적인 육체와 영적인 영혼으로 이루어진 그의 전체를 가지고 땅에서 하늘로 건너 갔을 것이다. 이 완전을 사람이신 하느님에게서 오는 충만한 빛 속에서 달성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육신과 영혼으로 하늘의 영광 속에 올라간 나를 성조들과 예언자들과 성인들 앞에 천사들과 순교자들 앞에 세워 놓으시고 말씀하셨다.


'여기 창조주의 완전한 작품이 있다. 여기 내가 사람들의 모든 자식들 중에서 가장 참되게 나를 닮은 모습으로 창조한 것이 있으니, 하느님이 창조한 것 중에서 걸작품이며 우주는 경이이다. 우주는 오직 한 존재안에, 하느님과 같이 영원하고, 하느님과 같이 영적이고 지적이고 자유롭고 거룩한 영 안에는 하느님다운 것을 지니고, 육체 중에서 가장 거룩하고 가장 죄없는 육체안에는 물질적인 피조물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보며, 이 앞에서는 우주의 삼계에 있는 모든 다른 생물이 몸을 굽혀야 한다. 여기 사람에 대한 내 사랑의 증거가 있으니, 나는 사람에게 완전한 인체와 내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복된 운명을 주고자 하였다. 여기 사람에 대한 내 용서의 증거가 있으니, 나는 삼위일체의 사랑의 의지로 사람에게 그의 신분을 회복하고 내 눈 앞에서 다시 만들어지도록 허락하였다. 이 사람은 최초의 시기로 다시 돌려놓아 하느님인 나의 눈에 내가 창조한 그대로의 하와를 바라보는 기쁨을 주고, 이제는 내 말씀의 어머니가 되고 가장 큰 용서의 순교자가 되었기 때문에 한층 더 아름답고 더 거룩하게 된 하와를 바라보는 기쁨을 주는 여인이다. 아주 작은 흠조차도 묻지 않은 티없는 그의 마음을 위하여 나는 하늘의 보고를 열고 교만한 생각을 가진 적이 없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내 광채로 면류관을 만들어, 이 여인이 내게 가장 거룩한 여인이기 때문에 그 머리에 면류관을 씌어 너희들의 모후를 만든다.'


하늘에는 눈물이 없다. 그러나 영들이 울수 있었더라면 감격으로 인하여 으르는 액체인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터이지만 하느님의 이 말씀이 있은 다음 눈물 대신 빛들의 반짝임이 있었고, 찬란한 빛들이 더욱 밝은 찬란한 빛으로 변했고 사랑의 불꽃의 뜨거운 기운이 더 뜨거운 불로 변했으며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영원히 복된 여종을 찬미하기 위한 천상 화음의 능가할 수없고 표현할 수 없는 소리가 있었다. 이 소리에는 내 아들의 목소리도 합쳐져서 있었다."




6. "진짜 죽음에 의한 영혼과 육신의 분리와 정관하는 탈혼이나 황홀에 의하여 영이 육체와 육체에 생명을 주는 영혼과 일시적으로 분리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영혼과 육신의 분리는 진짜 죽음을 가져오는데, 탈혼적 정관, 즉 영이 감각과 물질의 울타리 밖으로 일시적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죽음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은 영혼이 육체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거나 분리되지 않고, 정관의 불 속에 잠기는 그의 가장 훌륭한 부분으로만 떠나기 때문이다.

 

든 사람은 살아 있는 한 죄로 인하여 죽은 영혼을 가지고 있든가 의덕으로써 산 영혼을 가지고 있든가 한다. 그러나 하느님을 크게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참된 관조에 이를수있다.


이것은 육체와 결합하여 있는 한 그 존재를 보존하는---그리고 이 특성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똑같은 것이다--영혼이 그 자체 안에 더 훌륭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영혼의 더 훌륭한 부분이란 영혼의 영혼 또는 영의 영을 말하는 것인데, 의인들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매우 강하지만 하다못해 냉담으로나 소죄만으로라도 하느님과 그분의 계율을 사랑하지 않게 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약해진다.

 

그래서 인간이 도달한 완전의 정도에 따라서 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 하느님과 그분의 영원한 진리들을 관조하고 알수 있는 능력을 인간에게서 빼앗는다.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리고 그의 모든 힘과 모든 능력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면 섬길수록 그의 영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 영원한 진리들을 알고 관조하고 통달할 수있는 능력이 더 많아진다. 이성적인 영혼을 가진 사람은 하나의 용량인데, 이것을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으로 채우신다.

 

마리아는 그리스도 다음으로는 모든 인간들 가운데에서 가장 거룩하기 때문에 하느님과 그분의 은총과 사랑과 자비가 가득 찬 용량이었으며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들 위에 영원토록 넘쳐 흐르게 되었다.

 

마리아는 사랑의 물결 속에 잠겨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하늘에서 사랑의 큰 바다가 되고 모든 사람의 한결 같은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그의 사랑의 물결을 그에게 충실한 자식들에게도 탕자들에게도 넘쳐흐르게 한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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